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부산스러운 느낌에 잠이 깬 경수가 잔뜩 부은 눈을 부비며 큰 방 쪽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마당을 쓸고 있는 여동생 아람이, 걸레질을 하고 있는 아빠, 그리고 경수에게 빗자루를 내밀고 선 엄마.
경수는 찬열이 오는 날임을 직감하고 목 부분이 늘어난 티셔츠를 훌러덩 벗었다.
찬열은 경수의 사촌이였다. 여름이 되면 바닷가에 사는 경수의 집으로 휴가를 오는데 이번 f/w 시즌 준비 탓에 못 올 것 같다더니 결국엔 오는 모양이다.
찬열은 모델계에서 떠오르는 핫 스타였다.
원수인지 동생인지 모를 아람의 말을 빌리자면 얼굴 착하고, 몸매 착한 훈남 모델로 난리났던가.
경수는 잘난 사촌 덕에 미간을 찡그렸다. 잘나가는 모델인 사촌과 대학생으로 등록금이나 축 내고 있는 나, 너무 다르잖아.
찬열이 올 때마다 대청소를 하게 되는 까닭에 몸이 피곤한 게 첫번째 이유요, 엄마의 반찬 푸대접이 시작됨이 두번째 이유요, 매번 올 때마다 데리고 오는 친구들의 질이 영 별로였다는 것이 세번째 이유였다.
말끔한 티셔츠로 갈아 입은 경수가 마당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오빠야, 이번에는 어떤 찬열이 오빠가 어떤 친구랑 같이 올 지 기대된다 아이가?"
"박찬열 또 양아치 같이 생긴 아 데꼬 오겠지."
"말을 고따구로 얄밉게 하노. 이때까지 데꼬 온 친구들 다 괜찮았다 아이가. 예의도 바르고, 왜 꼽아서 그카나?"
"이게 오빠한테 말하는 꼬라지 봐라. 그게 뭐꼬?"
경수가 투덜대며 입을 삐죽대도 아람은 오빠의 의사는 굳이 상관없다는 표정이였다.
찬열의 싸인을 받아 친구들에게 팔 작정이라는 아람의 책상에는 찬열의 사진이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예쁜 여자 모델의 옆에 포즈를 잡고 누워있는 찬열의 사진을 집어 든 경수가 쩝쩝 입을 다셨다.
요건 쪼금 부럽다.
사진을 휙 내 던진 경수가 빗자루를 고쳐 잡고 거실을 쓸었다.
아침 일찍 부터 닦으신 건지 어느새 걸레질을 끝낸 아빠가 웃으며 수박을 꺼내 드셨다.
"청소도 다 해가고 더운데 수박 한 덩이 먹어뿌자."
"아버지, 전 큰 거 하나요."
"이게 제일 늦게 일어나가꼬 한 게 뭐 있다고 큰 거 먹는다 카노."
엄마에게 구박을 들은 경수가 굴하지 않고 수박을 크게 베어물자 아람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경수를 본다.
머쓱해진 경수가 입에 남은 수박씨를 마당 쪽으로 뱉으려 고개를 돌리는데 키가 훌쩍 큰 찬열이 손을 흔든다.
그렇게나 반가우신 건지 버선발로 찬열을 맞는 부모님의 모습에 경수는 왠지 달달하던 수박에 씁쓸한 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찬열의 옆에서 같이 깍듯이 인사를 하는 멀대같은 친구를 유심히 보던 경수가 소리를 지를 뻔한 입을 틀어 막았다.
맨날 내 팔 물어제끼던 사납던 옆집 똥개랑 똑 닮았노. 그 개 이름이 뭐 였드라, 까이? 카이?
"오랜만이네, 박찬열. 요즘 잘 나간다매? 옆에 친구가? 안녕, 난 도경수다."
"김종인."
"어? 아, 김종인? 찬열아 네 친구가 낯을 좀 가리는 갑네."
"이번에도 안 온다는 거 여기 풍경 끝내주는 데라고 내가 강제로 데리고 온 거야. 말 좀 없어도 이해해, 친해지고 나면 속 깊고 괜찮은 애야."
찬열이 말로는 평범한 대학생이라는데 말 안하면 찬열과 같이 모델 활동이라도 한다고 해도 믿을만큼 훤칠하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갑자기 내 친구인 백현이가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찬열이 아람에게 끌려가고 어색하게 남은 종인과 경수 사이 인사가 오가고 종인이 먼저 건넨 손을 잡은 경수가 이상한 낌새에 몸을 움찔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먼저 악수를 건네면서 손을 있는 힘껏 잡는 사람이라.
안 그래도 좁은 어깨라 움츠러 보이는 경수인데 종인의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이상하게 꿇리는 느낌이다.
경수는 종인을 멀리 하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멀리. 역시 얼굴만 똥개랑 닮은 게 아니였어.
