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석한 모래 밭 사이로 희뿌연 안개 한다발이 지나간다. 우현이 제 목을 죄어오는 갈증에 가슴을 몇 번 치다가 가방속에 있는 물을 들이켰다. 이제 9일 남았다. 우리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시간 9일 성공해야만 한다. 우현이 저희 아빠에게서 온 편지를 꾸깃꾸깃 쥐었다. 아빠...몇번씩이나 읽은 갈색 종이의 동그랗고 각진 아빠의 글자는 저의 손때로 인해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하루하루의 훈련은 힘들었다. 하루종일 돌을 나르고, 알몸뚱아리인 상태로 강을 건너야만 했다. 마라톤 선수보다 더한 거리를 하루에 달려야 했으며, 흙먼지는 코로 들어갔으며 돌같은 것도 이로 씹어삼키 일쑤였다.그렇게 고된 훈련을 다 받고 나면 우현은 항상 배꼽시계가 뇌동치듯 우르릉 하고 일어났다. 나라가 존폐하느냐 마느냐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생리현상과 본능은 견딜 수 없었던지 늘 맛있는 것을 찾았다. 엄마가 해주신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코끝을 찔러오는 구수한 냄새와 매콤한 냄새가 뒤섞여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저의 코끝으로 들어올 때, 우현은 대통령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하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꼈다. 전쟁을 겪고 나서 가장 힘든점은, 이런 사소하고 소박한 것에서 오기 시작했다. 늦잠의 달콤함을 겪거나, 친구들과 만화책을 보는 것, 부모님이 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모두 다 그리웠다. 육공트럭이 드드드---하는 소리와 함께 지나간다. 미군들은 여전히 초콜릿을 까며 헤이유 갇유! 하면서 우현에게 장난을 걸기 일쑤였다. 그럼 우현도 눈꼬리를 유하게 접으며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주었다. 위로 전투기가 지나간다. 하늘에서 전투기와 각종 헬리콥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의 머리위를 도닐고 있었다. 이제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육상전뿐만 아니라, 하늘에서의 전투도 간과할 수는 없어 그것까지 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A-18 전투기가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꼭 기다란 과자 통조림처럼 생긴 전투기 하나가 거친 굉음을 내며 날아간다. 휘이이잉----우현의 머리께가 좌우로 펄렁인다. 갈색 흙바람이 저의 머리께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어...? 누군가 흙바람을 맞으며 콜록콜록 요란스럽게 기침을 하면서 걸어온다. 우현이 미군이나 저의 군사들 중 한명인 줄 알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이 잠옷이다. 응...?군사 몇명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넌 누구냐!" "저기....." 우현이 그 희뿌연 시야 속에서도 사람의 눈동자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우현이 눈을 찡그린다. 도대체 누구지....남자가 우현을 쳐다보고는 손을 위로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어...? 우현이 순간 놀라움으로 가득찬 눈동자로 벌떡 일어선다. 성규형...귀여운 곰돌이 잠옷 위로 민트색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 이 험준한 지형을 건너 이곳까지 찾아오다니...분명 산 속 깊은 곳이라 찾기 힘들었을 텐데... 우현이 잠시 멍을 때리다가 갈가리 찣기어진 잠옷과 광대 부근에 흙을 잔뜩 묻히고 온 성규를 보고 피식--웃음을 흘렸다. 들고 올게 없었던지 낡은 깡통안에 지갑이 달랑달랑거렸고, 누구한테 뺏길세라 그 흔한 나뭇가지를 꼬옥 쥐고 온 성규. 성규는 제 꼴이 각설이처럼 우스운지도 모르고 헤헤--하고 웃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깡통치면서 타령가를 불러야 할 것만 같다. 뭐 이런 거지꼴로 온거야...? 우현은 얼핏 의심이 들었다. 도대체 왜...왜 온거지? 그것도 일본인이. ***"군인이 되고 싶어요!" 참으로 뜬금없는 말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뉴스에서 주인 옆에 앉아 대제국 일본 만세! 하는 연설을 귀가 쑤시도록 들어댔던 일본인이, 갑자기 저의 군영에 넣어달라는 소리는 무슨 개소리인가.성열이 성규를 뻔히 바라보다가 너 이새끼 마음에 드는데? 하고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암, 그래야지. 우현은 속으로 저 병신이 뭐하는 거야? 하고 성열에게 한바탕 악다구니를 지르고 싶었으나성규가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참았다. 결국 성규 담당은 남우현. 시발, 저새끼 꼭 시킬 사람 없으면 나 시키지. 우현이 또 울컥 올라오는 고까움에 성열을 노려보다가 성규를 한 번 쳐다봤다. 나 따라 와요. "여기가 잘 곳이에요." 우현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초록색 이불을 걷어찬다. 그 덕에 위에 놓여있던 말라비틀어진 라면가락이 붙은 양은냄비가 덜그렁거렸다. "우현아.""뭐요." "너 나 안보고 싶었어? 난 너 보고 싶었는데" 성규가 해실해실 웃으며 우현의 말랑한 팔을 툭 찌른다. 우현이 순간 얼굴이 벌개져서는 이 어른이 정신이 나갔나..하고 제 성깔대로 거친 말투를 뱉고 싶었으나,왜인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뒷통수부근으로 열이 올라 자꾸만 성규가 해맑게 웃는 모습이 자꾸만...자꾸만 예쁘게 보였다. 성규가 우현의 겨드랑이 사이로 제 팔을 걸어왔다. 우현이 깜짝 놀라 성규의 팔을 치워내려는데, 성규가 왜에--하면서 우현에게 걸었던 팔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듯 더욱 더 제 손에 힘을 주었다. 우현이 자꾸만 빨개져 오는 제 얼굴에 물병에 물만 꿀꺽꿀꺽 들이킨다. 덥다 더워. 성규가 여전히 해해실실 웃다가 나도 물줘! 하고 우현의 물통을 뺏들었다. "아, 뭐에요! 나도 마실건데." "나도 목마르단 말이야."하고 물병을 제 입에 물어버린다. 그것도 제가 마셨던 쪽으로. 게다가 마시는 폼은 꼭 애기가 젖병빨듯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우현이 빨개진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간다.세숫대야를 틀었다. 물을 틀었다. 쏴아아---하고 맑은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다. 우현이 손으로 물을 튀기며 세수를 격하게 하였다. 그리곤 물이 틀어진 상태로 옆을 보는데, "으아아아악! 시발!" 낡아서 검은 곰팡이가 슨 벽지 위로 검은 지네가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우현이 소리를 지르며, 한발짝 큰 발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가 땅에 떨어진 비누를 밟았다. 