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수업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나이가 꽤 있으신 교수님의 말투가 백현의 귀에는 자장가로 들렸다. 흰색 셔츠에, 하늘색 반바지를 입은 그는 전혀 흥미 없는 얼굴로 앞에 놓인 파란색 펜을 잡았다. 의자에 등을 기대 느슨하게 앉은 백현이 무심한 표정으로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위에서 팽이가 도는 것처럼 핑그르르 돌아가는 펜은 그렇게 한참이나 멈추지 않고 돌았다. 강의실에서 백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것이 참 다행이었다. 혹시나 누군가 백현의 손가락 위에서 돌아가는 저 펜을 보았다면, 분명 저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생각했을 것이 뻔했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건지 종이가 사각거리는 소리에 백현이 힐끔 앞을 바라보았다. 그림보다는 글씨가 가득한 ppt에 아주 잠깐 눈을 두었다가, 곧바로 흥미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옆에 앉은 준면에게 시선을 옮기자 준면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흥미 가득한 얼굴로 수업을 듣고 받아 적기 바쁘다.
“따분해.”
하나도 재미 없어. 건조한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 백현이 다시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같이 펜이 백현의 손가락 위에서 흔들림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깐을 그렇게 펜을 돌리던 백현이 순간적으로 펜을 돌리던 것을 잡았다. 여태 한 번도 멈춰서지 않았던 펜이 백현의 손길에 의해 돌아가는 것을 멈추었다. 백현의 귀가 살짝 움직이고, 갑작스레 백현이 한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곤 아무런 말도 없이 그 곳을 가만히 응시했다.
“…….”
갑작스러운 백현의 행동에 수업을 듣던 준면이 힐끔, 백현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혹시나 수업에 방해가 될까 작게 묻는 준면의 물음에도 백현은 아무런 답이 없다. 다시 한 번 백현의 양쪽 귀가 쫑긋거렸다. 꼭, 동물의 귀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대답 없는 백현을 빤히 보던 준면이 고개를 돌려 백현이 응시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데…. 대체 뭘 보는 거야. 다시 백현을 향해 물을 심산으로 백현을 향해 고개를 돌린 준면의 눈에 살짝 올라간 백현의 입꼬리가 들어왔다.
“Lime, Berry…. Oh, how sweet!”
“뭐?”
되묻는 물음이 들리지 않는 건지 백현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찾았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책상 위에는 애초에 아무 것도 올려놓지 않은 덕분에 옆에 둔 가방만 낚아챈 채로 재빨리 걸음을 옮긴 백현이 덜컥, 하고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놀란 준면이 “야!” 하고 백현을 불렀지만 이미 백현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갑작스럽게 수업이 중단되고 모두의 시선이 홀로 남은 준면에게 닿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 하는 바보 같은 소리만 흘리던 준면이 급하게 제 책상 위의 책들을 정리하며 머리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하는 말과 함께 제 짐을 모두 품에 안은 준면이 백현을 따라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
교양 수업이 시작되고 학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늘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는데, 갑작스레 내 옆의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옆을 바라보자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내 옆에 앉아 제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하얀 셔츠에 하늘색 반바지, 처음 보는 얼굴….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렇게 오래 바라보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싶어서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수업 교재를 꺼냈다.
수업이 시작되고 필기가 많은 과목이라 손목이 조금씩 저려올 때 즈음, 문득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생소한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처음 보는 그 남자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연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싶어서 금방 앞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여전히 이 이상한 시선은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다시 한 번 옆을 힐끔, 바라보는데 이번에는 그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
“…….”
아무런 말도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심장이 조금 전보다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저 남자는 왜 저렇게, 날 보고 있는 거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묘한 기분이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어 얼른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먼저 고개를 돌리는 내 행동에 가만히 날 바라보던 남자가 피실, 피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사람은….
