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txt |
기분 좋은 바람이 살살 불어왔다. 너는 혼자 근처 동네의 빈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꼬마아이들은 이런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즈음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버린다. 내가 이사온 시골 마을. 이 근처에는 슈퍼도 어떤 편의시설도 없다. 그저 푸르디 푸른 나무와 색색의 꽃, 자갈, 흙길 여기서 조금 더 벗어나면 논밭도 있다. 이런 가을 밤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내 귀를 자극시킨다. 뉴스에서만 보던 강도나 살인마에게서의 위협따위는 없다. 평하롭디 평하로운 그런 조용하고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그 사이에서 넌 때 묻지않은 어린 소년같았다. 물론 니가 나보다 어린 것은 아니였다. "너 거기서 뭐해?" 나는 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너는 아무 말이없었다. 다만 코에서 바람 빠지는 소릴 낸 후 일어서선 가버렸다. 난 너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라고 느꼈다. 너는 나 같은 모범생류와는 거리가 먼 존재니까. 우리 반을 주름잡는 아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리 반은 항상 시끄러웠다. 몇 명의 아이들이 권력을 잡고는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덤빌 수 없었다. 그저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며 조용히 책만 바라보고 사는 나니까 저 권력자들에게 대항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 나를 너네들은 표적으로 삼았나보다. 우리 집은 남들에 비해 많이 살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막노동을 하시다 난간에서 미끄러지시는 바람에 다리를 편하게 쓰시지 못하신다. 절뚝절뚝 걸어다니신다. 가끔 철 없는 꼬마아이들이 나의 아버지를 향해 절름발이라고 놀릴 적이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분노를 애써 눌러가며 조용히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가야했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항상 미안해하셨다. 내 이름을 부르시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연신 말하시면 난 항상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나와 여동생을 먹여살리신다. 내가 학교가는게 죄송스러울 정도로 우리 집은 가난했고 또 비참했다. 그런 나를 위로해주시며 신경 쓰지말고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난 지금까지 사고도 한번 안치고 모범생중 모범생으로 선생님들께 많은 칭찬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너를 만나고나서 이 학교 이 반에 오고나서 내 생활 패턴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야 김성규" 너와 너의 패거리가 날 불렀다. 안경을 고쳐쓰고 고갤 들어 날 부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 아이는 이리오라는 손짓을 나에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 아이에게로 갔다. "넌 부르면 퍼득퍼득 와야지,거북이도 아니고" "...왜 불렀어?" "남우현이 너한테 볼일이 있댄다" 너. 그래 남우현. 너는 너의 패거리를 다른데로 쫓아냈다. 너가 야 하고 말하자 시끄러웠던 교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게 너의 권력이구나. 나는 조금 겁을 먹었다. 너가 나를 부른 일은 처음이니까. 수업시간이고 쉬는시간이고 너는 제일 구석진 자리에서 날 쳐다보기만 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귓뜸하기론 날 찍었다고했다. 가끔 날 보다 친구들끼리 얘길하며 낄낄 웃기도했다. 그런 널 보며 난 속 편하게 아 웃는 모습이 멋있다. 하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기분 나빠하기 마련인데 난 그만큼 너가 좋았나보다. 너의 잘난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걸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항상 날 쳐다보던 너가 이젠 날 불렀다. 날 때리기라도 하는 걸까 주변 아이들도 조용히 나와 너를 지켜보기만했다. 누가 틀었는지 모를 선풍기가 힘없이 털털털 움직이고 아이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가까이서 날 지켜봤다. 가까이에서 본 너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같았다. 나와 같은 교복인데도 너는 빛이났다. 마치 티비에서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처럼 잡지에서 나오는 잘빠진 모델들처럼 넌 굉장히 멋있었고 빛이났다. "...됐다,들어가서 너 할 일 해라" 너는 날 앞에 두고 옆으로 돌아 나갔다. 