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 들어주세용)
#. 기가 막힌 첫 만남
5일 동안이나 지랄이던 시험이 끝나니 속이 후련했다. 성적 깨나 나오는 사람이라도 시험이라면 학을 떼는 법이다.
여주는 평소보다 영어를 좀 못친 것 같다는 느낌을 애써 떨쳐버린 채 그냥 이 지겨운 일정이 끝난 것에나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곤 혹여나 친구들에게 잡힐세라 종례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역시 시험 끝난 날에는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찰나 그렇게 피하려던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쏟아져나오며 -뭐야 종례 끝났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주는..... 어쨌겠어, 그냥 잡혔다.
그렇게 여주는 화장을 치덕치덕 끝낸 친구들의 얼굴과 상당히 대비되는 피곤한 얼굴로 버스에 올라탔다.
얘들아..... 나 너무 피곤해서 곧 죽을 것 같아...... 여주가 친구들 앞에서 온갖 불쌍한 척을 하면서 얼른 집에 보내달라는 시그널을 보낼 때 친구 윤진이는 그 시그널을 차단할 한방을 알았다.
-우리 마라탕 먹을건데.- 그리고 그 말 한 마디에 여주는 입을 싹 다물고 열심히 무리를 따라다닌다.
오로지 마라탕을 위해 걷는 중이었던 여주는 자신을 비롯한 자기 일행의 발걸음이 탕화쿵푸로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채고 말았다.
아니 대체 마라탕 먹기 전에 귀는 왜 뚫는데 귀는! 이미 양쪽 귀에 쇠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지윤이가 두 군데나 더 뚫겠다고 들른 피어싱 샵이었다.
5명이 들어서자 가게가 꽉찼고 좁으니까 밖에 서있겠다는 여주를 친구들은 굳이굳이 끌고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그리고 여주는 괜히 알바생 눈치가 보였다. 아니... 귀는 한 명만 뚫는데, 우리 6명.... 살 것두 아닌뎅..... 혼자 궁시렁댔다.
왠지 알바생이 저 도톰한 입술로 작게 욕을 읊조리는 것 같기두.....
그 광경을 못 본 척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끝에는 지윤이가 벌써 귀 2군데 구멍을 다 내고 새로운 아이들로 갈아끼우기 까지 한 상태였다.
"우리 이제 마라탕 먹으러 가?"
간만에 여주의 얼굴이 화색을 띄었다. 곧바로 타박이 이어졌다. 기집애야 온김에 구경하구 가.
-아 맞아. 여주 너 이런 색 좋아하잖아.
언니가 미리 생일 선물로 사줄게.
애먼 여주에게 불똥이 튀었지만, 하필 여주는 겁이 많다. 주사 바늘로 제 팔 엉덩이 구멍내는 것도 질색하는데 귓불을 관통하는 그건 더더욱 무서웠다.
어쩌다보니 여주 자신이 귀 뚫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옆에 막 날카로운 큰 바늘 같은거랑 연고랑....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 무서운 알바생도 옆에서 구경한다.
무슨 감옥에서 검사받는 병든 죄수가 된 것 같다. 장갑 낀 언니가 자기 귀 모양을 살펴본다.
여주는 뭐라도 잡아야겠다는 마음에 정말 아무거나 잡았다. 그게 윤진이나 지윤이의 손이 아닌 그 알바생의 손이라는 게 문제였다.
알바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옆으로 긴 눈이 위아래로 번쩍 커졌다.
시발.... 내가 뭔 짓을. 여주는 냅다 달려 피어싱 샵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샵 안엔 귀 만지다가 손님 잃어버린 언니와 5명의 친구들, 아직 정신 덜 깬 그 알바생과 어색한 공기만이 남았다. 뭔지 RG?
#. 넌 매운 맛? 난 죽을 맛!
그 민망한 상황에 차라리 혀를 꽉 깨물어 죽고싶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발은 죽어도 마라탕을 먹겠다며 탕화쿵푸로 향했다.
