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일단 돈은 모으고 보는 거다. 포도가 없어서 못 갈 순 있어도 돈이 없어서 못 갈 순 없는 법.
사실 이 시간이 원래 내가 일하는 타임은 아니지만 갑작스레 알바 대타를 구해야 한다길래 내가 한다고 했다.
근데 지금 약간 융털만큼 후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춥다... 아니야.. 돈 벌어야지 탄소야..
'쿠당탕탕'
왐마 깜짝이야 이게 뭔소리여
큰 소리가 나서 보니 버스 정류장 옆 튀어나온 보도 블럭에 걸리신건지 할머니 한 분이 넘어져 계셨다. 폐지를 주우시는 건지 쓰러진 리어카 너머로 박스도 너부러져 있다.
아직 버스 시간도 남았고. 이런 건 또 당연히 도와드려야지.
"괜찮으세요?"
"어이구, 고마워라."
고맙다면서 내 얼굴을 보던 할머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약간 보면 안 될 걸 보았다는 듯한.
뭐지. 못생겨서 그런건가요...? 제가 지금 쌩얼이긴 하지만,,,,
"내가 인자 늙긴 늙었는 갑다. 저승사자가 다 보이고..."
"예?"
진짜 무섭게 갑자기 왜 그러세여....저 그런거 잘 믿는단 말이에여...
어르신들이 흔히 하는 넋두리 쯤으로 넘기기에는 할머니의 시선이 너무 정확하게 내 등 뒤로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좀 위로 향해 있는 걸 보니 저 할머니가 보고 있는 저승사잔지 뭔지가 키도 큰가봐....시이벌 설마 나 데리러 온 건...아니겠지...? 아닐거야...응...
"아가씨. 오늘은 그냥 어여 집에 가. 저것들이 영 기운이 안 좋은 게 찝찝혀."
"아...하핳 근데 저 알바를 가야 되는데... 버스를 타야 해서요."
"그럼 걸어서 가든지 해. 저것들 한 둘이 아니구마이. 정류장에도 쪼로미 있는 거 보니까는 오늘 뻐스는 타지 말어."
"아...네에..."
어떡하지 여기서 걸어가기는 겁나 먼데...빼박 지각이라고... 사장님한테는 뭐라고 해 저기 제가 정류장에 있었는데 어떤 할머님이 저승사자가 있다고 걸어 가래서 늦었어요? 분명 짜르실 걸 안 돼 요즘 알바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데!!!!ㅠㅠㅠㅠㅠ 근데 저런 소리 듣고 버스 타면 그건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잖아.. 내가 아직 탄방소년단 컴백하는 것도 못 봤는데... 핫쒸 신이시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어짜든동 아가씨 조심해서 가. 으이?"
"예에..."
그런 말을 하신 거 치고 너무 쿨하게 가시는 거 아니에요 할머니...? 전 어쩌라구요 엉엉
괜히 뒤에 정말 누가 있는 것처럼 한기가 느껴진다. 그니까 날씨가 추운 거랑은 뭔가 좀 다른 한기... 아직 이른 새벽이라 조금 어둑어둑해서 그런지 더 공포스러웠다.
어떡하지 진짜 버스 타지 마? 대학 수시넣을 때보다 더 극심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눈 앞에 택시 한 대가 지나간다.
잠깐만. 할머니가 버스 타지 말랬지 택시 타지 말라곤 안했자나..? 흠 택시비도 많이 나올 거리는 아니고 새벽이라 차도 안 막혀서 기본요금 정도만 나올 거 같은데...
뭐 진짜로 무슨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은 아니지만 일단 버스를 타긴 찝찝하고 걸어가면 분명 지각이었다.
기적의 논리인 거 같지만 일단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것 같단 확신이 든다. 좋아 각이 섰다.
"저기, 택시!!!"
"ㅇ,어휴 아가씨 많이 바쁜가 보네-"
머리카락이 뒤엉킨 채 달려와 문을 열어젖힌 내 얼굴이 많이 충격적이었는지 기사 아저씨가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하신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셨죠...? 죄송..ㅎ
하, 어쨌든 이대로만 가면 지각은 안 할 거 같고 버스도 안 탔으니 마음도 가볍다. 그래, 새벽부터 이런 일 겪은 것도 다 콘서트 추첨 성공하려고 하는 액땜인 게 분명하다.
좋았어!!!!당첨 가자앜!!!!!(저세상 긍정)
근데 그럼 진짜 내가 타려던 버스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 아까 버스 정류장에 서서 나와 할머니를 미친 사람처럼 보던 젊은 여자가 신경 쓰여서 상체를 뒤로 돌려 정류장 쪽을 바라봤다. 내가 탈 버스는 내가 택시를 타자마자 온 건지 바로 뒤에 있었다. 그렇지만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직 아무 일도 없다. 그럼 그렇지 그냥 할머니가 뭘 잘못 보신 게 분명했다. 다행이야.
"아가씨 뒤에 뭐 있어요? 계속 보고 있길래."
"아, 아니요! 별 거 아ㄴ..."
근데 반대쪽 저 차... 왜 이쪽으로 오는 거 같지?
"어, 씨바 저 새끼 뭐야!"
