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업 때문에 다른 기업이랑 결혼 시키는 건 아니었대
지한: 그럼?
탄소: ...그냥 그렇게 자랐으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던 거래 그렇게 만난 사람끼리 서로 잘 맞아서 진짜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대 그래서 너랑 나도 불안정한 직업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그래도 잘못된 걸 그날 반응 통해서 이상한 걸 느꼈고 김석진 만났을 때 알게 되었대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지한이 자고 간 며칠 뒤. 탄소는 다시 한 번 통화를 연결했고 짐작하던 부분을 직접 확인하면서 새삼 허무했다고 합니다. 그 길로 동생을 찾아가 모든 이야기를 전하고 곧장 돌아왔죠.
탄소: 바보 멍청이야
석진: 나 뭐 잘못했어?
탄소: 나랑 연애하자
환하게 웃으면서 제 목을 끌어안는 탄소가 덧붙인 말은.
탄소: 우리집은 간섭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줄 알아서 애들을 그냥 방치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석진: 어... 글쎄...
탄소: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니까 뭐가 적당한 지를 모르겠어 그러니까 앞으로 네가 알려줘
석진: 또 상처 받을지 모르잖아 나한테
탄소: 병 주고 약 주는데 그럼 된 거 아니야? 상처만 줄 거 아니잖아 너 나 좋아하면서 그렇게 둘 거 아니잖아
석진과 탄소가 다시 연애한다고 합니다.
남준: 형한테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 맞아요?
탄소: 이미 인사했는데 괜찮지 않을까?
남준: 그래도 기왕 연애 사실을 알리는 거면 같이 움직이는 편이...
탄소: (긴장)
마음의 준비가 된 탄소와 지한 남매를 만나러 외국에서 한국으로 찾아올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죠. 물론 탄소 혼자만의 결심입니다. 며칠 뒤면 다가올 약속일에 긴장되어 매일 밤 연습실에서 안무와 보컬 연습을 지쳐서 더는 하지 못할 때까지 반복했다고 하는데요.
호석: 누나 요새 왜 안 들어와요?
탄소: 으악, 깜짝이야!
호석: 너무 무리해도 안 좋다고 했잖아요
탄소: 아니 그냥 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호석: 그러다 또 쓰러지면 어떡하려고요 자기 관리도 중요하다니까
연습실에 아무렇게나 자리한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은 호석이 물었습니다.
호석: 정말 괜찮은 거예요?
탄소: ?
호석: 그냥 그때 전화... 도 그렇고 지한이 앞이라 괜찮은 척한 건 아닌가 싶어서요 누나한테 동생이 유독 아픈 손가락이잖아요
탄소: 어... 나 정말 괜찮아 괜찮은 척한 것도 아니고
호석: 말 나온 김에 궁금했던 건데 왜 지한이가 누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에요? ...이런저런 일 겪어보니까 누나가 동생 생각해서 한 일들이 가끔은 그렇게까지 되나? 싶을 때가 있어서요
탄소: 너도 누나랑 사이 엄청 좋잖아
호석: 그렇다고 해서 누나만큼은 아니에요 그래서 더 물어보고 싶었어요 가끔은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서
탄소: 힘들지 않았어
어른이 없는 넓은 집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가끔 가사를 도와주는 사람이 드나들었고 그걸 이상하게 여길 틈도 없이 그게 내 일상이 되었으니까. 어쩌면 힘들었는데 그게 힘든 줄 몰랐을 걸. 근데 몰랐으면 그걸로 그만 아닌가.
탄소: 지한이가 있으니까 혼자가 아니었어 적어도 덩그러니 남겨진 건 아니라 덜 외로웠다고
호석: 그건 누나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잖아요
탄소: 태어날 때부터 내가 있었던 지한이랑 처음에는 혼자였던 내가 아예 같을 수는 없지
호석: ... ...
