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성규부터 찾았다. 속으론 성규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게임 날짜로 고작 3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성규와 마음이 통하게 된 것은 불과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무리 게임이라 한들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성규를 앓던 내 마음들은, 성규와 함께 느끼던 그 감정들은 이제 없다. 그리고 성규도 없으며, 성적은 어쩔 거냐며 듣던 소리들 사이에서 나에게 힐링이 되어 줄 사람도 사라졌다. 담배 연기가 코 끝을 간지렀다. 멍 때리며 자연스레 벌리고 있던 입 속에서 담배 연기가 따라 들어왔다. 켁켁, 대며 힘들어하니 일진 무리가 짜기라도 한 듯 함께 웃기 시작한다. 존나 웃겨, 씨발 년, 좆같은 년 등의 온갖 욕들과 그 외에 들어보지도 못한 심한 욕까지 해대며 그들은 나를 비웃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그들의 얼굴이 싹, 굳었다. 그들의 중심으로 보이는 소녀만 계속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여주야." "......응." "우리 말 못 알아 처먹고 그러니까 좋아?" "......" "네가 그딴 걸레짓 하고 다니니까 우리가 이러는 거잖아." "......" "애초에 우리가 하란대로 했으면 좀 좋아, 안 그래?" 그리곤 갑자기 그 소녀는 여주의 뺨을 때렸다. 담배를 펴던 손이었기에 담배 냄새가 그녀에게 맞은 뺨을 타고 코에 닿았다. 담배 냄새를 유독 싫어했기에 그 냄새에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더렵냐? 그 말이 끝나자 순간 여럿이 함께 모여 들어 여주를 밟아대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있던 여주의 머리칼이 뜯겨지고 헝클어졌으며, 교복이 찢어지기도 하고 맨 팔이 담배빵으로 지저지기도 했다. 왜 상황이 바뀌자마자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난 무슨 잘못을 했을까, 성규가 또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등의 쓸데없는 생각들로 아픈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아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억지로 지우려 눈을 꽉, 감았다. 나를 밟는 소녀들의 발 사이로 약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것이 문득 시원하다고 느꼈다. 시원하다고 느끼니 다시 문득 눈물이 났다. 시원한 바람이 내 눈가로 들어 와 비를 만들어낸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그냥 문득 눈물이 났다. "여주야, 왜 울어? 응?" "......" "대답 안 해? 씨발, 우리가 만만해?" 이제 자신들도 힘이 들었는지 발길질을 멈추고 우는 내게 물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입이 부르터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든 것이 꽤나 건방져보였나보다,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이젠 발을 쓰지 않고, 손을 쓰려는 듯 중심으로 보이던 그 소녀는 다시 오른손을 높게 쳐들었다. 전에 그녀의 손이 맵다는 걸 경험했기에 겁이 났다, 하지만 피할 방법은 또 따로 없었기에 눈만 세게 감았다. 그녀에게 맞았던 오른 뺨보다 세게 감은 눈이 더 아파왔다. 얼른 맞고 끝나기를 바라며 감았던 눈인데 아무 것도 얼굴에 날아오지 않는다. 눈을 뜨니 그 아이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키가 큰 소년이 있었다. "여주야, 괜찮아?" 소년은 괜찮냐며 나의 볼로 제 오른손을 뻗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손을 내쳤다. 내치고 싶지 않았는데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울고 싶었다. 그 소년의 표정에 한 번 느낀 것이 아닌 듯한 실망감이 가득 담겼다, 그래서 더 울고 싶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김여주, 내가 그랬잖아. 저 애들은 적당히 피해 다니라고, 조용히 학교 다니면 된다고."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다리가 아팠지만 마치 나는 성열에게 상처를 주려는 듯 아픈 다리를 멀쩡한 듯 일어 나 성열에게 등을 돌려 무작정 걸었다. 지저진 팔이 쓰라렸다. 정말 비참하다. 볼에서 굳은 눈물 자욱을 소매로 대강 닦아내었다. 뒤에서 성열이 여주를 향해 달려왔다. 여주야, 하며 외치는 목소리에 진저리가 난다는 듯 양쪽 귀를 막았다. 눈까지 감으니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다. 성열의 목소리가 귀를 막았음에도 점점 크게 들려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췄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곧, 내 귀도 나의 손 대신 다른 것이 얹혀졌다. "나하고 네가 좋아하는 노래, 우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들었던 노래야." "......" "일단 다른 거 신경쓰지 말고, 이거 듣고 기분 가라앉혀." 밤 하늘의 별을 따서 너에게 줄래. 너는 내가 사랑하니까, 더 소중하니까. 어깨에 올려진 가방끈에 팔을 넣어 가방을 고쳐맸다, 아마 맞다가 가방을 흘리고 온 듯 했다. 잔잔하게 귓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가 눈물샘을 간지른다. 성열은 어느새 나의 앞으로 와 빙글, 웃고 있었다. 그와는 상반되게 나는 다시 펑펑 울었다. 성규가 나에게 울보라는 말을 꺼낸 이후로 몇 번이나 울었는 지 모르겠다, 정말 울보가 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키가 꽤나 큰 성열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으니 성열이 아무 말도 않다가 옆으로 와 어깨동무 ㅡ라고 하고 팔걸이라고 읽는다ㅡ 를 해왔다. 나의 귀에 꽂힌 이어폰 한 쪽을 가져 가 제 귀에 꽂은 성열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가사를 읊조리기 시작헀다. "첫 눈에 반해 널 사랑했어, 어떻게 표현 할 지도 몰라." "그만 해,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면 안 쪽팔리냐." "넌 길거리에서 우는 거 안 쪽팔리냐?" 그의 말에 그를 째려보니 다시 빙글, 웃는다. 웃는 낯에 침 뱉 못 뱉는 사람이 여주임을 잘 알고 있는 듯 행동했다. 그냥 그의 웃음을 따라 웃었다, 정말 재밌어서 웃는 건 아니고 헛웃음이 났다. 성열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는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그런 장난에도 보란 듯 더 크게 웃었다. 눈이 다시 한 번 마주치니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내어 웃어재꼈다. 성열이 가만히 어깨동무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네가 이유를 말을 안 해줘서 이유를 모르니까 뭐라 하진 못 하겠지만, 난 네가 정말 저런 애들하고 어울리는 거 보기 싫어. 어울리는 거던 이렇게 몰이를 당하는 거던 그냥 넌 쟤네랑 안 엮었으면 좋겠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아, 다 알지. 그래도 난 네 말 못 들어. 난 쟤네하고 계속 엮여야 돼." 그렇게 단호히 말 하자 성열이 발걸음을 멈췄다. 뭐냐는 듯 바라보니 네 집이잖아? 하며 묻는다. 아, 여기가 이번엔 내 집이구나. 성열이 어깨에 올려 둔 손을 내렸다. 일부러 밝은 척하며 성열에게 손인사를 했다. 성열이 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성열이는 웃는 게 참 예뼜다. - 메롱, 우현이 아니었지롱.
"이성열, 이러지 마. 제발 그만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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