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꽃이라고 하면 색색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약간 짙은 향기를 생각해내곤 한다. 하지만 어떤 건 향기는커녕 풀내음 만 짙게 나고, 띄우고 있는 색도 단색, 모양도 별로 예쁘지 않고, 그리고 누군가의 눈총마저도 받질 못해 그냥 그런 꽃을 한대모아 만든 이름. 들꽃. 처음엔 나도 화려한 꽃은 아니 여도 나름의 향기를 뿜는 그런 꽃 일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누구의 관심도 없이, 홀로서기로 살아남다가 밟혀죽거나, 말라죽거나, 결국엔 죽음마저도 쓸쓸하게 홀로인.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은 들꽃이었다.
* * 정확히 뚜렷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 날 딱딱하고 탁한 빛을 내는 낡은 나무의자에 앉혔다. 그리곤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내가 애처로웠던 것일까? 곧 있으면 자신에게 버려질 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어머니의 모습은 사라지셨고, 그게 기억 속 엄마의 마지막 모습 이였다. 그땐 왜 울음이 나질 않았던 것일까. 차라리 그때 목이 터져라 울었으면 엄마가 돌아왔을까, 아니면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엄마를 찾아주셨을까. 아직도 가끔 그 모습이 꿈에 나오고 생각도 난다, 꿈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은 내가 안하면 되니까 안하려고한다. 날 거두어 주신 분은 꽤 오래된 성당의 큰 신부님이셨다. 신부님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졌다.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신부님의 자글자글한 주름이 한 개씩 늘어갈 때마다 마음속의 무게도 커져만 갔다. 신부님께 어렸을 적 이야길 물어보면 항상 웃으시면서 말씀해주셨다. ‘내가 미사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천사가 앉아있더구나.’
그리고 그 이상의 말씀 대신 또 다시 인자하신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에 맞게 나 또한 저 말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다고 여기고 있어서, 그 이상 신부님께 물어 보진 않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고 알아낸 나름의 추억 이였다. 하지만 추억이라고 해봤자 머릿속에선 거의 잊혀져가는 엄마의 형상 뿐 이였고, 신부님에게 물어보면 항상 같은 말 만 해주셨기에 한정 돼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덤덤했다.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여기까지만 ‘내 아주 어렸을 적 이야기.’ 라고 취중 해두고 싶었다. 그렇게 신부님의 아래서 길러진 난, 어렸을 적은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진 않지만 내 인생에서의 평범함을 찾는다면 이때가 가장 평범했다. "동우야, 이리 좀 와보렴." 장 동우, 내 이름이다. 엄마가 지어준 내 이름. 신부님이 날 봤을 땐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고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만 있었다고 한다. 내가 꽤 크고 나서는 신부님이 날 부르시더니, 이름을 바꿀 것 인지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나름 신중하게 꺼낸 이야기 같았지만, 난 ‘괜찮아요.’ 라는 말을 얼른 내뱉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솔직한 심정으론 삭막한 분위기를 깨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친구들 만나러 갈래?"
그때에 난 친구라는 단어가 왜 이리 날 들뜨게 했을까, 생소하기만한 단어를 들어 왠지 모를 설렘 이였을까. 신부님의 물음에 대답대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지어주시곤 ‘ 내일 아침에 만나러 가자꾸나.’ 내 주위에 신부님 말고 친구라는 게 생긴단 생각에 빨리 아침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신부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내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신자들의 소리에 눈이 번뜩 뜨였다. 그 짧은 다리로 방에 있는 화장실로 곧장 달려가 잘 닿지 않는 스위치와 손잡이를 꼿발을 딛고 겨우겨우 틀고, 열어 신부님이 해주셨던 대로 화장실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욕실용 의자를 세면대 앞으로 가져다 놓고 올라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을 틀어 그 작은 손에 물도 담아지지도 않는데 손에 묻혀 진 물로 꼼지락 거리며 세수를 했다. 신부님이 하셨던 대로, 여러 번 얼굴에 물을 묻혔다. 의자에서 내려와 다시 원래의 자리에 두고 수건을 찾고 있는데 때 마침 신부님이 내 앞에서 수건을 가지고 서있으셨다. 아마도 저를 깨우러 오셨다가 내가 안보이자 주위를 둘러보니 불이 켜져 있는 화장실로 오셨을 것이다. 수건으로 열심히 얼굴을 부벼 다 닦곤 고개를 들어 신부님을 바라보자 눈을 빛내고 있는 날 마주보시더니 ‘밥 먹자.’ 란 말만 하시곤 방을 나가셨다. 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쑤셔 넣듯 먹었다. 맞은편에서 같이 밥을 드시고 있던 신부님은 날 슬쩍 보시더니 천천히 먹거라, 라는 말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서툴게 숟가락질 하는 저의 숟가락 위에 흰 생선살을 올려주셨다. 아마 천천히 먹으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거 란걸 아시고 대신에 반찬을 올려 주신 것으로 말을 아끼신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곤 신부님이 양치질을 도와주셨다, 이제 6살 갓 넘은 아이가 양치질은 무리였기 때문에.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색 노란 반팔 티와 남색반바지의 옷을 입혀 주셨다. 새 옷의 빳빳한 느낌 때문에 여러 번 몸을 뒤척거렸다. 탁자에 놓여있던 큰 빗으로 앞머리를 정돈해 주시곤, 유행지난 만화캐릭터가 박혀있는 운동화를 신겨주셨다. ‘끙 차’, 하며 일어나자 신부님은 반팔티보다 조금 더 진한 색의 노란가방을 매주시더니 내 손을 잡아주시곤 성당 옆에 딸려있는 집을 나섰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면서, 쿵쾅거리며 세차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질 못하고 신부님의 손을 끌어당겨 재촉하였다. 그 땐, 드디어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 이였고, 어찌 보면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한 시발점 이였다. 어린나이에 난 너무 세상을 몰랐고, 그런 세상은 날 이해하질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