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안.
하반기 결산 결과 발표를 위해 영업부 팀장들이 모인 자리
"영업부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7등은 6팀, 6등은 5팀...
과연 1등은?"
모두들 숨을 죽이며 결과 발표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1등은 2팀입니다. 그럼 자동으로 1팀은 2등이 되겠습니다.
자 2팀에게 모두들 박수를!"
부장님의 말씀에 각 탐장들은 손벽을 쳤다.
나 또한 웃으며 손뼉을 쳤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아휴~ 전팀장 대단해!"
"전팀장 축하하네~"
내 맞은편에 앉아 축하를 받는
전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니 나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
.
.
.
"뭐야 이번에도 2팀이 1등이야?"
"헐... 이번에도 2팀이 1등이래"
"역시 전정국 팀장... 대단하네. 성팀장 벽을 팀장자리 앉아마자 연이어서 허물다니"
"이번에도 2팀이 1팀 앞에 이렇게 또 넘어지나~"
회사 안 치열했던 영업팀 경쟁은 1팀의 1등으로 인해 더욱 더 회자되기 시작했고
내부뿐만 아니라 타 부서까지도 그 소식이 전해지면서 뜨거운 이슈가 되어 사람들 입방아에 올려졌다.
또각- 또각-
그러나 웅성거렸던 소리는 내 구두 소리와 함께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 우리팀은 오늘 죽어나가겠..."
"야 팀장님 오심"
"아하... 팀장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팀장님"
"팀장님.... 안녕하세요"
입구부터 나의 눈치를 보던 내 팀원들은 나의 미세한 표정까지도 읽겠다는 듯 힐끔힐끔 나를 곁눈질 하는 게 보였다.
그래 나의 기분이 오늘 그대들의 하루를 좌지우지하겠지
나는 웃으며 간단히 목례를 하곤 우리 팀 안쪽에 있는 팀 장실로 들어갔다.
블라인드를 내려 외부와 완전히 차단한 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린 채 주먹을 꽉 쥐었다.
회사에 근무한지도 10년. 어떠한 상황인들 표정관리, 말투, 행동까지도 완벽하게 내가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자부했다.
만년 1등을 자랑하던 우리 팀 아니 성유리의 커리어는 전정국이라는 어디 먹다버린 뼈다귀가 굴러들어와
2팀에 자리를 하면서 하락과 동시에 화날 때 자동으로 접히는 이 주먹은 또 다시 내 지위 밖이 되었다.
"하 전정국"
나에겐 영원히 부르고 싶지 않은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사원은 기획서를 다 작성하지 못하셨다고요"
"죄송합니다. 다른 건들 이 있어서 시간이 겹치느라..."
"저한테 중요한 건 서사원 개인 업무가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에 전달받아야 할 기획서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필요 없고 무조건 오늘 안에 제출하세요. 아님 야근입니다."
"김인턴 OO 거래처 사장님과 스케줄 맞췄습니까?"
"죄송합니다. 이제 곧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OO거래 사장님은 일정이 바쁘셔서 미리 연락드려야 한다고 제가 누누이 얘기했잖아요"
"지금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인턴이 책임 갖고 무조건 시간 잡으세요 못 잡는 건 제 선에 없습니다."
"네..."
"전 처음인 것 같아요. 성팀장님께서 화 내시는 모습"
"우리도 예민해지신 모습 몇 번 못봤어"
"팀장님 너무 무서워요"
"원래 안 그러셨는데"
"이게 다 전팀장이 1등을 가져가면서 생긴 일이지"
옆에 있던 다른 선배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성팀장님과 몇 년 동안 일하면서 1등을 뺏긴게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는 하거든 그때도 이렇게 예민하진 않으셨어"
"아 진짜요?"
"전팀장과 무슨 일 있으셨나? 여튼 우리만 죽어나는 거지 뭐"
"오늘도 야근인 거지 뭐"
선배들의 신세한탄에 김인턴은 오늘 하루가 무서워졌다.
"하- 내가 심했나-"
내가 팀장 자리로 이동하면서 내가 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지
팀원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나도 인정한다. 내가 예민해졌다. 괜히 팀원들에게 미안해졌다.
점심시간.
“팀장님 오늘은 식사 안 하세요?”
김인턴이네.
“오늘은 속이 좀 안 좋네요"
"약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괜찮아요 제가 사서 먹을게요. 제 눈치 보지들 마시고 식사들 하러 가세요”
"네.. "
김인턴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방을 나갔다.
분명 내가 있으면 다들 편히 식사를 못할게 뻔했고 나도 먹으면 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나 달래러 가야겠다.”
항상 우울할 때면 내 기분을 달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근처 카페에 가서 핫초코를 들고 회사 옥상에 앉아 그 눈높이에 보이는 세상을 보는 것이다.
회사 로비를 지날 때 쯤
"어이! 김팀장~"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여자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손 인사를 하는 박지민이 있었다.
