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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05 | 인스티즈

계약결혼의 법칙



쫀 거 티내면 안 된다. 티내지 말자, 배여주. 

여주는 눈 앞의 중년 여성에게 떨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썼다. 태생이 쫄보인지라 아예 겁 먹지 않는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ㄴ...누구..세여..."

"어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음량 3 정도로 조그맣게 말한 여주의 목소리는 듣지도 못한 건지 50대 초반 즈음으로 보이는 여자가 벽을 짚고 휘청거렸던 몸을 일으켰다. 도둑은 아닌 거 같고, 이 시각에 여길 올 저 나이대의 여성이라면...!역시..!



교수님 어머니신가봐........나..지금..잠옷바람....잉데....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05 | 인스티즈

좃됐네



하필 교수님 안 계실 때 이런 상황이 오다니. 말로만 듣던 시월드가 이제 시작인 건가...? 나 이제 물싸다구 맞고 쫓겨 나는 거 아녀...?(k-아침드라마의 폐해) 

여주 머릿속에서는 벌써 돈봉투를 내미는 시어머니와 눈물바람으로 바짓가랑이를 잡는 저가 열연 중인 진부한 드라마가 재생되고 있었다. 다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던 여자는 여주를 짧게 관찰하더니 곧 알겠다는 듯 손뼉을 한 번 쳤다. 뭐지. 미리 손 운동하시는 건가. 나는 뺨을 준비하면 되는 부분인가.(긴장)


"아가씨가 사장님 여자친구구나?"

"ㄴ,네,그런ㄷ..."


여주가 대답하다말고 말을 멈추었다. 호칭이 이상한데. 보통 어머니가 아들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던가?


"...사장님이요?"

"사장님 여자친구 아니에요?"

"어머님..아니세요...?"

"어유, 난 그냥 여기서 일하는 가사도우민데?"

"!!!아아...(머쓱)"

"사모님인 줄 알았어요? 오홍홍홍"


석진의 어머니인 줄 알았던 도우미 아주머니는 오해받은 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지 홍홍홍,하는 독특한 웃음 소리를 내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어제 저녁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있단 말을 듣고도 까먹고 있었다. 평생 집에 고용인을 둬 본 적이 없으니, 익숙하지가 않아 그런 것이었다. 어쩐지, 어머니치고는 교수님이랑 하나도 안 닮으셨더라.


"사모님 뵌 적이 없나봐요? 사장님이랑 똑같이 생기셨으니까 아마 보자마자 알 수 있을 거예요."

"아아, 네에..! 엄청 미인이신가봐요."

"그럼요~"


속으로 안 닮았다 한건데 어떻게 아셨지...! 아주머니는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선 여주의 가슴을 뜨끔하게 했다. 그나저나 교수님이랑 똑같이 생기셨다니. 이러다 어머님까지 덕질하는 거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예비 시어머니와 홀로 첫 대면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여주가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를 졸졸 따라갔다. 


"어쩐지 안 쓰던 방에다 요 며칠 자꾸 가구를 들이시더라구요. 아가씨 데려오려고 그러셨구나?"

"아..아주머니한테 제 얘기는 따로 안하시던가요?"

"사장님은 원체 말이 없으신 분이라 나한텐 굳이 여러 말 안 하세요. 어릴 때부터도 그러셨어요."

"어릴 때요? 교수님 댁에서 오래 일하셨어요?"

"한 20년했으니까 오래 일한 셈이죠?"

"허어어어 그럼 교복입은 것도 보셨겠네요..!완전 부러워....(새어나온 진심)"

"홍홍홍, 그게 부러워요?"

"그럼여...어,그럼 지금도 교수님 본가에서 일하시는 거예요?"

"네, 보통은 본가에서 일하고 목요일이랑 일요일만 여기 와서 반찬 좀 만들고 청소하고 가요. 뭐, 워낙 깔끔하게 사셔서 크게 치울 건 없지만."


여주는 목요일, 일요일을 되뇌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날은 아주머니 오시니까 놀라지 말고 반겨드리자.(새가슴)   


"사장님이 곧 결혼하신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게 아가씨였구나. 앞으로 잘 지내봐요."

"네에, 저두 잘 부탁드려요...ㅎㅎㅎ(갑자기 행복해짐)"

"근데 사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넹?"

"남자친군데 계속 교수님이라고 불러요? 신기하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05 | 인스티즈

(뜨끔)


아주머니는 사람을 찔리게 만드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남들은 동거까지 하는 예비 신혼부부로 알고 있는데. 교수님이라는 호칭은 제 3자에게 인지부조화를 불러일으키기에 그만이었다. 좀 더 조심할 걸. 아주머니는 아무 의미없이 그저 신기해서 던진 말이었지만 여주는 뭔가 들킨 것 같다는 불안감에 다리를 덜덜 떨었다.


"ㄱ...교수님은 약간..그냥 남들 앞에서 예의차리고 싶을 때 하는...네, 그런 호칭이구..평소에는 그냥 머...(달달달달)"

"그렇죠? 요즘은 거의 다 오빠라고 하던데."

"ㄴ,네에,저도 오빠라고 해요. 하핳.(어색)"

"좋을 때야~ 부러워라."


들고 온 김치를 썰어넣으며 다시 홍홍거리는 아주머니를 보고서야 여주는 마음을 놓았다. 최고의 임기응변이었다, 나야.(식은땀) 시댁 가족들이나 친정 가족들이나 자주 만날 일은 없을 거 같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뜻밖의 변수였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오시는 분을, 심지어 눈치도 꽤 빠르신 것 같은 분을 어떻게 1년이나 속이느냔 말이다. 교수님은 몰라도 나는 연기 진짜 못한다고.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나요?"

"어머 아니에요, 내가 해야되는 건데. 그리고 오늘은 할 일도 별로 없어요."

"그래두..."


여주는 엄마 뻘인 분이 혼자 일하시는 걸 가만히 보기가 불편해 계속 주변을 동동 맴돌았다. 요리는 못하지만 쓰레기 버리는 것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사코 말리는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할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일하면서도 여주와 수다를 떨던 그녀는 온 지 한 시간만에 곧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고 나설 채비를 했다.


"지금 가세요?"

"네, 그래도 오늘은 아가씨가 말동무도 해주고 해서 힘 안 들이고 더 빨리 끝난 거 같아요. 홍홍홍"

"ㅎㅎ..살펴 ㄱ,"

"예전 아가씨들이랑 딴판이라 너무 좋네~ 그 아가씨들은 인형같이 생겨놓고선 어찌나 찬바람 쌩쌩 부는지, 눈치가 보여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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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아가씨...들....?



"어머나....오홍..홍홍....그럼 나는 이만..."
"잠시만여.(근엄)"


아주머니는 단단히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막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이 자리를 재빨리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배여주가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아주머니 옷 소매를 살포시 붙잡은 여주의 눈이 궁금함 반, 충격 반으로 반짝였다. 


"아가씨'들'이요...?그동안 집에 들이신 여자가 많았다는 뜻이져...?"


저도 모르게 울컥한 건지 목소리에 물기 어린 떨림이 묻어났다. 아주머니는 최대한 여주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해명 아닌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ㅇ,아니, 그렇게 많았던 건 아니고..그냥 여자친구 생기시면 집에 놀러오고 그런 정도였어요..홍홍..홍.."
"정말여....?(울먹)"
"내가 20년 동안이나 사장님 보다보니 좀 많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아니 생각해보니 많진 않았던 거 같기도 하고...(횡설수설)"
"그럼 이것만 말씀해주세요. 그...여자분들한테...저처럼 방도 내어주시고..같이 살고 그랬어여...?"
"아뇨, 그건 아가씨가 처음!(화색)"
"..그건 다행ㅇ,"
"그 전에 아가씨들은 그냥 하루이틀 자고가고 그랬으니까,굳이 방을 따로 쓸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아까는 각방 쓴다길래 좀 이상하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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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

"..."

