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하지마 너"
"뭐?"
몇시간 뒤 중요한 경기가 있다.
휴대폰에 기성용. 이라는 이름이 떴을때, 사실 나는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빠른년생이긴 해도 한살 연하의 싸가지없기로 유명한 내 남자가 이런 날 만큼은 무언가 기운을 북돋아줄수있는, 달큰한 말을 해 줄줄 알았다. 쉬운 말이지않은가? 힘내라던가, 내일 잘될거야 같은... 그러나 내 상상은 단박에 깨지고 말았다. 애초에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하아 하고 숨을 내려쉬고 애꿋은 라켓만 벽에 툭툭 치며 나는 대답대신 숨을 집어 삼켰다. 정말, 정말, 싹퉁바가지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대뜸 전화 받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여보세요, 도 아니고 윙크하지마란 소리다. 그것도 굉장히 불쾌하고 기분나쁜듯한 중 저음의 목소리로.
"...야, 듣고있냐고 이용대. 야."
이게,
"듣고있어."
"근데 왜 대답안해. 윙크 하지말란 내 말 못들었어?"
들었으니까 이러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들었어.. 그리고 야야 거릴래? 아무리 니가 빠른년생이라도 내가 형이거든?"
"치사하게 형은 무슨 형이야 내 동창들 다 88년생이야."
"동창이니까 친군거지 사회에서는 빠른년생 통상안돼는거 모르냐?"
"사회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키도 나보다 작은게."
"키랑 형동생이랑 무슨 상관있는데!"
언성을 높히고 말았다.
빽 소리를 지르자 코치님이 이쪽을 흘깃 쳐다본다. 무슨일이야? 아무..아무것도 아니에요. 머쓱하게 웃으면서 다시한번 한숨을 내려쉰다. 휴대폰 너머로는 어이없다는듯한 실소가 피식, 흘러 내린다. 아, 재수없어..재수없어 기성용.
"됐고, 윙크하지말라고."
"...."
또 원점으로 돌아왔다.
"...왜?"
하도 어이가없어서 되물었다. 대뜸 한다는 소리가 윙크하지말라고? 오늘이 나한테 어떤날인데, 윙크 나부랭이나 물고 늘어지는 기성용이 야속해서 입술을 질끈 깨문다.
"왜냐니?"
오히려 건너편에서는 왜 그걸몰라? 하는 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왜냐니? 왜냐고? 왜? 내가 묻고싶은 말이다.
"...너 오늘이 무슨날인진 알아?"
"아니까 전화한거 아냐. 친히. 바빠죽겠는데."
"..."
정말 이정도로 말이 안통하리라곤,
사실 사귀기 전부터도 그다지 말이 잘 통하는 상대는 아니었다. 대뜸 내게 처음 했던 말이 휴대폰번호 가르쳐 달라는거였고, 두번째 대뜸 했던말은 내가 마음에 든다는 말이었다. 전부 다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식의 대화였다. 나는 항상 그런 기성용에게 끌려다니고, 휘둘리고,
"나도 바빠. 이럴거면 끊어. 무슨소릴 하고싶은건지 모르겠네."
"끊기만해봐 너."
"..."
"숙소 돌아가면 가만 안둘거니까."
"그야 니가 윙크하면 기집애들이 꺅꺅거리는거 보기싫으니까."
"그게다야?"
"설마 그게 다 겠어?"
"...그럼 또 뭐가있는데?"
뭔가 했더니 이건가, 그 커다란놈이 이런 사소한것에 질투를 느끼고 있으리라곤, 방금 전 까지만해도 어이없던것이 지금은 어렴풋히 귀엽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고말았다.
"니가 그딴짓거리 하면 하루종일 뉴스에 그 장면 나오고, 나오고 또나오고."
"....또?"
"나말고 다른놈이 너 채가면 어떻게 해?"
"...푸하하하하!"
"물론 그렇게 놔두진 않을거지만."
아- 귀엽다 귀여워 기성용.
그런 이유에서였다니, 코치님의 시선에 웃음을 참으려고해도 입꼬리가 씰룩씰룩 거린다. 지금 어떤 표정 짓고있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뚱한 얼굴로, 허리에 손 척 올리고, 웃지마, 웃지말라고. 신경질내고 있는 내 남자가 귀여워서 나는 숨을 가다듬고 억지로 웃음을 집어 삼켰다. 그랬어요? 형아가 윙크하면 다른 사람들이 반할까봐 걱정됐어요~? 라고 묻자 아씨, 하며 이번에는 듣기 껄그러운 욕설들이 튀어나온다. 아이고.. 우리 멍멍이 입 더러운것좀봐. 내가 그렇게 나있는데서 욕하지말라고 그랬는데. 하여간 내 말이라곤 들어주는 법이 없다.
"근데 어쩌냐, 나 이미 광고로 계약해서 그거 세레머니로 해야되는데."
"....."
침묵이 길게 늘어진다.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데도 입고리가 들썩거린다. 소리가 셀까,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서 나는 어깨를 끅끅 거렸다.
