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 형은 누나가 어떨 때 제일 예뻐요?
석진: 그건 갑자기 왜?
태형: 그냥 궁금해서여 내가 봤을 땐 항상 예쁜데 형이 보면 좀 다를까? 싶어가지고
석진: 야 말을 그렇게 하면 내가 탄소한테 예쁘다는 말 잘 안 해주는 사람 같잖아
윤기: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석진: 적어도 너에게 들을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기야
태형: 그래서요? 언제가 제일 예뻐요
석진: 음... 아무래도 자고 있을 때가 아닐까
지민: 형 그런 사람이었어요?...
석진: ? 뭔, 아니, 야 넌 무슨 의미로 이해한 거야?!
지민: 그럼 왜 자고 있을 때가 제일 예쁜 건데요!
호석: 왜긴 왜야 그땐 나불거리지 않으니까 그렇지
석진: 그래 아주 정확해
지민: (오만상) 그게 뭐야...
태형: 형... 너무해요...
호석: 아니 이건 너네가 몰라서 그렇지, 진짜 형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그 이유가 있어
태형: 뭔데요 그게...
호석: 너 누나가 매일 아침마다 거울 보면서 하는 말 못 들어봤지? 오늘도 글쎄 거울 앞에서 이상한 포즈를 하고선 안돼 탄소야... 언제까지 이럴 거야... 너 정말 이기적으로 아름다운 거 아니니...? 이러고 있었다고 이게 얼마나 가관이니, 어?
아무리 생각해도 첫인상과 너무 다른 탄소.
언제나 석진에게 주접이고 주책이며 팔불출이지만 석진은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태도로 자주 보여지는 두 사람입니다. 태형의 질문에도 잠들어있을 때가 제일 예쁘다고 할 정도이니까요.
탄소: 슬플 땐 좋아하는 사람이 도토리 줍는 상상을 하래
윤기: 근데
탄소: 도토리묵이 너무 먹고 싶어져서 말이야
윤기: 대체 누나는 뭐가 문제일까...?
탄소: 아니 김석진이 나 버리고 메이플 하러 갔는데 그래서 좀 슬퍼졌어, 슬퍼졌는데 김석진이 도토리 줍는 상상을 하니까 진짜 도토리 줍는 김석진이 나 버리고 메이플 하러 가서 귀엽지만 슬픈 게 자꾸 그러는 거야 이렇게 감정소모를 좀 한참 했더니 또 배가 고픈거지 이제
윤기: 그니까 뭐가 문제인 거냐 묻는 거잖아
보면 볼수록 석진이 아닌 탄소가 먼저 좋아했던 것 같지 않나, 모두가 의문인데요.
이현: 나 아직 너 좋아하는 입장으로 말하는 건데
탄소: 어휴 구질구질...
이현: 조용히 하고 들어
탄소: 응...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이현: 좋아하는데 이럴 땐 좋아하는 내가 자존심 상하니까 조용히 하라고
탄소: 알았어...
이현: 그래, 아무튼 내가 말하려던 건 그거야
탄소: ?
이현: 네가 먼저 좋아했던 사이야?
탄소: 전혀 아닌데
이현: ...아니라고?
탄소: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이현: 너 모쏠이잖아
탄소: 밥맛 떨어지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서이현 어쩜 좋지
이현: 아니, 생긴 것과 다르게 연애 쑥맥인 애를 데려다가 지금...! (울컥)
탄소: 무, 뭐야 왜? 왜 그래!
이현: 야! 당장 헤어져!
탄소: ?!?!?
특히 두 사람의 시작을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탄소가 먼저 좋아했던 게 분명하다 여겨질 정도입니다.
때문에 짝사랑으로 보낸 시간이 참 길어서 마음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이현에게 석진과 탄소의 관계에서 먼저 좋아한 사람이 탄소가 아니라는 사실은 무척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요.
이현: 지금 다 잡은 물고기라고 방치하는 거야 뭐야!! 그렇게 안 봤는데 되게 무서운 사람 아냐 이거!
탄소: 아니 뭔데, 갑자기 노발대발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이현: 너는 지인짜 남자 보는 눈이 발가락에 달렸냐? 왜 옛날부터 변하질 않는 거야, 왜!!