순간 쓱--하고 발부터 미끄러지더니 욕실에 쿵--하고 제 머리를 박았다. 흐으..시발 아퍼. 우현이 제 머리를 문지르며 욕을 하였다. 지네가 우현을 보고 가던길을 멈춘다. 그러더니 제 더듬이를 인사하듯이 좌우로 두어번 움직인다. 저 시발년이, 하고 우현은 당장이라도 지네를 때려잡고 싶었으나 저 발 주렁주렁 달린 실루엣을 보니까 포기하고 싶어진다. 결국 생명은 소중한거니까 하고 합리화를 시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채 마르지도 않은 수건으로 제 얼굴을 닦고 나오려는데 "으아아아아악!" 팔짱을 끼고 화장실 문밖에서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저를 쳐다보는 성규. 순간 우현이 뭐...뭐뭐.뭐.뭐 뭐에요! 하고 말더듬이 상태가 되어 성규를 쳐다보았다. "너 벌레같은 거 되게 무서워 한다?" "그...그런게 아니라, 생명은 소, 소, 소 소중한 거니까...!"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제가 말하고도 병신같다. 벌써 사람죽이는 연습을 하고 있고, 또한 죽여본 적도 있는데 사람은 죽이고 벌레는 못죽인다? 한순간에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멘탈 붕괴의 상태가 온 우현이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해져있다. 어버버버 거리다가 결국 짜증을 내며 문 앞에 성규를 밀쳤다. 툭--하고 성규의 어깨가 밀려난다. 우현이 영감처럼 구시렁대면서 치약을 입에 물었다. 성규가 뒤뚱뒤뚱 팔자걸음을 걷는 우현의 뒷등에 대고 씁쓸하게 웃었다. *** "명수야."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성열이 서류를 뒤적이다가 가만히 서있는 명수에게 말을 건네었다. 총장실로 끌려온 명수가 영문을 모른 채 뒷짐을 지고 서 있는다. 명수야 라고 말은 걸었는데, 그 입에서 정확한 용건은 30초가 지난 아직까지 튀어나오지 않았다. 계속 허허--하고 웃다가 표정을 굳히다가 다시금 미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는다. 갑갑해진 명수가 성열에게 물었다. "저기...무슨 일로 부르신 건지." 그제서야 성열이 심각하게 명수를 쳐다본다. 입술을 한번 꾹 물었다가 놓는다, 명수가 알수 없는 긴장에 어깨의 힘이 바짝 들어간다. "우현이 말이다." "우현이가 왜요?" "너희 둘, 꽤나 친해보이던데, 우현이를 너무 믿지 마라.""네?" "철이 없는 녀석이야.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우릴 배신 할 가능성도 농후한 녀석이다. 너 같이 성숙한 애들은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는 거 아니야."순간 명수가 제 귀를 의심하다가 알았니? 하고 물어보는 성열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다. 됐으니 그만 나가봐라. 하고 저에게 손짓을 하는 성열. 우현...명수가 주먹을 꼭 쥐었다. 뜬금없이 우현이를 믿지 말라니. 적어도 제가 아는 우현은 장난끼가 심할 뿐, 나라를 사랑하는 아이인데. 다시 전보를 치며 제 할일을 하는 성열에게 명수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앞일을 함부로 예상하지 마라. 내가 너보다 인생 오래 살았고, 그 덕에 사람 볼 줄은 안다고.""저보다 오래 사셨지만, 제가 더 우현이를 오랫동안 봐왔습니다. 어차피 곧 전쟁은 끝날거고, 그 전이라도 전 절대 우현이가 나라를 등지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곤 뒤를 돌아 나간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정적이 싸하게 감돌았다. 성열이 명수의 뒷등에 픽--하고 비웃음을 날리더니 다시금 바람에 흩날리는 서류뭉치들을 잡아 정리한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믿다간 언젠가 제가 다치지..." *** "호원아,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되냐..." 동우가 숨을 헉헉거린다. 침 하나 고여 있지 않은 혀를 내밀며 힘겨워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은 이미 일사병이라도 걸릴까 걱정 될 정도로 벌개져있었다. 바위를 짓밟는 동우의 운동화 끈은 이미 다 풀려져 있었다. 힘겨움에 무릎을 굽혀 운동화끈을 묶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동우의 등에 업힌 어린 동생은 저의 손가락을 쪽쪽 빨며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리곤 동우의 헥헥 거리는 숨소리를 들기라도 한 걸까, 슬몃 그 긴 속눈썹을 들어보았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 하늘의 뭉게구름이 담긴다. 아이가 힘겨워하는 동우를 쳐다보고 엉--하고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자꾸만 몸을 비틀었다. 동우가 자꾸만 몸을 틀어대는 아기 때문에 착하지 동희야...하고 포대기를 몇번 흔들어 달래준다. 그리곤 위를 쳐다보는데, 산길이 엄청나게 경사져 있었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경사였다. "아...어쩌지.." 호원이 난감하게 동우를 바라보았다. 지금 저의 체력으로는 버텨 낼수 있을 것 같다만, 이 산이 워낙 험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동우의 여력으로 견뎌낼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호원이 동우를 쳐다보고 아기 이리 줘. 하고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들어내었다. 그리곤 제가 동우를 업고 포대기 끈을 허리에 한번 두르더니 매듭이 풀리지 않게 꽉 묶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다른 길로 가자....동우를 올려보내도 나는...""이 길 밖에 없어. 동우 올려보내면 내가 손 잡아 줄게." 손 잡아 주겠다는 말에 뭔가 안심이 된 동우가 불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호원이 경사진 비탈길을 먼저 올라가고 숨을 몰아쉬면서 동우를 평평한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아래를 내려다보며 동우에게 걱정스레 소리친다. "동우야! 나만 믿구, 여기 올라올 때까지 절대 뒤 돌아보지말고. 응, 응, 절대 걱정하지마. 안 떨어져." 눈물까지 어룽어룽 쌓인 동우를 얼르고 달랜 호원이 손을 내밀었다. 동우가 호원의 손을 올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비탈길에 걸린 바위 하나에 발을 올려 놓았다. '탁!'꼭 암벽등반을 하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 동우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가자, 동우의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목구멍까지 솟아오른다. 동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발 한 발 바위에 걸칠 때마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어으..." 동우의 손에 꺼끌한 모래와 자잘한 돌들이 묻었다. 