"어휴!어휴! 다 늙어서 입이 주책이야, 증말! ...오홍홍홍 난 바빠서 먼저 갈게요~ 다음에 봐요!"


입을 퍽퍽 치던 아주머니는 곧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전광석화처럼 사라졌다. 아주머니 이렇게 가버리시면 어떡해요....

현관 앞에 홀로 남은 여주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터덜터덜 소파로 가서 폭 엎어졌다. 역시 그 7번 조항은 선 그으려고 넣으신 게 맞구나. 꽤 진지하게 만난 것 같은 전여자친구를 비롯해서, 석진의 연애 경험이 무수히 많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혼자 짐작하는 것과 확인 받는 건 달랐다. 


게다가 지금껏 만났던 여자들이 나랑 딴판이고..인형 같이 생겼다니...취향이 일관적이신가. 왜 나를 절대 이성으로 안 보시는 지 알 것 같기도 하고..(의기소침)

근데 난 진짜 연애 한 번도 안 해본데다 교수님이 이상형 그 자첸데... 아니, 아니지, 나랑 교수님을 같은 기준으로 두지는 말자. 사람마다 다른 거잖아. 내가 교수님 과거까지 신경 쓸 사이도 아니고. 다 오지랖이야. 


여주는 소파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머리로는 저가 속상해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아는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괜히 서럽고 꿀꿀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울해질 것 같아서 뭔가 다른 걸 해보려고 몸을 일으켰다. 뭘 해야 하나. 할 만한 집안일은 이미 아주머니가 다 하셨고, 공부는 굳이 안 하고 싶고. 오랜만에 영화나 보러 갈까. 그 까지 생각이 닿자 여주는 휴대폰 전원을 켜서 요즘 하는 영화가 뭔지 알아보려고 했다. 석진에게 문자가 와 있었던 건 그때서야 알았다.


-여주씨 오늘 일하는 아주머니 오시는 날이에요.

-혹시 누가 들어와도 놀라지 말라고. 


..이미 거하게 놀랐는데요. 일어나자마자 휴대폰부터 봤어야 하는건데. 효력 없었던 문자에 '네에 안 그래도 왔다가셨어요'라는 답장을 남기고 원래의 목적대로 상영하는 영화를 찾아봤다. 안타깝게도 재밌어 보이는 건 하나도 하질 않았다. 전정국이 서울에 있었으면 만났을 텐데. 1년간 열심히 돈 모으며 사느라 사람들과 연락을 제대로 못한 탓에 여주는 정국을 제외하고 딱히 연락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배여주..인생 존나 헛살았어..(현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참회하다보니 호석과는 나름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던 게 주마등처럼 스쳤다. 안부라고 해봤자 '배여주 살아있냐?' 'ㅇㅇ멀쩡함다' 수준의 대화를 주고받은 거였지만. 그래도 호석 선배가 좀 시끄럽고 말이 많아서 글치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니까. 여주는 나름 용기를 내서 호석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보낸 지 1분도 되지 않아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역시 정칼답 어디 안 가네.


20**년 5월 xx일 x요일


슨배

저 서울인데여

시간 되시면 한 번 보실래여?

윤기 선배도 같이보면 좋구요

머.....바쁘면 안 봐도 되고...

호석 선배     

뭐ㅓ냐

언제 왔어??

야 아니다 나 마침 윤기 집인데 이 쪽으로 올래? 만나서 얘기하자



호석은 생각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여주를 반겼다. 따쉬, 정 많은 사람 같으니. 복 받을 거야. 근데, 그래서 윤기 집이 어딘데.




**




대충 트레이닝복 바지에 반팔 티셔츠와 체크 남방을 꿰입은 여주는 호석이 찍어준 주소로 향했다. 벌써 여름이 오려는지 날씨가 좀 후덥지근하였다. 근데 여기 좀 좋은 집 아닌가? 윤기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잘 살았구만. 오랜만에 사치 좀 부려보겠다고 택시를 탄 여주가 도착한 곳은 고급 오피스텔 앞이었다. 아래 편의점에서 대충 맥주랑 주전부리를 사서 호출을 눌렀더니 기다렸단 듯이 바로 열어주었다. 


"왔어?"

"야~여주 몇 년 만이냐 진짜"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몇 년까진 안 됐어요.(단호)"


윤기는 마치 어제보고 오늘 또 보는 사람처럼 익숙했고 호석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으며 여주는 단호하게 호석의 말을 정정했다. 세 사람의 관계는 호박 안에 갇힌 꿀벌처럼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작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작해야 여주의 머리카락 길이 뿐이었다. 

여주는 '실례하겠습니다~'하며 이미 몇 번은 와본 사람처럼 태연하게 들어 와서 거실 탁자에 편의점 비닐봉투를 내려 놓았다. 



"야 근데 뭐 대낮부터 맥주냐. 달라진 게 없어, 얘는."

"뭐야, 그럼 민윤기는 빠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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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마실게....근데 그건 존댓말이냐, 반말이냐..."

"반존댄데요. 왜여, 설레나.(영혼없음)"

"어어....설레네....;"

"야야 됐어, 우리 여주랑 오랜만에 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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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엨!!!!!!!정호석 찐하게 뭐하는데!!!!!!!!누구랑!!!!!!!!!"

"엄마아앜!!!!!뭐야 저 사람 누구예옄!!!"

"아 시발 깜짝이야, 민윤지 너 아직 안 갔냐?"


민윤지...? 놀라서 호석의 뒤로 숨었던 여주는 눈만 내어놓고 갑자기 출몰한 여자의 정체를 살폈다. 방문을 쾅 소리나게 열어젖힌 사람은, 이름부터 외모까지 누가봐도 나 민윤기 동생이요를 외치고 있는 앳된 여자애였다. 


"너 오늘 니 친구들 만난다며. 왜 안 나가."

"오늘 같은 날 어떻게 내가 자리를 비워, 정호석이 우리 집에 있는데. 다 됐고 저 여자 누구냐니까?"

"혹시 그거 나 말하는 거니...?(개쫄았음)"

"그래, 정호석 뒤에 너. 야, 어깨에서 손 안 떼? 나도 아직 제대로 못 잡아봤는데, 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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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지. 너보다 5살이나 많은 언니야. 말 똑바로 해."


윤기는 무심하게 있던 표정을 싹 바꾸더니 차갑게 식은 눈으로 윤지를 응시했다. 윤기 선배가 저런 표정도 할 줄 알았나. 가끔씩 앙칼지긴 하지만 대체로 나른한 고양이 같은 이미지였는데, 여동생 훈육할 땐 또 다른 모양이었다. 윤지는 씨이, 하더니 바로 꼬리를 내렸다. 오빠가 저런 표정을 한다는 건, 봐줄 수 있는 기준을 넘었을 때인 걸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석은 곤란한 듯 뒷통수를 긁적이며 여주를 돌아봤다.


"야, 여주야 미안하다...윤기 동생인데, 나간 줄 알았더니 아직 안 갔었나 봐."

"아녀, 괜찮,"

"왜? 나 나가면 뭐할려고 했는데에..!"

"술. 술 마시려고 했다,임마. 고딩은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참나, 오늘 호석오빠 계속 있는다고 해서 약속 취소했거든!"


눈치가 발바닥에 달린 여주 눈에도 이 상황은 꽤 파악하기 쉬웠다. 그러니까, 저 애는 윤기 선배 동생이며 호석 선배를 좋아하고 따라서 나를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다, 이거지? 그럼 오해만 풀어주면 될 일이었다. 나는 요만큼도, 진짜 요만큼도 정호석한테 마음이 없다 이말이야.


