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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충격은 꽤나 컸다. 그 날 학연은 제 몸을 몇번이고 벅벅 문질러대며 씻어냈다. 그래도 홍빈의 흔적은 여전했다. 홍빈의 느낌과 그 향은 결코 없앨 수 없는 강력한 것이었다. 여러번을 씻어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문신같은 것.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인생의 절반이상은 차지 하는 것. 그게 이홍빈이었다. 서서히 몸 안에 퍼지는 이홍빈의 느낌은 미묘했다. 싫은것이, 꼭 싫은 것도 아닌 것 처럼.
한 시간 동안의 샤워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해가 쨍쨍하게 떠있는 낮에 이렇게 나갈 준비를 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대낮에 일자리로 향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색했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내려했다. 나에 관한 모든 것들. 학교도 일자리도 이홍빈도.
“사장님.”
문을 열고 그 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급하게 튀어나온 단어였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단지 이 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홍빈과 나의 사이에 많은 제약을 둔 곳. 그리고 나의 속성을 결정했던 곳.
“저 일 그만하겠습니다.”
“그래.”
사장은 학연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래. 모래가 바스락 거리는 것 처럼 무미건조한 사장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이제 나도 새 출발점을 찾아야지, 이미 오래전 부터 꿈꾸던 일이었다. 이 일을 그만 두는데에 있어서 홍빈은 핑계거리로 알맞은 존재였다. 무겁진 않지만 결코 가볍지도 않은 존재. 그게 이홍빈이었다. 건물을 나오면서 후회는 없었다. 청소년기를 이 곳에서 보내고, 그 마지막 자락에 이 곳을 놓았다. 또 다른 시작이 학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조금 두렵기도 했고 이홍빈을 보는게 힘들 것 같았다. 마침 머리도 띵하고 속도 허한 것이 학교 빠지기 딱 좋은날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여유로운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쫒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햇살이 가득한 침대에서 내려와 주방으로 향했다.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때 초인종 소리가 몇 번씩 겹쳐 들려왔다.
“누구세요?”
“나야.”
물음과 거의 동시에 돌아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덜컥 겁이났다. 현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손이 벌벌 떨렸다. 대체 무슨생각으로 우리집까지 찾아온걸까. 움직이지 않는 발을 현관까지 질질 끌고가서 문을 열었다. 열리는 문 틈 사이로 보이는 홍빈의 얼굴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다. 홍빈은 학연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제 집인양 발을 들였다. 어제 학연을 범했음에도 뻔뻔하게 다시 그 앞에 나타난 게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행동이었다.
“혹시 아플까봐 죽들고 왔어.”
“나가줄래.”
“그런 말 할거면 문은 왜 열어줬는데?”
그러게, 문은 왜 열었지.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에 대해 나조차도 궁금했다. 대체 왜지? 난 왜 끝까지 이홍빈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남기는 거지?
“하나만 물을게.”
“그래.”
“응, 아니로만 대답해.”
“……그래.”
“내가 필요해?”
자신이 필요하냐는 홍빈의 말에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왜 그런 질문을 던진 건지 의문이었다. 이건 분명히 정상적인 대화가 아니었다. 이미 이홍빈과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 낭떨어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나는 이홍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충분히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끼어든 이홍빈은 나를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나는 곧 이홍빈에게 흡수 될 것이다. 이홍빈의 일부, 이홍빈이 없어서는 안됄 그런 존재.
“응.”
내 대답과 함께 이홍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모습에 나도 따라 웃었다. 고민거리 하나 없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이것으로서 이제 모든 것이 끝이었다. 나에게는 이홍빈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있는게 없었다. 나름 돈벌이가 되던 직장도, 내 청춘도, 재미없던 학교 생활 전부 이홍빈으로 인해 버려야 할 것이다. 직장은 이미 깨끗하게 청산한 듯 싶었고 학교는 자퇴할 생각이었다. 나는 더이상 학교에 나갈 수 없다.
“그럼 됐어.”
이홍빈은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이 도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만도 했다. 모든게 계획대로 였을테니까. 처음부터 내게 다가온 목적도 순수하게 친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거다. 이홍빈이 어느새 쓰러지듯 앉아 정신없이 웃고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잡고 일어섰다. 또 다른 시작은 이홍빈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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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죄송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많이 기다리셨죠?ㅠㅠㅠ 죄송합니다..
저 죽은 줄 아신 분들 진짜로 죄송합니다ㅠㅠ 시간에 비해 분량은 시망이네여ㅠㅠㅠ 어떡해요..
사실은 기말고사가 코 앞인데 이 글만큼은 마무리 짓고 싶어서 최종화인 下 편을 올립니다.
일단 지난 중편에 관심가져주신 강냉이님, 버블티님, 모모님, 그 외의 독자님들 감사드려요 @_@
소년과 소년을 설명해 드리자면, 3부작 중 첫번째 이야기로 프롤로그에 속하는 이야기었습니다.
저는 되도않는 필력으로 3부작을 계획했지요ㅠㅠ하지만 단편인 소년과 소년만으로도 너무 벅찼어요..ㅠㅠ 시간이 너무 빡빡해서ㅠㅠ
그래도 다음 2부에서는 더 나아진 필력과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2부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소년과 소년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쪽입니다. 홍빈이와 학연이의 대학생활이죠! 스포는 여기까지만!
이때까지 탈도 많고 텀도 많았던 소년과 소년을 끝까지 지켜봐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3부작 중에 프롤로그에 속했던 소년과 소년은 텍스트 파일을 배포하지 않겠습니다. 무단복제 하실지 모르겠지만(...) 하지 말아주세요!
2부에서도 암호닉 유지 하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