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빼는 박제형에게 박제형이 좋아하는 우리 언니 얘기를 꺼냈고, 효과는 굉장했다.
'어차피 나올 거 빼기는.' 이라고 생각하며 포차 줄을 섰다. 내일이 빨간 날이라서 그런가, 화요일인데도 대기줄이 길었다.
신발 앞코로 흙을 긁으며 오늘 박제형에게 상담할 내용을 생각했다.
나는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과 조교로 일하고 있는 김아련 이고, 방금 전화한 박제형은 대학 안 다니는 백수다.
얘랑은 음악학원 프런트 알바와 시간강사 알바로 만났다. 박제형은 92년생이지만 내가 빠른 93년생이라, 동갑행세를 하고 있다.
가끔 만나 자취방 옆집의 소음에 대해 토론한다던가, 전공과목 에프를 준 교수 뒷담화를 한다던가 하는 동네친구? 주민? 그 사이다.
아, 상담할 내용을 생각하다가 별 얘기를 다 했네. 그냥, 전남친에 대한 이야기다.
다 하나쯤은 있지 않나? 굳이 전남친이 아니더라도, 마주치면 불편하고 피하고 싶고 가끔은 화도 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신발 빵꾸나겠다." 갑자기 들린 말소리에 놀라 고개를 쳐들고 앞을 봤다."줄 이만큼이나 비워졌는데, 안 오고 뭐하냐?"
"이 포차랑 자취방이랑 좀 가깝잖아. 그래서, 이 시간에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연애상담. ....자리 났다, 앉자." "냠, 아 뭔데, 빨리 좀 말해봐." "야, 너 또 악기 산다, 돈 아낀다 그러고 밥 안 먹었냐?" "어, 인생이 뭐 이런거지.""안 나온다고 할 땐 언제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아, 김아련. 너 자꾸 얘기 안 하면 나 도망갈거다."
"하, 씨... 나 전남친이랑 헤어진 거, 후회돼."
"그럴 줄 알았어."
"알았다고?"
"어, 헤어진 날에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일찍 잊으면 말이 안 되지."
"그래도, 2년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후회되는 건, 너무 쓰레기같잖아."
"쓰레기 맞지, 뭐. 너걔 햄덀걧갵애섀 해애지재내(너가 힘들 것 같아서 헤어지자니), 너 그거 너무 쓸데없는 배려였거든?"
"아, 놀리는 거 봐. 짜증나네. 아는데, 그 땐 그게 맞는 줄 알았다니까."
"....갑자기 왜 후회되는데?"
"올해 복학신청했어. 그 서류를 내가 받을 뻔했다니까.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영상 조교님이 받아놓으셨더라."
"많이 보겠네, 이제. 다시 좀 들이대봐."
"미친, 그게 맘대로 되면 어? 내가 상담을 하겠냐고. 이건 서론이고, 내가 물을려는 건 이거야. 나 조교 관두고 튈까?"
"개소리야. 아, 그래서, 걔 이름이 뭔데? 별 걸 다 아는데 걔 이름만 몰라."
"....아, 강영현."
내가 사랑했던, 강영현.
너가 힘들 것 같아서, 내가 놓은, 강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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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사드릴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ㅎ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