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 정도면 내 대답 된 거 같은데.” “좋네, 대답을 행동으로 하는 거.” “그럼 하던 거 마저 할까, 성이름?” “안 돼- 내일 일찍 출근해야지.” “그래, 그럼.” “왜이렇게 포기가 빨라?” “같이 자면 되니까.” 순간 우리 사이엔 정적이 흘렀고 나는 내 손을 올려들어 엑스자로 꼬아 아무 말 없이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걸 본 재욱이는 어이가 없다며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안 건들여. 보기만 해도 아까운 걸 어떻게 건들여, 내가.” 그렇게 우린 같은 공간, 그러니까 한 방에 한 침대에 같이 누웠고 그런 상황 자체가 야하다거나 민망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편안하게 흘러가는 시간 그대로를 느꼈다. 그냥 따뜻했다. 그의 품이. “그래서 혜윤씨랑은 어떤 사이인데?” “혜윤이-“ “이봐 이봐, 또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 나한테는 맨날 성이름, 성이름 하면서.” “난 이름이보다 성이름이 더 좋은데.” “왜?” “몰라, 그냥 좋아. 성이름이니까.” “그게 뭐야..” “질투해, 성이름?” “아니거든.” 쪽 “뭐야, 갑자기.” “귀여워서.” “한 번 더 해줘. 그럼 용서할게.” 쪽— 서로의 온기가 맞닿은 상황 속에서의 모든 행동과 말들은 애정이 가득했고 따뜻했다. 누군가에게 안겨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따뜻한 건지 몰랐는데, 그게 재욱이여서 더 따뜻했나보다. 첫 번째 뽀뽀보다 두 번째 뽀뽀에서 더 길게, 더 애정있게 해준 재욱이는 곧이어 혜윤이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고 생각했던 것 보다 둘 사이에 별 게 없다는 걸 안 나는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던 거 같다. 혜윤이라는 사람은 재욱이랑 중고등학교 동창이었고 둘이 다른 대학교로 진학을 했지만 둘 다 의대를 갔고, 본과 생활을 마친 후 첫 병원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재욱이 동기를 혜윤씨가 좋아했다고 했다. 이름이 우주라고 했나.. 아무튼 그래서 여차저차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면서 많이 가까워지게 된거였다. 난 그것도 모르고 꿍해 있었네. 진짜 많이 편안했는지 얘기를 들으면서 안도감에 꿈뻑꿈뻑 졸던 나는 재욱이의 품으로 더 파고 들기 시작했고 금방 알아 챈 재욱이는 더 깊게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애기 다루듯 부드럽게 안아주고 살살 토닥여주는 그 품이 좋아서 금방 잠에 들었다. 얼마나 편하게 잔 건지 꿈도 안 꾸고 잔 거 같은데 일어났을 때 옆에 재욱이는 없었고, 아침을 차리고 있었는지 음식 냄새와 식기류 소리들이 들렸다. 놀래켜주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문을 열었는데 역시나 재욱이는 간단하게 아침을 만들고 있었고 조리도구를 쓰는 모양새가 꽤나 익숙한지 자유로웠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남자 등판 오지고 그 모습으로 요리하고 있는 뒷 모습 엄청 멋있는 거. 게다가 얘는 키도 크고. 근데 거기에 여자가 뒤에서 백허그 해주고 그런 엄청 달달한? 다들 알지. 뭐 나도 대충 그런 거 상상하면서 몰래몰래 까치발 들고 천천히 재욱이 뒤로 가서 딱 안았는데, 아니 안으려고 했는데 팔 벌리자마자 훽 뒤돌아서 역으로 나를 안았다. 재욱이가. 예상치 못 한 상황에서 이렇게 떨릴 수도 있는 거구나.. 보통 예상치 못 한 상황에선 당황하기 마련인데 당황보단 떨림이었던 것 같다. 마주한 식탁에 앉아 알고 있었냐 묻는 내 말에,