동우가 따가움에 잠깐 신음을 내뱉다가 다시금 손을 뻗어서 돌 하나를 더 손으로 잡는다. 터억--하는 소리와 함께 제 몸뚱아리를 몇 센치 더 끌어 위로 올라가는 동우를 볼 수 있었다. 허으, 허으, 그렇게 숨결이 바쁘게 오고가는 시간이 10분쯤은 지나간 것 같다. 2분만에 올라간 호원과 달리 겁 많은 동우는 이제야 호원의 손이 보였다. 동우가 숨을 쉬었다. 힘들다. 너무 힘들다. 벌써 10M는 올라 온 거 같았다. 동우가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원의 잘생긴 얼굴도 이제 잘 보이는 거리였다. 순간, 저 자신이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한 번 확인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동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아니야, 아니야. 동우가 고개를 몇번 흔들다가 손을 잡으려는데 자꾸만 뒤가 돌고 싶었다. 결국 잠깐만 뒤돌아 보자는 생각으로 뒤를 도는데, "아...아아..." 까마득하다. 제가 올라온 높이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높이였다. 꼭 아파트 5층 난간에서 아래의 아스팔트 바닥을 보는 기분이었다. 제가 두고온 물병이 새끼손가락만큼 작게 보인다. 너무 높다. 어지러웠다. 돌을 쥔 동우의 손이 부르르 떨리면서 순간 동우의 손가락에 있는 피가 역류하면서 경련이 일어난다. 다리까지 파들파들 떨린다.호원은 동우를 걱정스레 쳐다보다가 빨리 손 잡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윙윙거린다. 들리지 않았다. 이미 멍해진 동우의 눈동자는 호원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동우가 손을 내미는데 파삭--하고 나뭇잎 밟히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미끄러져 버린다. "으아아아----""동우야----" 호원이 소리를 지른다. 동우의 얼굴이 멀어져 가더니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호원이 앙알대는 동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나뭇잎과 검불등을 쓸어모아 동희가 눈에 안띄게 가린다. 그리곤 12M나 되는 높이를 거의 날아오르듯이 뛰었다. 탁---착지한 호원이 뛰다가 발을 접질렀던지 아--하는 소리를 내었다. 확실히 뛰기에 무리가 있어 보이는 높이였으니까. 호원은 접질린 발을 문지르면서 동우를 찾았다. 동우야아--- "호원아...원아..." 동우가 어깨와 무릎, 얼굴 부근에 피를 흘리면서 울고 있었다. 호원이 저의 아픔을 참고 동우에게 쏜살같이 내려간다. 사락--하고 저의 발이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금방 동우가 울고 있는 곳까지 도착하였다.무릎부분은 찣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얼굴은 가시에 걸려 긁혔던지 빨간색 스크래치가 되어 있었고, 이마에선 줄줄줄 흘러 턱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호원이 안타까운 듯 제 옷을 북--하고 찣었다. "흐으...호원..호원아.""장동우 뚝---그쳐, 빨리. 안 그치면 내가 호랑이 되서 잡아감" 호원이 저의 옷자락을 동우의 상처난 무릎에 길게 매어주었다. 지혈이 되도록 매듭을 짓더니 울지말라고 동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곤 얼굴에 길게 늘어진 핏자욱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다치냐, 이 칠칠맞은 놈아, 속상해 죽겠어 진짜..." 호원이 동우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간다. 순간 헙--하고 동우가 제 얼굴을 막으며 저의 가까이로 오는 호원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호원이 거센 악력으로 동우의 손을 쥐어 저를 밀어내지 못하게 만든 뒤 저의 혀를 내어 동우의 피를 핥았다. "으읏..." 동우가 저의 얼굴께에 닿아오는 간지러운 감촉에 어깨를 뒤로 밀어낸다. 그러자, 호원의 동우의 뒷통수를 붙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더욱더 가까이 붙이었다. "가만히 있어 장동우, 낫게 해 줄 테니까..." 호원이 동우의 볼부근과 턱 부근을 혀를 내어 할짝할짝 핥았다. 동우는 자꾸만 발가락이 간질거리고, 심장이 간질거리고, 호원이 핥고 있는 얼굴도 간질거리고. 아무튼 다 간지러웠다. 더디게 저의 피를 닦아내는 호원의 뜨거운 혀에 동우는 아픔이고 뭐고 정신이 아득해졌다.이윽고 저의 이마까지 피를 다 핥아낸 호원이 이마 부근에 쪽--하는 입맞춤과 함께 입을 떼어낸다. 동우가 놀래서 곡선으로 변한 눈꼬리, 어벙벙한 입술로 호원을 쳐다보자, 호원은 정말 능구렁이같이 웃으며 그만 가자, 하고 손을 내밀었다. "나...나쁜놈! 남의 처...처처처처?" "첫키스 아니야, 바보야, 이마에다 했잖아? 그것도 읍--이 아니라 쪽--이라구." 이러곤 검지손가락을 제 입술에 갖다대는 데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저 개새끼...동우가 호원을 향해 낮게 욕을 읊조리며 아직까지도 따뜻한 열기가 남아있는 저의 이마부근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이거...아무래도 내 심장에서 나오는 열 같다. 동우가 제 얼굴로 자꾸만 손 부채질을 하였다. "업혀 장동우.""시러어..." "너 3초안에 안 업히면 입술에다 해버린다. 3, 2, 1." "어...업힐거야!" 결국 동우를 업은 호원이 가파른 경사를 건넌다. 이 나이 먹고 남자한테 업혀서 산이나 올라가는 꼴이라니 장동우 정말 한심하다. 동우가 따닥따닥 게집처럼 붙은 저의 하얀거즈를 톡톡--두드렸다. 호원은 동우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자꾸만 싱글벙글이다. 얄미워, 얄미워. *** 명수가 담배를 건네 들었다. 생애 처음 피는 담배였다. 담배를 든 명수의 손이 덜덜덜 떨린다. 팟--하고 담뱃불을 붙여오자, 불꽃이 일렁거렸다. 명수가 하얀 구름과자를 저의 혓바닥에 대고 깊게 들이마쉰다. 그러자, 제 폐부에 가득 들어차오는 숨막힐 듯한 메스꺼운 공기에 콜록콜록--하고 연기를 뱉어냈다. 맵다. 꼭 고춧가루 섞은 폭탄을 흡입한 것처럼 매웠다. 이렇게 매운 걸 어른들은 도대체 무슨 맛으로 맛있다고 지껄이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명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약처럼 들이키게 되었다. 몇번을 콜록콜록하고 잔기침을 하다가, 들이 마쉬기도 수십번. 수풀을 가르고 우현이 저벅저벅--구두소리를 내며 저에게 다가왔다. "여어--""뭐야." 명수가 여전히 하얀 막대기를 입에서 떼지 않은 채 낮게 중얼거린다. 우현이 명수의 입에서 하얀 과자를 뺏들더니 땅에 떨어뜨려 제 발로 뭉개버린다. 명수가 우현을 아프지 않게 치면서 그걸 왜버려! 하고 툴툴댄다. "맨날---담배피는 아빠 욕하더니 이젠 피장파장이야---" 우현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할말이 없어진 명수가 철지난 유행가처럼 자꾸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하고 내뱉는 명수의 한숨소리가 무디고 옅게 공중으로 퍼져나간다. 우현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한숨소리였다. "야, 그만 가야지? 