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그 날은 한가한 토요일 오전이었다. 토요일까지 자율학습이랍시고 학생들을 불러내는 좆같은 학교의 자랑스런 학생들은 오늘도 교실에 앉아 빼곡한 독해지문을 쳐다보고 있겠지만 이 둘은 예외였다. 에어컨을 틀어둔 채 아이스크림까지 물고 게임을 하던 인국이 흥미를 잃은 듯 게임기를 옆으로 던지며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등을기대고 만화책을 읽고있는 호원의 등 뒤로 다가가 그가 읽고있는 만화책을 들여다본 인국이 그마저도 재미가 없는 듯 침대에 풀썩 누워 멀뚱히 천장만 바라보았다. 호원의 낄낄거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웅웅거리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밖에서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만 들려왔다.아, 존나 심심해….혼잣말 하듯 내뱉은 인국의 말에 그제야 호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심심하면 잠이나 자, 임마. 장난스레 대답해오는 호원의 얼굴에 힘껏 베개를 날린 인국이 통쾌하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그에 호원이 떨어진 베개를 주워들어 다시 인국에게 던졌고 난투극이 벌어졌다. 한참 그렇게 먼지를 풀풀날리며 웃어제끼는데 갑자기 열린 문 탓에 웃음소리가 급 사그라들었다. 너 학교 안 갔니? 여자의 독한 향수냄새가 방안 가득 퍼졌다. 호원이 꾸벅 인사를 하는데도 여자는 못본 척 인국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되도않는 엄마노릇을 하려들었다. 학교에서 자꾸 연락오는데 일일이 받아주기도 귀찮아. 왠만하면 담배좀 끊고 술 좀 작작 먹어. 어디서 이렇게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니? 창문 좀 열어라. 잔뜩 굳은 표정의 인국이 등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자 한숨을 내쉬던 여자가 끝까지 코를 킁킁거리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어머, 얘!! 지금 너 어딜 만지는거니? 그 더러운 손으로!’」「애미는 일찍이 죽고 애비는 알콜중독에…, 쯧쯔. 그러니 애가 이 모양이지. 가정교육이 문제지, 하여튼.」「너 우리집에 인국이 찾으러 오지 마.」「어디서 이렇게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니?」인국이 눈을 감았다. 차마 전하지 못한 사과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결국 머리를 헝클이며 일어난 인국이 호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야, 미안…. 아 저년은 집엔 또 언제 와가지고는. 존나 지 향수냄새가 더 구리구리하면서 지랄이야, 지랄은. 괜히 미안해서 구구절절 말을 풀어놓다가 갑작스레 일어나는 호원에 인국 또한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집에.가지마. 안 가도 돼.그런거 아냐.빠르게 덧붙인 호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성종이 점심도 차려줘야지. 야, 걔가 개새끼도 아니고 지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곱지 못한 인국의 말에 그를 흘기던 호원이 어디론가 굴러떨어진 제 핸드폰을 찾기위해 주섬주섬 침대주변을 살폈다. 말없는 호원을 씩씩대며 쳐다보던 인국이 나몰라라 하는 심정으로 호원의 팔을 잡아 침대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인국의 품으로 엎어진 호원이 눈을 껌뻑이며 욕지기를 내뱉는데도 인국은 아 몰라몰라몰라 하며 이불을 끌어당겨 호원과 제 머리 끝까지 덮어 올렸다. 씨발, 더워 새끼야! 내가 니 마누라냐, 시발 소름돋게. 호원의 장난스런 목소리와 뜨거운 입김이 코앞에서 느껴졌다. 이불 속에서 퍼지는 호원의 향이 낯설었다. 아 놓으라고, 좀!! 저보다 덩치가 더 큰 인국이기에 품에 안겨 꼼짝을 못하던 호원이 소리를 질렀다. 호원이 이리저리 뒤척일때마다 풍겨오는 그의 체취와 샴푸 향에 정신을 못차리는 인국을 틈타 그의 품을 빠져나와 이불속에서 빠져나왔다. 너, 지금, 니가 나보다 덩치 크다고 놀리는거냐? 호원이 말을 더듬였다.두고 봐, 내가 너보다 10센치는 더 커서 맘껏 비웃….…조금만 더 있다 가.