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리리리 -
알람이 채 꺼지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졌다.
드디어 오늘이다. 대망의 그날! 첫.데.이.트!
상쾌하고 들뜬 마음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온몸 구석구석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나왔다.
스윗소로우의 첫데이트를 흥얼거리며 이 옷이 좋을지, 저 옷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산뜻하고 화사하고 비비드한 옷을 꺼내들었다.
너무 과한 듯한 설정에 고개를 갸웃하곤, 그냥 간편한 캐쥬얼로 차려입었다.
약속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오늘같은 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도
설렐 것 같아 일찍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역시 약속시간보다 일찍 왔던 탓으로 약속 장소에는 나밖에 없었다.
첫데이트이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입장이라, 장소는 수수하고 조용한 룸식 식당.
방학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떠 기다리는 입장임에도 콧노래가 절로 흘렀다.
'똑똑똑'
정갈하고 경쾌한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길다란 다리가 쑤욱 하고 모습을 보이고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에 밝은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박태환입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그분...!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나의 사랑 태환씨가 저벅저벅 걸어와, 동그란 탁자 옆에 앉았다.
설레는 마음에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는데, 태환씨가 나에게 "오늘 잘부탁드려요."라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아주 크게 끄덕였다.
'똑똑'
태환씨가 들어올 때와 같이 노크소리가 들리고, 아주 커다란 키의 남자가 쑤욱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너무 늦은건 아니죠?"]
사진보다 실물이 잘생긴 쑨양이 멋쩍은듯 뒷목을 긁적였다.
쑨양이 얼굴에 발갛게 홍조를 띄우고 태환씨를 마주보고 앉았다.
사실 나는 한국어 - 중국어 동시통역을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
박태환의 무지막지한 팬이다. 그리고 더불어 쑨환커플의 최고 지지자이기도 하고.
한참 쑨환 커플에 대한 자료들과 떡밥들에 빠져 허우적대다,
바로 오늘, 쑨양과 박태환이 따로 만나 저녁밥을 먹기로 약속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간편한 대화를 위한 동시통역가를 찾는다는 말을 어둠의 경로를 통해 들어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나는 다른것은 다 제쳐두고 저 둘의 사랑스러운 떡밥들을 눈 앞에서 실사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황홀하고 기쁠 따름이었다.
저녁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냥 소소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사실 간단한 영어도 가능했기에 딱히 내가 있을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었는데,
밥을 다 먹고나서 두 사람은 계속 짧은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에 지쳤는지,
나를 보고 잘부탁한다며 웃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둘의 대화에 투입되어 동시통역을 시작했을 때도, 둘은 사소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수영방법에 대해서, 혹은 삶의 가치관, 훈련법 등등.
커플같은 냄새를 풍기는 떡밥도 더이상 나오지 않고, 슬슬 둘이 하는 양이 지루해졌던 나의 머릿속으로 아주 기가막힌 장난거리가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이런 기회가 두번 오지도 않을텐데, 한번 제대로 일쳐보자!
마침 쑨양이 태환씨에게 물었다.
["태환.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어떤 스타일입니까?"]
물론 이 질문은 수영법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저는 자유형을 좋아해요. 물 속에서 빠르고 자유롭게 수영하는 것이 좋아요."
태환씨의 이 발언에 나는 이 때다, 싶어 쑨양에게 말했다.
["태환씨는 그대가 좋다고 합니다. 물 속에서 빠르고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에 반했답니다."]
나의 말을 들은 쑨양이 벙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태환씨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내 귀로 쑨양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벙진 쑨양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태환씨가 쑨양에게 되물었다.
"그럼, 쑨양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나요?"
["쑨양은 이 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네요."]
["......사랑해요. 태환의 웃음 가득한 선한 얼굴도. 귀찮게 쫓아다니는 나를 배려하는 마음도.
나보다 15cm 작은 키도. 그냥 그 모든것이 내 스타일이에요."]
쑨양의 진심이 가득 묻은 고백과 태환씨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과 낮고 무겁지만 떨리는 음색에
내가 만든 상황이라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 말을 직접 알아들을 수 없는 태환씨가 애석하게 느껴졌다.
벙진 나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한 태환씨가 나에게 물었다.
"쑨양이 뭐래요?"
".....쑨양은.... 박태환씨....당신을...."
"네?"
"....사랑하고 있대요. 당신의 웃음 가득한 선한 얼굴도, 귀찮게 구는 쑨양을 배려하는 마음도.
그 모든것이.... 박태환씨의 모든것이 쑨양의 스타일이래요."
나의 말에 태환씨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태환씨의 얼굴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허겁지겁 디저트로 나온 카페라떼를 마셨다.
컵을 내려놓은 태환씨의 입에는 카페라떼의 우유거품이 묻어있었고, 쑨양이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손을 뻗어 태환씨의 얼굴로 가져갔다.
당황한 태환씨는 그대로 굳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쑨양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고,
쑨양은 중국어로 거품이 묻었네요. 라고 이야기하며 태환씨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쑨양의 얼굴이 태환씨의 얼굴과 거의 다다랐을 즈음, 쑨양이 살짝 혀를 내밀어 태환씨의
입 주변에 묻은 거품을 할짝, 하고 핥아 없앴다.
태환씨가 당황한 표정으로 꿀꺽, 하고 침을 삼켰고, 쑨양이 웃을듯 말듯한 표정으로
피식, 실소를 뱉은 후 조용히 읊조리고 입을 맞추었다.
["我爱你.(워아이니)"]
당황스러워하는 태환씨의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쑨양의 시야와 태환씨의 시야에 이미 나는 없는 존재였다.
몇번이고 쪽, 쪽, 입을 맞췄다 떨어졌다를 반복했고, 태환씨가 결국 눈을 감으며 쑨양의 목에 팔을 감자, 그 둘의 본격적인 키스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둘만의 시간을 위해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
급 쑨환에 빠져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모장에 끄적였네여.......... 하..........
이건 뭐.... 웃기지도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ㅠㅠ 슬프다능.......
혹시 내가 동시통역가가 되었다고 가정할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짜로 통역해주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끄적여봤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헤헤헤헤헿
ㄷ....댓....그...ㄹ..... 굽신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