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감 (未視感)
혼란 속의 변수는 달다 (1)
혼란 속의 변수는 달다 (1)
늦겨울이였지만 겨울은 겨울이었다. 꽤 서늘한 날씨에 교복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가도 이어지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겉옷을 입을거면 마이 위에 입어야 한다는 교칙처럼 끔찍한 규칙은 또 없었다. 교장이 마이 위로 입는 패딩을 직접 겪어보고 교칙을 다시 정할수는 없을라나, 실없는 생각이 꽤 길게 이어져서야 버스가 도착했다.
늦겨울이였지만 겨울은 겨울이었다. 꽤 서늘한 날씨에 교복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가도 이어지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겉옷을 입을거면 마이 위에 입어야 한다는 교칙처럼 끔찍한 규칙은 또 없었다. 교장이 마이 위로 입는 패딩을 직접 겪어보고 교칙을 다시 정할수는 없을라나, 실없는 생각이 꽤 길게 이어져서야 버스가 도착했다.
검은 플라스틱 상자에 넣은 콩나물 가지마냥 빽빽한 버스 풍경에 제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은 이유를 찾지 못해 성에 차지 않았다가도 평소와는 다른 늦은 등교길이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표정을 풀었다.
[코치님이 학교 오면 체육관으로 바로 오래]
저장이 안 된 번호였다. 제이는 답장을 하려다 사무적인 말투로 문자가 온 쪽도 딱히 바라지 않을 것 같아 화면을 껐다. 시끄러운 소음에 얼마 전 선물 받았던 이어폰을 나누어 귀에 꼽았다. 노래까진 귀찮아 그저 귀를 막는 정도에 만족했다.
[코치님이 학교 오면 체육관으로 바로 오래]
저장이 안 된 번호였다. 제이는 답장을 하려다 사무적인 말투로 문자가 온 쪽도 딱히 바라지 않을 것 같아 화면을 껐다. 시끄러운 소음에 얼마 전 선물 받았던 이어폰을 나누어 귀에 꼽았다. 노래까진 귀찮아 그저 귀를 막는 정도에 만족했다.
아무것도 잡지 않던 제이는 타고 있던 버스가 갑작스레 정차하자 가까운 의자를 잡았다. 그에 격양된 몸짓으로 웃던 학생이 제이를 의식했다. 앞에서 같이 웃고 있던 친구와 짧게 눈짓을 하더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제이는 그런 행동에 의아하다가도 거절할 이유는 없어 슬슬 저린 다리를 앉혔다. 고맙단 인사를 하려 몸을 돌렸지만 어느새 그 학생은 사라진 후였다. 꽤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생각 할 바는 아니였다. 편해진 몸에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틀었다. 미세하게 들리던 소음마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래도 타지에서 외롭진 않았고?"
"친구 사귀러 간 게 아니잖아요. 그냥 훈련만 하다 왔어요"
"그래? 근데 이 친구는 그렇게 생각 안하나 본데~"
아까 받은 문자대로 교실에 가기 전 체육관을 가는 길이였다. 체육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제이를 발견한 호석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안부를 묻는 소리에 대충 답하다가도 이어지는 뜬금없는 소리에 제이가 고개를 들었다. 휴대폰을 흔들며 장난스레 웃는 호석이 말을 이었다.
너 오면 그땐 꼭 전해달라 하더라고, 니가 가서 너무너무 섭섭하대. 니 생각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고 막 메일로, 신나게 말을 늘어놓다가도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호석이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근데 이건 좀 나도 너무하다 생각한다. 메일주소도 안 알려줬다며? 한국인하면 뭐야 정! 정 하면 뭐야 한국인!
"그 한국인이.."
제이는 한국인 타령을 하는 코치에게 로엘도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코치의 얼굴이 꽤나 즐거워보여 그만 두었다. 메일의 내용은 넘기고 보낸 이를 보던 제이가 헛웃음을 흘렸다. 제 이름 옆에 하트를 붙인 그가 어지간히도 한결같이 느껴졌다. 제이가 간 해외 훈련에서 같이 연수를 받았던 로엘이였다.
훈련마다 알짱거리는 것부터 맘에 안들었는데. 호석에게 온 메일을 읽어보던 제이가 화면을 껐다. 제가 나중에 따로 연락할게요. 연락을 안 받아주면 코치를 달달 볶아서라도 영상 통화를 할 놈이였다. 제이는 제 메일 주소를 복사해서 붙여놓는 호석을 제재하려다가도 귀에 꼽힌 이어폰이 그의 선물이였다는 사실에 손을 내렸다. 그냥 자신이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국이한테 연락받고 온거지?"