순식간에 호원을 다시 붙잡아 제 품으로 끌어당겨 껴안은 인국이 눈을 감은채 말했다. 당황한 호원이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아 씨발, 너 진짜 왜이래…! 라며 빠져나오려 하자 오히려 저를 끌어안은 인국의 손에 힘만 더 들어갈 뿐이었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채로 가만히 안겨있자 자꾸 간지럽게 목덜미쪽으로 파고들던 인국이 드디어 얼굴을 들고 호원을 바라보았다. 오묘한 자세, 얽히는 오묘한 시선, 부르튼 허연 입술. 어디서 묘사하 듯 빨갛고 앵두같은 입술이 아닌 보기만해도 까슬함이 느껴지는 부르튼 입술이 오히려 더 색정적이었다. 저도 모르게 코앞까지 입술을 갖다댄 인국이 잠시 멍하니 멈춰있다가 정신이 퍼뜩 들어 몸을 일으켰다. 큰 일 날뻔 했다. 눈하나 꿈쩍않고 코 앞까지 다가오는 저를 쳐다보던 호원의 얼굴이 아른거렸다.…야, 너 빨리 가라.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협탁 위에 올려둔 담배를 꺼내 문 인국이 호원이 나가든 말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문 밖만을 바라보며 담뱃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걸 멀끄러미 바라보다가 끼익, 하고 대문 닫히는 소리에 시선을 밑으로 내리자 벌써부터 비에 흠뻑 젖어 성큼성큼 걸어가는 호원이 보였다. 아 저 미친새끼…. 그러고보니 우산을 안가져왔다던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담배를 끌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입에 문 채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나갔다. 신발장 위에 올려져 있는 우산 하나를 집어든 인국이 닥치는대로 신발을 꿰차고 행여 호원을 놓칠새라 빠르게 현관을 나섰다. 이미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에 빗물이 닿아 푸시시 소리를 내며 꺼졌다. 벌써 저만치 앞서있는 호원을 향해 힘껏 달린 인국이 담배꽁초를 하수구쪽으로 던지며 간신히 호원의 등을 두드렸다. 뒤를 돌아 본 호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뭐냐, 너.하아…,병신 새끼야,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하아…. 우산 하나 없이 가냐?나 우산 안가져 왔다니….아 융통성 없는 새끼, 그냥 우리집에 있는거 아무거나 가져가면 되지! 하아…. 널리고 널린게 우산인데!그러는 지는…, 따라나와서 괜히 쫄딱 젖은 주제에. 또 꼴은 그게 뭐냐? 호원의 말에 우산을 펼쳐드려던 인국이 하던짓을 멈추고 제 꼴을 바라보았다. 한 짝은 슬리퍼, 다른 한 짝은 여자샌들이었다. 꼭 신고나와도 이런걸…. 일단 우산이나 줘 봐. 호원이 손을 쫙 펼쳤다. 그에 정신을 차린 인국이 우산 단추를 풀러내리며 버튼을 꾹 눌렀다. 똑딱이는 소리와 함께 펼쳐진 우산을 위로 올려 저와 호원을 씌웠다. 쏴아아…. 세찬 빗소리만 귓가를 적셨다.우산이 작아서 어쩔 수 없이 몸을 밀착시킨 탓에 뜨거운 콧김이 목덜미로 훅 끼쳐왔다. 떨리는 손으로 호원의 어깨를 부여잡은 인국이 한참동안 호원을 바라만보다가 우산속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제게서 멀어지는 인국의 모습만을 쫓던 호원은 그가 아예 모습을 감춰서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렸다. 아까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 했지만 머릿속에선 계속 아까의 장면만 수없이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저를 꽉 안아오던 인국의 팔, 온통 인국의 냄새로 가득 찬 이불 속, 코 앞까지 다가왔던 입술….이 때부터 였을꺼다. 인국은 무언가 다르다는걸 느낀 것이. 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의 어떠한 것도 나는 알아내질, 얻어내지 못했다. 이게 전부였다.* * *
보시다시피 과거회상이에요, 혹시나 해서 ^.^..... 아무래도 단편이 아닌 중편이 될것만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자꾸만 엄습.....
기말을 쫄딱 망하는 바람에 글 쓸 시간이 폭삭 줄어들어서 분량도 좀 적고 연재텀이 좀 느려요... 죄송합니다 흙흙...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