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호그와트 남자들에게
그리핀도르 / 전정국 05
"가자."
"……."
"치마…… 입었네."
정국의 헤어스타일과 옷에 대해 물으려는 순간, 내 옷차림 또한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정국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 뒤로 서로의 옷차림에 대한 대화는 일절 없었다. 마치 일부러 그 주제만큼은 꺼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았다.
우리는 호그스미스까지 말 없이 걸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오늘따라 어색했다. 평소 대로라면 아무렇지 않아야 정상인데, 오늘은 왠지 숨이 막혀오는 색다른 기류였다. 기나긴 침묵을 먼저 깨뜨린 건 정국이었다.
"사탕 좋아해?"
뜬금 없는 질문에 고개를 드니 정국의 옆으로 *허니듀크스(과자 가게)가 보였다.
"왜, 좋아하면 사주게?"
"뭐…… 그냥."
"난 사탕보단 케이크가 더 좋아. 퍼티풋 부인네 찻집에서 파는 거 말이야."
"그 분홍색 레이스로 도배되어 있는 가게?"
"이래 봬도 발렌타인 데이만 되면 자리가 다 차서 몇 시간이고 줄 서서 기다린대."
"너도 그런 데 좋아해?"
정국은 꽤나 어색하게 물었다. 자기가 질문을 던져놓고는 대답에 그닥 집중하지 않는다는 듯이 괜히 딴청을 피우는 등,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좋지, 예쁜 곳에서 차 마시고 케이크 먹고. 내가 그런 거 좋아한다니까 안 어울려?"
"아, 아니."
혹여나 정국의 질문에 저의가 있을까, 괜히 찔리는 마음에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니 정국은 재빠르게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뒤로 우리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가끔씩 흘끗 쳐다본 정국의 얼굴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진지해보였다.
우리는 스리 브룸스틱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 손님들로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 사이에 앉아 메뉴판을 보고 있자니, 정말 정국과 데이트라도 하는 기분이 들어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버터 맥주?"
"응, 피쉬 앤 칩스랑 고기 파이도."
"잘 먹어, 역시."
"야아, 점심인데 이 정도는 먹어야지."
"그래, 많이 먹어. 너 다 먹어."
연회장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는 건 꽤나 많은 걸 신경써야 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 내 피부 상태가 너무 건조한 건 아닌지, 또는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어느 한 군데라도 이상한 곳은 없는지 찬찬히 뜯어보게 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오늘따라 테이블 길이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정국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 앞에…… 정국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떠올랐다. 조엘의 목소리.
전정국이 네 손을 잡는다. 어때?
나는 아주 천천히 내 손을 쓸어내렸다. 어제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나는 눈을 들어 정국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오로지 식사에만 열심이었다. 눈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양새가 얄미웠다.
전정국이랑 네가 키스를…….
나는 가만히 정국의 입술을 응시했다. 키스…….
"무슨 생각해? 그렇게 입맛을 다시면서."
"아, 이, 이거 진짜 맛있다!"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래, 혼자서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내가 자길 두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면, 정국은 기겁하며 달아날지도 모른다. 상상 속의 일들은 모두 털어버리고 정국과 밥을 먹고 있는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실과 상상 속, 이미 어느 쪽이든 제정신으로 있기엔 어렵게 되어버렸지만.
정국과의 식사는,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렸다. 정국은 그의 말마따나 나와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편안한 식사를 즐긴 것 같았다. 누구는 꼭 체할 것 같은 기분인데……. 억울한 마음에 죄 없는 정국을 째려보았다. 고작 이게,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분풀이였다.
* * *
식당에서 나와 조금 걷자,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와 함께 '종코의 장난감 가게'가 눈에 띄었다.
"우리 저기 들어가자."
"저기?"
정국은 어리둥절하게 서있는 내 손목을 잡아 끌어 장난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닿은 손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정국은 내 손을 잡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그가 잡은 손목까지 화끈거리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느꼈을 때, 정국은 자연스럽게 내 손을 놓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가게 안이었다. 가게 안에는 신기한 장난감들이 즐비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곳엔 끊임없이 새로운 장난감들이 생긴다. 우리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이것저것 집어보며 즐거워했다.
"이거 어때?"
어깨에 닿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니, 정국이 살아 움직이는 토끼 귀 모자를 쓰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큰 덩치에 토끼 귀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모습이 생각보다 잘 어울려 그만 웃음이 터졌다.
"네 것도 있어."