"종인아, 많이 먹어라. 니 온다는 소리 듣고 바로 갈치 사다가 구웠다 아이가."
"잘 먹겠습니다, 이모. 종인이도 갈치 같은 거 되게 좋아하드라구요. 생긴 건 깍쟁이처럼 이것저것 가릴 것 같은데 의외로 다 잘 먹어요."
"그래? 종인아 니도 많이 먹어라. 니들은 이래 잘 먹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노. 경수 자는 편식도 많이 해가꼬 저래 비실비실 칸다. 그래서 지 좋아하는 걸로 밥상 해가꼬 먹이면 뭐 하노. 엄마 하는거를 도와주기를 하나, 시키면 그제서야 어영부영 하고 카지. 저래 햄만 찝어 먹고."
엄마의 공격에 경수는 먹던 밥이 코로 넘어가는 지 입으로 넘어가는 지 모를 지경이였다.
편식을 많이 하는 것도 맞고, 집안일을 나서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모두 맞는 소리였지만 그 얘기를 꼭 남 앞에서 할 필요는 없는데.
시무룩해진 경수의 표정이 웃긴 모양인지 종인이 자기 앞에 있던 햄 한 조각을 경수의 밥그릇 위에 올려 준다.
경수를 놀리는 건지 아님 챙겨주는 의미였는지 헷갈리던 찰 나, 피식 하고 웃는 종인의 웃음에 빈정이 팍 상해 버린 경수가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밥 먹다 말고 어딜 가냐는 엄마의 소리가 들렸지만 나름 폼 잡으려 박차고 일어난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신발끈을 더 꽉 맸다.
으, 이게 무슨 꼴이고. 열등감이가 이게, 도경수 꼴 참 웃긴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씩씩 대며 바닷가까지 뛰어 나온 경수가 푹푹 발자국을 찍어내는 백사장 뒤로 누군가의 발자국.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니 주머니로 손을 꼽은 종인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경수를 보고 있었다.
뭔데, 니. 도끼 눈을 한 경수가 종인을 보자 종인이 어깨를 작게 들썩였다.
"말 좀 해라, 폼 잡지 말고. 카고 니 내 놀리나? 햄 얘기 하자마자 햄 주노."
"햄 좋아한다길래, 준 건데. 그게 그런 표정으로 뛰어나갈 일인가."
"뭐라카노 또 지금 내 열 받게 하네. 아 됬다. 김종인은 지는 괜찮은데 친구를 꼭 니 같은 것들만 사귀드라."
"나 같은 거? 누가 들으면 나 쓰레기인 줄 알겠다. 말 좀 가려서 하자."
꼭 애 가리치듯 경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 종인의 행동에 더 열이 뻗친 경수가 종인의 손을 거칠게 쳐낸다.
아 진짜 짜증나.
종인에게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걸어간 경수가 신발을 벗고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에 첨벙 댄다.
화를 가라앉히기 위한 경수만의 방법인데 그 모습마저 웃긴건지 종인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절대 안 웃을 것 같이 생겨가꼬 웃음소리는 호탕하노. 더 짜증난다.
"니가 화내는 게 제일 웃기다고 찬열이가 그러던데. 맞네, 진짜 웃기다 너."
"진심? 박찬열이 그런 말을 했다고?"
"구라."
"야!!!!!!!!!!"
발끈한 경수가 해변에 있는 몽돌을 주워들자 종인이 던져보라는 식으로 얼굴을 쭉 내민다.
종인의 여유있는 표정과 주머니에 꼽은 손이 괘씸해진 경수가 진짜로 돌을 종인의 머리에 던지자 종인의 표정이 굳더니 경수의 팔을 거칠게 낚아챈다.
미간이 구겨진 종인의 얼굴에 살짝 쫀 경수가 급하게 사과의 말을 건네자 종인이 잡았던 경수의 팔을 놓아 준다.
헐, 힘 겁나 쎄노. 친하게 지내자 우리 종인아^ㅇ^는 지랄..... 니 잘 때 죽을 줄 알아라.
잔뜩 독이 오른 경수가 나름 쓸 만하다고 자부하는 팔을 쭉 뻗어 종인을 향해 중지 손가락을 높게 치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니가 먼저 장난쳤다 아이가. 머스마가 그딴 걸로 화나가꼬 그카나. 속은 또 밴댕이 소갈딱지…… 아악!!!!!!!"
경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수를 들쳐 멘 종인이 성큼성큼 바다 쪽으로 걸어갔고 거센 파도에 놀란 경수가 연신 사과를 하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을 모양인 지 종인의 발걸음이 멈출 줄을 몰랐다.
이 자식 있는 폼은 다 잡더니 결국 힘을 써서 사람을 억눌러?????