어제 그 사람한테 통화해서 약속 잡았다며." 우현이 제 손에 매여진 낡은 시계를 보고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명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그럼... "저...우현아.""왜?""나 기억안나?" "지랄 말고 일어나." 우현이 그 한마디를 남긴 채 군복을 갈아 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가버린다. 탈의실 문이 닫히자, 명수가 푸슬푸슬 바스러진 헛웃음을 내었다. 바보. 명수가 속으로 우현에게 되뇌었다. 바보, 바보. 나 기억도 못하냐... *** "그런데 나 그냥 정상적인 게 훨씬 더 나은거 같은데.""니은니은. 넌 여장할 때가 훠얼씬 이뻐." 뭐? 하고 노려보는 명수의 갈퀴눈에 우현이 다시 아무것도 아니야--하고 옆을 쳐다보며 얄밉게 휘파람을 불었다. 명수가 가발을 골라달라고 하는 탕에 우현이 물만난 듯 어떤 가발이 명수에게 어울릴까, 고민하며 온갖 잡동사니를 명수의 머리에 걸쳐본다.모자 대용이라며 비닐봉지를 걸고, 넥타이 대신 옷걸이를 목에 거는 우현. 결국 명수에게 등짝을 세게 맞고 나서야 장난을 그만두고 제가 좋아하는 긴 생머리 가발을 씌워주었다. "나이쑤우우우우우우---- 우리 엘순씨 이쁘다." "죽여 버린다고 했다 내가...." 저를 정말 죽일듯이 노려보는 명수의 눈길에 결국 우현이 깨갱---하고 엄지손가락을 뻘쭘하게 뒤로 숨기었다. 결국 무안하게 박수만 짝짝짝--세번을 치는데 결국 명수가 우현의 중요부위를 세게 친다. "개새끼, 내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어, 안했어?" "악!...가...가만히 있을게요, 엘순씨.""엘순씨라고도 부르지마." "이응, 알았어 명수야." 결국 두 손 두발 다들고 명수 놀리는 것을 포기한 우현이 저도 옷을 갈아입으려 군복을 벗는데, "야, 너 뭐하는 거임?""...어? 옷 갈아입잖아." "넌 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뭐가 라고 물어오는 우현. 명수의 눈빛이 싸--하고 달라지더니 우현을 방문 바깥쪽으로 들이밀었다. "나 없는 데서 옷을 갈아입어야지 븅신아아아아아-----!" 탕---하고 문이 거칠게 닫히고, 순식간에 탈의실문이 닫힌다. 우현이 어이가 없어져, 시발 같은 남자끼리 어때서. 하고 계속 시발시발 하고 욕지기를 내뱉다가 저의 뒷통수를 때리는 큭큭--거리는 소리에 소음이 나는 근원지를 겨누어보았다. 뭐야?성규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저 병신...딱 봐도 저 좋아하는게 티가 나는구만. 성규가 창문 바깥을 쳐다보면서 우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여기 왜 있어요? 나 옷 갈아 입을거에요, 나가." "싫은데?"싫은데. 라고 시크하게 대답을 한 성규가 저의 셔츠에 달라붙은 파리를 쫓느라 정신이 없다. 어이가 없어진 우현이 에라이 됐다. 하면서 옷을 벗고는 양복 바지통에 저의 다리를 집어넣었다. "몸좋네." "....으어?" "탄탄한데? 으와---" 으와---하고 감탄을 하는 성규. 순간 김종국인 줄 알았다. 뭐 저런 영감탱이 같은 놈이 다 있어. 우현이 부끄러움에 약간 벌개진 얼굴로 바지를 갈아입고, 윗옷도 속전속결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서 성규를 쳐다보는데 자고 있었다. 쌔근쌔근---이때쯤이면 한참 춘곤증 올 시기에 무뎌진 속눈썹을 견디지 못하고, 훈련도 조금 고되다 보니까 잠들었을 게 분명하지. 우현이 성규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약간의 미동만을 보이는 성규의 긴 속눈썹. 우현이 더욱 더 성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매끈한 살결을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눈을 굴려댄다. 정말 하얗다. 꼭 백옥같은 게 웬만한 청자 맞먹게 높은 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군복은 절대 입기 싫다고 바락바락 우겨대는 바람에 결국 특별 사무실 임무를 맡게된 성규만이 입게 된 사복. 셔츠위로 보이는 얇은 손목. 우현이 제 목뒤에 걸려오는 거치적거리는 끈적한 침을 한번 삼켰다. 우현이 성규의 말랑한 볼을 툭---건드렸다. 성규가 볼을 양쪽으로 움씰거리면서 건드리지도 않은 눈썹까지 팔자를 그리다가 내려온다. 예쁘다 정말... 뭐? 잠깐만, 예뻐? 어디가. 이 눈만 쥐방울만한게 어디가 이뻐? 진심 바늘도 안들어 갈거 같은 이 눈이, 어..어디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규를 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바람에 의해 성규의 머리카락이 좌우로 팔락팔락 흔들거렸다. 창문에 걸쳐진 낡은 꽃무늬 커텐도 살랑살랑 제 몸을 흔들어댄다. 쏴아아---하고 나뭇가지들이 저의 봄꽃을 흔들었다. 옅은 봄꽃, 그리고 풀냄새가 우현의 코끝을 스쳐지나가고, 성규 특유의 체취가 섞이자. 우현의 머리 안에서 누가 핸들바를 돌려대기라도 한듯이 어지러웠다. 이성을 잃은듯, 성규의 입술이 너무 저의 성욕을 돋구었다. 왜이러지...원색적인 빨간색이 보여주는 특유의 색스러움이 자꾸 저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이성을 가맣게 만들었다. 입술에 번들거리는 침을 보고 순간 툭--하고 나가버린 검은 시야. 우현이 저도 모르게 성규의 입술에 저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곤 성규의 입술 안으로 저의 말랑한 혀를 비벼댄다. 성규가 낯선 감촉에 우웅---하고 저의 몸을 살짝 비틀자, 성규의 어깨를 손으로 꾹 쥐었다. 잡은 손 위의 파란색 정맥이 불거져 툭 튀어나와 있다. 우현이 성규의 입술을 깨물다가, 혀로 어금니 부분을 건드리더니, 앞니 두개를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렸다. 두 타액의 끈적함이 섞이고 성규의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더운 열기를 모두 집어삼키듯이 우현이 혀를 능수능란하게 놀린다. 한번 성규의 목젖을 건드렸다가 성규가 거칠게 내쉬는 허억--거리는 숨을 제 목구멍뒤로 침과 함께 꿀꺽 삼켜냈다.성규의 머리카락을 몇번 쓸어내리다가 우현이 고개를 들었다. 자꾸만 뒤로 고개를 젖히려는 성규를 아예 땅바닥에 눕힌 채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성규는 자꾸만 제 입술을 침범해오는 우현의 입술에 정신을 못차린 채 자꾸만 허억, 허억 하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만 내었다. 더욱 더 나사가 빠져버린 우현이 아예 땅바닥에 저의 손바닥을 마주한 채 읍읍--거리는 성규의 입술을 물고 빨았다. 입술을 살짝 물어뜯자, 성규의 입속에서 아--하는 옅은 소리가 잇새사이로 새어져 나왔다. 우현이 계속 달뜬 숨소리만 내뱉으며 성규의 혀를 휘감아올리다가 입천장을 건드렸을 때, "야, 미친놈아, 이거 안떼냐아아아아아---!." 우현의 얼굴이 날아갔다. *** 자꾸 얼마 안남은거 같은데왜이렇게 길어지짘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끝내고 싶은데, 제가 워낙 배경묘사하는 걸 좋아해서 스토리가 길어지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흡ㅋㅋㅋ
***
푸석한 모래 밭 사이로 희뿌연 안개 한다발이 지나간다. 우현이 제 목을 죄어오는 갈증에 가슴을 몇 번 치다가 가방속에 있는 물을 들이켰다.
