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花, 僞贋
월화위안: 달꽃아, 거짓은 옳지 않구나.
장위안X로빈
* 조선의 정치 제도를 참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픽션이므로 재미로 감상해주세요 :)
"잠시 흥분했습니다.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다시 시작할까요?"
위안이 예의 그 소름끼치도록 예쁜 웃음을 지어보였다. 대제학은 속으로 자신의 아들과 자신에게 향할 비난의 말들을 떠올리며 침착히 숨을 들이쉬었다.
다 감내해야할 터였다. 허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버렸다. 주상이 자신의 아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는 어쩌면 득일지도 모르나, 독임에는 틀림 없었다. 법국을 그리워하던 아이가 호를 만들었다. 필시 무슨일이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경연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로빈은 또 한 사람이 죽어나간 것을 본 이후 정신이 없었다. 제 말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지난 밤에는 그렇게 예쁘게 웃었던 사람이 폭군이라니. 달꽃을 닮았다 말을 건네던 모습은, 가식이었나.
로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길을 집현전으로 옮겼다. 그 곳이라면 조금 안정되겠지.
위안은 점심도 거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김문식 그 자가 요즘 조용하다. 평소대로였다면 자신의 사람이 죽은 것에 분개하여 무언가 일을 하나 꾸몄을텐데.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욱 아파왔다. 그러다가 문득 그 하얗고 앳된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관료가 그런 말을 패기있게 내뱉다니, 감탄스러웠다.
줄은 끊어지기 마련이라, 그래. 줄은 끊어지기 마련이지. 수라간에 명해 점심을 간단히 차리라 명한 위안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월화, 그 자와 내가 어울려 다닌다면. 분명 둘 다 파국을 맞으리라. 그러나 인연은 가혹하게도, 두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런대로 업무를 마친 위안이 술상을 내오라 명했다. 오전업무만큼은 확실히 하지만 오후부터는 그야말로 제 마음대로 일과를 진행하는 위안이었다.
머리가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위안은 술을 잔에 가득 따라 들이켰다. 달다, 오늘따라 잘 들어가는 술이 너무 달다.
위안도 혼자였다. 피붙이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아내는 인정할 수 없었다. 계집질을 아무리 해도 자식은 생기지 않았다.
벌써 한 병을 다 비워낸 위안이 두 병 째 술을 내오라 명했다. 내관은 속으로 위안의 몸을 걱정했다. 가장 가까이 본 사람이 자신이었다.
아무리 폭군이라는 평을 듣고 실로 그렇게 행한다 하여도 그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당파싸움에 형을 잃고, 그로 인해 앓아누운 아버지마저 잃었다.
손위 누이들은 홍역을 앓다 죽었고 동생은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죽었다. 참으로 운이 없는 사내였다.
위안이 술을 마시는 것은 어쩌면 속으로 삼킨 눈물을 잊어내고자 하는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혼자 마시니 적적하구나. 가야금이 있으면 좋으련만."
"궁 안의 악사를 부르겠습니다."
"아니, 아니다. 노래소리는- 이미 들리고 있지 않느냐."
"송구하오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사옵니다."
"들릴 리가 없지. 내 손에 죽어간 자들의 곡소리인데."
"......."
"그대는, 내가 무섭지 않은가?"
"두렵습니다."
"헌데 나를 위해주는구나. 두렵다면 피해야 할 터인데, 어찌 나를 위하는가?"
"전하께오서는 두려움이 사람을 꺼리게 만든다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위안이 잔뜩 꼬인 발음으로 대답했다. 술에 취한 것인지 눈이 풀린 채 대답하는 것이 꽤 우스웠다.
내관은 잠시 뜸을 들였다. 바로 다음 말이 떨어지지 않자 화가 난 듯 위안이 내관을 꾸짖었다.
"그대는 어찌 내게 묻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는가?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보군"
"두려움으로 숨기려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정곡을 찔렸는지 위안의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잘생긴 미간 사이에 주름이 지고 그 주름을 따라 화가 차올랐다.
당장에 내관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무언가 답답한 자신의 현재 상태에 해답이 될 것 같아 그저 씩씩거리며 열을 삼켰다.
"두려움과 공포는 사람을 복종하게 할 수는 있으나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 합니다. 진(秦)의 시황제가 몰락하던 때를 생각하십시오. 진정으로 제 것으로 만드려면 숨기기 급급한 두려움이 아닌 전하께서 바라시는 모습을 그저 드러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되옵니다."
"두려움으로 내가 숨기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나?"
"그렇사옵니다."
"내가 숨기는 것은"
"......."
"나약함일세."
뜻밖의 대답에 내관은 놀란 눈치였다. 강인하고 용맹스럽던 선왕을 빼닮아 그도 성격이 불같이 드세고 강인했다. 그런 그가 나약함을 숨기려 한다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우렁찬 울음을 내뱉는 격이라는 것을 내관은 깨달았다. 지금 위안은 두려워하고 있다. 그 무언가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숨기려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내관은 급히 엎드려 절했다.
"전하,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김내관. 자네는 내가 세자가 된 이후로 근 10년을 같이 해왔지."
"예, 그렇사옵니다."
"나를 안다면 일어나게. 그대마저 내게 두려움을 느끼지는 말게. 이 삭막한 궁에서, 내 편은 없는지도 모르겠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집현전에서 얼마간 있었는지도 모른 채 밖으로 나온 로빈은 그새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퇴궐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멈춰선 로빈이 달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꽉 찬 보름달이더니 어느새 조금 줄었다.
달은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른다. 지금은 기울어가고 있을지 몰라도 다시 차오르는 것은 금방이다.
혹시나 어제처럼 주상과 마주칠까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주상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어쩐지 조금 실망한 로빈이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달꽃, 월화, 달꽃. 다시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는데.
결국 숭례문을 나설 때 까지도 위안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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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올립니다! 초록글ㅠㅠ! 감사드려요
혹시 월화, 위안에 대한 질문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예를 들어 왜 제목이 월화, 위안이에요? 라던지 해피엔딩인가요! 라던지 하는 질문들이요!
아니면 위안이와 로빈 말고 영의정 김문식, 중전 김씨에 대해 물어보셔도 좋구요 ㅎㅎ 다들 즐거운 비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