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어/동웨이(동수X다웨이)]
전쟁, 그 마지막
[몰라요, 이게 마지막 쪽지가 될까요?]
몰래, 나무 뒤에 숨어 숨을 죽이고, 혹시나 제가 편지를 쓰는 소리마저 들릴까, 조심스러워하며 한 획 한 획, 아무 소리 하나 나지 않게 쓰던 그 소년. 얼마나 집중하고 있던 것인지, 달빛에 비친 소년의 속눈썹은 파르르 떨려오고, 잉크 한 획 한 획은 모두 힘이 들어가 올곧은 글씨가 되었다. - 의도치 않은, 올곧은 글씨였지만 말야. 곧 소년은 쪽지를 접고, 곧 나무 너머로 그것을 던졌나. 오, '잘 던져졌다'. 저 쪽지.
그것을 나무 너머에 있던 또 다른 – 청년이 받았다. 소년과 또래로 보였지만, 소년보다는 조금 성장한 티가 나는 - ‘청년’에 가까웠던 그였다. 역시 그 청년도 소년의 편지를 받고, 또 무언가를 써 내려갔을까. 소년은 잉크로 글씨를 써 내려가는 그 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건지 – 나무에 제 고개를 기대어오더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곧 던져진 편지. 자신에게로 돌아온 종이에 소년은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곧 종이를 편 그 순간에는 – 소년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점점 양 끝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조용했던 밤, 누구보다 조심스러웠던 그들, 영롱한 달 빛 아래에서 – 정적을 깨듯, 소년은 잠시 침을 한번 꿀꺽, 삼켜 목 울대를 움직이다 곧 입술을 떼었다.
“나도, 나도 그래요 - ”
건너편의 남자가 웃는다.
*
처참하다.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처참했다’, 그랬다. 자신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 ‘도망자’, ‘배신자’ 상태의 자신의 속내도 그 못지않게 처참했지만, 잔뜩 곪은 피딱지, 그리고 지혈하나 못한 채 연신 콸콸 흘러나오는 피들. 그의 모습은, 그가 살아서 걷는다는 게 신기할 만큼 - 상처가 심각한 그런, 모습이었다. - 안쓰럽게 느껴졌더라. 그가 적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그가 적군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자신은 소련군의 배신자였다. 어차피 자신은 도망 나온 것이었다. 나라를 배신했어. 피식, 웃음밖에 안 나왔다. 배신한 상태이니까, 저 소년을 치료해줘도 되지 않을까. - 하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서. 때마침 자신은 의료병이었다. 그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그 – 소년, 앳되어 보이는 그 소년은 자신을 바라보더니,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차라리 죽여요 빨리’. 그 소년이 남자에게 처음 한 말은 그 말이었다. - 애처롭게 글썽이며 떨려오는 눈과, 역시나 힘없이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와는 참 모순되는 그 말.
남자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총을 들 힘마저 없는 건지 소년은 총을 들 시늉을 하다 이내 바닥으로 떨어트려 버리더라. 다시 한번, 차라리 죽여달라. 고 소리쳤다. 죽음을 앞둔 소년의 눈빛은, - 그 누구보다도, 안쓰러워 보였다.
“진짜로 죽여주길 바라?"
남자의 말에 소년은 말이 없다. 제 입을 꾹 닫았다. 역시나,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어.
‘겁쟁이네’ 라 남자는 피식 웃으며 제 가방을 뒤적여 치료도구를 하나둘씩 꺼내왔다. 소년의 눈빛이 반짝였어. 왜 – 왜 - ,라고 말하는 듯 보였지만. 남자가 먼저 ‘소련군이 유엔군을 도와주면 안 되냐?’라고 피식 웃어와. 상식은 아니지 않나요. 라 남자는 바로 그에게 말 대답했지만, 남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이어 말해왔다. ‘사람이 다쳤는데, 치료해주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여기는 전쟁터인걸요”
“난 이제 군복을 입은 일반인이고”
아니, 소련의 입장에서는 ‘배신자’ 일까. 씁쓸한 미소를 그려내 보인 그는 그에게 몸을 돌리라는 듯 손짓해서, 소년은 바로 고개를 갸웃이며 – 몸을 돌려올까, 왜, 무슨 생각이 들었기에 그 표정인데,라며 남자가 소년에게 물었다. - 군대에서 도망 나온 거예요, 당신?. 난 유엔군인데. 유엔군인 거 알면서, 나를 도와줄 만큼 그 군대가 싫었던 거예요? 왜 그러는 거예요? 내가 후에 당신을 죽일 수도 있는데?
“상관없어”
너 같은 애들이 죽어 나가는 게 싫어서. 그래서 도망쳐 나온 거야.
일리야라고 불러, 이제 군인 아니야.라고 남자는 그렇게 말한 후 붕대를 묶어줬다. 소년의 표정이 참 미묘하게 변해갔다. 일리야, 일리야, 주문 외우듯 그의 이름을 입가에 되뇐 소년은 곧 – 제 입술 사이, 작은 목소리로 ‘저는 블레어에요’라며 말해오더라.
*
달밤의 쪽지는 그날로 끝이 났다. 거짓말처럼.