이제 9일 남았다. 우리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시간 9일
성공해야만 한다. 우현이 저희 아빠에게서 온 편지를 꾸깃꾸깃 쥐었다.
아빠...몇번씩이나 읽은 갈색 종이의 동그랗고 각진 아빠의 글자는 저의 손때로 인해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하루하루의 훈련은 힘들었다.
하루종일 돌을 나르고, 알몸뚱아리인 상태로 강을 건너야만 했다.
마라톤 선수보다 더한 거리를 하루에 달려야 했으며, 흙먼지는 코로 들어갔으며 돌같은 것도 이로 씹어삼키 일쑤였다.
그렇게 고된 훈련을 다 받고 나면 우현은 항상 배꼽시계가 뇌동치듯 우르릉 하고 일어났다.
나라가 존폐하느냐 마느냐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생리현상과 본능은 견딜 수 없었던지 늘 맛있는 것을 찾았다.
엄마가 해주신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코끝을 찔러오는 구수한 냄새와 매콤한 냄새가 뒤섞여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저의 코끝으로 들어올 때, 우현은 대통령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하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꼈다.
전쟁을 겪고 나서 가장 힘든점은, 이런 사소하고 소박한 것에서 오기 시작했다.
늦잠의 달콤함을 겪거나, 친구들과 만화책을 보는 것, 부모님이 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모두 다 그리웠다.
육공트럭이 드드드---하는 소리와 함께 지나간다.
미군들은 여전히 초콜릿을 까며 헤이유 갇유! 하면서 우현에게 장난을 걸기 일쑤였다.
그럼 우현도 눈꼬리를 유하게 접으며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주었다.
위로 전투기가 지나간다. 하늘에서 전투기와 각종 헬리콥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의 머리위를 도닐고 있었다.
이제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육상전뿐만 아니라, 하늘에서의 전투도 간과할 수는 없어 그것까지 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A-18 전투기가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꼭 기다란 과자 통조림처럼 생긴 전투기 하나가 거친 굉음을 내며 날아간다.
휘이이잉----우현의 머리께가 좌우로 펄렁인다.
갈색 흙바람이 저의 머리께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어...?
누군가 흙바람을 맞으며 콜록콜록 요란스럽게 기침을 하면서 걸어온다.
우현이 미군이나 저의 군사들 중 한명인 줄 알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이 잠옷이다. 응...?
군사 몇명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넌 누구냐!"
"저기....."
우현이 그 희뿌연 시야 속에서도 사람의 눈동자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우현이 눈을 찡그린다. 도대체 누구지....남자가 우현을 쳐다보고는 손을 위로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어...? 우현이 순간 놀라움으로 가득찬 눈동자로 벌떡 일어선다.
성규형...귀여운 곰돌이 잠옷 위로 민트색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 이 험준한 지형을 건너 이곳까지 찾아오다니...
분명 산 속 깊은 곳이라 찾기 힘들었을 텐데...
우현이 잠시 멍을 때리다가 갈가리 찣기어진 잠옷과 광대 부근에 흙을 잔뜩 묻히고 온 성규를 보고 피식--웃음을 흘렸다.
들고 올게 없었던지 낡은 깡통안에 지갑이 달랑달랑거렸고, 누구한테 뺏길세라 그 흔한 나뭇가지를 꼬옥 쥐고 온 성규. 성규는 제 꼴이 각설이처럼 우스운지도 모르고 헤헤--하고 웃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깡통치면서 타령가를 불러야 할 것만 같다.
뭐 이런 거지꼴로 온거야...? 우현은 얼핏 의심이 들었다.
도대체 왜...왜 온거지?
그것도 일본인이.
"군인이 되고 싶어요!"
참으로 뜬금없는 말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뉴스에서 주인 옆에 앉아 대제국 일본 만세! 하는 연설을 귀가 쑤시도록 들어댔던 일본인이,
갑자기 저의 군영에 넣어달라는 소리는 무슨 개소리인가.
성열이 성규를 뻔히 바라보다가 너 이새끼 마음에 드는데? 하고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암, 그래야지. 우현은 속으로 저 병신이 뭐하는 거야? 하고 성열에게 한바탕 악다구니를 지르고 싶었으나
성규가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참았다.
결국 성규 담당은 남우현. 시발, 저새끼 꼭 시킬 사람 없으면 나 시키지.
우현이 또 울컥 올라오는 고까움에 성열을 노려보다가 성규를 한 번 쳐다봤다. 나 따라 와요.
"여기가 잘 곳이에요."
우현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초록색 이불을 걷어찬다.
그 덕에 위에 놓여있던 말라비틀어진 라면가락이 붙은 양은냄비가 덜그렁거렸다.
"우현아."
"뭐요."
"너 나 안보고 싶었어? 난 너 보고 싶었는데"
성규가 해실해실 웃으며 우현의 말랑한 팔을 툭 찌른다.
우현이 순간 얼굴이 벌개져서는 이 어른이 정신이 나갔나..하고 제 성깔대로 거친 말투를 뱉고 싶었으나,
왜인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뒷통수부근으로 열이 올라 자꾸만 성규가 해맑게 웃는 모습이 자꾸만...자꾸만 예쁘게 보였다.
성규가 우현의 겨드랑이 사이로 제 팔을 걸어왔다. 우현이 깜짝 놀라 성규의 팔을 치워내려는데,
성규가 왜에--하면서 우현에게 걸었던 팔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듯 더욱 더 제 손에 힘을 주었다.
우현이 자꾸만 빨개져 오는 제 얼굴에 물병에 물만 꿀꺽꿀꺽 들이킨다.
덥다 더워. 성규가 여전히 해해실실 웃다가 나도 물줘! 하고 우현의 물통을 뺏들었다.
"아, 뭐에요! 나도 마실건데."
"나도 목마르단 말이야."
하고 물병을 제 입에 물어버린다.
그것도 제가 마셨던 쪽으로. 게다가 마시는 폼은 꼭 애기가 젖병빨듯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우현이 빨개진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세숫대야를 틀었다. 물을 틀었다. 쏴아아---하고 맑은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다.
우현이 손으로 물을 튀기며 세수를 격하게 하였다. 그리곤 물이 틀어진 상태로 옆을 보는데,
"으아아아악! 시발!"
낡아서 검은 곰팡이가 슨 벽지 위로 검은 지네가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우현이 소리를 지르며, 한발짝 큰 발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가 땅에 떨어진 비누를 밟았다.
순간 쓱--하고 발부터 미끄러지더니 욕실에 쿵--하고 제 머리를 박았다.
흐으..시발 아퍼. 우현이 제 머리를 문지르며 욕을 하였다.
지네가 우현을 보고 가던길을 멈춘다.
그러더니 제 더듬이를 인사하듯이 좌우로 두어번 움직인다.
저 시발년이, 하고 우현은 당장이라도 지네를 때려잡고 싶었으나 저 발 주렁주렁 달린 실루엣을 보니까 포기하고 싶어진다.