조용했던 아이들은 삽시간에 시끄러워지고 중간중간 내 이름이 나오는 듯 했다. 나는 다시 자리로 들어갔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아. 너와 난 같은 남잔데 난 너에게 너무나도 깊게 빠져버렸다. 사실 가까이 서서 널 뚫어져라 쳐다봤을때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간신히 참았다. 깊게 숨을 내뱉으며 맘을 진정시키니 너가 뒷문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가을 햇살을 머금은 너의 모습을 내 눈에 가득 담았다. 너는 힐끔 나를 보았다. 나는 아닌 척 고갤 돌려 다시 글자를 읽어나갔다. 너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서 봤으니 난 됐다. 이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다. 그 날은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너를 가까이서 본 것도 좋았고 집에 가는 길에 청개구리가 날 놀래킨 것도 좋았다. 모든게 다 좋았다. 집으로 가는 길이 즐거웠다. 머릿속에 온통 너의 얼굴로 가득 차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 열이 올랐다. 그런 내 앞에 너의 패거리가 날 보았다. 너랑은 다른 질 나쁜 아이들. 나는 너가 학생신분에 맞지않게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건다고 생각하지않는다. 그래서 저 패거리들만 질 나쁜 아이들이다. 너의 패거리는 나에게 걸어왔다. 기분나쁘게 웃으며 날 둘러쌓다. 나는 가방끈을 꾹 잡았다. 이리저리 머리가 밀렸다. 손가락으로 꾹꾹 밀더니 내 안경을 벗겼다. 안경을 벗어도 보일 건 다 보였다. 그렇게 눈이 나쁜 편은 아니였으니까. 단지 예전 나와 엄마, 여동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를 닮고싶어서. 힘들어도 웃으며 가정을 이끄는 멋진 아버지가 되고싶어서 아버지의 안경을 썼을 뿐이다. 운이 좋게도 안경이 내 시력과 비슷하게 맞아서 쓰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 소중한 안경은 너넨 더러운 신발바닥으로 밟았다. 힘이 없는 안경이 아그작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난 부서진 안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네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큰 소리로 웃었다. 화가났다. 하지만 싸움의 ㅅ도 모르는 내가 너넬 이길 수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런 반응없이 고갤 숙이고 서있던 나를 너네들은 골목으로 끌고갔고 난 끌려갔다. "얘 안경 벗으니까 훨씬 낫네,안그렇나?" "눈도 쫙 찢어진게 계속보이 가쓰나같네" 성규야 가방 좀 보자,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너네 패거리 중 한 명이 내 가방을 억지로 뺏어 지퍼를 열곤 탈탈 털어냈다. 교과서와 공책, 필통같은 것들만 떨어지자 너네들은 이게 뭐냐며 짜증을 냈다. 내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곤 너네들은 날 쳐다보았다. 나는 어쩔 줄 모른 채 내 손만 바라보았다. 너네의 그 알 듯한 시선이 보기싫었다. 아무리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아들이라지만 날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싫었다. 너네들은 한 명씩 내 손목을 잡았다. 동네 아는 형에게 물려받은 교복이라 나에게 조금 큰 셔츠의 단추가 풀렸다. 나는 그제서야 엉엉 울었다. 세상 사람 다 들으라는 듯이 엉엉 울었다. 그러나 나에게 온 것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라 뺨을 때리는 거친 손길이였다. 목에 닿은 뜨거운 숨이 싫어 목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가만히 좀 있으라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처음이였다. 너무 무서웠다. 내 몸을 더듬어가는 사내의 손길도 무서웠고 소리를 지르거나 발버둥치면 날라오는 손도 무서웠다.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눈도 질끈감았다. 너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엄마와 아빠, 여동생으로 가득찼다.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야 너네들 거기서 뭐해" 너의 목소리다. 낮은 너의 목소리가 골목길에서 울려퍼지자 내 몸을 만지던 손들이 떨어져나갔다. 난 얼어붙어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풀렸던 단추를 다시 잠구고 떨어진 교과서를 주웠다. 그 동안 너는 너의 친구들과 싸운 것 같다. 퍽퍽 거리는 둔탁한 소리도 들린 것 같고 너의 화난 목소리도 들린 것 같다.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너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여동생이 날 반겼다. 오랜 시간을 혼자 집에서 있는 동생을 품 안에 가득 안았다. 동생이 배가 고프다며 보채 나는 밥을 하러 부엌으로 갔다. 집 안은 동생의 웃음소리로 시끄럽다. 뭐가 그렇게 재미난지 노래를 부르다가도 깔깔 웃고 그림을 그리다가도 깔깔 웃는다. 