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은 뒤 200M 결승전. 대기실에는 긴장한 선수들이 가득했고, 그 한 가운데 태환은 자신의 트레이트 마크인 헤드폰을 끼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중이였다. 그런 태환에게 쑨양은 슬금슬금 다가와 그 옆자리에 앉았고, 태환은 그런 쑨양을 힐끗 보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Park, Are you still mad? (박, 아직도 화났어요?)"
태환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 아직 볼륨은 그리 크지 않을텐데 들리지 않는지 의문이였던 쑨양은 고개를 쑥 내밀어 태환의 얼굴을 바라봤고, 태환은 한숨을 푹- 내쉬며 쑨양에게 말했다.
"Hey, Sun. (이봐, 쑨)"
"?"
"형이라고 불러."
'형?' 한마디 말을 내뱉은 쑨양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태환을 바라봤다. 한국말을 완벽하게 알아듣는단걸 인정한 셈이니 말이다. 태환은 헤드셋을 내려놓고는 쑨양에게 꿀밤을 때렸고, '아!' 하며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낑낑댔다.
"OK, 형."
"쑨, 궁금한게 있는데. 알아듣는데 말은 못해?"
쑨양은 아픈 머리를 부비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기도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라나 뭐라나.. 그래도 태환은 약간 홀가분한 기분이였다. 적어도 쑨양 앞에서는 골치아픈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환에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 때, 수영장에서 자신한테 키스한 쑨양의 행동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 그저 장난이였는지 진심이였는지 묻고는 싶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Let's go, 형."
"어.."
**
각자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각 선수들은 자신의 레인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준비 신호, 출발. 경기장 안에는 각 선수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들과 선수들이 물살을 가르는 소리들로 꽉 찼고, 태환과 쑨양은 전력을 다해 레이스를 이어갔다. 그리고 결승점 터치패트를 찍은 순간, 둘의 시선은 동시에 전광판으로 향했다.
"어?"
"Oh!"
있기 힘든일이였다. 똑같은 기록이라니. 태환과 쑨양은 똑같은 기록이 나온게 신기해 서로를 보다가 금새 해맑게 웃어보이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비록 금메달은 아넬에게 넘겨줬지만 공동 은메달이였다. 시상식을 위해 준비를 하러 대기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쑨양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웃어보였다.
"쑨양, 은메달 딴거 좋아?"
"Ah, No, No.'
쑨양은 다시 짤막한 영어 단어 몇 자와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둘이 같이 같은 시상대에서 같은 메달을 받는다는게 좋다는 것을 설명했다. 실없는 놈일세, 피식- 웃은 태환은 옷을 다 갈아입고 쑨양과 함께 시상대로 향했다. 시상대에 올라서기 전까지도 쑨양은 계속해서 미소를 지어보였고, 은메달을 받는 순간까지도, 아니 퇴장하는 순간까지도 태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태환은 그런 쑨양에게 장난식으로 행동들을 코치해주었고, 쑨양은 순진한 표정으로 태환이 말하는대로 따라줬다.
그렇게 시상식이 끝나고, 쑨양은 따로 준비를 할게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에 태환은 금메달을 딴 아넬과 같이 대화를 했고, 아넬은 자기가 금메달을 딸 줄은 몰랐다며 올림픽 강자들을 이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렇게 얼마쯤 아넬과 태환이 이야기를 나눴을까,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갑자기 쑨양이 들어와 태환의 팔을 낚아채 나갔다.
"쑨, 왜이래?"
"..."
쑨양은 약간 짜증이 난 표정으로 태환을 라커룸까지 끌고 갔고, 쑨양은 아무도 없는 라커룸에 도착하자마자 태환의 팔을 놓고 태환에게 말했다.
"Don't talk to others. (다른사람들과 이야기 하지마.)"
"내가 왜? 갑자기 왜 그러는건데? 뭐 안좋은 일 있었어?"
"..."
쑨양은 뭔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짜증스러운 듯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흩뜨리더니 라커룸을 나갔다. 영문을 모르는 태환은 라커룸에서 멍하니 서있을 뿐이였고, 뒤이어 들어온 아넬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로 향했다.