정국은 내게 살아 움직이는 강아지 귀 모자를 씌워주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강아지 귀가 머리 위에서 꿈틀거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너 완전 강아지 같다. 하얗고 작고 귀여운 건데, 이름이……."
"말티즈?"
"어, 그거."
정국은 웃으며 내 머리 위로 움직이는 강아지 귀를 쓰다듬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은 것도 아닌데, 왜인지 그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느껴지고 있었다. 간지러운 기분이 귓가에 가득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 촉각을 느낄 수 있게 연동시킨 모자인가 싶어 벗어버리려는데, 정국이 다시 모자를 푹 눌러 씌워주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우리 움직이는 사진 찍자."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맞잡은 두 손. 사실 나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지만 정국은 어제부터 무려 세 번씩이나 내 손을 덥썩 덥썩 잡고 있었다. 어쩌면 전에도 정국은 이렇게 내 손을 잡아왔을까.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이 모든 게 정국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보였다.
"웃어야 예쁘게 나오지."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겨 얕게 찌푸려진 내 미간을, 정국은 검지로 꾹 눌러 펴주었다. 즉석 사진기 안은 생각보다 더 비좁았다. 정국과 내 팔이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머리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맞닿은 팔도 뜨거웠다. 좁은 박스 안이 금세 더운 공기로 가득 찼다. 어제, 정국과 손을 잡았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연인들은 이런 곳에서 첫 키스를 한다던데, 설마…….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국을 바라보았다. 정국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밝게 웃어."
"…… 응."
"하나."
어떡하지.
"둘."
어떡해……!
"셋."
나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찰칵, 사진 찍히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리고 우리는…….
"뭐야, 너 눈 감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국은 내가 눈을 감은 게 아쉽다고 했다. 조그만 사진 안에 긴장한 내 모습에서부터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까지, 움직이는 모습으로 전부 담겨있었다. 그만 가자는 나를 조르고 또 졸라 끝내 한 장을 더 찍고 나서야, 우리는 그 위험한 박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거 내가 가질래."
"내가 눈 감은 사진을 왜 네가 가져! 그거 얼른 나 줘."
"싫어, 이게 좋아."
정국은 내가 눈 감은 사진을 들어 머리 위로 높게 흔들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는 듯이 놀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정국의 팔뚝을 붙잡고 사진을 사수하려 애썼지만, 역시나 큰 키의 정국에겐 역부족이었다.
"그거 너 혼자만 봐라, 진짜."
"이걸 누굴 보여줘. 우울할 때마다 보고 웃어야지."
"야, 너 진짜!"
장난치며 가게를 나오려는데, 갑자기 정국이 우뚝 서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모텐시아, 사랑의 묘약이었다.
"왜, 사게?"
"아니."
"그럼?"
"저거……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
질문을 하는 정국의 표정이 묘했다. 아모텐시아.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끔 유도하는 물약이다. 농도에 따라 가벼운 호감에서부터 그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중독 수준에 이르기까지 조절하여 제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는데……. 입술을 달싹이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정국의 모습이 왠지 초조하게 보였다면 내 착각일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되물었다.
"너는?"
정국의 시선이 흔들렸다. 아까와 같이 어색한 기류. 정국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가게를 빠져나온 우리는, 또 말 없이 걸었다. 겨우 평소처럼 장난치던 분위기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되물었나 싶으면서도 그 순간의 침묵에 대한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정국은 왜 고민했던 걸까.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긴 했던 걸까. 그렇다면 그건 퀸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
그리고 나는 왜 그가 사랑의 묘약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굴고 있는 걸까.
쉴 새 없이 생각하며 걸으니 학교까지 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우리는 기숙사 계단을 함께 오르며 멋쩍은 인사를 나눴다.
"오늘 재밌었어."
"나도."
"들어가. 내일 수업 때 보자."
나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은 제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 머리 위로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흔들어보였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정국은 방 안으로 제 몸이 다 사라질 때까지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아까 찍은 사진을 꺼내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밝게 웃고 있는 내 옆에, 나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To HOGWARTS BOYS I've Loved Before 〈〈 |
정국이와 여주의 데이트인 듯 데이트 아닌... 간질간질한 시간이었습니다. ㅎㅎ 이제 두 번째 주인공 등장할 복선이 슬슬 아주 슬슬 여러분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깔리고 있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추천, 스크랩 해주시는 분들도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저 한가지 궁금한 점이 비회원으로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은 어떤 경로로 제 글을 보게 되신 건지 정말 궁금해지더라고요! 혹시나 제 궁금증을 풀어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꼭 댓글 달아주세요 ^^...! 같은 제목으로 포스타입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