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스 프로젝트
'표연구원님, 새로운 약물이 실험 1단계에 들어가려 합니다.'
'그걸 왜 저에게 말해주시는거죠?'
'그야 전 말그대로 박사고 그쪽은 연구원이니까?'
지호의 웃음이 지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는 담당 실험체가 없으니 이런건 연구원님에게 부탁해야죠.'
'...저는 아직 실험도 안해본 약물을 제 실험체에게 쓰기는 싫은데요.'
'이래서 실험체가 존재하는거 아니었나요?'
'...'
'표연구원님.'
지호가 약이 든 병을 짤랑짤랑 지훈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저는 이분들을 살리려고 하는겁니다. 재효씨 한명만 저를 도와준다면 모두가 행복해질수 있어요. 아시잖아요?'
'...'
'그리고 물론 연구원님 위치를 보면 선택권도 없고요.'
악몽이다.
지훈은 눈을 천천히 떴다.
암흑속에서 보이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다 지쳐 잠든 태일이 다시 깰까 옆에서 한시간정도 지켜본뒤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악몽을 꿨다.
지훈은 여기서 악몽이 끝난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악몽을 꿨다면 보고싶지 않았던것을 봐야했을테니까.
지훈은 지호가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험체들을 막 대해서?
아니다, 그 반대였다.
지호는 처음 들어왔을때 절대 이런일은 하기 싫다고, 다시 나가겠다고, 말로 표현하면 지랄지랄을 했다고 할수있었다.
지호가 이곳에 남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실험체들을 살리기 위해.
지호는 정부에게 제안을했다.
자신은 새로운 약을 개발할테니 그 댓가로 실험체들을 자신이 관리할수 있게 해달라고.
당시 최고의 의사이자 약사였던 지호는 놓치기 아까운 인물이었고 정부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지호는 자신의 실력을 의심치 않았기에 인간에게 약물을 감히 실험하려 들려 하였다.
지훈의 눈에는 그런 지호가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존재일 뿐이었다.
잠시 생각을 한 뒤 지훈은 다시 침대에 누워서 한숨과 함께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을 감아도 가리고싶었다.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장면이었으니까.
"선영씨는 일단 소속사에 연락해서 거짓기사 아무거나 퍼트리세요, 최대한 박준철이 선영씨 근처에 올수없을만한 내용으로. 뭐 동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기자들이 집에 찾아오게 만든다거나?"
"여배우한테 뭔 개소리야."
"아 왜! 생각해봐, 형, 사람들이 선영씨한테 들러붙을수록 박준철이 접근 못할거아니야!"
아침부터 자신을 사이에두고 투닥거리는 지호와 민혁을 번갈아 본 선영이 푸흣- 하고 웃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네요."
"거봐!"
끼익-
지호가 당당하게 민혁에게 우쭐대며 놀리자 뒤에서 삐그덕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호는 그것이 분명 태일이라 확신하고 얼어붙은듯 조용히 입을 닫고 선영이 지호씨?- 라고 말할때까지 그자리에 동상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머리가 산발이 되어 지호의 옆을 지나치는 태일이 보였다.
평소같았으면 말끔하게 씻고 나와 웃으며 인사를 해야할 태일이 아무말도 없이 그저 터벅터벅 걸어가자 민혁과 지호 둘다 아무말없이 멀어져가는 태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태일이 옆으로 사라져 더 이상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지호는 참고있던 숨을 내쉬었다.
투둑-
그때 태일이 사라졌던 곳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민혁과 지호는 괜히 깜짝놀라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 죄송합니다.."
그곳에는 태일과 무거운 파일들을 들고가던 연구원 한명이 부딭혀 넘어진듯 바닥에 앉아있었고 파일을 여기저기 흐트러져있었다.
젊은 연구원은 괜찮다며 파일을 줍기 시작했고 태일을 확인하러 온 셋도 파일을 줍는것을 도와주었다.
지호가 태일을 힐끔 봤을때 태일은 바닥을 더듬으며 파일을 찾고있었다.