**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태환은 목욕을 깨끗하게 끝마치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영국 채널이라 온통 영어뿐이였지만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열심히 TV를 시청했다. 연습은 내일. 이제 1500M만 남아있었다. 쑨양은 지구력이 좋은 쪽이라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연습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 쯤 TV를 보고 있었을까, 숙소의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해맑게 말하며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여니 아넬이 서있었다. 양손에는 맥주를 한 병씩 들고 해맑게 웃어보이고 있었다.
"May I come in? (들어가도 될까요?)"
"Ah, yes."
아넬은 메달리스트들 끼리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쑨양이 보이지 않아 혼자 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건넸다. 태환은 간단한 안주거리를 찾아왔고, 아넬과 태환은 담소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아넬은 많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금메달을 따니 기분이 너무 좋다던지, 태환과 경기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던지 하는 사소한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끝이나고, 현관을 나서는 아넬을 배웅해준 태환은 안주거리를 치우고 약간 취기가 도는 통에 소파에 드러누웠다. 아직 경기가 남았지만.. 뭐, 한 병은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태환은 슬슬 졸려와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을 향해 가려고 했다. 그런데,
「쾅- 쾅- 쾅-」
누군가 현관문을 부서질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태환은 그 소리에 놀라 빠르게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고, 문을 여는 순간 시야가 아찔해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현관 벽에 쳐박혔다. 벽에 부딪힌 등이 아픈것도 잠시, 쾅! 하고 크게 닫히는 현관문 소리에 움찔한 태환은 혹시 강도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고, 그 앞에는 다행히도 쑨양이 서있었다.
"아, 아파라.. 무슨짓이야!"
"..."
등이 아파 짜증스럽게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 쑨양의 표정을 자세히 보니 뭔가 불안하면서도 화가 난 표정이였다. 약간 당황한 태환은 쑨양을 밀치려 했지만 밀리지 않던 쑨양은 낮은 어조로 말했다.
"뭐했어."
"?!!"
"아넬이랑, 뭐했어."
"너 한국말 못한다며!"
태환은 이젠 한국말까지 할 줄아는 쑨양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었고, 쑨양은 바득- 이를 갈았다.
"너 일단 나중에 두고 봐. 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거야?"
"아넬이랑, 뭐했어."
"맥주 밖에 안 마셨어 맥주. 됐어? 이제 좀 놔라.. 형 등 아프거든?.."
"술, 왜 마셨어."
"왜 마시기는 뭘 왜 마셔! 마시자 그래서 마신.. 읍-"
쑨양은 태환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태환의 입술을 집어삼켰고, 억세게 태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태환은 다급하게 쑨양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쑨양은 그저 키스에만 집중하며 태환을 계속 벽으로 밀어붙였다. 이제보니 어렴풋이 쑨양에게서도 술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릴레이 있다는 애가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고?..' 약간은 실망한 태환은 숨이 막힐듯한 키스에 괴로워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궁리를 하다가 쑨양의 정강이를 아프게 발로 찼다.
"윽!"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서다 넘어진 쑨양에게서 탈출한 태환은 빠르게 침실로 피해 문을 잠그려 했지만 달려가는 도중 쑨양에게 발목을 잡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질때 부딪힌 팔의 고통을 느끼기도 전, 몸이 돌려진 태환의 위에 자리한 쑨양은 다시 태환에게 키스했고, 쑨양의 한 손은 저항하지 못하게 태환의 양손을 위로 잡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태환의 티셔츠 사이로 파고들었다.
"으읍-!"
부딪힌 등과 팔. 그리고 쑨양이 아프게 짓누르고 있는 양다리까지 합쳐 전신이 아파오던 태환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까지 다다랐고, 점점 몸에 힘은 풀려왔다. 태환의 저항이 사그라들자 쑨양은 태환의 팔을 놓아줬고, 힘없이 늘어져있던 태환의 양손은 쑨양의 어깨를 두드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손길에 그제서야 쑨양은 정신을 차렸고, 당황해 벌떡 일어선 쑨양은 뒤로 천천히 물러서며 태환을 내려다봤다.
"으윽.."
