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in Deiana x You
당신의 흔적들
*스토리 진행상 어쩔수 없이, 시점은 로빈 시점.
너를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감정을 뭐 그렇게 표현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나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사랑은 좋은 것이라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에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안될 감정이었다.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마음을 모두 내어준 내가 우스웠다.
아직도 그를 다 잊지 못했다고 했다. 무슨 사이였냐고 물으니 그녀는 말갛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에게 연인이 있었다는 것만 알지 나는 그에 관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별로 묻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질투가 날 것 같았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그녀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는 묘한 자괴감을 느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마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 .... 왔어요? "
" 응. 잘 있었어요? "
" 뭐, 나야… "
그녀는 절대 내게 잘 지내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늘 그래왔다. 그렇지만 거짓말 역시 하지 않아서 늘 저렇게 당혹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그러면 나는 던졌던 질문을 다시 거두고 말없이 웃어주곤 한다. 그것이 최고의 대답이고, 우리 사이의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나는 그녀에게 애인도 친구도 아니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다가감으로서 그 아무것도 아닌 존재 주제에 오래 남을 수 있었다. 그녀도 얼핏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니,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으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 사람에 대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 점심은요? "
" 아직이요. "
" 또? "
" 먹으라고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꾸 잊게 되네요. "
실은 거짓말이었다. 두어시간 전에 내가 점심 챙겨먹으라고 메세지를 남겼는데. 내 시선을 눈치챈 듯 그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해요, 로빈이 신경써서 보내줬는데.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닌 '그 사람' 이겠지. 쓰게 웃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내가 사랑한 연인도 아닌데 나는 그의 부재를 이런식으로 느끼게 된다. 만약 그가 그녀의 옆에 있었다면 그녀는 조금 더 밝고, 행복해 보이는 고운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웃을때 패이는 인디언 보조개도, 휘어지는 눈 웃음도 나는 더 자주 볼 수 있었을까. 나는 문득 그가 그리워졌다.
" 나도 이러려고 하는 건 아닌데, "
" 알아요, 괜찮아요. 그러니 더 말하지 말아요. "
애써 담담한 말을 뱉어내는 가슴이 쓰렸다. 당신은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 습관이 무서운가봐요. 왜 자꾸 그렇게 말하게 되는 거지. "
그리고 그녀는 낡은 핸드폰을 매만진다. 요새는 일주일 걸러 새 기기가 나오고, 새 프로그램 따위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녀는 그 낡은 핸드폰을 꼭 가지고 다녔다. PDA 마냥 무식하게 커다란 그 핸드폰. 스마트폰에서 현재의 디바이스로 넘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의 낡은 모델. 자기 핸드폰을 따로 쓰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품에 안고 다녔다. 호기심에 그녀 몰래 그 핸드폰을 켜보았지만, 완전히 고장이 났는지 그것은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그와 관련된 물건이겠지. 그 핸드폰을 볼 때마다 그녀의 습관과, 그 사람이 다시금 생각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다. 핸드폰과, 습관처럼 한 사람만 사람으로 칭하는 말버릇을 품고 과거에 사는 그녀를 지금의 시간으로 데려오는 것을 말이다. 과거에 존재하는 그를 위해 같이 멈추어 선 그녀를 보고 알았다. 돌아올 마음이 없다는 것. 그래서 질투 대신 다른 마음을 꺼내었다. 과거에 멈추어 선 그녀의 곁에 같이 남기로 했다. 그녀의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같은 시간대에 존재할 수는 있을 테니까.
" 그 사람, 어떤 사람이었어요? "
" 좋은 사람요. 다정하고. 내 걱정을 참 많이하고. "
" 그렇구나. "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을 묻지 않았다. 대신 소망했다. 그녀의 시간에 내가 살 수라도 있기를.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녀의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
이상적인 사랑은 뭘까요, 참 알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