결국 생명은 소중한거니까 하고 합리화를 시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채 마르지도 않은 수건으로 제 얼굴을 닦고 나오려는데
"으아아아아악!"
팔짱을 끼고 화장실 문밖에서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저를 쳐다보는 성규.
순간 우현이 뭐...뭐뭐.뭐.뭐 뭐에요! 하고 말더듬이 상태가 되어 성규를 쳐다보았다.
"너 벌레같은 거 되게 무서워 한다?"
"그...그런게 아니라, 생명은 소, 소, 소 소중한 거니까...!"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제가 말하고도 병신같다.
벌써 사람죽이는 연습을 하고 있고, 또한 죽여본 적도 있는데 사람은 죽이고 벌레는 못죽인다?
한순간에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멘탈 붕괴의 상태가 온 우현이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해져있다.
어버버버 거리다가 결국 짜증을 내며 문 앞에 성규를 밀쳤다. 툭--하고 성규의 어깨가 밀려난다.
우현이 영감처럼 구시렁대면서 치약을 입에 물었다. 성규가 뒤뚱뒤뚱 팔자걸음을 걷는 우현의 뒷등에 대고 씁쓸하게 웃었다.
"명수야."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성열이 서류를 뒤적이다가 가만히 서있는 명수에게 말을 건네었다.
총장실로 끌려온 명수가 영문을 모른 채 뒷짐을 지고 서 있는다.
명수야 라고 말은 걸었는데, 그 입에서 정확한 용건은 30초가 지난 아직까지 튀어나오지 않았다.
계속 허허--하고 웃다가 표정을 굳히다가 다시금 미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는다.
갑갑해진 명수가 성열에게 물었다.
"저기...무슨 일로 부르신 건지."
그제서야 성열이 심각하게 명수를 쳐다본다. 입술을 한번 꾹 물었다가 놓는다, 명수가 알수 없는 긴장에 어깨의 힘이 바짝 들어간다.
"우현이 말이다."
"우현이가 왜요?"
"너희 둘, 꽤나 친해보이던데, 우현이를 너무 믿지 마라."
"네?"
"철이 없는 녀석이야.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우릴 배신 할 가능성도 농후한 녀석이다.
너 같이 성숙한 애들은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는 거 아니야."
순간 명수가 제 귀를 의심하다가 알았니? 하고 물어보는 성열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다.
됐으니 그만 나가봐라. 하고 저에게 손짓을 하는 성열.
우현...명수가 주먹을 꼭 쥐었다. 뜬금없이 우현이를 믿지 말라니.
적어도 제가 아는 우현은 장난끼가 심할 뿐, 나라를 사랑하는 아이인데.
다시 전보를 치며 제 할일을 하는 성열에게 명수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앞일을 함부로 예상하지 마라. 내가 너보다 인생 오래 살았고, 그 덕에 사람 볼 줄은 안다고."
"저보다 오래 사셨지만, 제가 더 우현이를 오랫동안 봐왔습니다. 어차피 곧 전쟁은 끝날거고, 그 전이라도 전 절대 우현이가 나라를 등지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곤 뒤를 돌아 나간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정적이 싸하게 감돌았다.
성열이 명수의 뒷등에 픽--하고 비웃음을 날리더니 다시금 바람에 흩날리는 서류뭉치들을 잡아 정리한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믿다간 언젠가 제가 다치지..."
"호원아,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되냐..."
동우가 숨을 헉헉거린다. 침 하나 고여 있지 않은 혀를 내밀며 힘겨워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은 이미 일사병이라도 걸릴까 걱정 될 정도로 벌개져있었다.
바위를 짓밟는 동우의 운동화 끈은 이미 다 풀려져 있었다.
힘겨움에 무릎을 굽혀 운동화끈을 묶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동우의 등에 업힌 어린 동생은 저의 손가락을 쪽쪽 빨며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리곤 동우의 헥헥 거리는 숨소리를 들기라도 한 걸까, 슬몃 그 긴 속눈썹을 들어보았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 하늘의 뭉게구름이 담긴다.
아이가 힘겨워하는 동우를 쳐다보고 엉--하고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자꾸만 몸을 비틀었다. 동우가 자꾸만 몸을 틀어대는 아기 때문에 착하지 동희야...하고 포대기를 몇번 흔들어 달래준다.
그리곤 위를 쳐다보는데, 산길이 엄청나게 경사져 있었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경사였다.
"아...어쩌지.."
호원이 난감하게 동우를 바라보았다.
지금 저의 체력으로는 버텨 낼수 있을 것 같다만, 이 산이 워낙 험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동우의 여력으로 견뎌낼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호원이 동우를 쳐다보고 아기 이리 줘. 하고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들어내었다.
그리곤 제가 동우를 업고 포대기 끈을 허리에 한번 두르더니 매듭이 풀리지 않게 꽉 묶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다른 길로 가자....동우를 올려보내도 나는..."
"이 길 밖에 없어. 동우 올려보내면 내가 손 잡아 줄게."
손 잡아 주겠다는 말에 뭔가 안심이 된 동우가 불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호원이 경사진 비탈길을 먼저 올라가고 숨을 몰아쉬면서 동우를 평평한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아래를 내려다보며 동우에게 걱정스레 소리친다.
"동우야! 나만 믿구, 여기 올라올 때까지 절대 뒤 돌아보지말고.
응, 응, 절대 걱정하지마. 안 떨어져."
눈물까지 어룽어룽 쌓인 동우를 얼르고 달랜 호원이 손을 내밀었다.
동우가 호원의 손을 올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비탈길에 걸린 바위 하나에 발을 올려 놓았다. '탁!'
꼭 암벽등반을 하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 동우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가자,
동우의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목구멍까지 솟아오른다.
동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발 한 발 바위에 걸칠 때마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어으..."
동우의 손에 꺼끌한 모래와 자잘한 돌들이 묻었다.
동우가 따가움에 잠깐 신음을 내뱉다가 다시금 손을 뻗어서 돌 하나를 더 손으로 잡는다.
터억--하는 소리와 함께 제 몸뚱아리를 몇 센치 더 끌어 위로 올라가는 동우를 볼 수 있었다.
허으, 허으, 그렇게 숨결이 바쁘게 오고가는 시간이 10분쯤은 지나간 것 같다.
2분만에 올라간 호원과 달리 겁 많은 동우는 이제야 호원의 손이 보였다.
동우가 숨을 쉬었다. 힘들다. 너무 힘들다.
벌써 10M는 올라 온 거 같았다.
동우가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원의 잘생긴 얼굴도 이제 잘 보이는 거리였다.
순간, 저 자신이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한 번 확인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동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아니야, 아니야. 동우가 고개를 몇번 흔들다가 손을 잡으려는데 자꾸만 뒤가 돌고 싶었다.
결국 잠깐만 뒤돌아 보자는 생각으로 뒤를 도는데,
"아...아아..."
까마득하다.
제가 올라온 높이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높이였다.
