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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밭 위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검은 옷의 여자와
하얀 눈 밭이 곧 그인 것 같은 남자가 서 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너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너와 나의 위치는 처음부터 달랐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어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너와
바뀌는 세상이 무서워 너를 노리는 사람들의
돈을 받은 한낱 자객일 뿐인 나
연모하는 이를 내 손으로 죽일 바엔
내가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연모하는 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아프지 않으나,
연모하는 이가 제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죽을 만큼 아플 것입니다.
그러니 죽지 마시고, 죽이십시오"
허나 넌 끝까지 나를 위해 말한다
이런 너를 어찌 연모하지 않으랴
망설이는 나의 칼 끝을 맨손으로 잡으며 다시 입을 연다
"당신이 죽는 것보다는 내가 죽는 것이 아프지 아니할 터이니,
내 죽음으로 당신이 산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터이니
부디 평안하시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나와 함께 끌어 안는다
정작 아픈 것은 너일텐데 발악하며 울고 있는
나의 등을 쓸어내리는 너를
이런 너를 어찌 연모하지 않으랴
이런 너를 두고 어찌 평안하랴
하얀 눈 밭에 꽃이 핀 듯 붉은 색이 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