결국 탕화쿵푸에서 여주가 미리 줄을 선 덕에 뒤따라온 5명의 친구들은 덜 기다리고 먹는 중.
-너 아까 진짜 왜 그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질문은 내가 나한테 하고 싶다. 그거 성추행이라고..... 여주는 얼이 빠졌다.
이따 집에서 또 이불을 찰 게 분명했기 때문에 제 눈 앞에 있는 마라탕으로 기력(?) 보충은 마저 해야했다.
여주는 일단 시뻘건 마라탕 국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며칠 뒤 학교에서도 그 상황이 이따금씩 생각나 여주를 괴롭혔다.
시험 점수를 확인하자마자 진도를 나가는 고전 쌤에 궁시렁 거리며 책을 펴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여주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와 진짜 또라이년처럼 또 그걸 그냥 도망나왔네. 선생님의 입에서 고려가요가 흘러나오는 교실의 bgm을 배경으로....
쌍화점에 쌍화 사러 들어갔다가 회회아비 내 손목을 잡던 부분에서, 그 장면이 다시 재생되었다.
청소 시간 청소는 하지 않고 염증이 나는 바람에 피어싱을 갈아야겠다는 거울 앞 지윤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주가 -그 샵 다시 갈거야? 하고 물었다.
지윤이가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니 여주는 뭔가 크게 결심한 듯 저도 따라가겠다고 앵겨붙는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 가는 길에 들어선 슈퍼에서 비타 500 한 박스를 샀다. 노란 포스트잇에 몇마디 쑥스럽게 끄적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painkiller and anti-phlogistic
오늘따라 유난히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여주는 그 보라 머리를 내내 허공에 그렸다.
그리고 버스를 내려서는 그 피어싱 샵이 가까워질 때마다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거 왜 이렇게 떨려? 여주는 가게에 들어가기 전 까만 색 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앞머리를 정리한다.
-어서오세요.
오늘은 그 알바생이 보이지 않았다. 저번에 귀 뚫어주려던 언니만 카운터에 덜렁 서있었다.
여주가 두리번 거리자 지윤이 여주의 팔을 끌어 제 옆에 붙여두곤 용건을 말한다.
- 저 염증나서 다른 걸로 바꾸려구요.
지윤은 저번에 샀던 것보다 더 비싸고 좋은 걸로 피어싱을 갈고, 여주는 그 알바생도 없고 오늘 헛탕쳤다는 허무함에 손에 들고 있던 비타 500은 자리에 놓아 둔 채로 귀걸이 구경이나 했다.
여주 눈에 반짝 거리는 보라색 큐빅이 박힌 심플한 피어싱이 들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지윤은 여주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궁옌줄.....
-온 김에 요걸로 뚫어??
지윤의 물음에 여주가 홀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색이 여주의 페이보릿 컬러였기 때문인지, 뭐 다른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번엔 무섭다구 도망치더니 오늘은 웬일로 먼저 뚫으신대요? ㅎㅎㅎ 귀 뚫기 전공이라도 하신 듯 정확하고 빠른 손놀림을 자랑하던 그 언니가 웃으면서 여주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이제 제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지금 내 스스로 귀에 구멍을 뚫겠다고.....
여주가 불쑥 그 언니의 장갑끼는 행동을 막는다. -안되겠네..... 혁아 좀 나와봐.
언니가 바늘을 잡는 건 겨우겨우 막았는데 더 큰 문제가 생겨버렸다.
분명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이, 가게 안쪽 방에서 왜? 하며 나오는 것이다.
여주는 그 보라 머리 알바생이 고개 빼꼼 내밀던 그 순간부터 아주 얼음이 됐다.
미친.....
언니가 눈을 찡긋하자 보라 머리가 여주의 눈 앞에 손을 내민다.
-오늘은 내가 허락했으니까 잡아도 되는데. 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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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이랄까요....
글잡 셒구란이 더 활성화되길 바라며 끄적여봤습니당.
그래도 //대//를 잇는 명대사를 찾기란 힘이 드네요ㅎㅎ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