꼭 아파트 5층 난간에서 아래의 아스팔트 바닥을 보는 기분이었다.
제가 두고온 물병이 새끼손가락만큼 작게 보인다.
너무 높다. 어지러웠다.
돌을 쥔 동우의 손이 부르르 떨리면서 순간 동우의 손가락에 있는 피가 역류하면서 경련이 일어난다.
다리까지 파들파들 떨린다.
호원은 동우를 걱정스레 쳐다보다가 빨리 손 잡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윙윙거린다. 들리지 않았다.
이미 멍해진 동우의 눈동자는 호원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동우가 손을 내미는데 파삭--하고 나뭇잎 밟히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미끄러져 버린다.
"으아아아----"
"동우야----"
호원이 소리를 지른다.
동우의 얼굴이 멀어져 가더니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호원이 앙알대는 동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나뭇잎과 검불등을 쓸어모아 동희가 눈에 안띄게 가린다.
그리곤 12M나 되는 높이를 거의 날아오르듯이 뛰었다.
탁---
착지한 호원이 뛰다가 발을 접질렀던지 아--하는 소리를 내었다.
확실히 뛰기에 무리가 있어 보이는 높이였으니까. 호원은 접질린 발을 문지르면서 동우를 찾았다. 동우야아---
"호원아...원아..."
동우가 어깨와 무릎, 얼굴 부근에 피를 흘리면서 울고 있었다.
호원이 저의 아픔을 참고 동우에게 쏜살같이 내려간다.
사락--하고 저의 발이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금방 동우가 울고 있는 곳까지 도착하였다.
무릎부분은 찣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얼굴은 가시에 걸려 긁혔던지 빨간색 스크래치가 되어 있었고,
이마에선 줄줄줄 흘러 턱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호원이 안타까운 듯 제 옷을 북--하고 찣었다.
"흐으...호원..호원아."
"장동우 뚝---그쳐, 빨리. 안 그치면 내가 호랑이 되서 잡아감"
호원이 저의 옷자락을 동우의 상처난 무릎에 길게 매어주었다.
지혈이 되도록 매듭을 짓더니 울지말라고 동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곤 얼굴에 길게 늘어진 핏자욱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다치냐, 이 칠칠맞은 놈아, 속상해 죽겠어 진짜..."
호원이 동우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간다.
순간 헙--하고 동우가 제 얼굴을 막으며 저의 가까이로 오는 호원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호원이 거센 악력으로 동우의 손을 쥐어 저를 밀어내지 못하게 만든 뒤 저의 혀를 내어 동우의 피를 핥았다.
"으읏..."
동우가 저의 얼굴께에 닿아오는 간지러운 감촉에 어깨를 뒤로 밀어낸다.
그러자, 호원의 동우의 뒷통수를 붙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더욱더 가까이 붙이었다.
"가만히 있어 장동우, 낫게 해 줄 테니까..."
호원이 동우의 볼부근과 턱 부근을 혀를 내어 할짝할짝 핥았다.
동우는 자꾸만 발가락이 간질거리고, 심장이 간질거리고, 호원이 핥고 있는 얼굴도 간질거리고.
아무튼 다 간지러웠다.
더디게 저의 피를 닦아내는 호원의 뜨거운 혀에 동우는 아픔이고 뭐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윽고 저의 이마까지 피를 다 핥아낸 호원이 이마 부근에 쪽--하는 입맞춤과 함께 입을 떼어낸다
. 동우가 놀래서 곡선으로 변한 눈꼬리, 어벙벙한 입술로 호원을 쳐다보자, 호원은 정말 능구렁이같이 웃으며 그만 가자, 하고 손을 내밀었다.
"나...나쁜놈! 남의 처...처처처처?"
"첫키스 아니야, 바보야, 이마에다 했잖아? 그것도 읍--이 아니라 쪽--이라구."
이러곤 검지손가락을 제 입술에 갖다대는 데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저 개새끼...동우가 호원을 향해 낮게 욕을 읊조리며 아직까지도 따뜻한 열기가 남아있는 저의 이마부근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이거...아무래도 내 심장에서 나오는 열 같다. 동우가 제 얼굴로 자꾸만 손 부채질을 하였다.
"업혀 장동우."
"시러어..."
"너 3초안에 안 업히면 입술에다 해버린다. 3, 2, 1."
"어...업힐거야!"
결국 동우를 업은 호원이 가파른 경사를 건넌다.
이 나이 먹고 남자한테 업혀서 산이나 올라가는 꼴이라니 장동우 정말 한심하다.
동우가 따닥따닥 게집처럼 붙은 저의 하얀거즈를 톡톡--두드렸다.
호원은 동우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자꾸만 싱글벙글이다. 얄미워, 얄미워.
명수가 담배를 건네 들었다. 생애 처음 피는 담배였다.
담배를 든 명수의 손이 덜덜덜 떨린다. 팟--하고 담뱃불을 붙여오자, 불꽃이 일렁거렸다.
명수가 하얀 구름과자를 저의 혓바닥에 대고 깊게 들이마쉰다.
그러자, 제 폐부에 가득 들어차오는 숨막힐 듯한 메스꺼운 공기에 콜록콜록--하고 연기를 뱉어냈다.
맵다. 꼭 고춧가루 섞은 폭탄을 흡입한 것처럼 매웠다.
이렇게 매운 걸 어른들은 도대체 무슨 맛으로 맛있다고 지껄이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명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약처럼 들이키게 되었다.
몇번을 콜록콜록하고 잔기침을 하다가, 들이 마쉬기도 수십번.
수풀을 가르고 우현이 저벅저벅--구두소리를 내며 저에게 다가왔다.
"여어--"
"뭐야."
명수가 여전히 하얀 막대기를 입에서 떼지 않은 채 낮게 중얼거린다.
우현이 명수의 입에서 하얀 과자를 뺏들더니 땅에 떨어뜨려 제 발로 뭉개버린다.
명수가 우현을 아프지 않게 치면서 그걸 왜버려! 하고 툴툴댄다.
"맨날---담배피는 아빠 욕하더니 이젠 피장파장이야---"
우현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할말이 없어진 명수가 철지난 유행가처럼 자꾸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하고 내뱉는 명수의 한숨소리가 무디고 옅게 공중으로 퍼져나간다. 우현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한숨소리였다.
"야, 그만 가야지? 어제 그 사람한테 통화해서 약속 잡았다며."
우현이 제 손에 매여진 낡은 시계를 보고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명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그럼...
"저...우현아."
"왜?"
"나 기억안나?"
"지랄 말고 일어나."
우현이 그 한마디를 남긴 채 군복을 갈아 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가버린다.
탈의실 문이 닫히자, 명수가 푸슬푸슬 바스러진 헛웃음을 내었다.
바보. 명수가 속으로 우현에게 되뇌었다. 바보, 바보.
나 기억도 못하냐...
"그런데 나 그냥 정상적인 게 훨씬 더 나은거 같은데."
"니은니은. 넌 여장할 때가 훠얼씬 이뻐."