"태일씨."
"네? 지호씨예요?"
마치 지호가 옆에 있는줄도 몰랐다는듯이 태일이 대답을하며 지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일의 눈동자는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지호가 기껏 주웠던 파일들을 내동댕이 치고 태일의 얼굴을 붙잡았다.
"눈, 보여요?"
"아, 네 보여요, 지금 잠깐 이상한 영상들이 한꺼번에 막 보여서 시야를 가로막았어요."
태일이 말을 끝내자마자 시선을 지호에게로 옮겼다.
"이제 진짜 보여요."
지호는 심장이 빨리뛰고 온몸이 털이 삐쭉삐쭉서는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것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기때문에.
"근데 좀 피곤하네요."
태일이 멋쩍게 웃었다.
"도와드릴거 있으면 도와드릴게요, 말해봐요."
지호는 자신이 만든약때문에 태일이 저렇게 됐다는 죄책감에 태일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에, 예? 하하..."
태일이 당황한듯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아 저 그럼.. 잠 좀... 재워주세요."
"..예?"
"제가 잠을 못자겠어서.. 수면제라도.."
"...검사부터해요, 우리."
민혁은 파일들을 주우며 지호와 태일의 눈치를 봤고 지호는 그자리에서 일어나며 태일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갔다.
"일단 링거 달아드릴테니까 자요. 지금은 태일씨 자야돼."
지호가 태일을 자신의 침대에 눞히며 말했다.
"저 근데.. 그때 그날뒤로 좀 이상해요... 아니 지금 이러는거 자체가 이상한건 당연한거지만.."
"뭐가요?"
"그후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영상들을 봤는데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그들이 느꼈던 오감도 몇개는 느끼지 못했어요."
손등에 링거바늘을 꽂은 태일이 점점 눈을 감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다가 어제는 꿈...을 꾸고... 깨어났는데 소리만 뒤엉켜서 들렸고요."
지호는 태일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약품이 먼저 재효에게 실험되어 나름 잘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소리는 들은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유권이나 경이처럼 하나씩 하나씩?"
"네.. 가끔은 그냥 평소처럼 다같이 느껴질때도 있고요.."
태일은 무거운 눈꺼풀을 올리려 노력했고 지호는 그런 태일의 옆에 앉았다.
"일단 자요, 일단 자고, 푹 쉬고, 내일 다시 말해요. 알겠죠?"
지호의 말이 끝나자 태일은 대답할 새도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태일은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기시작했다.
지호는 그런 태일을 바라보다 한숨을 여러번 쉬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될지를 몰랐다.
자신이 만든 약품때문에 태일은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호를 더욱 괴롭히는것은 체념을 한건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태일이었다.
링거액이 다 떨어져갈때쯤 문이 두드려졌고 경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경은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고 지호가 경을 빤히 바라보자 태블릿을 들어 '태일씨보러온거예요' 라고 적혀진 화면을 보여주었다.
"괜찮아. 나가봐."
지호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생각하니 안그래도 받던 스트레스가 두배로 증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저런거예요? 무슨일이 있었던거예요?'
"아니야. 아무것도."
지호는 이말을 한뒤 나중에 설명해주겠다는 수화를 해보였다.
경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지호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거짓말. 모든게 다 거짓말.'
지호는 경이 태블릿에 적은 말에 눈을 꽉 감고 고개를 저었고 경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지호는 요즘들어 스트레스 받을일이 많다고 생각하며 태일에게 주려던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으며 소파에 불편하게 누웠다.
"아악!"
지호는 아직도 수면제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에 정신이 말짱해지는 기분이었다.
지호가 불을켰을때 링거바늘이 태일의 손등을 찢은덕에 생긴 핏자국과 침대에서 떨어져 바들바들 떨고있는 태일이 보였다.
"태일씨!"
지호가 허겁지겁 달려갔을때 태일은 식은땀을 흘리며 손끝이 새하얗게 바뀔정도로 옷을 꽉 쥐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으윽.."