나와 입사 동기이자 동기 중 나를 포함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기도 했으며
얼마전 타부서로 이동한 타부서 팀장이기도 했다.
박지민은 "잠시만 있다 다시 합류할게요. 먼저 가 계세요"라고 말하며 그들 사이를 빠져나왔고
여자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예의상 눈인사를 하려고 눈을 마주쳤는데 여자들이 바로 눈을 내리깔았다.
아니 저 뭐 한거 없는데요.
이것은 분명 영업 팀원일때부터 팀장까지 1등을 이어오면서
센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 한 몫한 것 같다.
“넌 밥 먹으러 안가냐?”
“입맛이 없네요 그건 그렇고 너는 왜 너네 팀원들은 다 어디 가고 다른 팀원들과 밥 먹냐”
“아리따운 여성분들이 나랑 밥 한번 먹고 싶다는데 먹어줘야지”
박지민은 머리를 쓸어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웃겨- 내가 보기엔 다들 아주 꼴값이다!
회사 자체 네에서 여자들이 부르는 팀명 하나가 있다.
방탄 팀장단이라나 뭐라나 거기엔 박지민과 전정국을 포함, 국제부 RM팀장,
홍보부 김석진&민윤기 팀장, 기획부 정호석 팀장, 우리 영업 1팀의 막내 김태형이 있다고 한다.
아니 김태형은 팀장도 아닌데 왜 들어가 있는거야? 만들어진지는 꽤 됐다는데 나도 최근에서야 알았다.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방탄소년단의 털 끝하나 미치지 못하더구만.
"괜찮아? 완전히 깨졌다며?"
"완전히 깨진 것 까진 아니거든"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내 표정을 보며 재밌다는 듯 박지민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아침의 일인데 아주 타부서까지 쫙 퍼졌어~
성팀장과 전팀장 매 순간순간이 아주 핫이슈야~"
"내 등수가 밀려간 게 그렇게 좋냐 아직 두 번밖에 안 빼앗겼어~ 반드시 1등 탈환하고 만다"
"내가 영업팀에 있으면서 너 때문에 만년 2등이었는데 10년 동안 일하면서 후회되는
한 순간을 고르라 한다면 영업팀 시절 연이어 너의 2등을 직접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거야"
역시 너가 깐족으론 우리나라 1등이다.
나도 질 수 없지.
"응 그럼 넌 영원히 3등"
"나의 복수를 전정국 팀장이 해주는구나"
"야... 내 앞에서 그 이름 부르지도 마라..."
“알았어 왜 이렇게 정색해”
“그럼 내가 좋게 생겼냐”
“으흠~ 내가 아는 성팀장은 비즈니스적으로 모든 일들을 대한단 말이지.
근데 내가 본 성팀장은 전팀장한테만 이성적이지 못해”
“뭐야 시비야”
“아니 그냥 그렇다고 너 화내기 전에 나는 떠야겠다 옥상에서 좋은 시간 보내라”
내가 어디로 갈지 너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역시 동기 하나는 잘 얻었단 말이지.
“핫초코 하나 주세요”
카페에서 받은 핫초코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회사가 출퇴근이 자유롭다 보니 점심시간도 크게는 부서, 작게는 팀 내에서 상의하여 정하곤 한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사람이 분비는 건 일절 없고 특히 옥상 같은 경우에도 올라오면 항상 나밖에 없었다.
“아~ 좋다. 그래 이거야”
나는 옥사 벤치에 앉아 핫초코를 마시며 풍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성팀장님 식사 안 하십니까?"
고요했던 정 막을 깨고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앞엔 전팀장이 있었다.
"아... 별로 입맛이 없어서요"
풀렸던 기분이 원상복구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없던 입맛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에게 어색한 웃음을 보인 뒤 그와 말하기 싫다는 표시로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1등을 빼앗기셔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나 봅니다"
나의 허를 찌르는 말투에 내 표정이 구겨질뻔했지만 마음속으론 표정관리를 외쳤다.
"아뇨 전혀- 저에겐 어떤 타격감도 없어요- 전 이런걸로 자존심이 상하지 않아 하거든요. 1등이 뭐 대수라고 "
"아하 그러십니까"
그러다 그가 내게 다가오더니 자기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나는 손목을 빼내려고 하자 그가 힘을 주었다.
“가만 있어 봐. 그러면 아프잖아”
주먹을 쥐었던 내 손가락을 그가 펼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또 쥐었나 보다.
펼친 손바닥엔 나의 손톱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가 말했다.
“넌 여전하네 예전과 다른게 없어”
“뭐?”
“고등학교 때 그 모습 그대로라고 너 원래 화나면 주먹 쥐잖아”
너는 왜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는 거야. 짜증 나.
나의 치부가 그에게 다 드러난 것 같아 나는 기분이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