뭐? 하고 노려보는 명수의 갈퀴눈에 우현이 다시 아무것도 아니야--하고 옆을 쳐다보며 얄밉게 휘파람을 불었다.
명수가 가발을 골라달라고 하는 탕에 우현이 물만난 듯 어떤 가발이 명수에게 어울릴까,
고민하며 온갖 잡동사니를 명수의 머리에 걸쳐본다.
모자 대용이라며 비닐봉지를 걸고, 넥타이 대신 옷걸이를 목에 거는 우현.
결국 명수에게 등짝을 세게 맞고 나서야 장난을 그만두고 제가 좋아하는 긴 생머리 가발을 씌워주었다.
"나이쑤우우우우우우---- 우리 엘순씨 이쁘다."
"죽여 버린다고 했다 내가...."
저를 정말 죽일듯이 노려보는 명수의 눈길에 결국 우현이 깨갱---하고 엄지손가락을 뻘쭘하게 뒤로 숨기었다.
결국 무안하게 박수만 짝짝짝--세번을 치는데 결국 명수가 우현의 중요부위를 세게 친다.
"개새끼, 내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어, 안했어?"
"악!...가...가만히 있을게요, 엘순씨."
"엘순씨라고도 부르지마."
"이응, 알았어 명수야."
결국 두 손 두발 다들고 명수 놀리는 것을 포기한 우현이 저도 옷을 갈아입으려 군복을 벗는데,
"야, 너 뭐하는 거임?"
"...어? 옷 갈아입잖아."
"넌 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뭐가 라고 물어오는 우현. 명수의 눈빛이 싸--하고 달라지더니 우현을 방문 바깥쪽으로 들이밀었다.
"나 없는 데서 옷을 갈아입어야지 븅신아아아아아-----!"
탕---하고 문이 거칠게 닫히고, 순식간에 탈의실문이 닫힌다. 우현이 어이가 없어져,
시발 같은 남자끼리 어때서.
하고 계속 시발시발 하고 욕지기를 내뱉다가 저의 뒷통수를 때리는 큭큭--거리는 소리에 소음이 나는 근원지를 겨누어보았다. 뭐야?
성규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저 병신...딱 봐도 저 좋아하는게 티가 나는구만. 성규가 창문 바깥을 쳐다보면서 우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여기 왜 있어요? 나 옷 갈아 입을거에요, 나가."
"싫은데?"
싫은데. 라고 시크하게 대답을 한 성규가 저의 셔츠에 달라붙은 파리를 쫓느라 정신이 없다.
어이가 없어진 우현이 에라이 됐다. 하면서 옷을 벗고는 양복 바지통에 저의 다리를 집어넣었다.
"몸좋네."
"....으어?"
"탄탄한데? 으와---"
으와---하고 감탄을 하는 성규. 순간 김종국인 줄 알았다.
뭐 저런 영감탱이 같은 놈이 다 있어. 우현이 부끄러움에 약간 벌개진 얼굴로 바지를 갈아입고, 윗옷도 속전속결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서 성규를 쳐다보는데
자고 있었다. 쌔근쌔근---이때쯤이면 한참 춘곤증 올 시기에 무뎌진 속눈썹을 견디지 못하고, 훈련도 조금 고되다 보니까 잠들었을 게 분명하지.
우현이 성규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약간의 미동만을 보이는 성규의 긴 속눈썹.
우현이 더욱 더 성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매끈한 살결을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눈을 굴려댄다.
정말 하얗다. 꼭 백옥같은 게 웬만한 청자 맞먹게 높은 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군복은 절대 입기 싫다고 바락바락 우겨대는 바람에 결국 특별 사무실 임무를 맡게된 성규만이 입게 된 사복.
셔츠위로 보이는 얇은 손목. 우현이 제 목뒤에 걸려오는 거치적거리는 끈적한 침을 한번 삼켰다.
우현이 성규의 말랑한 볼을 툭---건드렸다. 성규가 볼을 양쪽으로 움씰거리면서 건드리지도 않은 눈썹까지 팔자를 그리다가 내려온다.
예쁘다 정말...
뭐? 잠깐만, 예뻐? 어디가. 이 눈만 쥐방울만한게 어디가 이뻐?
진심 바늘도 안들어 갈거 같은 이 눈이, 어..어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규를 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바람에 의해 성규의 머리카락이 좌우로 팔락팔락 흔들거렸다.
창문에 걸쳐진 낡은 꽃무늬 커텐도 살랑살랑 제 몸을 흔들어댄다.
쏴아아---하고 나뭇가지들이 저의 봄꽃을 흔들었다.
옅은 봄꽃, 그리고 풀냄새가 우현의 코끝을 스쳐지나가고, 성규 특유의 체취가 섞이자.
우현의 머리 안에서 누가 핸들바를 돌려대기라도 한듯이 어지러웠다.
이성을 잃은듯, 성규의 입술이 너무 저의 성욕을 돋구었다.
왜이러지...원색적인 빨간색이 보여주는 특유의 색스러움이 자꾸 저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이성을 가맣게 만들었다.
입술에 번들거리는 침을 보고 순간 툭--하고 나가버린 검은 시야.
우현이 저도 모르게 성규의 입술에 저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곤 성규의 입술 안으로 저의 말랑한 혀를 비벼댄다.
성규가 낯선 감촉에 우웅---하고 저의 몸을 살짝 비틀자,
성규의 어깨를 손으로 꾹 쥐었다. 잡은 손 위의 파란색 정맥이 불거져 툭 튀어나와 있다.
우현이 성규의 입술을 깨물다가, 혀로 어금니 부분을 건드리더니, 앞니 두개를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렸다.
두 타액의 끈적함이 섞이고 성규의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더운 열기를 모두 집어삼키듯이 우현이 혀를 능수능란하게 놀린다.
한번 성규의 목젖을 건드렸다가 성규가 거칠게 내쉬는 허억--거리는 숨을 제 목구멍뒤로 침과 함께 꿀꺽 삼켜냈다.
성규의 머리카락을 몇번 쓸어내리다가 우현이 고개를 들었다.
자꾸만 뒤로 고개를 젖히려는 성규를 아예 땅바닥에 눕힌 채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성규는 자꾸만 제 입술을 침범해오는 우현의 입술에 정신을 못차린 채 자꾸만 허억,
허억 하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만 내었다.
더욱 더 나사가 빠져버린 우현이 아예 땅바닥에 저의 손바닥을 마주한 채 읍읍--거리는 성규의 입술을 물고 빨았다.
입술을 살짝 물어뜯자, 성규의 입속에서 아--하는 옅은 소리가 잇새사이로 새어져 나왔다.
우현이 계속 달뜬 숨소리만 내뱉으며 성규의 혀를 휘감아올리다가 입천장을 건드렸을 때,
"야, 미친놈아, 이거 안떼냐아아아아아---!."
우현의 얼굴이 날아갔다.
자꾸 얼마 안남은거 같은데
왜이렇게 길어지짘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끝내고 싶은데, 제가 워낙 배경묘사하는 걸 좋아해서 스토리가 길어지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흡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