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 우지호 W.호랑이코 내가 제일 싫어하는건, 질질 짜는 신파극. 그래서인지 깔끔한 이별을 선호한다. 선물 돌려받고 뭐, 이런건 제일 혐오하고. 헤어졌는데 친한 친구사이? 그런건 현실성 제로라고 생각한다. 한 번 만났다 헤어졌는데 무슨 친구야. 그건 그냥 그때부터 '남'인거지. 이토록 깨끗하게 관리해오던 내 연애관도 한 번은 안먹히더라. "여기가 끝인가봐. 그만하자." "…그래. 너가 정 그렇다면." "만나도 아는 척 하지말자. 그런거 정말 싫어." "남남이라… 그래. 그러자." 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시작이었지. 미친X.
01 '나 오늘 약속 있으니깐 너가 좀 봐라.' 하고 맡겨진 카페. 아니 이 이른시간부터 누가 커피를 사 마셔...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니 이미 놀러갈 준비를 다 마친 오빠가 나를 내려다본다. 너가 세시간만 영업을 해 봐, 그런 편견 싹 사라질걸? "아무튼 난 네시쯤에나 올 것 같으니 그 전까지만 봐줘." "엉, 알았어…." 아유, 착하다- 하고 내 어깨를 토닥인 오빠가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내가 왜 너한테 부탁을 해야하는거야?' 한다. "야! 생각해보니깐 애초부터 너랑 나랑 공동운영이었잖아!" "응, 근데?" "이게 지금까지 일도 안하고…!" 이렇게 계속 냅두면 오후 4시까지 잔소리하겠다 싶어 '아, 알았어! 알았어!' 하며 오빠 등을 밀어 현관쪽으로 몰아세우니 '좀 이따 봐! 너 진짜-' 하곤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저놈의 놈팽이는 언제 장가가는거야? . 오빠 말이 맞았다. 아니 이사람들은 아침밥 대신 커피를 마시는지 아주 오픈때부터 지금까지 숨 쉴 틈이 없었다. 그나마 출근타임 다 끝난, 오전 10시 30분경에나 한가해져 거의 무너지듯 의자에 앉으니 매장 바닥을 대걸레로 밀던 알바녀석이 쪼르르 와 말을 건다. 누나- 누나! "누나 오랜만이라 힘들었죠? 그래도 평소보단 적게 온 편인데-" "누나는 누가 누나야, 나도 엄연한 매니저야 임마!" "나이차도 나랑 얼마 안나면서…" '어쭈, 이놈이…!'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카페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혼내주려고 꽉 쥔 주먹이 무안해지게 알바녀석은 대걸레를 들고 매장 가운데쪽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고, 괜히 머쓱해져 기지개를 펴는 척 하며 하하 웃으니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고개를 든다. 대낮에 웬 선글라스? 뭐 그야, 자기 마음이지만. 계산대쪽으로 가 주문하기를 기다리는데 그 남자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하며 카드를 쓱 내민다. 카드를 받아 리더기에 긁고서 '싸인해주세요-' 하니 고개를 살짝 든 남자가 서명패드에 쓱쓱 무언가를 쓴다. 뭐지? 하며 리더기 화면을 보니, 「010-4***-****」 ……뭐야? "손님, 싸인 다시해주세요." "저장해요." "…네?" 내 어벙한 대답이 웃겼는지 남자는 픽- 웃더니 손을 들어 선글라스를 벗는다. "번호 바뀌었으니깐 저장하라고." 아, 진짜 짜증난다. 우지호. 지금 이게 뭐하자는건가 싶어 얼굴을 구기고서 우지호를 쳐다보니 또다시 씩 웃으며 '머리잘랐네?' 한다. "알 바야, 너가?" "남남이라며. 그럼 그정도는 알아도 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지금 얘랑 뭐하는건가 확 짜증이 솟구쳐서 왁 소리를 지르니 '워우-!' 하며 한 발 물러선 우지호가 '못 본 사이에 더 파워풀해졌어-' 하며 내 손에 쥐어진 카드를 훅 빼간다. "찌인-하게 부탁드려요. 최지현씨?" . 진-하게 해달라는 우지호 말대로 샷 세번 추가에 얼음도 세개만 넣어줬다. 찾아가라고 진동벨을 울리니 하필이면 계산대 코앞에 앉은 우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개새X, 이거 쳐마시고 써 뒤져라. "음료 제조가 늦네- 커피빈을 직접 재배해오시나?" "닥치고 드십시오, 손님." 비아냥거리는 우지호 말투에도 불구하고 싱긋 억지미소를 지어주며 음료가 놓인 트레이를 그쪽으로 미니, '어유, 감~사합니다!' 하며 트레이를 들고 돌아선다. 병X, 가다 자빠져라. 속으로 있는 욕 없는 욕 죄다 해주고서 궁시렁거리며 로스팅 기계를 정리하는데 언제 또 왔는지 알바녀석이 내 뒤에 서서 기웃거리며 우지호와 나를 번갈아본다. "누나, 저 사람 지코 아니예요?" "……." "맞죠? 맞죠?" "조용히 하고 네 할 일 해라, 맞기전에." 안그래도 누나는 지금 저기 앉아있는 개코인지 지코인지 저 분 때문에 굉장히 빡쳐있거든. 기계 주위를 닦던 행주를 홱- 던지고서 스태프실로 걸어가니 알바가 졸졸 쫒아오며 '누나, 왜그래요- 화났어요?' 한다. "야, 알바! 가서 네 할 일 하라고…!" '그 새X 보다 내가 못한게 뭐야- 도대체 왜 나는 가질 수 없는 거야-'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말이 막혀 한 번 더 짜증이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화가 조금 누그러드는것을 느꼈다. [내러버] "누나, 저는 알바가 아니라 지훈이예요. 표지훈." "알았으니깐 지훈아, 누나 전화 좀 하고올게. 카운터 좀 봐!" 지훈이를 지나쳐 카페 밖으로 나가려하는데 뒤로 시선이 느껴진다. 손님은 커피나 드시고 꺼지세요- 인적이 드문 카페 옆 주차장쪽으로 가 통화버튼을 누르니 반가운 내님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흘러나온다. 어, 지현아. "오빠!" 「뭐야, 왜이렇게 반갑게 받아? 기분 좋게-」 "그냥 너무 반가워서… 밥은? 먹었어요?" 「응. 회사 사람들이랑 먹었어. 지현이는?」 민혁오빠의 다정한 말투에 목이 간질간질해진다. 아, 좋다. "나는 오늘 오빠대신에 카페봐요." 「그렇구나- 고생이 많겠네. 이따 잠깐 볼까?」 "음… 오빠 안바쁘면?" 「그럼 안바빠야겠네, 하하- 그럼 이따 보자. 보고싶네.」 "나두요. 보고싶어요…" 「그래- 그럼 오빠가 일 끝나고 데리러 갈게. 거기 있어.」 알았어요, 응- 싱글벙글한 채로 민혁오빠와의 전화를 끊는데 뒤쪽에서 낮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하고 뒤를 도니 굳은 얼굴의 우지호가 바닥을 노려보고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야." 뭐야, 웬 구남친코스프레? 순간 어이가 없어서 '무슨 상관이야-' 하고 내뱉으니 우지호가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누구냐고, 씨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