한편, 탄소의 귀가 시간이 너무 늦어지고 있어 걱정이 된 석진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현: 전화 온 거 누구야, 그 사람이지! 휴대폰 이리 내놔
탄소: 어머 어머 이 인간이 왜 진상짓을 하고 있어; ?! 야! 치사하게 키 큰 걸로...!
이현: 허! 여보세요!
석진: ... 탄소... 여보세요...?
이현: 저기요 김석진씨 김탄소 어디 가서 남자한테 바짓가랑이 붙잡고 우는 그런 애 아니거든요? 얘가! 학교 다닐 때에도! 자기 좋아하는 애들을 울리면 울렸지, 자기가 좋아해서 운 적은 없던 애예요!
석진: (당황) 저... 누구...
이현: 중학교 다니면서도 그러던 애라고요! 근데 이 김탄소가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사람이!! 뭡니까 이게!!! (짜증) 김탄소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연애를 해야 한단 말입니다!!! 날마다 우리 탄소 잘 잤니! 배고프진 않니 내가 아침 차려놨어! 자기 전엔 좋은 꿈 꿔!!!
탄소: 아악!!! 야!!!!
술이 들어가면 사람은 평소보다 무식한 용기가 생겨난다고 하지요.
학창시절 망나니와 개망나니로 놀던 탄소와 이현에게 술이 들어가면 얼마나 난장판이 되는지 안 봐도 뻔한 일입니다.
이현: 김탄소 콩깍지가 영원할 것 같습니까 김석진씨!!! 와, 백날 웃게 해줘봐야 지 울리는 사람한테 간다더니 김탄소 너 진짜 나 이렇게 속상하게 할래? 다정한 사람이 그렇게 좋냐고, 그게 밥 먹여주냐 따졌더니 그럼 다정한 사람이 밥 먹여주지 무뚝뚝한 남자가 밥 먹여주냐며 성질 부리던 김탄소 어디 갔는데 (말하다보니 서러움) 왜 맨날 네가 힘든 사람한테 가는 거냐고
탄소: (환장) 돌겠네 진짜... 이보세요 서이현씨 제 휴대폰이나 돌려주세요
이현: 네가 이러면 내가 어떻게 마음 정리하라고, 진짜 너무한다
탄소: 말로 할 때 넘겨라
이현: ㅠㅠㅠㅠ (취했어도 무서워서 돌려줌)
탄소: 후, 여보세요, 김석진?
석진: ...어, 탄소야석
탄소: 시간이 이렇게 늦어진 줄 몰랐네, 걱정했지 미안
진: 아냐 괜찮아 학생도 아닌 성인인데 통금을 정해둔 것도 아니고... 근데 지금 같이 있는 거 누구, 그 동창이야?
탄소: 응 친구 만나러 간다고 했었잖아
석진: ... ...
탄소: 내가 만나는 친구라고 해봐야 뻔하지 안 그래?
석진: 언제 와?
탄소: 언제 오냐고? 어... 너무 늦어서 그냥 오늘은 본가에서 자고 내일 돌아갈게
석진: 내가 거기로 갈까? 네 동창 많이 취한 것 같던데 혼자 힘들 거 아냐
탄소: 이 시간에 피곤할 텐데 뭐하러 여기까지 오려고 그래, 괜찮아 나 기다리지 말고 편하게 자
이현: 김탄소 넌 오늘 못 들어간다
탄소: 아 아저씨 제발 입 좀 다물어보세요
이현: 내가 왜 아저씨야 이 아줌마야 예쁘면 다야?
탄소: 미안한데 우리 이제 아줌마 아저씨 맞거든요
이현: 예쁘면 다냐고
탄소: 너한테 예뻐보이려고 한 적 없어 개진상아
석진: 내가 가는 게 정 그러면 지한이라도 불러 탄소야석
탄소: 어, 어? 다시 말해줘 못 들었어
진: 지한이라도 부르라고
탄소: ...걔 자고 있을 걸...? 아 이제 전화 끊을게, 더는 못하겠다 잘 자고 내일 봐
석진: 잠깐만, 탄소야석
탄소: (뚝)
진: ... ...