"저기,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뎅..(소심)"

"뭐요.(앙칼)"

"나는 선배들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고 진짜 딱 친한 선후배 사이야."

"허, 내가 그런 거 한 두 번 속은 줄 알아요? 다들 선후배 사이라고 해놓고 금방 오빠동생하더니 키스하고 그랬단 말이에여! 희준가 혜준가 그 년은 나 보는 앞에서...씨이..."

"ㅇ,야 여기서 희주 얘기가 왜 나오냐, 윤지야.(당황) 다 끝난 걸 가지고..."

"몰라, 정호석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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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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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선배 이런 애기가 보는 앞에서 키스하고 그랬어요?(경멸)"


"ㅇ..아니...난 얘가 있는 지 몰랐지...근데 내가 이걸 왜 해명하고 있냐..."

"미안, 내 동생이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애라. 네가 이해해."

"근데 언니 방금 내 편 들어준 거예요...? 뭐야, 진짜 정호석한테 관심 없어요?"


윤지의 의심어린 물음에 여주가 만보기 최고기록이라도 세울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털끝만큼도 없어, 제발 믿어조... 그리고 난 다음달에 결혼하는 사람이라 외간 남자한테 관심 있으면 큰일 나."

"헐 그랬구나! 결혼 축하해요!! 그럼 우리 친하게 지내요,언니!"


윤지는 정호석 한정으로만 예민한 아이였다. 호석을 제외하고, 본성은 쿨하기 그지없던 아이인지라 여주의 결혼발언을 듣자 표정이 곧바로 순하게 풀어졌다. 여주가 민윤지 레이더망에서 제외되는 순간이었다. 

여주와 윤지가 갑작스레 화해하며 악수까지 하는동안 윤기는 세모꼴이던 특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호석은 마시고 있던 물을 예나가 선정이 딸이란 걸 알게 된 것처럼 주르륵 뱉어버렸다. 윤지가 더럽다고 소리지르는 건 덤이었다.


"배여주 뭘 한다고?!?"

"결혼이요. 오늘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된 거 미리 말할게여. 아, 축의금 달라고 연락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말구. 이건 진짜 진심."

"뭐야 오늘 만우절이냐? 갑자기 뭔 결혼이야. 누구랑."

"...교수님.(뭔가 부끄러움)"

"교수님? 뭔 교ㅅ....야 설마 김석진,"

"야 여주야, 선배는 다 이해할 수 있다. 뭐 인생이 너무 힘들고 그러면은 가끔 망상도 하고 그럴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아 뭐래, 진짜거등여!"


손등으로 입가의 물을 훔쳐내며 '우리 못난 후배, 선배는 다 포용한다'하는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호석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진짜라고? 아니 너 분명히 차여가지고 나랑 술퍼마셨잖아; 이게 뭔 일이다냐."

"그래,내가 너 꽐라된 거 데려다준 거까지 기억나는데. 연애도 아니고 결혼이라고?"

"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지금은 말 못하고 한 1년 뒤에 말해줄게요."

"...너 설마 속도위반,"

"아 그런거 아니라고여!!! 교수님이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교수님은 아닌데, 네가 약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너 김교수님 처돌이었잖아."

"...(분한데 반박할 수 없음)"

"야, 뭐 일단 맥주나 까. 민윤지 너는 나가든지, 싫으면 여기서 바나나우유 먹든지. 냉장고에서 방금 꺼내서 시원하다."

"? 윤지 바나나우유 싫어하잖아."

"응, 나가란 뜻이지.(담담)"

"차암나, 바나나 우유 먹으면 될 거 아냐."


윤기의 덤덤한 대답에 한껏 약이 오른 윤지가 털썩 주저앉으며 바나나 우유를 집어들었다. 여주 가까이에 앉은 윤지의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하얀 거랑 입매 말고는 그다지 윤기와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얘는 고양이보다 토끼상 같은데. 그러고나서 주변을 보니 여주 옆은 호석을 직관하기 딱 좋은 자리였다. 그 전에는 이런 거 하나도 몰랐는데, 짝사랑을 하고 나니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좋아하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보였다. 

그럼 윤지도 7살 많은 호석 선배를 좋아하는 거구나. 나랑 비슷한 건가? 대놓고 질투하는 거나 애정 가득히 틱틱거리는 것만은 저와 달랐지만 그래도 7살 연상을 짝사랑하는 것과 표정에서 다 티나는 거, 상대방은 전혀 이성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닮아 있었다. 물론 난 아직 교수님이 딴 여자랑 키스하는 건 못봤으니 다행.....이 아니라 이런거 생각하면 안 돼, 현실이 된다고.(식겁)


"윤지 바나나 우유 싫어하면 뭐 좋아해? 언니가 사올게!"


뭔지 모를 동질감이 들어 윤지를 챙겨주고 싶었던 여주는(언니로 불릴 일이 거의 없어서 동생만 있으면 언니병 걸림) 주섬주섬 일어났다. 윤지는 괜찮다고 손을 저으려다 쥐고 있는 바나나우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조금 망설였다. 아마 시키기 미안한 마음과 바나나우유 말고 다른 걸 먹고 싶은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뭘 또 사줘, 됐어 쟤 그냥 저거 먹으면 돼."

"괜찮아여 아이스크림 안 사온 거 후회하고 있던 중이라."

"그럼 내 카드 들고 가."

"오, 윤카 찬스. 얼마까지 가능해여. 윤지 뭐 먹고 싶어."

"그럼 나 초코우유... 그리고 막 긁어도 괜찮아요, 저 오빠들 얼마 전에 취직 성공해서 막 써도 돼!(놀랍게도 본인 돈 아님)"

"아 진짜? 그럼 사양 않고 긁겠슴다. 나 갔다올게요!"

"오야. 여주 조심해서 다녀 와."



호석의 배웅으로 여주는 다시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바구니에 아이스크림 여러개와 초코우유를 골라 담고서 이것만 사 가면 되나, 하고 고민하던 참이었다.


"아!"

"어머, 어떡해."


젊은 여자와 부딪힌 여주의 손이 미끄러지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휴대폰은 안타깝게도 액정이 깨져있었다. 

아 스벌... 이미 운명을 달리한 폰을 허망하게 보고있던 여주를 향해 여자는 진심으로 놀란 듯 미안해했다. 

근데, 가까이서 보니 이 분 진짜 예쁘게 생겼다. 왜 연예인 안 하세요? 


"어떡해요, 다치진 않으셨어요?"

"아, 괜찮아요!"

"폰 깨진 건 제가 수리비 드릴게요."

"아니에요, 저도 같이 못 보고 부딪힌 건데여"

"아뇨,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이건 제 연락천데 꼭 연락주세요. 아니면 그냥 폰을 하나 새로 사드려도 될 것 같은데."


명함을 손에 직접 쥐여주더니 떨어진 폰을 주워 살피던 여자는 새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폰이 많이 구식이긴 하지...ㅎ 여주가 머쓱하게 허허 웃는 사이에 여자는 여주의 폰에 제 번호를 저장하고서 전화를 걸었다.


"명함보다 이게 빠르겠네요, 그쵸? 왠지 연락 안하실 거 같아서."

"앗, 네엥...근데 진짜 괜찮은데."

"나중에 꼭 계좌 보내줘요."


괜찮다는 여주의 의사를 깨끗이 무시한 채 싱긋 웃은 여자는 곧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예쁜 여자한테 번호 따이는 건 이런 기분인가! 새로워! 짜릿해! 동경의 눈으로 여자의 뒷모습을 보던 여주는 손 안에 쥐어진 명함을 확인했다. 여자의 직장과 이름,연락처가 오른쪽 하단에 단정한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피독 요가, 유연서. 딱 생긴 것처럼 정갈한 이름이었다.