“응. 보고 싶어서 내가 먼저 얼른 안아 버렸어.” “다음엔 모르는 척 해줘야 돼. 내가 찐-하게 안아줄테니까.” “모르지, 그땐 또 네가 더- 보고 싶었어서 입 맞춰 버릴지.” “뭐.. 그럼 인정.” 아침밥을 대충 먹고 나온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나와 재욱이는 응급실에서 외상환자들을 보고 있었고 역시나 크고 작은 사건들로 미어 터지는 응급실은 보통 걸음으로는 돌아다닐 수 없을 만큼 바빴다. “어, 윤쌤. 아까 1시쯤에 들어온 TA (교통사고)환자 어떻게 됐어요? 김선생님이 맡았던 6살 애기 환자요.” “DOA요.. 구급대 도착했을 때 이미 워낙 상태가 안 좋았어 가지고..” (DOA: death of arrival, 도착시 사망) “너무 어린 애긴데.. 안타깝네요..” “그렇죠..” “성쌤, 여기요!!” “환자 상태는요?” “다발성 외상이에요. TA 환자구요.” (다발성 외상: 외부로부터의 직접적인 손상에 의해 조직손상이 여러군데에 나타나는 외상) “또 TA..네요. 일단 소생술을 유지하면서 위장관 튜브랑 뇨관 튜브를 삽입 할게요.” “네.” “OS (정형외과) 박쌤 콜 하고 필수 X-ray검사도 다 진행 해주세요.” “네, 성쌤.” “이쌤! 재욱 선생님! 여기 7번 배드요!!” “무슨 환자에요?” “술 드시고 농약 드신 거 같아요. 섭취 한지는 1시간 정도 안 됐구요.” “기도는요.” “유지되고 있습니다.” “약은요, 부식제 성분 있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lpecac시럽 (최토제)투여하고 효과 없으면 위 세척 바로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응급실의 모든 쌤들이 각각의 배드마다 불려 환자를 보고 또 바로 다음 환자를 보며 가장 바쁜 시간대를 보냈다. 얼마 후 조금 한가한 시간대가 찾아오고 오랜만에 보는 정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성이름 어제 잘 쉬었냐?” “아, 정쌤! 완전요. 완전 잘 쉬었죠, 오랜만에.” “둘이 같이 출근하던데 혹시 어제 같이 있었던ㄱ,” “그런 거 아니에요!!!!” “아이, 깜짝이야.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리를..” “아니.. 응급실 시끄러워서 선배 잘 안 들릴까봐.. 아무튼 아니에요.” “그래.. 그럼.” “...” “아, 맞다.” “왜요?” “재욱 선생은 어디있어?” “아까 농약 먹고 들어온 환자 혈액 채취한 거 직접 확인하러 간다고 한 거 같았는데, 왜요?” “인사 하려고. 어제 너네 둘 없이 나 혼자 얼마나 심심했는데.” “어떻게 응급실에서 심심하다는 소리가 나와요?” “아, 실수실수. 외로웠어. 그래서 인사하러 갈 거야. 안녕-“ “어! 재욱 선생, 재욱 선생-“
“아, 네. 정선생님.” “혈액 검사 결과 보고 있다더니 진짜네. 결과는?” “부식성분 없고 최토제 투여하고 구토 하셨다길래 항생제 다 투여되는 대로,” “아-“ “...” “어제 성이름이랑 같이 있었지.” “네.” “크으,, 역시 당황하지 않고 한 번에! 깔끔하게! 답 하는 재욱 선생이 난 너무 좋더라.” “뭐, 사실이니까요.” “난 둘이 찬성이야- 어우, 오랜만에 내가 다 설레네. 간다!” (휴게실) “어, 재욱 선생- 여기 있었네.” “응, 방금 환자 퇴원조치 시키고 왔어.” “아까 정쌤 너한테 인사하러 간다고 막 신나서 가던데, 봤어?” “봤어. 어제 너랑 같이 있었냐고 물어보던데.” “뭐!!!! 아 정쌤은 뭐 이리저리 찌르고 다녀.. 그래서 뭐라 했는데? 아니라고 했ㅈ,” “맞다고 했는데.” “야!! 남자랑 여자가 어? 같이 한 집에 있다가 출근하고 그러면 막.. 막, 어떻게 생각하겠어!” “...” “...” “성이름.” “ㅇ,어..?”
“단순히 부끄러운 거야, 숨기고 싶은 거야.” —————————— 헤엑 재욱님 화난 거 아니겠죠..!!! 여러분 제가 내일부터 일주일 간 또 일에 썩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이렇게 마지막 주말 얼른 써 왔습니다. 잘 읽어주시길 바라고 좋은 밤 되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