탄소: 나한테 그런 애야, 지한이는
호석: 힘든 걸 물어봐서 미안해요
탄소: 나한테는 안 힘들었다니까 그러네 자꾸 그렇게 안 힘들다는데 힘들었냐 괜찮냐 물어보는 것도 실례야
호석: 고쳐볼게요
탄소: 사실 지한이가 없었으면 상황이 더 안 좋았겠지 그냥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런 대로 휩쓸리며 지냈을 거야 근데 지한이가 있어서 나는, 애가 보고 배울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야 정말 이대로 가다가 지한이가 나처럼 되면 어떡하지, 하면서 무서웠거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자기 입장을 주장할 줄도 모르고 그냥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서 자기가 망가져가는 줄도 모르는 아이가 되면 어떡하지. 겉껍데기만 멀쩡하고 속은 문드러져서 그냥 살아있는 인형이 되면 어떡하지, 하고.
탄소: 솔직히 나로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꼭두각시로 조종 당하며 지내는 게 더 쉬웠거든 그냥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면 되니까, 억지로 내 의지를 가질 필요 없이 몇 번 웃어주고 그러면 되었으니까
호석: 모두 누나 동생한테 되게 고마워해야겠네요
탄소: 왜?
호석: 안 그랬으면 누나는 이 팀에서 지금까지 함께하지 않았을 테니까
탄소: ...은퇴하라는 말 듣자마자 은퇴했겠지
호석: 조만간 제대로 사과하려고요
탄소: 응, 그래야지 지금도 지한이가 내 의지인 건 변함이 없으니까
호석과 함께 숙소로 돌아온 탄소는 씻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도통 오질 않는 잠에 다시 일어납니다.
정국: 누나도 물 마실 거예여?
탄소: 물 마시면 이따 화장실 가고 싶어지잖아
정국: 가면 되져
탄소: 침대에서 일어나는 건 한 번으로 족해
정국: 아 예...
탄소: 그날 많이 놀랐을 텐데 묻지 않아줘서 고마워
정국: 나도 이제 그 정도 눈치는 있어여
탄소: 막내인데 조금 더 철없어도 괜찮지
정국: 이제 다 큰 성인이잖아요
탄소: 그래도 막내인 건 변하지 않잖아
정국: 그런 건 많이 중요하지 않아여 내가 정말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건 마지막 무대까지 누나가 함께 오를 거라는 믿음이니까
탄소: 아직도 내가 팀에서 도망갈까봐 걱정이 돼?
정국: ...아니라고는 못하져
탄소: 재계약까지 했는데 설마
정국: 누나랑 형이랑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
탄소: 결혼을 미끼로 잡으면 안되지
정국: 그건 맞지만...
탄소: 정국이 환갑 잔치할 때까지는 같이 무대에 서줄게
정국: ! 나 오래오래 장수해서 계속 무대에 오를 테니까 구순 잔치까지 서주겠다고 약속해요
탄소: 내가 죽었을 수도 있잖니
정국: (쒸익)
탄소: 응... 내가 미안... 구순잔치 그래 약속... 요즘 백세시대라고 하더라 그때까지 뭐 살아는 있겠지...
말은 장난처럼 했어도 탄소는 진심이었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관절이 멀쩡할까?
그래도 막내가 배시시 웃는 걸 보면서 그런 걱정은 미뤄둘 수 밖에 없었죠. 정국은 잠이 오지 않아서 나온 거라면 같이 들어가자고 누나를 꼬셨고 탄소는 쉽게 넘어갔습니다.
탄소: 너랑 같이 잔다고 뭐가 달라져?
정국: 사람 체온이란 게 있으면 잠이 안 올래야 안 올 수가 없져
탄소: ...진짜?
정국: 진짜! (낚았다)
묘하게 헐렁한 면이 있는 누나를 살살 유혹해 침대에 눕는 데까지 성공한 정국은 꺄르르 웃으면서 자장가 타령을 하다가 정말 잠든 누나에게 다행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정국: 잠을 못 잤다고 하니까 좋은 일이기는 한데... 누나랑 같이 놀고 싶었는데...