태환의 상태는 말이 아니였다. 너무 강하게 짓눌러 손자국이 난 양쪽 팔목에, 거의 기절 상태. 또, 반쯤 말려간 티셔츠 아래로는 너무 강한 손길에 버티지 못해 군데군데 붉어진 피부가 보였다. 쑨양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태환을 부축해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혔다. 자기가 대체 무슨짓을 한건가 도저히 상황파악이 안되던 쑨양은 조심스럽게 태환에게 말을 걸었다.
"형?.."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원망스러운 눈길만이 느껴지고 있었을 뿐이였다. 쑨양은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살짝 끊겨 무의식적으로 태환의 숙소로 향했고, 태환의 숙소에서 나오는 약간 풀어진 아넬의 모습을 보고는 온갖 불순한 생각이 들며 정신이 돌아버린 듯했다. 어떻게 사과해야할까.. 고민을 하던 쑨양은 말없이 태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I'm Sorry.."
"..."
"...미안해 형."
쑨양은 꽤 능숙하게 한국말을 쏟아냈다. 물론 어순에 맞지 않는 말도 여러번 했지만 크게 신경쓰이진 않았다. 태환은 말없이 아픈 팔을 주무르고 있었고, 쑨양은 그런 태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구절절이 이유를 쏟아냈다.
"아넬이랑 형이랑.."
"뭐."
쑨양의 어깨는 살짝 움찔- 했다. 상상도 하기 싫은지 고개를 휘젓던 쑨양은 말을 다른 주제로 넘기려 다른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미안해. 진짜."
"너, 나 1500M 못나가게 하려고 이런거야?"
"절대! 절대 아냐!"
쑨양은 당황해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고, 그 행동에 놀란 태환은 크게 움찔했다. 그런 태환의 모습을 본 쑨양은 미안함에 어쩔줄을 몰라했고, 상체를 일으켜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아있는 태환의 어깨를 잡았다.
"다신 안 할게."
"... 내가 널 어떻게 믿어?"
"I promise."
쑨양의 눈빛은 사뭇 진지해보였다. 태환은 그런 쑨양과 눈을 마주치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거짓말이면 너랑 다신 안봐.' 라는 말을 하며 쑨양을 용서해줬다. 쑨양은 용서를 받자마자 환하게 미소 지어보이며 기쁜듯 'Yes!' 하며 주먹을 쥐어보였고, 그런 쑨양의 모습에 태환은 살짝 웃어보였다.
"형."
"응?"
"근데.."
쑨양은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태환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며 이야기 했다.
"그 Promise. 내일부터 지키면 안돼?"
"뭐?"
쑨양은 다시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웃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가는 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 쑨양을 바라보는 태환의 입술에 곧 부드럽게 쑨양의 입술이 겹쳐졌다. '아, 이런 뜻이였구나..' 그제서야 알아챈 태환은 쑨양이 얄미워 다시 다리로 무릎을 꿇고 있는 쑨양을 발로 차려했지만 금새 태환을 들어올려 침실로 향하는 쑨양의 행동에 저지당했다. 태환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고 태환의 위에 자리한 쑨양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옆 탁자에 올려놓고는 입을 떼고 자신의 티셔츠를 벗어던졌고, 태환은 그 사이에 탁자 위를 올려다보니 탁자 위엔 콘돔 봉지 몇 개가 있었다.
"야. 쑨양."
"我喜歡你。(널 좋아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다시금 사랑 고백을 한 쑨양은 푸스스 웃으며 태환과 눈을 마주쳤다.
"하.. 내가 널 어떻게 말리냐."
"앗싸."
쑨양은 해맑게 웃어보이며 태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고, 태환은 한숨을 푹 내쉬며 쑨양의 목 뒤로 팔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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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 시작합니다. 내일이나 모레쯤에 일괄 발송할거구요, 하나 더 알려드리자면..
씬이 추가된 버전이 따로 나올겁니다 .
먼저 배포 시작하는건 클린 버전입니다.
씬 추가 버전은 나중에 업로드 하고 배포 시작할게요 ㅎ 배포 버전에서는 일부 내용 수정도 있을수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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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이번편은 조금.. 아닌 것 같네요 ㅠㅠ.. 흐흑.. 벌써 슬럼프가?!..
*추가 - 죄송합니다 ㅠㅠ 씬 추가 버전 대신 단편하나 내는것으로 생각 바꿨습니다 ㅠㅠ 씬 원하셨던 분들.. 모두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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