**



"사장님, 기자들이 사장님 결혼하시는 거 대충 냄새를 맡은 거 같던데요? 계속 사실 맞냐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일단 지금은 확정된 바 없다고 해. 어차피 기자들은 우리가 어떤 기업이랑 사돈이 되는지가 궁금한 거 아닌가."

"그건 그래요. 배여주 씨랑 결혼하신다고 하면 아주 잠깐 가십거리는 되겠지만 아마 금방 묻힐 겁니다. 그들이 필요한 정보는 아닐테니까요."


윤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했다. 석진은 확정된 바 없다고 하라 지시한 것 치고는, 누구보다 결혼이 확실시된 사람처럼 굴었다. 오전 중으로 여주네 빚을 다 갚아버렸고 여주 부모님이 이사할 집까지 알아본 참이었다. 의사를 묻기 위해 장모님에게 연락을 드렸는데 그 나이대의 부모님들이 으레 그렇듯이 계속 부산에 남고 싶으시다기에 집도 부산으로 구해드렸다. 집에 어울리는 가전 및 가구까지도 비서실에서 차차 마련할 것이었다.

지독히도 여주를 괴롭히던 가난은 그렇게 석진의 손에서 단 몇 시간 만에 해결되었다. 물론 당사자인 여주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윤기의 집에서 1년치 회포를 풀고 있었지만.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까지 내리 붙어다닌 윤기와 호석은 운명의 장난처럼 직장마저 같아버렸다. 올해 초 당당히 취업에 성공해 8월부터 호범그룹 계열사에 출근하게 된 두 사람은 부서는 달랐지만, 아무튼 또 붙어다니게 되었다며 서로 환멸스러워했다. 

윤지는 근처 여고에 다니는 고3이었는데, 윤기와 둘이서 사는 중이며 오늘은 개교기념일이라 학교를 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불량학생이겠거니 했던 여주는 미안한 마음에 윤지의 입에 가장 좋아하는 젤리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석진에게 차여서 휴학한 게 아니라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부산으로 갔던 거고 지금은 어쩌다 괜찮아졌으며 그 탓에 연락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 동안의 일까지 털어놨다.  

여주를 마지막으로 각자 근황토크가 끝나자 이번엔 궁금함이 잔뜩 맺힌 눈동자 여섯개가 집요하게 여주를 향했다.


"그게 다야?"

"ㅁ..머요, 왜들 그렇게 봐요."

"여주야 솔직히 우리가 왜 이러는 지는 네가 제일 잘 아는 거 아니냐."

"이건 정호석 말 인정. 내가 원래 남의 일 별로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좀 궁금하다."

"맞아, 나 주변에서 결혼하는 사람 처음 봐요. 언니 남편 잘생겼어요?"


한 마디했더니 다들 두 마디씩 거드는 탓에 거실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여주는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교수님이랑 비밀 지키기로 했단 말이야. 물론 정국에게는 사실대로 털어놨지만 애초에 이들과 정국은 달랐다. 정국은 믿을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 제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아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호석이나 윤기를 못 믿는단 건 아닌데, 그냥 관계의 깊이가 달랐다. 그리고 되도록 아는 사람이 적어야 한다는 생각도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이유였다. 굳이 하나 덧붙이자면 그랬다.  


"아니 뭐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그래여. 별 거 없는데..."

"별 게 없긴 뭐가 읎어. 상대가 김교수님인 것 부터가 벌써 별 거야. 그 교수님 방탄그룹 회장아들이었다며. 기사 뜨는 거 다 봤다야."

"회장 아들?? 근데 언니네 교수님이었던 거야? 대박이다, 어떻게 사겼어요???완전 인소아니냐(흥분)"

"그냥...어쩌다 보니....나도 모르게...."

"좀 수상한데. 여자친구 있다고 차였었다며. 근데 1년도 안 돼서 결혼?"


윤기는 수상쩍다며 연신 턱을 만지작거렸다. 지가 코난이야 뭐야. 여주가 나지막하게 투덜거리는데, 윤지가 같이 찍은 사진 같은 건 없냐며 부추겼다. 

앗쉬. 그런 거 없는데. 생각해보니 보통 연인들은 같이 셀카란 걸 찍는구나!(이제 깨달음) 


"셀카 같은 거 말하는 거야..?"

"네, 얼굴 보고 싶은데. 근데 언니가 싫음 말구요!"

"어..나 원래 셀카 찍는 거 안 좋아해서 교수님이랑 찍은 것두 업서.."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다. 석진과 찍은 게 없는 건 맞지만 셀카를 싫어하진 않았다. 다행히 여기 있는 세 명 중 그걸 아는 사람은 없으니 이 거짓말은 나름 효용성이 있는 셈이었다. 


"근데 여주가 이 으마으마한 러브스토리를 자꾸만 숨기네~ 역시 술이 들어가야되는구만. 이거 술게임 가야되는 거 아니냐? 마침 소오주도 있는디?"

"ㅁ,먼 소리에여, 미자가 있는데!"

"난 좋아요, 언니. 술게임 구경할래. 호석 오빠 취한 거 보고 싶어.(목적이 뚜렷한 편)"

"윤지야, 너 이러기야...? 이 사람들 술게임 개잘한다고...이거 그냥 나 술 먹이겠다는 소리란 말여...(절망)"


윤지를 핑계 삼으려고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민윤기 동생 아니랄까봐, 윤지는 절대 순순히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 마지막 희망을 보는 것처럼 간절하게 윤기를 봤지만, 안타깝게도 민윤기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윤지 방에서 자고 가던지."


...그러니까 내가 안 마시는 선택지는 없다 이거지? 쒸익. 이 싸람들이. 


"핫참, 조아여, 하면 되겠네! 어차피 호석 선배도 술 못 함서!"


여주는 오기에서 시작된 승부욕에 불타올라 기꺼이 도전장을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선배들을 만나 텐션이 한껏 오른데다 패기에 잠식되기까지 한 여주가 잠시 망각한 게 있다면, 원래 술은 오랜만에 마시면 더 잘 취한다는 것과 자신은 주량이 소주 반 병인 알쓰라는 것, 그리고 이미 맥주 한 캔을 순삭해서 알딸딸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다 차치할 수 있을 만큼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기가 부산이 아닌 서울이며, 새로운 동거인이 있는 것 정도라고 해두겠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05 | 인스티즈

   

3시간 후





"하, 좋은 승부여따. 그쳐 선배, 내가 이겨쪄?"

"으응..여주야 네가 이겨써...근데 나 졸린데..."

"오빠, 호석 오빠 졸리대. 방에 데리고 가서 재워. 아니 근데 정호석은 왜 취한 것도 귀엽고 난리래. 진짜 어이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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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가서 그런 말 좀 하고 다니지 마. 그리고 얘네는.....진짜 아까부터 적당히 하고 끝내랬더니 꼭~ 떡될 때까지 마셔요.(환멸) 야, 일어나."


윤기는 온몸이 뻘겋게 달아오른 호석의 상체를 잡아 일으켰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호석은 여즉 미련이 남은 것인지 끌려가는 순간에도 의문을 풀려고 했다.


"여주야 근데 너 쥔짜 말 안해줄거냐아...어..?우리 사이가 그거바께 안 되는 거시냐고..."

"우웅, 그거바께 안 돼여. 절대 말 못해조."

"야, 여주야 그러는 거 아니지이이..내가,"

"조용히 하고 가서 자, 새끼야."