"정국이한테 연락받고 온거지?"
익숙한 이름에 텅 비어있던 제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슨 말인가 생각하다 아까 온 문자의 주인이 그였다는 것이 그려졌다. 정국이한테 연락하라고 하긴 했는데, 그 녀석이 워낙 흘려듣는 거 같아서 연락 안 간지 알았거든. 근데 용케도 잘 전해줬나보네? 제이의 귓가에서 맴돌던 호석의 말이 윙윙 울리다가 점차 멀어졌다.
내 번호는 알고 있었구나. 하긴, 유도부 부장이니까.
멍해진 표정을 한 제이의 팔을 호석이 툭 건드렸다. 제이야? 아직 피곤한가보다. 시차 적응이 안됐나?
"..네 피곤해서. 이만 교실로 가볼게요"
"어어 그래 조심히 가고! 오후에 보자"
여지없이 뻐근한 심장부근을 문질렀다. 참 여전했다.
*
"왜 지금 와? 문자는 보지도 않고"
"문자했었어?"
"방금 전에"
*
"왜 지금 와? 문자는 보지도 않고"
"문자했었어?"
"방금 전에"
그랬구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제이가 휴대폰을 보며 답했다. 코치에게 제 메일 주소가 간지 얼마나 됐다고 로엘에게서 사진과 함께 메일이 왔다. 셀카라도 보낸 모양인지 `너만봐 MY DARLING` 따위의 제목만 봐도 알 만했다.
"..얘 누구야?"
"같이 훈련하던 애"
어느새 제이의 휴대폰 화면을 보다 표정을 굳힌 지민이 사진을 눌렀다. 코멘트로 붙은 This is a heart for you 라는 말이 우스웠다.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한껏 휘어진 눈꼬리를 자랑하는 로엘의 사진을 잠시 응시하던 지민이 입을 열었다. 차단해도 돼? 안된다고 말하려던 제이가 꽤 날카롭게 굳은 지민의 눈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코치에게 몇번 올 메일보다 더 성가신 건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지민이였다.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굳어진 목을 풀던 제이가 지민의 손에 있던 제 휴대폰을 가져왔다. 지민을 가만히 응시하던 제이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지민의 미간을 검지로 꾹 밀었다. 그제야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 눈을 맞추고 눈썹을 오르내렸다. 그에 지민이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이젠 어디 멀리 가지 마. 가벼웠지만 꽤나 단단한 말이였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제이였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말에 대응하는 가벼운 끄덕임으로 보였으면 했다.
"수학여행 동의 신청서야"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굳어진 목을 풀던 제이가 지민의 손에 있던 제 휴대폰을 가져왔다. 지민을 가만히 응시하던 제이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지민의 미간을 검지로 꾹 밀었다. 그제야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 눈을 맞추고 눈썹을 오르내렸다. 그에 지민이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이젠 어디 멀리 가지 마. 가벼웠지만 꽤나 단단한 말이였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제이였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말에 대응하는 가벼운 끄덕임으로 보였으면 했다.
"수학여행 동의 신청서야"
그거 오늘까지 내. 교무실에서 돌아온 태형이 신청서 한 장을 꺼내 제이 앞에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구겨진 제이의 표정은 별 생각없다는 듯 바쁜 몸짓으로 교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태형의 불충분한 설명에 지민의 말이 이어졌다. 쟤는 우리 반 반장이고, 수학여행은 3일뒤에 간대. 근데 개학하고 넌 이주동안 안와서 니 신청서는 못 걷었으니까 니 것만 걷으면 다 끝나나봐.
"쟤 이름이 뭔데"
"쟤 이름이 뭔데"
지민의 자세한 설명에도 풀어지지 않던 미간이 날선 말로 이어졌다. 그런 제이를 보던 지민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올라갔다. 김태형인데, 쟤가 원래 좀 싸가지가 없어. 그 말에도 여전히 굳어있던 제이의 표정이 풀어진 건 아까 저와 같이 검지로 미간을 꾹 누른 지민의 손길에 의해서였다. 저를 보며 방긋 웃는 지민에 하릴없이 작은 숨이 터져나왔다.
"오늘도 오전 수업만 하고 가?"