태일은 계속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려고 지호는 허둥지둥 약품이 들어있는 캐비넷을 급하게 열어재꼈다.
지호가 원하는 약품을 구석에서 찾자 문이 열리고 유권과 경, 그리고 지훈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 살려..."
태일은 급기야 살려달라는 말을 했고 지훈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태일에게로 달려갔다.
"이태일 정신차려."
지훈이 태일을 자신에게 기대게 하자 태일은 바로 지훈의 팔을 잡았고 엄청난 악력에 태일의 고통을 가늠한듯 시발- 하고 작게 욕을 내뱉었다.
"태일씨 이거봐요, 이거 먹어야돼요."
지호가 지훈에게 알약이 든 병을 건내며 보기만해도 무서운 바늘이 두꺼운 쇠 주사기를 들었다.
지호는 침착하게,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태일의 윗옷을 살짝 올리고 알콜로 대충 적신 솜으로 스윽 한번 흝은뒤 바로 주사기를 척추에 꽂아넣었다.
아플만도 한데 태일을 그런아픔쯤은 느끼지도 못한다는듯 허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었다.
"태일씨, 정신차려봐, 머리 아파요? 어디가 아파요?"
"윽.. 흑.... 배.. 배...."
"배..?"
지훈이 고개를 지호에게로 돌렸다.
"배가 왜아파?"
"일단 이거 먹어야돼, 입을 벌려야 하는데 지금 무턱대고 벌리려고 하면 손가락 잘린다."
지호가 병뚜껑을 열고 찰랑거리는 물약을 보이며 지훈에게 의도치않게 겁을줬다.
"이태일, 입 벌려봐, 약먹자."
지훈이 태일의 볼을 톡톡 두드렸지만 괴로움에 입술을 앙 물고있는 태일은 입을 벌리려다 말고 또 벌리려다 말았다.
급기야 태일의 입술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자 지훈은 강제로 태일의 턱을잡고 손가락을 넣어 벌리려고 했다.
태일은 입을 벌리려 하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고통에서 헤어나오려고 이를 악 물려고 했고 지훈의 손가락을 더욱 세게 물었다.
지훈의 손가락에서 피가 나자 지훈이 빨리먹여!- 하고 지호에게 소리를질렀다.
지호는 미리 준비해뒀던 알약을 태일의 입에 넣고 물약을 볼 안쪽으로 천천히 흘려넣었다.
태일은 입안으로 무언가 들어오자 뱉으려 했고 액체때문에 계속 콜록거렸다.
지훈은 입 옆으로 흘러내리는 약을 손으로 계속 닦으며 태일의 고개를 똑바로 돌려 약을 먹게 하였다.
태일은 약을 다 삼키고도 한참을 그렇게 괴로워하다 점점 지훈의 팔을 잡았던 손에 힘을빼고 입을 벌리며 찢어진 지훈의 손가락을 놔주었다.
태일의 얼굴이 편해지자마자 태일은 옆으로 고개를 떨구었고 지훈은 깜짝 놀랐지만 지호는 옆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맨정신으로 깨어있는것보다는 나을거야. 그냥 쉬게 해."
지훈은 지호의 말을 무시하는듯하며 다 듣고서는 속으로 안도했다.
지훈이 태일의 입가에 묻은 약과 피를 닦아주고선 태일을 다시 지호의 침대에 눕혔다.
"당분간은 여기서 재워. 자다가 발작 일으키면 도와줄 사람이 형밖에 없어."
지훈은 땀에 젖은 머리칼로 눈을 살짝 가리고선 뚜벅뚜벅 방문을 향해 걸어갔고 겁에질린 유권과 경을 한번 슥 본 뒤 지나쳐갔다.
"저거.. 설마..."
유권은 태일을 보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호에게 무엇을 물어보려 했지만 옆에있는 경을 보고선 잠시 망설였다.
"재효형..."
지호는 유권의 말이 들리지 않는듯 비틀거리며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손으로 눈을 갈리고 이를 바득 갈았다.
분량 대박이죠?! (답정답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