항상, 매일 밤마다 [이 쪽지가 마지막이 될까요?]라고 물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웃곤 했었지. 종이로 느껴지는 서로의 온기 속에 담긴 말, ‘안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라는 그 말을 서로 묵묵히 되뇌어가며, 우리는 쪽지로서 사랑을 나누었다. 두근거렸다. 물론 얼굴을 보고 싶어 –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 키스, 뽀뽀, 다 하고 싶어 – 그랬지만 – 전쟁터에서 만난 우리. 전쟁터에서 적군으로 만난 우리의 운명은, 그것까지 허용해주지는 않았다.
그 온기를 이제 느끼지 못한다. 거짓말처럼, 오랜만에 본 너의 얼굴에는 – 온기가 남아있지 않다.
따듯한 웃음도 사라졌다, 해맑았던 너의 모든 행동들도 이제 너는 보여주지 않는다. 소년은 쓰러지듯이, 남자 위로 엎어져 남자의 품에 안았다. 하지만 – 남자는 더 이상, 소년을 품에 안아주지 못 했다. 소년의 등에 자신의 손을 감싸 안지 못 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붉은 자국만 가득한 이 남자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처음 반했던 날 – 그때처럼. 안아줄 순 없는 거야?.
소년의 얼굴에는 울음기가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톡, 치면 눈물을 와르르 쏟아내릴 듯이, 소년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얼굴에 제 손을 가져다 대어본다. ‘금방 끝날 거야’ ‘전쟁이 끝나면 같이 비빔밥 먹으러 가자’ ‘나라는 나라고, 우리는 우리잖아? 다웨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처음 만난, 또 거짓말처럼 첫눈에 반했었던 그날 – 서로 매고 있는 총과는 어울리지 않게, 다정하게, 달콤하게 네가 나에게 속삭여주었던 말들. 제일 달콤했던 - ‘사랑해’라는 말, 이제 못 해주는 거야?.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거야?.
바보 같다. 동수, 너 너무 바보 같아. 이제 종이로라도 옮겨지는 너의 숨결과 따듯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 이 상황이 – 너무 바보 같다. 이렇게 쉽게 세상을 떠나가 버린 네가 너무 바보 같다.
차라리, 나도 따라갈래, 나도 따라갈래 동수, 이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죽은 너, 나도 차라리 – 네 곁에 있을래. 바보 같은 짓 하고 싶어, 나.
*
“아, 으 - ”
소년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워질 정도로 – 거의 토해내다시피 울었다. 연신 울었다. 그런 소년을 마냥 안쓰럽게 바라보는 남자도, 안쓰럽게 바라볼 뿐, 무어라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더라. 소년이 우는 이유를 알았다. 모든 사건을 자신은 알았다. 그러기에 – 위로해주기가 어려웠다.
“사람을 죽였어요, 사람을 - ”
일리야 씨를 만나고, 더 이상, 사람을 죽이기는 싫었는데. 죽여버렸어요. 내가 또 죽여버렸어요.
시신은 싸늘하다. 아무래도 남한군 – 인가, 이름도 석 글자 쓰여있어. 하지만, 이건 실수였잖아 블레어. 그냥 풀숲을 돌아다니는 – 짐승인 줄 알았잖아. 라, 남자는 뒤늦게 그를 토닥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늦은 건지, 그는 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떡해요 일리야. 내가 사람을 죽여버렸어요. 나 너무 무서워. 어떡해요, 나 어떡해 -
나 있잖아, 너무 무서워. 너무 무서워요.
곧 소년은 남자의 품에 꼭 안겼다. 그래 차라리 안겨라, 이렇게라도 소년의 긴장감을 덜어주는 것이 나았다. 블레어 우선 자리를 옮기자. 저 시체를 계속 보면 – 블레어의 상태만 더 나빠질 것 같아,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어. 그 시체가 이제 시선 안에 들어오지 않고, 다시 한번, 그 소년이 남자의 품에 안겼을까. 조금은, 조금은 가라앉았는지 울음소리가 희미하다. 여전히 – 울음소리는 지속되었지만.
블레어, 괜찮을 거야,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이 전쟁은 언젠간 끝이 나고, 네가 웃을 날이 올 거야. 저 사람도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괜찮아질 거라고 믿어. 더 이상 약해지면 안 돼. 내가 널, 내가 널 지켜줄 테니까. 내가 죽더라도 널 지켜낼 거니까. 그러니까 넌 앞으로 웃을 날만 생각하고, 그날만을 바라봐. 그래 그래 봐.
“일리야 - ”
그의 눈썹이 잔뜩 젖어있다. 품에 안긴 그는 서서히 일리야의 목에 제 손을 감싸 안아왔다. 나눠달라는 것이다. 그 용기를, 따듯함을, 자신에게 -
입을 맞췄다. 소년의 울음은 점점 멎어가고, 어느새 뚝, 울음을 멈추게 되었다. 소년의 울음이 멎어 들어갔다.
+
여러분 모두 안녕!
글잡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일수도 있고, 다음 만남을 위한 인사일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생각이 너무 많아요.
'글잡'에서만 하는 '안녕'이니까. 언제나 독자님들의 곁에있을게요
고마웠어요!.
Pity is akin to love,내특당 부터,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