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다가온 팀장님의 호의에 나는 빙하속에 떠내려온 둘리를 본 듯이 놀랬지만 코딱지였던 내 존재를 떠올리고는 티 내지 않으며 팀장님을 보며 환히 웃곤 말했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사실 팀장님이랑 이야기할 일이라곤 항상 업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고 그에 관해서도 나는 항상 쿠크다스처럼 와장창 깨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표정을 짓고 말하는 건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를 쳐다보는 팀장님의 표정은 내 머리만 달려와서 후려쳐줬던 토르에게 부탁해서 쳐달라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넋이 나가 있었다. 의아해하며 계속 보고 있었더니 팀장님은 그제야 정신이 든 건지 헛기침을 하곤 대답도 없이 급하게 팀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에 나는 내 인사가 그렇게 기분 나빴나 싶어서 다시 제대로 자리에 앉았는데 건너편에 앉아있는 뱁새끼는 또 내 얼굴이 그렇게 재밌게 생겼는지 이쪽을 보면서 웃고만 있었다. 뱁새끼에게 피부색만큼 진한 에스프레소를 부어주고 싶었다. 내 꼭 뱁새끼에게 쓴맛을 제대로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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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라떼 한 잔의 위력을 참으로도 대단했다. 평소에 마시던 라떼들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달달함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정 팀장님에게 이 카페가 어딘지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파일철들 사이에 보이는 보고서에 아차 했다. 김별빛 씨, 보고서 제출 점심시간까지 부탁합니다. 급한 겁니다. 분명히 아침 회의 시간에 당부하듯이 말하던 팀장님의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였다. 요즘 들어서 갈굼 당하는 일이 줄어서 좋아하던 차였는데 스스로 갈굼 당할 일을 만들어 버리다니 기분이 정말 뱁새끼같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들이 야속해 보다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을 듯해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팀장실 앞에 가 노크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고 여유롭게 서류만 보던 팀장님이 이내 들어온 사람이 나인걸 발견하자 갑작스럽게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에 나 역시도 놀라 눈치를 보며 다음에 올까요?라고 조심스레 물었고 팀장님은 그제야 다시 시크 도도한 요조숙녀로 돌아왔지만 귀가 빨개진 걸 보니 몹시 창피한 모양이었다. 귀엽다. 갑작스레 든 생각에 나도 모르게 볼따구를 내 손으롤 직접 후려칠 뻔했다. 뱁새끼가 아무리 싫어도 미쳐선 안되는 거란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팀장님에게 다가가 보고서를 내밀었다.
"저..보고서 제출,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하는 바람에.."
그에 팀장님은 멍하니 나를 바라만 보다가 본인도 잊고 있었다는 듯 아-하곤 넋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나에게 급한 게 아니니 괜찮다며 이만 나가보라 했다. 나는 갈굼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 팀장실 문을 닫고 나와 자리에 앉으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깐만 아까는 급한 거라더니..? 지금 이 순간엔 정 팀장님도 뱁새끼와 다를 게 없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갈구고 싶어서 급한 것도 아닌데 급한 척을 했을까 싶었다. 젠장. 참을 인을 속에다 새기고 있는데 뱁새끼가 눈에 들어오자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 내 메신저를 켜 뱁새끼를 찾아 누르곤 대화창을 열었다. 차학연 씨, 잠깐 제 자리로 좀 오세요. 그렇게 보내고선 뱁새끼를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메신저를 확인한 건지 일어나 나에게 왔다.
"무슨 용무 있으세요?"
"네, 이제 가보세요."
재밌었다. 사실 그냥 불러 본 거다. 기분이 조금 풀린 것만 같았다. 특히 나를 계속 비웃던 뱁새끼의 한 방 맞은 표정을 보다니 십 년 치 묵은 체중이 내려갈 리는 없겠지만 그냥 말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통쾌했다. 이내 뱁새끼는 나를 노려보더니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실실 웃던 나는 다시 메신저를 켜 정택운이란 이름을 찾았다. 정택운..여깄다! 순간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회사 메신저가 이렇게 좋은 건지 입사 2년 만에 처음 알았다. 팀장님, 주말에 뭐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막힘없이 대화창에 적어 보냈다. 답장이 뭐라 올지 궁금했다. 아니 사실 정 팀장이 메신저를 사용하긴 하는지도 의문이었지만 대화창을 내려두고 엑셀창을 띄워 교감을 나눌 뿐이었다. 머릿속엔 온통 그 대화창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띠링-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들리는 알림음에 순간적으로 나는 자리를 걷어차고 일어날 뻔했다.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움직여 미친 듯이 껌뻑이며 대화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대화창을 눌러 띄웠다. 별일 없습니다. 무슨 용무 있습니까? 참 짧고 간결한 대답이 팀장님 같았다. 저 짧은 대답할 거면서 뭐하러 십분이 넘는 시간을 지체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지체 없이 답장했다. 아뇨~ 그럼 시간 아껴 쓰시라구요, 팀장님!^^ 막상 보내놓고나니 오금 저리고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손이 덜덜덜 떨려왔다. 이런 방자년에 죽방을 맞을 정신. 아까와는 다르게 빠르게 답이 왔다. 팀장실로 오세요. 마포대교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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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팀장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간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쳐다보는 정 팀장님의 눈빛에 정말 오금이 저려왔다. 샤이니의 말은 절대 구라가 아니었다. 빛나는 그들을 앞으로 더 응원하고 믿어야겠다. 블링블링 이즈 종혀ㄴ..이 아니라 팀장님 앞에 쭈뼛쭈뼛 다가가 섰다. 감히 코딱지가 콧속에서 코를 괴롭히려 했다니.
"부르셨어요..?"
"네, 그럼 김별빛 씨는 주말에 뭐합니까?"
팀장님의 질문은 예상을 깨버렸다. 업무 시간에 초딩도 안 할 짓을 하냐며 갈굼 당할 것을 예상하고 왔건만 전혀 다른 반응에 나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그, 저도 별 일 없는데요."
"그럼 김별빛 씨는 그 시간 아끼지 말고 저한테 투자 좀 하시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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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네요. 분량도 많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금요일쯤에 다시 제대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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