[뷔민] Pistill Omega Vrse
;피스틸오메가버스
어김없이 책상에 엎어져 골골대고 있었다. 어제 '전정국 약'이라며 들이밀었던 억제제 알알 두어개가 주머니 속을 뒹굴었다. 꽤 효과가 있는 듯 해서 다섯 알 정도를 단번에 삼켰더니 도리어 몸이 축 늘어졌다. 그래도 기침이 새거나, 짖누르르는 두통은 앓지 않았기에 나름 괜찮았다. 뜨거운 온도를 채워주듯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이제 여름도 끝물인가, 빳빳한 목덜미를 가볍게 주무르며 작게 하품한 지민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잘 세워진 목이 까딱 까딱, 넘어가기 일보직전이다. 북적북적한 교실이 어둡해진다. 그러나 찰나, 우당탕탕한 소리가 들리더니 삐걱한 나무 미닫이문 열리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아예 부수던가 해야지. 지민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야!! 김태형이랑 민윤기랑 싸움났다!!!」
넘어지던 고개가 다시 올곧아졌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체를 바로 세워 일어났던 것 같다.
Written by
주변을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아이 하나를 붙잡고 물어, 들은 것에 의하면 김태형이 먼저 민윤기를 쳤다고 했다. 아,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엉결겹에 자리에 낀 지민이 물끄럼 치고 박고 하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김태형이 갑자기 왜? 나는 이상하면서도 당연시하게 문제점을 김태형에게 두었다. 애마냥 감정조절이 좆같은 김태형이라 그렇다며 스스로의 변명을 두고 있을 찰나였다. 엉겨붙던 것이 한번에 끊어진다. 김태형이 바닥에 넘어지면서 손바닥이 찢어졌기 때문이다. 윤기를 올려다 보던 태형이 빠르게 균형을 잡더니 엄청난 힘으로 윤기의 배를 발로 차 넘어뜨리더니 주변을 둘러보다 그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던 내 손목을 붙잡고 빠르게 반을 나갔다. 잡혀가는 손목을 물끄럼 바라볼 쯤 되어서야 나는 화를 낼 수 있었다. 그 언젠가 손을 잡혀 끌려갔던 상황과 엇비슷해서 토악질을 할 뻔 했다. 야 씨발!! 김태형 존나 개같은 새끼야!! 손목을 잔뜩 비틀며 소릴 바락지르자 거칠게 들려 있던 제 손이 중력의 힘이라도 받듯 훅 떨어졌다.
「다쳤어.」
「뭔 신흥 지랄이야,」
「니가 치료해 줘.」
마치 인사를 하듯 손바닥을 내미는데 옅게 긁혀 손바닥에 피가 불거졌다. 쓰라린지 판판했던 손바닥이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아프겠다. 얼굴을 찡그린 지민이 속으로 되뇌며 입술을 물었다. 내가 널 왜 치료해? 그리고 씨발 왜 명령조야. 나 깔 아니야, 애인은 더 더욱 아니고. 끝이 붉은 손가락이 제 이마를 짚는다. 한 번 잤다고 해서 너랑 나 뽀뽀하는 사입니다, 그거 아니라고. 지민이 허공을 짚던 눈동자를 움직여 태형에게 맞추었지만 곧바로 그만두었다. 그 것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괜히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아 씨발 그러니까, 정의하자면 우린 좆같은 사이야. 지민이 말을 마치곤 태형의 손바닥을 다시 힐끔 쳐다봤다. 아까보다 더욱 구부정한 손바닥이다. 여름 다 간 줄 알았더니, 볕이 쨍쨍해서 상처가 구불구불하게 보인다. 태형이 팔등을 들어 자신의 눈 위에 얹었다. 따가운 볕을 피하려는 행동은 아니었다. 태형은 해를 등지고 있었다.
「나 피 못 봐.」
「그러니까…, 어?」
「그니까 니가 해.」
부탁. 울음을 참는 목소리가 햇빛에 따라 구부러진다. 확실히 여름인게 맞다. 곡선이 더 짙어진다. 저도 모르게 얼룩덜룩한 손바닥을 잡아 내렸더니, 태형의 벌겋게 핏대 선 눈이 보였다. 가자. 덤덤하게 말했지만,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번엔 지민이 앞서 걸었다.