주위에서 누가보면 완전 미친놈으로 보일게 틀림없다. 코치님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용대야 누구랑 그렇게 통화를 오래하냐, 연습안하냐, 는 소리에 나는 죄송해요. 금방 끊을게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휴대폰 너머로,
"금방 끊어? 뭘 끊어 내 이야기 아직 안끝났는데."
"야 계약한건 어쩔 수 없는거야. 애도 아니고... 더 할 이야기 없지?"
"...."
"그리고..아직 나 이기지도 않았거든? 이기지도 않았는데 뭐 벌써부터 그거 걱정이야.."
"....이길거야 너."
"....어?"
"이길거라고. 열심히 했잖아. 연습."
...으응. 불시의 말에 얼굴이 확 붉어지고 말았다. 그..그렇지, 열심히 했지... 기성용한테 이런식의 말을 듣는건..거의 처음아닌가? 적응이 되지않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그러고보니 정말 이용대 인생 안됐다, 애인한테 이런 따숩한 말 듣는게 처음이라니... 겨우 이런말 듣고 심장이 뛴다니.. 그런데도,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눈이 가늘게 떠 졌다. 니말대로 되면 좋겠네, 하고 말하자 당연하지 누가 말한건데, 하며 기성용이 톡 쏘아 붙였다. 하여간 한마디도 져 주는 법이 없지.
"잘해."
"..어?"
"나도 잘할거니까."
"...응."
"나는 항상 잘했지만."
하하, 웃는 수 밖에, 하긴 요 근래 성용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러고보니 다친건 다 나았나..? 물으려고 하기도 전에 성용이 먼저 말을 이었다.
"...땀닦을때 옷 훌렁훌렁 벗지마."
"카메라랑 시선 마주쳤을때 웃지마."
"기집애들 꺅꺅거린다고 돌아 봐 주지마."
"...다 내앞에서만해."
가만히, 그 목소리를 듣는다.
"더 없어?"
"뭐?"
"더 없냐고, 하면 안돼는거."
"윙크."
"알았어."
귀여워,
그래, 귀여우니까 이번만큼은 니 말 들어준다 이 형아가. 하고 말하자 까불지마라 이용대,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여간. 하여간 싸가지없는건 알아줘야되요. 실실 웃음이 나는것을 억지로 참고서, 그럼 끊는다고하자 다급하게 성용이 내 이름을 부른다.
"..왜. 또 뭐 할말있어?"
"너 내가 하지말랬던거 하기만해봐."
"..하면 어쩔건데?"
어쩔거냐는 내 말에 건너편에서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동안의 침묵에 괜히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된다. 때리기라도 할건가..? 아니면 헤어진다던가.. 이건 좀 아닌가, 아니면... 삐지려나? 화내려나..
"너 만나면, 다 벗겨서, 니가 싫어하는 곳, 못참는 곳, 힘들어하는 곳. 하나하나 다 괴롭혀 준 뒤에
니가 울기 시작하면 침대위에 억눌러서 안을거야. 그만해달라고 해도 계속 할거야. 니가 울어도, 억지로 두 다리 훤히 다 벌려서 니가 싫어하는
체위로-"
"그만."
그만..그만해, 듣는 것 만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상상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대답에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귓전까지 울릴 정도였다. 뭘..뭘 어쩐다고? 어이가없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한참을 멍하니 입을 뻐끔거리다가 겨우 진정할때쯤 기성용의 한마디.
"...그러니까 알아서해."
"야 너 진ㅉ..."
뚜
뚜
뚜
뚜
."...."
지 할말 끝났다고 먼저 끊냐!
아오 진짜 저걸 찾아가서 패줄수도 없고! ......사실, 눈앞에 있다고해도 나는 기성용을 패줄수가 없다.
체격이라면 나도 꾀 좋은편이고 힘도 어디가서 딸리는편은 아닌데, 기성용한테만큼은 안됀다. 이길수가 없다. 하여간 무식하게 몸뚱이는 커다래가지고, 힘은 겁나게 쌔가지고..... 끊긴 전화를 허망히 바라보다, 주머니에 밀어놓고 바짝타는 목에, 물로 목을 축였다. 뭘 어쩐다고? 기가차서 웃음이 피실 흘러 나왔다. 아. 그러고보니... 한지 얼마나됐을까, 아니, 얼굴 못본지 벌써 몇일째더라..? 오늘은. 볼 수 있을거라고 하던데.. 오늘은...
- 이길거야 너.
이길 수 있을까?
- 열심히 했잖아. 연습.
응..
이겨야겠지, 우리 멍멍이 말대로.
이길 수 있을거야. 열심히 했으니까... 만약 이기게된다면, 세레머니는 어떤게 좋을까.
그거야 물론 윙크지.
푸흡 하고 웃고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남은시간도 연습해야지, 그래야 이기지, 그래야 윙크도하고..
오랜만에 만날 너와-
-
.
글잡에 글 처음올리는 글이라 두근거리네요.
일부러 수위조절을 위해 끊었어요.
그 뒤에 어찌됐을지 물론 아시죠?ㅎㅎㅎㅎ^~^
조금뒤에 경기 시작하네요! 헤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