결국 바다 속으로 던져진 경수가 파도에 이리저리로 휩쓸리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경으로 힘찬 발길질로 수영으로 해변까지 겨우 당도하자 종인이 경수의 이마를 툭 밀어냈다.
겨우 일어 선 경수가 종인의 팔을 잡고 물귀신 작전을 펼치자 종인이 다시 경수를 들쳐 메고 좀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간다.
경수보다 큰 종인의 가슴 팍까지 오는 수심을 본 경수가 발버둥을 치며 종인의 목을 잡고 늘어지자 종인이 경수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인의 목을 잡고 놔주지 않는 경수 덕에 종인과 경수는 바다 속에서 서로 끌어안는 요상스런 포즈가 되고 말았고 먼저 이를 눈치 챈 종인이 경수를 바닷 속에 떼어놓고 먼저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나가면 뒤졌어 이 새끼야!!!!!"
바닷가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수영이라고는 해변 근처에서 파도가 잔잔할 때 몇 번 해본 게 다인 경수가 바닷물을 겨우 발로 차내며 거친 파도에 맞섰고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종인이 그림같은 포즈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경수에게 헤엄쳐 가는 동안 물 속에서 눈을 꼭 감고 종인이 오는 쪽으로 손을 뻗으며 수영다운 수영을 하지 못하는 경수의 모습이 귀엽다고 느낀 종인이였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개헤엄 뿐이라고!!!!!!!!! 니 때매 내 죽을 뻔 한거 아나?"
"수영 못 한다고 말을 하던가. 아동바동 거리는 꼴 잘 봤다."
"아이고, 내가 캤으면 니가 알겠습니다 카고 참 이런 장난 안 쳤겠다. 일부로 더 빠뜨리면 빠뜨렸지. 니 지금 니 수영 잘한다고 이카나?"
"빙고. 한 대 필래?"
물에 빠진 생쥐 꼴인 경수의 모습에 웃던 종인이 자신의 꼴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는 젖은 담배를 그대로 주머니 속에 넣는다.
경수의 몸에 딱 달라붙은 하얀 티셔츠를 왠지 쳐다볼 수 없는 종인이였다.
"담배 안 핀다. 몸에 안 좋은 거 뭐할라꼬 피노. 니도 끊어라."
젖은 담배라 불이 잘 안 붙여진다고 몇 번 욕을 하던 종인이 결국 담배곽을 치우고 경수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어느 새 어두워진 하늘이 별 천지다.
바닷물을 너무 많이 마셨다며 볼록해진 배를 두드리는 경수가 자꾸 귀여워 보이는 종인이였다.
"어릴 때 동네에 내 팔을 맨날 물어제끼는 똥개가 있었는데 니랑 진짜 똑같이 생겨가꼬 내 진짜 니 보자마자 기겁했다. 이름이 카이였는데."
"처음인데. 살면서 개 닮았다는 말."
"진짜 닮았다. 어쨌든 하는 짓도 똑같네. 내 못 괴롭혀서 안달난 것들."
똥개 얘기를 하며 볼에 바람을 한껏 집어넣은 경수를 보며 벌떡 일어 난 종인이 다시 주저 앉더니 경수의 위로 픽 쓰러졌다.
갑자기 짓누르는 종인의 무게에 숨쉬기가 힘들어진 경수가 종인의 어깨를 세게 내려치자 종인이 고개를 든다.
붉어진 종인의 얼굴에 의아해진 경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 위로 종인의 커다란 손이 덮혔다.
"난 그 개가 왜 널 물려고 했는지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종인은 찬열보다 먼저 태환의 집을 떠났다.
종인이 찬열에게 대충 이유를 둘러 댄 까닭인지 찬열은 경수의 집에서 평소같이 2박 3일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갔다.
"레포트가 왜 이렇게 많은 지 욕 나와. 진짜."
"야, 대학생활 하는 것을 복으로 생각해라. 디자이너 선생님이 나 살쪘다고 해서 관리 들어갔는데 진짜 죽을 것 같아."
"그 만큼 돈이 들어오잖냐."
"얼마 뒤에 방학인데 너도 좀 만 참아라. 아, 방학얘기 나와서 말인데 이번 겨울에 아람이 올라오거든. 서울 구경한다고. 너도 아람이랑 밥 한 끼 같이하자. 이번 여름에 봤지?"
"걔 오빠는 잘지낸대?"
"경수? 네가 다른 사람 안부를 다 묻고 별일이다. 이번에 경수도 같이 올라올 것 같든데 만날래? 바쁘냐?"
"너 만큼 바쁘겠냐. 보지 뭐."
간만이였던 찬열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종인 앞에 하얀 눈이 쏟아졌다.
"도경수, 이번엔 정말 물어버려야지."
이 요상한 결말은 뭔가요.
예전에 적어놨던 단편을 카디버젼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단편이예요 스토리가 탄탄하지 못한!
제목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빨고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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