아!! 아 씨발 진짜!! 살살 좀 붙여라. 태형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붙들린 손가락만 작게 꿈틀댔다. 씨발 니가 안 움직이면 될 거 아니야!!! 안 움직여도 아프다고!!!! 시끄러우니까 좀 닥쳐!!! 확 쎄쎄쎄해서 손바닥 강 스파이크로 내려치기 전에. 결국 입이 꾹 다물린 태형이 얌전히 거즈 덧대는 지민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손등에 까진 상처가 많다. 굳은살도 제법 있고. 그럼에도 희한하게 주변이 희어서 검붉게 딱지 진 상처가 눈에 띄었다. 너 전정국 같다. 태형의 말에 지민이 하던 것을 멈추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눈을 직시했다. 뭐가.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퉁명한 말이 뱉어졌다. 어깨를 으쓱이며 제 바짝 마른 입술을 훑은 태형이 히죽 웃었다.
「몰라, 그냥.」
너답네. 지민이 연고를 마저 정리하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났다. 물 안 들어가게 하고. 큼직한 보폭으로 문을 열어제친 지민이 그대로 세게 닫았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비비려는데 손바닥이 벌겋게 물들어, 곳곳이 바스라졌다. 손 씻는 거 깜빡했다. 제 손바닥에 응고되어 알알이 굴러다니는 피 알갱이를 바닥에 훅훅 털어냈다. 먼지마냥 나풀대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꼭 붉은 눈 같았다. 나는 화가 났다. 미적지근한 웃음을 어거지로 띄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나는 오메가가 싫다.
닮았대서 화난 건가. 전정국이 오메가라서? 지민이 왜 저러는지 어렴풋 이해는 가지만 이상한 건 어쩔 수 없다. 별 안 해 본 티가 나는 엉성한 테잎은 작게 웃음나게 만들었다. 전정국은 어땠더라, 여린 손가락이 가벼운 꿀밤을 주며 치료해주던 것이 생각났다. 매번 그렇게, 내가 널 지켜주면 너는 날 치료해줬다. 태형이 눈을 찡그리며 가볍게 웃었다. 피곤함이 주변을 눅눅지게 만든다. 너는 없다.
페이지 수가 어느덧 100페이지를 넘어섰다. 108페이지가 마지막 장인 짧은 책이다. 책 겉면에 물러지고, 찢어진 곳이 테잎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어 잡는 것 마다 꺼끌함이 손에 배겼다. 막 101페이지를 펼치려던 순간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천천히 책에서 시선을 떼서 제 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퍼렇게 멍들어선 머리는 잔뜩 엉클어져있었다. 민윤기? 정국이 눈을 축 늘어뜨린 채 책을 내려놨다. 왜 이렇게 다쳤어? 골골한 목소리에 윤기가 이마를 찡그렸다. 아파? 윤기의 말에 정국이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 너가 더 아파보이는데. 누구랑, 싸웠어? 정국이 손을 뻗었다.
「니 애인이랑.」
멈춧하던 손이 빠르게 내려가 주먹을 그러쥐었다. 내 애인? 웃던 얼굴이 굳어졌다. 나 애인 같은 거 없어. 누구 말하는 건데? 올려다 보는 동그란 눈이 꽤 매섭다. 그런 행동이 귀엽고 우스워서 실실 웃음이 샜다. 아님 말고. 윤기의 손이 정국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너 일학년 때 까만 색이었지? 윤기의 말에 정국이 말 없이 살살 끄덕였다. 그걸 묻는 이유가 뭔데. 입술이 달싹였지만 그만 뒀다. 먼저 묻는 건 자존심 상했다. 뾰로통한 입술을 보던 윤기가 정국의 목덜미를 가볍게 두 어번 쓰다듬곤 제 주머니에 손을 욱여넣었다. 뜨거웠던 것이 훅 하고 사라지자 정국의 시선이 아래로 치닫는다. 정국이 그러쥐던 주먹에는 붉은 끼가 없어진 지 오래다.
「알 것 같다.」
웃는 입술 모양이 좆같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