윤기는 호석을 제 방 침대에 눕히고 문을 닫아 버렸다. 여주는 호석의 애절한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소주병을 양 볼에 댄 채 몸이 너무 뜨겁다고 웅얼거렸다. 저러다 곧 테이블에 얼굴을 박을 기세였다. 누가 보면 각각 세 병은 마신 건가 싶은 모습이었지만 여주와 호석은 도합 소주 2병에 이다지도 인사불성이 됐다. 눈 앞에서 사람이 개가 되는 걸 목격한 윤지는 절대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정호석은 정호석이라 취해도 귀여운 거고. 여주 언니도 사람이 귀엽긴 진짜 귀여운데, 좀 노답인 듯.(통찰력)


"민윤지 너도 들어가서 자."

"뭐래, 오빠 지금 저녁 6시야."

"6시라고?"


윤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시계를 봤지만 바늘은 정확히 6시 1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블라인드를 쳐 놓은데다 여주와 호석이 하도 취했길래 10시는 넘은 줄 알았더니 저 알쓰들이 3시간 동안 고작 2병 먹어놓고 저 꼴인 모양이었다.


"여주야, 윤지 방 가서 자. 이건 나 주고."

"머야, 나 아직 안 취했거등요. 멀쩡한데. 바요, 치즈도 집을 줄 안다고. "

"그렇다기엔 너 지금 휴지 쥐고 있는데."

"엇쉬 뭐야 방금 치즈였는데. 슨배 이거 이상해여... 치즈..치즈였는데..앙팡맨 치즈였는데...(충격)"

"오빠, 난 들어갈게. 힘내.(빠른 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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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갑자기 목 탐)"



"뮴기선배...내가 무러보고 싶은게 있는데여."


윤지가 들어가고 방문이 닫히자 여주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윤기에게 갑자기 고민 상담을 시전했다. 

 

"뭔데."

"남자들은 일곱 살 어리면 여자로 안 보이고 막 그래여...? 아예 가능성이 읎다고 봐야대나...?"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

"아니이, 아까 호석 선배 보니까 윤지는 아예 막내 동생 다루듯이 하길래애."

"윤지는 아직 고딩이니까."

"마따, 윤지 고딩이구나. 그러면 성인이면여? 성인이라도 똑같응가?"

"사람마다 다르겠지. 근데 나라면 그냥 동생 같을 거 같은데."

"그렇구나...막 다정하게 챙겨주고 이런 거는 그냥 동생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거져?"

"응. 왜 그러는데, 김 교수님이 너 여자로 안 본대?"

"(뜨끔)"

"결혼한다며. 근데 여자로 안 본다고?"

"ㅇ..아니여...교수님이 그렇게 얘기하신 건 아니고요.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고여. 거참 눈치 한 번 빠르네."


여주가 웅얼웅얼 입술을 비죽이며 탁자에 머리를 갖다대려고 했다.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윤기가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옆통수를 잡아 제지했다. 요게 어딜 탁자에서 자려고. 

어쩐지 여주가 하는 말이 요상했지만 윤기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주가 술 먹고 헛소리하는 건 예사스러운 일이니까.


"교수님 얘기하니까 갑자기 교수님 보고 시퍼여."

"교수님 불러줘? 불러줄게, 여기서 자기 좀 그러면 교수님한테 너 데려다주라 하면 되겠네."

"안돼여, 민폐예여. 안그래도 바쁭데..."

"나한테는 잘도 데려다달라 하더니만.(어처구니x)"

"슨배는 슨배고 교수님은 교수님이에여."

"뭐 어때, 남친이잖아. 여자친구 취했다는데 안 데려다 주시겠냐."

"....나 김섯찐 여자칭구 아인데."

"뭔 소리야. 너 아님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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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칭구...아이라고여....흐으."

"야 왜 울어; 울지마라, 울지 마라고 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교수님 나빠ㅠㅠㅠㅠㅠ아니지 교수님은 잘못업써ㅠㅠㅠㅠㅠㅠㅠ내가 선택한겅데ㅠㅠㅠㅠㅠ누굴탓해 나녀뉴ㅠㅠㅠㅠㅠㅠ(빠른 자기반성)"

"...전화한다."

"허어어어어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서러워어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왜 못나서어ㅠㅠㅠㅠㅠ"

"폰은 또 어디서 깨먹었어. 야 김석진 교수님 이거 맞지? 전화 건다, 나. 나중에 원망하지 마라."


근데 보통 남자친구를 이렇게 존칭으로 저장해놓나. 하트도 없네. 하긴, 남의 연애사를 내가 어떻게 알아. 윤기는 여주 눈 앞에 석진의 번호를 한 번 보여주더니(운다고 안 봤음) 그대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오래지 않아 목소리가 들렸다.


-네,여주씨.

"아, 안녕하세요. 저 여주 학교 선배인데 여주 남자친구분 맞으십니까."

-...네, 그런데요.

"다름이 아니고 여주가 지금 많이 취했는데, 데리러 오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야 여주야 좀 조용히 해봐."


윤기의 목소리 너머로 여주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와중에 조용히 하라니까 진짜 조용히 하려는지 끅끅 울음을 삼키는 소리까지 풀사운드로 석진의 귀에 들어왔다. 

석진은 여주의 울음에 예민했다. 항상 방싯방싯 웃는 얼굴로 기억되는 여주가 우는 모습은, 작년에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니까. 그런 일로 우는 건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설마 또 그런 일은 아니겠지. 아닐거야. 석진은 숨을 한 번 쉬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어딘지 주소 불러주세요."

-아, 여기가..


느릿하게 윤기가 불러주는 주소는 술집이 아니었다. 여기 그냥 오피스텔인데. 둘이서 마신 건가? 이제 저녁 시간밖에 안 됐는데, 뭘 얼마나 먹였길래. 

석진은 얼굴을 굳히며 입술을 맞물었다. 마침 퇴근하려고 차를 타고 있던 참이라 바로 주소를 찍었다. 괜히 마음이 다급했다. 





"배여주. 정신 차려 봐, 남자친구 불렀어."

"으응...내가 남자친구가 어딨서여. 그짓말 하지마여.."

"자꾸 뭔 소리야; 곧 오신댔다고. 옷이나 좀 주워입고 있어, 네 남방 저기 다 구겨져 있네."


윤지와 함께 거실을 치우고 있던 윤기가 살짝 선잠에 들었던 여주를 깨웠다. 여주는 이 노곤하고 어질한 기분이 싫었다. 술이 깨고 싶어 두 손으로 뺨을 챱챱 때리더니 구석에 박혀있는 남방을 가지고와서 대충 걸쳐입었다.


"저도 같이 치울게여어..."

"똑바로 서있지도 못하는 게 무슨, 앉아 있어 임마."


몸 따로 마음 따로. 정말 간절히 일어나고 싶은데 다리가 따라주지 않았다. 정신도 아득하게 이미 어느 정도 맛이 간 거 같고 몸은 뜨거웠다. 더워서 이거 입고 있기 싫은데, 뭔가 안 입으면 윤기 선배가 혼낼 거 같애. 아까 윤지 혼나는 거 봐서 혼나기는 싫단 말이야.(의식의 흐름)



띠리리리리ㅣ링. 띠리리리링.

로비에서 누른 호출 소리였다. 석진 말고는 더 올 사람이 없으니 이건 분명 석진이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윤지가 달려가 버튼을 눌러 1층 문을 열었다. 언니! 언니 남편 왔어요! 근데 언니 남편 존잘이야! 현관 카메라로 석진의 얼굴이 본 윤지는 저가 더 흥분해서 여주를 흔들었다. 그 움직임에 다시 잠들 뻔하던 여주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남편은 설마 교수님 말하는 곤가...? 여길 어떻게 오신 거지..!(아까 전화한 거 운다고 못들음) 핫쉬 좆댔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굳어 있던 석진의 표정이 윤지를 보자 천천히 풀어졌다. ...둘만 있었던 건 아니구나. 여주가 남자 선배와 둘이서 술을 마신 건 아니다, 그 간단명료한 사실 하나가 뭐라고 마음을 이리 쥐었다 폈다 하는 지 모를 일이었다. 