"그럼 새삼스럽지 않게 오늘은 너 기다릴래 같이 집 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왜 말이 안돼. 비죽이는 지민의 입술을 바라보던 제이가 창가로 눈을 돌렸다. 다른 반이 체육을 하러가는 길인지 꽤 시끄러운 소음이 섞였다. 서늘한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몸을 움츠리는 학생들을 구경하다가도 정착되는 시선에 턱을 괴었다.
"새삼스럽게"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왜 말이 안돼. 비죽이는 지민의 입술을 바라보던 제이가 창가로 눈을 돌렸다. 다른 반이 체육을 하러가는 길인지 꽤 시끄러운 소음이 섞였다. 서늘한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몸을 움츠리는 학생들을 구경하다가도 정착되는 시선에 턱을 괴었다.
하얗고 마른 체형의 여자애가 맨 뒤에서 반 무리를 뒤따라갔다. 힘 없는 몸짓이 어지간히도 체육 수업이 싫은가 보다 생각했다. 미동없이 그들을 바라보던 제이의 눈빛이 일렁였다. 무의식적으로 아랫 입술을 꾹 깨물자 비릿한 피 맛이 조금 느껴졌다.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정확히 말하면, 힘없이 무리를 따라오는 김여주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전정국을 응시했다.
"밖에 뭐 있어?"
"그냥"
"김여주네 반 체육 가나봐"
"그러게"
김여주네 반. 34명의 아이들 중 대표되는 이름이 김여주였다. 어딜가든 들리는 이름이였지만 오늘따라 듣기가 거북했다. 제이는 말을 거는 지민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옷매무새를 정돈해주려는 전정국을 뿌리치는 김여주가 보였다. 그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남자애들까지. 결국 거북한 속이 울렁거려 지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민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
같이 급식을 먹은 지민이 동아리 선배에게 불려가자 혼자 교실로 올라오던 제이가 교실로 들어가는 태형을 발견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교실에 도착한 제이는 넓은 교실 속 혼자 자리한 태형을 응시했다. 태형이 담임에게 받아온 유인물을 교탁 위에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그제야 보이는 제이에 태형이 그 앞에 섰다. 문을 막고 서 있는 제이를 보며 특유의 오만을 담은 눈빛으로 제이를 내려다 보았다. 그에 비슷한 눈으로 태형을 바라보던 제이가 입을 열었다.
"신청서 지금 받아가"
"내 책상에 올려놔 이따가"
"지금 받아가"
제 말을 끊고 말을 잇는 제이에 태형이 숨을 작게 터뜨렸다. 둘 사이를 감도는 공기가 미지근했다. 오전과는 다르게 풀린 날씨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낯설었다.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던 제이가 다시 태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 그 오만한 표정은 그대로 담긴 채 어이없는 웃음이 얹혀있었다.
"난 지금 유도부에 가야 해서"
그에 태형의 얼굴에 아직 걸쳐져 있던 가벼운 웃음이 사라졌다. 태형은 별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얼굴로 저를 응시하는 제이를 꽤 부담스러울만큼 빤히 내려다보았다. 태형은 제이의 선이 곱게 올라간 눈꼬리에 지민이 좋아죽는 부분을 알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유려하게 떨어지는 콧날이 태형의 눈에 들어왔다.
"이거 지금 안 받으면 내일이나 받아야 할거야"
말이 없는 태형에 답답해진 제이가 제 손에 들린 신청서를 흔들었다. 그에 팔락이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신청서였지만 태형의 눈은 어째서인지 제이의 입술을 향해있었다.
"여기 피 났었네"
가만히 제이를 바라보던 태형의 손이 제이의 입술을 향했다. 아까 운동장에 있던 정국을 바라볼 때 생긴 상처였다. 내려다보는 위치에 맞춰 제이의 턱을 들어올린 태형이 상처가 생긴 입술을 쓸어내렸다. 제이는 멍하게 있기도 잠시 태형의 손을 내리쳤다. 같이 밥을 먹었던 지민도 몰랐던 상처를 바라보는 태형의 표정이 꽤나 무심했다. 제이는 입술을 깨물어 났던 상처의 시점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정국과 함께 상기되는 기억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함부로 더럽게 손 대지마"
상대가 아닌 상대를 향한 화풀이였다.
그건 제이가 가장 잘 알았다.
"그럴게"
근데 왜 니가 더 잘 아는 것 같을까.
제이는 처음 겪어보는 것만 같은 미시감에 태형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속을 알 수는 없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로엘은 김석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