잠깐 쉬었다가 이어간다는 말에 수업 내내 가지고 있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책을 한 쪽으로 밀어놓곤 밀려오는 졸음에 책상 위로 몸을 엎드리자, 그제서야 내게 닿았던 불편한 시선이 떨어지는 것이 느낌으로 느껴졌다. 조금은 더 편해진 기분과 함께 잠에 빠지려는 그 즈음, 옆에 있는 남자의 주위로 함께 교양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래.”
처음으로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귀로 흘러 들어왔다. 생각보다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생긴 것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조금 더 날카로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하여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왜 드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의 인사를 받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뭐라고 더 물으려는 듯 “선배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남자가 “쉿.”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와 함께 복잡하게 얽혀가던 내 생각도 조금씩 흐려졌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서서히 잠에 빠졌다.
잠깐의 단잠이 끝나고 졸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서 손바닥으로 양쪽 눈을 꾹 누르는데, 갑작스레 내 팔로 차가운 느낌이 닿아왔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떼고 고개를 돌리자, 옆에 앉은 남자가 내게로 하늘색 음료수 캔을 내밀어왔다.
“마셔.”
“…아.”
“…….”
“감사합니다.”
“별걸 다.”
말을 끝낸 남자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남자의 손에서 음료수를 받아 들자, 양 손이 자유로워진 남자는 이제 아주 노골적으로 턱을 괴고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음료수를 따서 한 모금 꼴깍이는데 또 다시 닿아오는 시선이 따갑다. 그리고, 그 시선과 함께 다시금 마음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저어….”
웅얼거며 저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남자가 “응.” 하고 다정하게 답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뭘?”
“…아까 전부터, 쭉 그렇게 저 보고 계셨잖아요.”
주눅이 든 내 목소리에 남자가 피실 피실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관찰하는 중이야.”
“…네?”
“네 얼굴의 어디가, 네 향기 만큼이나 달콤한 건지.”
알 수 없는 대답에 순간적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민망한 느낌도 들고, 하여튼,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 대신 고개를 앞으로 휙 돌렸다. 그러자,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다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대체…. 괜히 손에 잡은 캔만 만지작거렸다. 캔의 표면에는 물방울이 송골 송골 맺혀져 있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남자는 나를 따라왔다. “왜 따라오세요?” 하고 웅얼거리며 묻는 내 물음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따라가는 거 아니야. 나도 가는 길이 여기일 뿐야.” 그 말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다시 입을 꾹.
익숙한 버스 정류장에 엉덩이를 붙이자 남자는 내 옆쪽에 팔짱을 낀 채로 기대어 섰다.
“버스 타고 가?”
“…네.”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짧게 대답을 하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가득한 버스 숫자들 사이로 내가 타야하는 161번 버스가 곧 도착이란 글자와 함께 깜빡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익숙하게 버스위로 올라서자 남자가 나를 따라 버스 위로 올라섰다. 카드를 찍고 버스 안을 둘러보자 자리는 2인석 한 곳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의 창가쪽에 몸을 앉혔다. 가방을 무릎 위로 올리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내 옆으로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힐끔 돌려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그 남자다.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 앉은 남자는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차마 대놓고 남자를 바라보진 못 하고 힐끔, 힐끔, 남자를 훔쳐보듯 바라보았다. 참 이상했다. 이 사람을 바라볼 때면 기분이 정말 …묘했다.
버스가 덜컹이는 느낌, 지루한 시간에 졸음이 조금씩 쏟아졌다. 전날 밤 늦게 잔 게 화근인 듯 했다. 서서히 내 눈이 감기고, 고개가 꾸벅, 꾸벅, 앞으로 떨어지며 졸다가 과속 방지턱을 지나가는 버스 덕분에 잠에서 스르륵 깼다.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눈을 살짝 비비는데 갑작스레 옆의 남자가 제 어깨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기대.”