"여주는 저기 거실에 있는데...애가 지금 제정신이 아닐거예요."

"많이 마셨어요?"

"자기 기준으로는 많이 마셨죠."


주량이 반 병인 애니까. 석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거실로 들어갔다. 여주의 주량 같은 거 알 턱이 없었다.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주량이 반병이라니, 그냥 술을 잘 못하는 구나 할 밖에. 

거실로 가니 여주가 제 남방을 벗은 채 조선시대 여인들의 쓰개치마처럼 머리 위로 덮어쓰고 있었다. 옷 소매까지 목 언저리에 단단히 묶어놓은 상태였다.


"여주씨, 왜 이러고 있어요."

"저 지금 지짜 몬생겨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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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 봐봐. 어지럽진 않고?"


여주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혀 앉은 석진은 남방을 살짝 젖히려고 했지만 여주가 손을 꼭 잡아 저지하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여주는 이 몰골로는 도저히 석진을 마주할 수 없겠다 싶어 최선을 다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닌 거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으니까. 화장도 거의 안하고 나왔고, 술 마셔서 얼굴은 달아오른데다 아까 오열한 탓에 눈도 부어있을 것 같았다. 안 봐도 극혐일 거야...절대 이꼴을 보일 수 없어....(마지막 이성)


"알았어요. 일단 나가자. 집 가야지."

"집이여...?"

"응. 여기 있고 싶어요?"

"아, 아니, 아니요. 갈래여, 교수님 집..."


여주는 말끝을 흐리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얼굴이 안 보이니까 어떤 표정인지 석진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인지 또 볼을 붉히고 있을 거 같았다. 


"응? 뭐예여?"

"업혀요. 그러고 걸어가기 힘들잖아."

"안대는데..!나 무거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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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안 무거워."


여주가 얕게 칭얼거리자 석진은 저도 모르게 그 애교서린 말투를 조금 따라했다.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여주가 등을 껴안지 못하고 어물쩡 있자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던 윤기가 다가오더니 여주의 어깨를 잡고 석진의 등으로 밀어 붙였다.


"머야 밈뮴기 무슨 짓이야!"

"빨리 나가, 임마. 너는 내 집에서 뭐하는 짓이야.(담담)"

"아, 여기 뮴기선배 집이구나.(수긍)"


술에 취했어도 언제나처럼 수긍이 빠른 여주는 얌전히 석진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너로 반팔을 입었던 여주의 맨살이 그대로 석진의 목에 닿았다. 아까부터 계속 몸이 뜨겁다고 했던 게 마냥 술주정은 아니었는지 여주의 팔이 닿자마자 목이 화끈해져왔다. 

석진은 그대로 여주의 다리를 받쳐들고 일어나 윤기에게 연락해줘서 고맙다며 야트막한 웃음을 지었다. 석진 특유의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웃음이었다. 


"다음에 혹시 술 마실 일 있으면 너무 많이는 못 마시게 해주세요."

"네. 최대한 말려보겠습니다. 근데 쟤가 워낙 말을 안 들어 가지고."

"아니에여 교수님 나 말 잘 들어여..저건 모함이에여...(억울)"

"응, 여주씨 말 잘 들으니까 빨리 가자."


억울한 여주가 울먹거렸다. 나 진짜 착한데. 딴 건 모르겠는데 착한 건 맞아여. 그거 하나밖에 가진게 없단 마리야. 석진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여주가 못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중얼거렸다. 말을 안 듣는단 소릴 들은 게 어지간히 억울한 모양이다. 얼굴을 꾹 대고 있어 그런지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이 피부에 생생하였다. 

엘리베이터를 잡아준 민씨 남매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급하게 주차해 놓은 차로 가는 동안 셔츠의 어깨 부분은 조금씩 더 짙게 젖어들어 따끈해졌다. 여주가 업힌 등도, 팔을 두른 목도, 울음을 터뜨린 어깨에도 열 맺힌 온기가 가득했다.


차 문을 열고 조심스레 보조석에 내려주었더니 여주가 힘없이 스르르 등에서 떨어졌다. 그새 또 잠든 건가. 안전 벨트를 채운 후 운전석에 앉은 석진은 여주가 줄곧 머리에 쓰고 있던 남방을 풀어서 벗겨주었다. 눈꼬리에 눈물을 방울방울 매단 여주가 아기처럼 순순한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못생겨서 안 된다더니, 눈물에 젖어 투명한 얼굴이 그저 맹맹하게 귀엽기만 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어. 난 네가 울면 어떡해야 할 지를 모르겠는데. 자기 편하도록 시트를 뒤로 당겨준 석진은 눈꺼풀에 맺혀있는 눈물을 검지로 살살 훔쳐냈다. 




**



연서는 석진과 헤어진 이후, 민혁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민혁을 만날수록 석진과의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전남친이 김석진인데, 다른 남자가 성에 찰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것은 지금의 연애가 나쁘기 때문은 아니었다. 민혁과 함께 있으면 자신이 그 누구보다 매혹적인 여자가 된 기분이었고, 연서는 그게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대우라고 느끼긴 했다. 살면서 단 한번도 그런 취급을 받지 않은 적 없었으니까. 

모든 사람은 저를 좋아해야 했고, 제게 매력을 느껴야 했으며, 자신은 모든 여자들의 우상이자 투기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도 그에 가까운 인생을 살았다. 집은 할아버지 적부터 부유했고 어느 정도 명예도 있었고 그에 걸맞게 학벌도 훌륭했다. 청순하고 단아한 외모와 분위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그만이었다. 그러니 연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들의 동경과 사랑이 당연한 사람이었다. 


가지고 싶은 걸 가져야만 하는 연서는 그렇게 석진도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었다. 아니, 가졌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연애 중에 저가 을인 연애는 없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이 관계에서의 갑은 철저히 석진이었다. 


석진은 갑질 하나 하지 않고 관계의 상위를 차지했다. 허접한 밀당 따위, 자존심 부리는 행동 따위 하지 않고도 아주 당연하게. 

연락을 매일같이 하는 걸 조금 싫어 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념일은 꼬박꼬박 챙겼고 큰 애정표현을 하진 않더라도 늘 다정했다. 데이트를 할 때만큼은 모든 걸 연서에게 맞췄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저를 대하는 태도에 기복이 없었다는 것. 

나름대로 질투 유발을 해보아도, 어떤 사이냐고 묻기만 했을 뿐 석진은 그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금껏 만난 다른 남자들보다 스킨십도 적었다.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두 달이 지나도록 먼저 손을 대는 일이 없었으니까.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여행처럼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 이상은, 늘 그랬다. 

언제나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 그 자체였던 연서에게 이는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 관계에서만큼은, 갈망이란 오직 연서의 몫이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석진에게서 오는 모든 사랑은 갈구해야만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오는 남자 안 막고, 가는 남자도 안 막는단 식의 만남을 계속해왔던 연서가 한 사람에게만 집착하는 계기 같은 게 되었다. '나한테 이렇게 대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뭐 이런 삼류 로맨스 드라마 대사를 들을 때 마다 코웃음을 치곤 했는데, 그게 제 일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연서는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석진을 만난 목적이었던 야망도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확실한 민혁 쪽을 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이었다. 잘한 거라고 행복회로를 열심히 돌렸지만, 그건 말 그대로 행복회로일 뿐 이 결과는 그녀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다. 갈림길의 끝에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되듯,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이후에야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다 모르겠고 결론은, 김석진이 보고 싶다고. 