나와는 나이차가 많은 늦둥이 동생이다. 나는 벌써 고등학생 2학년이지만 동생은 한참 그보다 한참어리다. 곧 있으면 초등학교도 가야할텐데 집안 사정이 어려운게 걱정된다. 나는 안돼도 동생이라도 잘 크길 바라는데 바라면 무얼하나 집안 사정은 그대로다. 숙제를 하려 가방을 뒤적이니 필통이 없다. 교과서랑 공책만 챙겨넣고 달려왔나보다. 당황스러운 맘에 어쩌지 어쩌지 한참 고민하다 잠시 나가본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 골목길에 너네가 있을까봐 무서웠다.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레 그 골목길로 가니 내 필통을 들고 그 더러운 길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너가 보였다. 나는 너의 앞에 우두커니 서 손을 내밀었다. 친구랑 크게싸웠는지 여기저기 상처가 있는 넌 이거? 하며 나에게 필통을 건넸다. 난 고마운 마음에 고갤 숙였다. "미안하다" 난 왜 너가 사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과는 너의 친구들. 그 더러운 아이들이 해야하는데 왜 너가 하는지 모르겠다. 난 멋쩍게 뒷머릴 긁적였다. 너는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아아 아픈소리를 내며 비틀거리기에 내 어깨에 너의 팔을 걸쳤다. 비틀비틀 걷는게 꼭 나의 아버지같아서 너의 손을 꽉 잡고 조심히 걸었다. 많이 아픈건지 너의 발걸음의 폭이 좁았다. 덕분에 너의 집 앞까지 가는데 엄청 오래걸렸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괜찮냐?" "...너는 니 걱정이나 해" "넌 말이야" 참 이뻐. 너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날 바라보며 이쁘다고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널 보며 다시 한번 되물었다. 너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쁘다. 하고 말했다. 놀란 맘에 걸친 너의 팔을 휙 빼버리니 어어 하며 넌 대문 앞에 나자빠졌다. 우물쭈물 손을 내밀어 잡아줘야 할 것 같은데 몸이 말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난 너가 친구들한테 머리를 맞아 정신이 나간거라 생각했다. 너는 푸흐흐 웃으며 옷을 털고 멀쩡하게 일어섰다. 방금 전 비틀거리던 넌 어디가고 멀쩡하게. "나 사실 멀쩡하다. 근데 너 때문에 아픈 척 좀 해봤어" "..가,갈게" 난 너에게서 도망치듯 달렸다. 아까 전처럼. 헉헉 숨이 차오르게 달려 집으로 들어갔다. 동생이 거실에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난 내 방으로 들어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찌릿찌릿 니가 말한 장면을 다시 회상하니 몸에 전율이 올랐다. 고갤 마구 흔들었다. 이러면 안돼 이러면. 내 뺨을 두어번 때려도 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다음 날 학교에 너의 패거리들은 오지않았다. 너와 싸우고 저녁에 돌아다니다 술에 잔뜩 취하신 동네 아저씨와 시비가 붙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들은 주변 동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오늘 학교에 오지못하고 봉사를 갔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너는 그 패거리들이 없어지자 혼자 의자에 앉아 창문만 바라보고있었다. 그 아이들 생각을 하나 난 이해 할 수 없었다. 문학시간, 선생님은 시를 쓰라고 하셨다. 자신이 아는 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 주변 아이들은 내가 그런걸 어찌아니 하며 잡담에 빠졌고 나는 뭘 쓰지 하며 고민하는데너는 줄줄 써내려갔다. 이런 일이 있었을 줄 알았던 아이처럼 망설임도 없이 시를 써내려갔다. 그리곤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선생님도 너의 그런 모습에 놀라신듯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널 일으켜세웠고 너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시를 읊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너의 입에서 나온 시는 짧았다. 그리고 달콤했다. 만족하신 선생님이 그런 시를 너가 어떻게 알았냐며 칭찬을 아끼지않았고 넌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풋 웃었다. 너의 미소는 니가 읊은 그 시보다 더 달콤했다. - "성규야" 처음으로 너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집에 가는 날 돌려세우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실 그 시. 너한테 읊는 시였다" 아, 작게 탄성이 나왔다. 그 달콤했던 시가 날 향해 읊은 시라는 게 좋았다. 너는 나를 보다 살포시 끌어안았다. 하교하던 아이들의 웅성거림에 신경쓰지않고 날 꽉 끌어안았다. 너의 품은 그 무엇보다 따뜻했으며 "사랑해" 너의 음성은 그 무엇보다 부드러웠다. |
엌....첨 써봐여...어휴
부끄터지는 그런 느낌^^
저 시는 풀꽃이라는 시인데 나태주라는 시인분이 쓰셨어여..
저도 인터넷서핑하다 발견한 달달터지는 좋은 시...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