석진과 탄소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갑과 을이 있다면 석진이 갑이고 탄소가 을이다.
둘의 사이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거야 다른 사람들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고요.
태형의 질문에 잠들어있을 때 제일 예쁘다 대답한 석진의 진심은 호석이 말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탄소: 으, 진짜 서이현 얘는 어디 가서 멀쩡한 사람인 척하고 다니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몰라
이현: 그럼 내 마음은 알고?
탄소: 알다못해 모르고 싶을 지경이지 ㅎㅎ... 너 대리 불러주면 알아서 집에 갈 수 있어?
이현: 현이는 아무거또 몰라
탄소: 난리났다 난리났어... 현이 어린이 집 주소가 어떻게 되지요?
이현: 현이네 집은 쩌어기!
탄소: 한 대 쥐어박으면 안되겠지... 아 근데 진짜 때리고 싶다... 어떡하지...? (고뇌) 야 너 취한 거 뻥이지 다 알아 그러니까 제발 헛소리 그만하고 사람답게 말해봐... 응?
이현: 에~ 김탄소~
탄소: 쓰레기 무단투기 아이돌로 이름 날리고 싶지는 않은데... (이현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음) 정말 술 먹고 부리는 난동도 가지각색으로 떨어주니 아주 고맙다... 감개무량해 아주...
계산 먼저 끝내고 돌아온 탄소는 대리운전을 부른 다음에야 이현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워낙 풍채가 늠름하니 장군감이라 탄소 혼자서는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무리였거든요.
이현의 차에 나란히 타서 부른 주소는 지한이 새근새근 자고 있을 본가였죠. 길바닥에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 수 없잖아요.
탄소: 아으... 진짜 뭘 먹었길래 이렇게 무거운 거야악... 전정국도 이것보단 가벼운데... (당연한 말)
지한: 누나...?
탄소: ?? 너 왜 안 자고 있었어
지한: 아, 좀 전화하느라 잠깐 깼는데... 말도 없이 온 거야? 아니, 뭐 그건 그렇다고 치는데 옆에 그 사람은 뭐야?
탄소: 친구
지한: 누나 친구 없, ...아 그 말로만 듣던?
탄소: 말로만 듣던?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지한: 아 됐어 됐어 용케 그 상태로 대화를 하고 앉았네 도와달라고 미리 연락을 하지!
탄소: 잘 시간인데 깨우기가 좀 그렇길래...
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잠을 깨운 건 석진이었습니다.
애써 담담하게 부탁했지만 새벽에 걸려온 전화부터 느낌이 팍 왔던 지한은 알겠다 대답하면서도 의아함을 지우지 못했고, 그야 당연할 만큼 탄소는 자기가 무척 좋아하는 석진이 마음 졸일 상황을 자의로 만든 적이 거의 없었잖아요. 오는 남자도 돌려보내고 가는 남자는 신경도 안 쓰는 누나한테 새벽까지 못 돌아가게 막는 사람이 있다니 판타지 소설처럼 다가왔는데 직접 보니 현실이라는 게 더 믿기지 않았죠.
유니콘과 동급이었던 누나 동창의 존재를 처음 본 소감이 술냄새 장난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당황스러웠습니다. 누나한테 낯선 행동을 하게 하는 사람이자 생소한 사람이라, 경계심도 생겼고요.
탄소: 방은 많은데 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텅빈 방들이라 참 애매하네 예전에 정국이 왔을 때에도 그렇고 말이야
지한: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집이 아니니까... 근데 진짜 술을 얼마나 마신 거래?
탄소: 술냄새 많이 나?
지한: 향수인줄 알 정도로
탄소: 음... 그럼 내 방에서 재우는 게 낫겠다 지한이 오늘 누나랑 같이 잘까?