언제나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당당한 연서였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다는 감각이 밀려와 견디기 힘들었다. 일상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만큼, 연서에게 석진의 빈 자리는 황황하게 컸다. 다시 시작하자고 하고 싶은데, 그러자니 다 잡은 물고기인 민혁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래서 평소보다 강사 일을 더 열심히 했다. 요가를 하다보면, 그 호흡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몸이 이완될 때 머리도 함께 편안해졌다. 문제는 요가할 때만 그랬고, 끝나고 나면 요요처럼 다시 돌아온단 거였다. 그 반동이 싫어서 바람도 쐴 겸 레슨 없는 시간에 잠시 근처 편의점으로 왔지만, 연서는 여전히 정신이 멍했다. 그러다 옆에 있던 여자를 보지 못하고 세게 부딪혀 버린 건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실수였다.


"정신 차리고 다녀야 하는데. 쓸데없이 부딪혀선.."


연서가 귀찮다는 듯 중얼거렸다. 낮에 그렇게나 화사하게 굴었던 건 다 거짓이었던 것처럼 메마른 얼굴. 

위선은 일종의 습관이었다. 늘 좋은 사람, 매력적인 사람으로 남아야 하니까 행동 하나하나에도 남이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았다. 그러다보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기본이었다. 오늘 어려보이는 여자의 휴대폰 번호를 따 버린 것도 그 가식의 일환이었다. 그냥 명함만 줬으면 됐는데, 뭘 굳이. 화장대 앞에 앉아 저장된 여주의 연락처를 보던 연서는 그래도 해놓은 말이 있으니 수리비는 정말 물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 돈이야 그냥 옷 한 벌 샀다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연서는 아무 생각 없이 카톡 친구창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여주의 프로필을 눌렀다. 프로필 사진은 제 방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야경 사진이었다. 좀 사는 집 여자였나.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대충 보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려던 연서의 손가락이 흠칫 멈추었다. 방 내부의 모습이 낯익다. 유리창에 비친 것도, 사진 끄트머리에 조금 나온 것도. 저런 구조는 흔하지 않았다. 석진의 집에서 보았던 그 방과 닮았다. 그 때는 저런 책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 까지 생각하던 연서가 고개를 저었다. 나 진짜 미쳤나 봐. 별게 다 김석진으로 연결되다니, 제 상태가 아주 심각한 게 분명했다.

비슷한 아파트 사는 다른 사람이겠지. 설마 오빠 집에 저 여자가 있을 리가 없잖아. 미쳤어, 유연서. 연서는 스스로가 어이없어 픽 헛웃음을 지었다.           







집에 도착한 석진은 여주의 팔을 당겨 다시 등에 업었다. 밤공기가 시원해서 깼는지 여주가 조금 뒤척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희 다 왔어여?"

"응, 다 왔어요."


겨슷님 근데 저 지짜 무거워여. 도저히 안 되게쓰면 항복! 하세여, 그럼 내려갈게여. 아직도 무거울 게 신경쓰이는지 여주가 제법 당당하게 제안했다. 완전히 축 늘어져 몸을 맡긴 주제에 하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안 되겠으면 항복 하라니, 초딩 때도 저런 건 안 했던 거 같은데. 석진은 눈을 살짝 감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속절없이 미소가 떠올랐다. 

 

주차장에서 집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런데도 평소보다 걸음이 느렸다. 엘리베이터를 제외하고 3분이면 도착할 거린데, 체감상으론 10분을 가는 것 같다. 여주가 무거운 건 아닌데, 왜지.


"근데 겨슷님 되게 좋은 냄새나여."

"그랬어요?"


아까부터 석진의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여주는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마자 좋은 냄새가 난다며 더 깊게 얼굴을 묻었다. 등이 넓은데다 깨끗한 비누향 같은 게 풍겨서 더 아늑했다. 여주는 술김에도 석진의 뒷모습을 구경하다 반듯한 목에 시선을 주었다. 교수님은 목도 되게 깨끗하고 단정하시넹. 이거 향수 냄새겠지? 그럼 이 냄새 목에서 나능건가. 향수는 보통 목에 뿌리자나. 전혀 연관성 없는 생각들을 하던 여주는 본능처럼 석진의 목을 물었다. 아프지 않게 힘을 빼고 정말 잘근 물기만 했다. 


"아,"


뒷목에서 촉촉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도어락에 지문을 찍던 석진이 순간 몸을 굳혔다. 놀라서 낸 목소리가 낮았다. 뒤에서 따뜻한 숨이 닿는 것도 아까부터 신경쓰였는데, 이제는 아예 물기까지 하는 모양이었다. 석진 앞에서 항상 고장난 것처럼 어색하고, 어쩔 줄 몰라하던 여주가 취했을 때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잠결에 좋아한다며 손을 잡았을 때처럼, 여주는 무의식 속에서마저 석진에게 하염없이 사랑을 주고 싶어했다. 그걸 깨달은 석진은 어쩐지 몸이 간지러웠다. 이렇게 조건없이 퍼붓는 사랑을 겪은 적이 없기에 더 그랬다. 자신을 거짓없이 다 내보이면서도 쉴 틈없이 치고 들어오는 순수한 애정은 위험했다. 이런 건 면역이 없었다. 


"..항복."


나지막한 울림에 계속 목에 맞대고 있던 여주의 입술이 꿈이었던 양 떨어졌다.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모순되게도 홧홧한 열기가 남았다. 


"어이구, 많이 무거우셨구나. 죄송해여.."


여주는 무겁다는 뜻인 줄 알았는지 정말 내려가려고 다리를 버둥거렸다. 몇 번 그러다 제 풀에 힘이 빠진 여주가 석진에 의해 조심히 침대에 내려앉았다. 


"옷은 갈아입을 수 있겠어요?"

"네에, 할 수 있서여."

"아니,아니 지금 말고. 이건 나 나가면 갈아 입고."


할 수 있다고 반팔 티셔츠에서 팔을 빼려는 여주에 석진은 놀라서 손을 잡았다. 조그마한 손이 한 손에 다 들어온다. 어쩐지 오늘 여주 때문에 놀랄 일이 너무 많았다. 조심성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오늘부로 그 생각이 확실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음부턴 절대 만취는 못하게 해야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투명하고 솔직한 여주가, 술이 들어가면 가재가 놀아도 될만큼 한없이 맑고 거리낌 없어졌다.


"그럼 나 나갈게요. 잘 자고."

"잠깜만녀..."


일어나려는 석진을 여주가 잡아세웠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술만 깨문 채 우물쭈물했다. 술에 취해서도 말하기가 쉽지 않은 거라면, 아마 맨정신으로는 절대 못할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겨슷님, 저 왜 안 조아해여..?"

"..."

"저는 계속 좋았는데."


흠 하나 없이 말끔한 진심이었다. 좋아한다는 말만 지금 몇 번째인지 모를 만큼 여주는 올곧고 꾸준하게 제 마음을 전달했다. 

이러지 말지. 석진은 마음이 약해지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도 몰랐다. 여주는 석진의 정교한 벽을 말랑하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무력하게 했다.


"있자나요..교수님이 필요할 때 교수님 써먹으랬던 거 기억나요?"

"응."

"그거 지금 해도 돼요? 나 지금 교수님 필요한데." 

"나 필요해요?" 

"으응, 딱 한 번만 할 게요."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뭘 어떻게 써 먹는단 건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여주가 부탁하는 건 거절할 수 없었다. 정말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집에 들인 거기도 했고.