탄소: (꿈나라)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 탄소는 석진이 호들갑스럽게 연 방문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석진: 어머 얘 김탄소 너 또 왜 또 여기서 자고 있어!
정국: 어머 무슨 일...
탄소: 으 머야...
석진: 연습실에서 밤새고 안 들어왔나 걱정되어서 찾아가려 했더니만 호석이랑 같이 왔다지, 방에는 없지!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탄소: 화내지마아...
석진: 너 때문에 증말 못 살아
탄소: 난 너 때문에 사는데 왜 나 미워해...
정국: 와 형 나빴다...!
석진: ?
윤기: 뭔데 그래요
정국: 형, 형이 누나 속상하게 하잖아여!
윤기: 누나가 형을 속상하게 하는 건 아니고?
정국: ...! 진짜 너무해따!
하지만 석진을 속상하게 만들 일은 따로 있죠.
석진: 그래... 부모님을 뵙고 왔다고...?
탄소: 결혼 전제로 교제 오케이!~
석진: (망연자실)
정국: ...누나가 형 속상하게 했네...
윤기: 나 농담이었어...
남준: 내 이럴 줄 알았지
지민: 알면서도 함구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형님
호석: 지민아, 지금 누구보다 속상한 건 태형이 같지 않니?
태형: 누나가 상견례...
지민: ...쟨 또 왜 저래...?
그러거나 말거나 탄소는 오랫동안 고대해온 연애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쳐서 무척 기쁩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지한이 밥을 먹다가 도로 뱉을 뻔했던 건 당연한 일이죠.
탄소: 솔직히 결혼한다면 전세계적으로 잘생긴 사람이 좋거든요
지한: (쿨럭)
탄소: 마침 김석진이 세계적인 미남으로 유명해요 나 같은 얼굴이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솔직히 이 얼굴에 그런 미남을 만나야 어울리지 않겠어요? 분명 사람들이 감탄하면서 칭찬할 거예요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요
어머니: ... ...
탄소: 난 김탄소니까아
버지: ...그래
그러니까 김석진 아니면 결혼하기 싫어요.
결혼 허락하세요.
지한: 미친... 미친 거 아니야...?
아무도 반대할 생각 없는데 혼자 긴장해서 설득하겠다고 내뱉은 주장이 저따위라서 지한은 대리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예비 신랑 없는 자리에서 부모님께 결혼 허락 받는 것도 이상한데 애초에 연애 사실 알리면서 왜 결혼 허락을 받지? 아니 그 이전에 이건 허락을 받는 게 아니라 협박 아닌가?
차마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정에 충격으로 가득한 그 자리에서 탄소 혼자 즐겁게 돌아왔다 이겁니다.
탄소: 우리 결혼하는 거 이미 정해진 거였잖아
석진: 결혼은 하는데 뭐가 많이 생략되었다고오...!
태형: 내가 식장 가면 망칠 것 같으니까 피로연에만 불러줘여 누나
지민: 아니 김태형이 여기에서 제일 이상하다니까요
남준: ...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지민: 실연을 네가 했어? 나야, 나라고! 왜 네가 더 유난인 건데! 괜히 이상해지잖아!
호석: 이쯤이면 지민이가 누나 좋아한 거 다 털었나본데
윤기: ...시간 좀 더 지나면 인터뷰에서도 소개할 것 같아
정국: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석진: 다들 나 혼자 있고 싶으니까 좀 나가줄래
탄소: 나도?
석진: 지금 네가 제일 원망스러워 김탄소남
탄소: ...! 나, 나 왜?
준: 자 나갑시다 누님
탄소: 뭐야! 왜 나만 몰라, 왜애...!
석진의 한숨에 바닥이 무너지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