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날은 덥고 기분은 심심한게 이게 참,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다. 민호는 가만히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있다가 불현듯 무엇이 떠올랐는지 급하게 윗옷을 챙겨서 나왔다. 그냥 걷는 것 일뿐인데 멀리서도 기럭지, 가까이서 보면 이게 또 잘생긴게 자꾸 눈이간다. 여러 눈길을 받으며 무슨 생각인지 흥얼거리는 행동이 여간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만드는게, 덩치와 어울리진 않다. 그러다 발길을 멈춰선 곳은 꽃집 앞이었다.
"안녕."
민호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꽃집이라 그런지 열자마자 자신의 코에 훅 올라오는 여러 꽃냄새와 습기 가득한 흙냄새가 그렇게 기분좋을 수 없다. 민호의 인사에도 아무도 반겨주지않자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민호의 눈엔 익숙한 뒤통수가 들어왔다. 괜히 헛기침 한두번 더해주니 그제야 알았다는듯 구석에 있던 남자가 허리를 들어 민호를 확인하곤 시퍼렇게 질려버린다.
"오,오셨네요."
"반응이 왜그래."
겁에 질린 듯 민호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는 남자의 모습이 이제껏 좋았던 기분이 전부다 바닥을 기는 기분이다. 날도 더운데…. 가만히 인상쓰며 내려다보니 남자는 땀까지 흘리면서 시선을 피한다.
"대답."
"……."
"안해?"
눈치를 보다 남자가 자신의 앞치마를 뒤적거리더니 종이 한장을 꺼낸다.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민호는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릴 듣고선 눈썹이 꿈틀거리다 못해 춤까지 추는 걸 보아하니…… 민호가 원하던 대답이 아닌 것 같았다. 남자에게서 종이를 낚아채더니 찢어 구기고선 바닥에 뿌리더니,
"그래서, 지금 몇 일짼데 주문한게 안들어 온다는 거야?"
"그 꽃이 워낙 희귀……."
"몇 일."
쇠 마찰음 소리가 들리더니 치익- 꽃이 있다는 걸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담뱃불을 붙이더니 뻑뻑 피워대며 여전히 인상을 안풀고선 내려다보는 민호였다. 꽃한테 안좋은데…. 생각마저 읽어지는게 강아지처럼 귀가 바짝내려가진 모습이다. 순순한 모습에 조금 마음이 풀리는듯 눈에 힘을 푸니 남자는 실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일 주일이요오.."
"저번주도 일 주일 기다려 달래서 지금 온거잖아."
"이번엔 확실해요!"
그러면 그런거지 왜 언성이야, 이자식이!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하며 겁을주니 크게 쫄아버리며 눈까지 질끈 감는 남자를 보며 민호는 담배연기와 함께 한숨을 푹-쉬니 앞에있던 남자만 죽어나는 표정으로 코를 틀어막는다. 일부러 더 담배연기를 얼굴쪽으로 후- 불더니 다음에도 없으면 알아서 하라며 으름장을 놓고 문을 거세게 열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들어왔다.
"아, 명함좀 줘. 수시로 전화할테니 혹시 일찍 들어오면 말하고."
"아,아 네!"
허겁지겁 책상으로 가더니 우당탕 소리까지내며 명함찾는소리가 참 요란하다. 깊숙이도 넣어놨는지 서랍안에 팔을 비집어 넣으며 낑낑거리다가 하나 꺼내선 민호에게 준다. 잘가라는 남자의 인사도 무시한체 문을 쾅- 닫고 나온 민호는 명함을 쳐다봤다. 김종현. 꽃집남자의 이름은 김종현이었나 보다. 이름 세글자와 밑에 휴대폰 번호까지 적혀있는 걸 대충 확인하더니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아, 큰일이네"
밖에 나와서 담배를 마저 피곤 바닥에 비벼끄더니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민호다. 조금 오래 신호가 간다 싶더니 신호음이 끊기고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민호의 귀에 들리더니,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지 민호는 살짝 웃으며 통화를 했다.
'응, 자기'
"꽃이 아직도 안들어왔다네."
'괜찮데두, 당신만 있으면 된다했잖아.'
건너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여간 달콤한게 아니다. 요세 민호는 이리저리 잘쑤시기로 소문나있는데 한 여자한테 올인한다더니, 입이 귀에 걸려선 헤벌쭉 하는 모습이 팔불출이다. 팔불출. 기분 좋아진 민호는 통화를 마치고선 꽃집을 한번 더 뒤돌아 보고 자기 갈 길을 간다.
첨이니까 간단히..ㅎ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