"진짜요? 후회하면 안 돼여."

"응, 안 할게요."

 

여주는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작은 두 손으로 석진의 얼굴을 쥐었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05 | 인스티즈


졸지에 얼굴을 잡힌 석진의 눈이 동그래져 갈피를 잃었다. 가까이서 묻어나는 여주의 숨에, 알싸한 알코올 냄새 사이로 달달한 향이 숨어있었다. 


"교수님 지금 햄스터 같아여. 햄찌...석찌니 햄찌니...."


손 안에 들어온 석진의 얼굴이 마냥 귀여웠던 여주가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키스하려는 거 같은데. 석진은 잠깐동안 이걸 받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피하면 아까처럼 울 거 같고, 받아주자니 그건 또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닌 거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분위기에 키스하면, 돌이킬 수 없을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아이, 아니다. 그냥 안 할래요."

"..어?"


여주가 손을 확 떼내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실은 뽀뽀할라고 했거등여...근데 그냥 안할래여. 왜냐며는..왜냐며는...."


뽀뽀하려고 했다고 솔직하게 흑심을 털어놓은 여주가 '왜냐면은' 만 반복하더니 침대에 풀썩 누워버렸다. 멍하게 있던 석진이 새근새근 들려오는 숨소리에 여주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주 제대로 꿈나라에 직행해버린 것 같았다. 허탈한 웃음이 샜다. 나름 긴장하고 있던 건지 가슴은 쿵쿵 뛰고 있었다. 사람 이렇게 만들어 놓고 혼자 자버리네. 

석진이 잠든 여주 위로 이불을 잘 펴서 덮어주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참 여러모로 사람을 갖고 노는 것 같았다. 오늘만 해도 여주 때문에 놀란 게 몇 번인지 몰랐다.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어오는 달빛이 붉게 달아오른 귀를 비추고 있었다.







----------------------------


진도 확확 빼고 싶은데 캐릭터 특성상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삽질을 시켜야 할 것 같은 기분이네여... 석지니가 점점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걸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자까의 필력부족으로...따흐흑...이게모람...  

암튼 다들 건강 잘 챙기시고 저는 중간고사를 치루고 돌아올게요! 학점은 이미 빠빠이한 거 같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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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 작가님!!! 후루룩 읽고 댓글 씁니다ㅠㅠ 넘 좋았어요ㅠㅠㅠ 작가님두 중간 고사 화이팅 하세요ㅠㅠ 전 과제의 늪으로,, 그럼 이만ㅠ
4년 전
독자16
하,, 시험 끝나자마자 생각나서 달려왔어요ㅎㅎㅎ 작가님 석진이의 철벽이 말랑말랑 해짐에 따라 저도 말랑말랑해지는중,,엉엉 너무 좋아요ㅠ
4년 전
독자2
오마이갓 진짜 오늘 석진이 진짜 제대로네요ㅜㅜ
4년 전
독자3
와아 드라마로 나올것만같은 내용이예요 몰입해서 훅훅 읽었네요 ㅠㅠ캐릭터들 다 매력적이예요 작가님 ㅜㅜ 다음편도 기다립니다💜💜
4년 전
독자4
필력부족이라녀...작가님 너무 사랑해요...
석찌도 넘나 스윗 해서 녹아버릴것같아요...
슨생님 중간고사 파이팅!!

4년 전
독자5
하 진짜 너무 재밌어ㅠㅜㅜㅠㅠㅜㅜㅜ교수님 넘 스윗해ㅜㅜㅜㅠ필력부족은 말도 안되는 소리!! 충분히 스며들어가고있어요... 윤기랑 둘이 술 마신 줄 알고 표정 안좋은 것 부터!! 질투하는 거쟈나!!!! 많이 스며들면 꼭 질투 넣어주세요ㅜㅜㅠㅠ
4년 전
비회원51.185
필력부족.. 그게 뭐예여?!?? 저는 그런 말 이 글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으앙 너무 재밌어요 왜 이렇게 재밌죠,, ㅜㅜㅜ
4년 전
비회원78.76
오늘도 교수님 너무 스윗하잖아요ㅠㅠㅠㅠ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서 여주에게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게 그대로 느껴지는데 필력부족이라니요...?작가님....?정말로 아닙니다!!!!!!!!!!그러니깐 오래오래 봐요 우리ㅠㅠㅠㅠ 그리고 작가님 중간 고사 힘내세요!!!! 그럼 저도 중간 대체 과제하러 가야겠네요ㅠㅠ화이팅
4년 전
독자6
미쳤다......엄청 기다렸어요ㅜㅜㅜㅜㅜㅜㅜ
4년 전
독자7
하.. 너무 스윗해서 돌아버릴 것 같아요ㅠㅠㅠ 석지나..... 얼른 얼른... 여주를 조아해서 미쳐버랴줘ㅠㅠㅠㅠㅠㅠ 여주 너무 귀여워요 작가님 제가 막 다 간질간질하고...... 다음편도 기다릴게여ㅠㅜㅠㅠ
4년 전
독자8
아니 여주야..왜냐며는..왜냐며는 이렇게 사람 궁금하게 해 놓구 자냐..!! 석진이 마음을 알 것 같애... 응 석진이 애닳아 애닳아...
나도 애닳아~ 이유는 말해주고 자자 여주야아앙...
오늘 이야기 너무 좋습니다 분량 무슨일 너무 좋아..사랑해요 작가님💜 그나저나 우리 여주 이렇게 소중해도 되는 겁니까...
너무 귀여워서 사랑스러워...나도 여주 번호 따고 싶네..
삽질을 시킨다니..후덜덜..독자는 예고된 삽질에 애가타게 생겼네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당!!
중간고사 잘 보고 오세요!! 빠이티이이잉~💜💜💜

4년 전
독자9
가랑비에 옷 어느정도 다 젖은 거 가타여. 이제 폭우 한 번 오면 게임 셋. 빨리 게임 셋
이후 보고싶다 으아아아아 !!!!

4년 전
독자10
핫쒸진짜최고다....
4년 전
비회원219.245
으아아아아악 다 뿌시고 싶어여ㅠㅠㅠㅠㅠㅠ둘 다 너무 귀여워서ㅠㅠㅠㅠㅠㅠㅠ다 뿌셔뿌셔ㅠㅠㅠㅠㅠㅠㅠ자까님 중간 고사 화이팅하세요!!!!!!으아아앙아아아악
4년 전
독자11
아ㅠ 진짜 아까워 하면서 읽었어요ㅠ 여주가 빨리 석진이 벽 확 무너뜨리면 좋겠어요ㅠㅜ 작가님 중간고사도 화이팅 하세요~!!
4년 전
독자12
작가님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제 행복의 원천은 작가님입니당 ㅠㅠㅠ 읽는데 넘 좋아서 소리를 몇번 지른건지 ㅋㅋㅋㅋ 중간고사 잘 보고 오세요💜
4년 전
독자13
슌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과제하다 말고 호다닥 와서 흐흐흐하면수 보는중이레요....꺄아><
4년 전
독자14
글 사랑해요♡
4년 전
독자15
자까님........🥺👍🏻
4년 전
비회원238.144
작가님 넘넘 재밋서여진짜루ㅠㅠㅠㅠㅠㅠㅠ 시험잘보시구 돌아오세용~~~~
4년 전
비회원227.155
작가님 시험준비 잘하시고 있으세요????? 자까님 항상 그립고 천천히 빨리오세욥 ㅠㅠㅠㅠ
4년 전
코레
저 시험 좀 있으면 끝나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최대한 빨리 올게요
4년 전
독자17
저... 심장이 쩜 아파요....🥺🥺🥺 이런 글을 왜 이제야 알았는지...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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