음주운전인지 뭔지 반대쪽에서 오던 하얀 차는 내가 탄 택시 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욕설과 함께 핸들을 꺾었고, 그리고
'쾅'
아, 뭐야. 여기 어디냐.
눈을 떠보니 아까 그 도로 갓길에 앉아 있었다. 뭐지. 분명 그 차가 택시 박았는데? 나 왜 멀쩡해? 기사님은 어디...
"안녕."
....?
뭐야, 저 허여멀건 남자는. 초면에 왜 반말하ㄴ...
아, 설마.
"이젠 내가 보일 텐데."
"왜 안 보이는 척 하냐."
"예?"
"왜. 모르는 척 하고 있으면 내가 안 데리고 갈 거 같아서?"
"아, 아니요 그럴리가요..ㅎ"
아니 잠깐만 시발, 나 진짜 죽은 거야? 진짜로? 이렇게? 아까 그 할머니가 말한 저승사자, 저 싸가지 없는 새끼 맞지?
아.
아 진짜 좃됐다.....
"죽은 게 안 믿겨져?"
"..."
"그래. 뭐...너 같이 갑자기 그렇게 된 망자들은 쉽게 못 믿더라. 5분 줄게, 마음 추스려."
"않...아니 잠깐만요, 그 쪽 진짜 저승사자에요? 막 몰카 이런 거 아니고? 나 진짜 죽은 거에요?"
"하나씩 물어. 정신 사나워."
"제가 지금 하나씩 묻게 생겼어요...?"
"... 죽음에 진짜가짜가 어딨냐, 다 진짜지."
하. 말도 안 돼. 내가 왜? 왜 벌써?
나, 나.. 살면서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물론 엄마 말 좀 안 듣고 거짓말 몇 번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속으로 좀 씹긴 했지만...! 속으로만 쌍욕했지 대놓고 하진 않았다고ㅠㅠㅠㅠㅠㅠㅠ
이럴 줄 알았으면 인생 그냥 막나가는 건데ㅠㅠㅠㅠㅠㅠㅠ강의 다째고 공방가고ㅠㅠㅠㅠㅠ 조별과제 무임승차새끼들 이름도 빼버리고ㅠㅠㅠㅠㅠㅠ진상 손놈한테 꼽도 주고ㅠㅠㅠㅠ탄방소년단 괴롭히는 어그로 새끼들 찾아가서 뚝배기도 깨고ㅠㅠㅠㅠ그냥 막 살거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야... 우냐? 왜 울고 그러냐... 그냥.. 미련을 버리고 더 좋은,"
"씨이이이이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 아직 탄방소년단 컴백하는 것도 못 봤는데ㅠㅠㅠㅠㅠㅠ빼애애애애애앸!!!!!"
...?
"이럴 쑤느뉴ㅠㅠㅠㅠㅠㅠ없는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 아직 콘서트도 못갔는데ㅠㅠㅠㅠㅠㅠㅠ뿌애애애앵앸ㅠㅠㅠㅠㅠㅠㅠ내가 마냥 착하게 살지는 않았지마뉴ㅠㅠㅠ못되게 살지도 않았다고ㅠㅠㅠㅠ시발 세상아아!!!!!!!!!!!!너 존나 좃같아!!!!!!1알고 있냐앜!!!!!!!"
"저기...좀 진정을 하는 게 어떨까."
"억울해!!!!억울하다고!!!!!!내가 못해본게 얼마나 많은데ㅠㅠㅠㅠㅠㅠ우리 가족으뉴ㅠㅠㅠㅠㅠ"
"우선 그만 울고, 진정을 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쒸이이이이벌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러케 죽을 줄 알았으면 취업준비고 나발이고 걍 놀걸ㅠㅠㅠㅠㅠㅠ좆같아!!!!좆같아!!!!!!!!내가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데 대체 나를 왜 벌써 데려가는 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
좆됐네.
저걸 어떻게 데려가지.
***
김탄소(23)
-부모님, 남동생 있음
-탄방소년단 과몰입 오타쿠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음, 의외로 여리고 정이 많은 편
민윤기(나이 미상/신체 나이 27)
-저승사자 1
-경력 그다지 오래 되진 않음
김남준(나이 미상/신체 나이 25)
-저승사자 2
-저승사자 된 지 제일 오래된 거 같은데 경력 말 안 해줌
정호석(나이 미상/신체 나이 25)
-저승사자 3
-제일 상냥해 보이지만 의외로 칼 같음
김석진(나이 미상/신체 나이 28)
-명계의 왕
-가장 이성적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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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짤 하나를 보고 꽂혀서....저승사자 랩라를 보고싶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글을 쓰게 됐습니다....ㅎ..... 노답이져...?
사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하나 더 있어가지구 새 필명으로 왔어여..
그 작품도 연재 텀이 짧지는 않아서 둘 다 할 수 있을지 초큼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일단 일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하핳
이 글은 작품이라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냥 가볍고 짜임새 없이 밍숭맹숭하게 쓰는 글이니까 그냥 편하게 봐주세여 재밌게 보신다면 더 좋구여!
문제의 그 짤
본새라는 것이 폭☆발☆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