지한: ? 왜 누나 방에서 재워 내 방에서 재워야지
탄소: 술냄새 많이 난다며, 네 침대에 술냄새 배는 것보다 이쪽이 더 낫지 난 그래도 숙소에서 지내니까 나중에 다시 돌아오기 전엔 냄새 빠질 거 아냐
지한: 누나랑 같이 자는 건 좋은데 암만 해도 다 큰 여자 방에 외간 남자 재우는 건 아닌 것 같아
탄소: 딱히 여자 방이랄 것도 없는데 뭐 어때
누나를 납득시키지 못해 결국 이현을 탄소의 방 침대에 눕히게 되면서 지한은 석진에게 말하면 안될 게 생겨 난감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유관심 속 무관심. 제 누나는 참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이다가도 가끔 거기에서 보이는 무심함이 사람을 참 서운하고 심란하게 만들었죠.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요.
지한: 내일 아침에 일찍 돌아갈 거야?
탄소: 적어도 일어나는 건 보고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지한: 나 있는데 뭘
탄소: 초면인 사이에 어색해서 어떡하려고? 그리고 마신 게 있어서 눈 뜨면 속 쓰릴 걸... 뭐라도 먹여야지
지한: 해장까지 챙겨주려고?
탄소: 너도 누나 온 김에 집밥 먹으면 좋잖아
지한: ...누나랑 많이 친해?
탄소: 너도 아까 나 친구 없다고 말하려 했었잖아 친구 없는 나한테 그나마 있는 친구가 지금 자고 있는 쟤야
석진에게 좀 만만치 않은 상대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누나 옆에서 잠든 지한.
정작 형에게 누나 잘 왔고 지금 잠들기 직전이다 연락하는 걸 깜빡했습니다.
석진: 얘는 자기 누나 잘 왔다고 한 마디 보내는 게 어렵나 (답답)
잠든 탄소가 제일 예쁘다고 말한 석진의 진심.
입을 열지 않아서, 라는 호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유.
석진: 김탄소 자?
탄소: 으응... 왜...
석진: 그냥, 잘 자나 궁금해서
탄소: 잠이 안 와?
석진: 조금 그런 것 같아
탄소: 내가 안아줄게... 토닥토닥하면 금방 잠 올 거야...
석진: 완전 애 취급 아니야?
탄소: 아니야아...
잠든 순간만큼은 제 곁을 떠나지 않아서.
온전히 내 것 같아서.
석진: 사랑하는 사람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더라 그 사람이 약해질 때에만 자신이 유일한 것 같아서, 사랑인 것 같아서 계속 아프고 더 아팠으면 좋겠다고, 그때엔 자기한테 의지하니까
근데 난 내 욕심으로 네가 아픈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차라리 평소보다 잠을 더 오래 잤으면 좋겠어.
너는 항상 잠이 부족하고, 짧게 자고, 그래서 내 곁에 잠들었다가도 눈을 떠보면 금방 사라진 후니까.
잠을 더 오래 잤으면 좋겠어. 부족한 잠을 채우고, 긴 잠을 잤으면 좋겠어. 내가 늦게 눈을 뜬 오후에도 옆에 잠들어있는 너를 볼 수 있도록.
석진: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나 말고 다른 걸 우선시로 세우는 네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늦게 들을 수 있도록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 꼭 제 이야기와 같다며 씁쓸할 때가 있는 석진.
모두가 널 조금 더 사랑해주라고 하지만, 더 표현해주라고 하지만 나는 무서워. 너는 붙잡는 걸 싫어하고 매달리는 걸 피하지. 네가 붙잡고 매달리는 건 괜찮지만 상대방이 그러는 건 안 좋은 기억들만 가득해서 참 꺼려해.
나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질리도록 해주고 싶어. 가지 말라며 붙잡고 싶고 만나지 말라며 질투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면 네가 도망갈까봐. 가끔은 네가 그래도 된다며 화를 낼 정도로 참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해.
아직도 너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석진: 이제 그래도 된다는데, 여전히 자유로운 너를 붙잡아도 되는 걸까 고민이 끝나질 않아서 이게 참 어렵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질투가 너무 심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해도 여전히 제자리를 못 벗어나
탄소: (웅얼웅얼)
어느 새벽의 혼잣말. 석진은 그날의 혼잣말을 떠올리며 돌아오지 않는 탄소를 기다리다 밤을 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