그 말에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서 손과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내 대답에 또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남자는 “그래, 그럼.” 하는 답과 함께 피식 웃음을 흘렸다.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창피해서 졸지 않겠다는 생각과 함께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의 거리는 아침, 저녁보다는 훨씬 한산했다. 볼 것도 없는 밖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신호에 걸린 듯 버스가 도로에 멈춰섰다. 그리고, 멈춰선 내 시선에 저 멀리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트럭이 잡혔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누가 봐도 트럭의 움직임은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찜찜한 기분과 함께 트럭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 트럭이 점점 멈춰선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버스의 옆면, 그러니까 내가 앉은 바로 이 곳으로.
어…….
…어… 어?
점점 트럭이 내게로 가까워지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내 몸은 그 상태 그대로 굳기 시작했다. 어떻게 몸을 일으킬 틈도 없이 파란색의 트럭은 코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트럭의 환한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나 이렇게 죽는 거야?
그리고 그 때, 부드러운 손 하나가 내 눈위를 살포시 덮었다. 이어서 내 허리를 감싸는 팔 하나,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는 부드러운 한 마디.
“눈 감아.”
그 목소리에 마법처럼 내 눈이 감겼다. 이어서 쾅, 하는 엄청난 폭발음이 귓속을 울리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 파편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난 자동차 조각이 내 팔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찢어지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절로 높은 비명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나왔다.
몸이 떠밀리는 느낌과 함께 주위가 다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내 눈 위를 덮은 손과 허리를 감싼 팔은 그대로였다. 찢어진 내 팔에서는 피가 흐르는 건지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반복되는 큰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그리고 그 때, 이상하게도 크게 울리던 폭발음이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신호등에서 나는 보행자 알림 소리.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소음에 의아함을 느끼던 그 때, 내 허리를 감쌌던 손과 눈을 덮었던 손이 내게서 떨어졌다. 천천히 눈을 뜬 내 흐릿한 초점이 점점 또렷해지고, 나는 눈 앞에 보이는 광경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곳은 조금 전 내가 있었던, 그 버스정류장이었다.
힐끔 고개를 돌리자 버스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광판에는 아까 전과 같이 161번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글자와 함께 깜빡이고 있었다.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다가 급하게 긴팔을 걷어 올렸다. 분명 팔이 다 찢어지는 끔찍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지금 내 팔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다. 반대편 손으로 내 팔을 문질러 보았지만 아픈 느낌조차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까 서 있던 그 모습 그대로 기대어 선 남자가 날 바라보며 웃었다. 팔짱을 낀 채로 날 내려다보던 남자가 웃으며 물었다.
“위험했네. 그치?”
“…지금… 이게….”
“이래도 버스 타고 갈 거야?”
“…….”
대답 없는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가 팔짱을 풀곤 내게 한 손을 내밀어왔다. 그리곤 눈이 접히게 웃으며 말했다.
“걸어가자.”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남자를 바라보기만 하는 내 눈이 파르르 떨렸다. 입을 꾹 다문 채로,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처가 없는 내 팔 위를 다시 문질렀다.
♡
안녕하세요! iKON 글이 아니라 왜 이 글이냐 물으신다면.. 백현이가 예뻐서? 저 이렇게 징밍아웃 하는 건가요.. 저란 콘징, 징콘.. *.* 제게 있어서 애정 왕창 담긴 아이돌은 엑소와 아이콘이라죠..!☆
이번 글은 BBB의 백현이 버전입니다 BBB 속의 주인공은 뱀파이어라는 설정이에요, 백현이 또한 뱀파이어! 켜니 사진 보고 심장 어택 당해서 썼어요, 좀 더 막 퇴폐미 넘치는 백현이를 쓰고 싶었는데, 이게 뭔가, 쓰고보니 되게 청량한 백현이 같기도 하고.. 약간 포카리 같은 느낌? 음?
BGM은 퇴폐미에 어울리는 boris-Lo Fang입니다!
뭐 암튼! 늘 있어주시는 독자분들이든 새로운 독자분들이든 즐겁게 읽어주셨음 하는 바람! 저는 이번 글로 제 만족을 했으니 갑니다! 워아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