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접선
w.감개무량
"기억은해요?"
"뭘..."
"이 아이들은..기억하시려나 모르겠네."
바닥에 떨어진 사진들을 현우가 밟아 짓이긴다.
이렇게, 이렇게 만드셨잖아요. 2년전에
"나는...하나도빠짐없이 다기억나는데...10년전부터..잊지않고있었어요."
나체로 바닥에 고꾸라진 그가 테이프로 연거푸 감겨진 손발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려든다. 남은테이프를 만지작거리던 현우가 다가와 천천히 테이프를 감아올린다. 턱을지나 입을감고 코까지 올라온 테이프에 그가 눈물을 흘린다. 현우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린듯, 아닌듯. 숨구멍하나남기지않고 빈틈없이 테이프를 감는 그의 손길에 망설임이 없다.
권선징악이란 말이있죠. 근데 살아보니까 개뿔..배부른사람은 계속 배부르고 배고픈사람은 계속 배고프게 살아요.
나쁜사람은 계속 나쁘게살고..착한사람은..
나쁜사람한테당하고살죠
한번쯤 뒤집어 보는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잦아들어가는 몸부림을 구경하던 그가 유유히 룸에서 벗어난다.
얼마전 Jk그룹 회장이 변을당한데에이어 같은회사 임원이...
전원버튼을 누른수현이 소파에기댄다. 이틀전부터완전히 회사일에 몰입하기시작했는데 과연수사를 관둔일이 잘한것일까하는 생각이 비집고 올라온다. 언제까지 할까..한숨을 쉰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책상서랍으로 치워놓았던 자료들을 꺼냈다. 10시, 아직늦지않은시간이니까..
건네받은 자료들을 펼쳐놓기 시작한다.
심증은있는데..물증은없다.
이미 그를 범인으로확정한 수현이 볼펜을 딸각거린다. 10년전부터..꾸준히 대기업 중소기업가리지않고 사고혹은 사망기록이있다. 이름만 사고, 풀지못해 미제로 남길 자료들을 사고사로 넘기는건 흔한일이지. 수상한 기록들을 나열해본다. 정말이야. 실마리는 상해를당한 모든사람들이 한 연합에 소속되어있었던것뿐이다.
"그게무슨..."
"어깨를 나란히 해온 기업들이 이미지메이킹으로 일부복지단체를 후원하는건 통상적인 일이야."
"..."
"연합이 후원하는 복지단체는 지방의 고아원이었지.회원끼리 돌아가면서 정기적으로 방문해 운영에대한 지원을 해줬는데.."
"..."
"하...이런말해서 미안하다."
"그냥말해"
"기록이 다쓰여지다 말아서..내가다시 찾아가서 전부검토하고왔어. 건물 리모델링 명목하에 오며가던 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성매매 아동피해자가...
"할아범"
"..예"
"이많은아이들이..얼마나..."
무서웠을까...얼마나...원망스러웠을까..
기웅이 가고없는 책상에 아직 자료사진들이 켜켜히 쌓여있다.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느낌에 수현이 의자에몸을기대어 눈을가린다. 손에쥔 사진을 들어보았다. 앳된 소년이 있다.
"고아원 담당자가..입양하는사람의 얼굴도 확인안하고 입양을보내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원칙상..신분이 확실히 증명된 사람은 입양이가능합니다."
"10년에 걸쳐서..10명은..가능해?"
"잘..모르겠습니다만. 입양할수있는 아이 수의 제한은딱히없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이 입양자 조사좀맡길게. 끌어모을수있는 자료는 다모아줘"
아직그자리를 지키고있는 식어빠진 블랙커피를 비워버린다. 정리가안된 머릿속을 헤집어놓는것 마냥 머리를 헝클여본다. 블라인드 커텐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일어서 걷어버린다. 생각했던것보다 너무큰 퍼즐판에 반이상완성된그림이 보인다. 이렇게나 더럽고 추악한일이 등뒤에서 벌어지고있었는데 이걸 지금에서야 알게되다니..그늘진얼굴에 마른세수를 했다. 널브러져있는 자료들을 책상에 차례차례 펼쳐나간다. 얼마전 발견한 성매매 아동피해자만 3명, 10년에 걸쳐 계속되었다면 대체 몇명이나
더 나올까 하는생각에 한숨을 쉰다. 이틀전 입양되었다는 여자아이의사진을 입양자의 사진과나란히 두었다. 이 아이를 포함해서 13명. 모두 성매매피해아동에 포함되는..아이들을 이용해 보복을 꿈꾸는걸까 라고생각하기에 입양자는 회사들과 어떠한 연관도 없는 사람. 최소한의 접점조차발견되지않았고... 입양시에 고아원에 얼굴도 비치지않았다는 베일에 가려진 그를 수사하는게 지금의 최선책일수밖에 없는걸까.
열세명 아이들의 사진을 훑어보던 기웅이 그당시 연합에 직접적으로 참가해 보육원을 후원했던사람들의 사진을 옆에 차례대로 놓았다. 아직아무일도 일어나지않은 사람이 3명. 세군대 잠복하면 덜미를 잡을수있겠지. 수첩에 옮겨적기 시작한 그가있는방의 문이 거슬리는 소리를내며 천천히 열린다. 볼펜을 빠르게 놀리던 기웅의 손이 멈춘다.
*
검은양복에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낸다. 벌써 몇번째 장례식인지 조금남아있던 고인에대한 애도도 이제는 날아가버려 텅빈 머리속이 말끔하다. 절을하고 물러선 수현이 장례식장을 빠져 나온다. 왠지 좀 걷고싶은기분에 차를 무르고 구둣발로 터벅터벅 걷기시작한다. 방금까지 우중충했던 기분을 밝혀주려는듯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그야말로 딱여름날씨다. 근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늘벤치에 앉은 그가 목을 옥죄는 넥타이를 끌어내린다. 이런햇볕에도 아랑곳않고 축구공을 차기바쁜 아이들, 그늘에 자리잡아 돗자리를 편 가족들을 마냥보는게 딱히 기분이 좋지만은않은 느낌이다. 문득 구석그네에 혼자앉아있는 여자아이에게 시선이뺏긴다. 혼자만 다른그림속에있는듯한 부조화.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토끼인형에 손때가 묻어 군데군데 얼룩이 있다. 그네를 타러오는 다른무리를 발견했는지 슬며시 일어나 뛰어가던 아이가 돌부리에 발이 걸렸는지 앞으로 쿵 넘어져버린다. 저도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수현이 다가가기도전에 뛰어와 아이를 안아드는 남자가 보여 다시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수돗가로 뛰어가 자잘한 상처를 씻어내리는 손가락이 유난히 얇다. 푹눌러쓴 모자아래로 옆얼굴이 보일까말까한다. 왠지모르게 낯익은 모습이라 생각하던 그와 눈이마주쳐버린다.
"너..."
말을채 끝내기도전에 아이를 안고 뛰는 그를 반사적으로 쫓기 시작한다. 재빨리 차에올라타는 그의품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왜하필이런때에 차를놓고온거야! 이번에 놓치면 영영 만나지 못할것같은생각에 급히 택시를 잡아올라탄다.
"저 차 쫓아가!"
지갑에서 잡히는대로 현금을 뺀 그가 택시기사의셔츠주머니에 돈을 쑤셔넣었다. 급발진하는 택시탓에 몸이쏠려 손잡이를 움켜쥔다.
사십여분간의 추격끝에 공터로 차를 몰아넣은 수현이 차에서 내려 그의유리창을 두드렸다.
"나힘드니까 그냥 빨리나와"
찰칵
하고 잠금이 풀리는소리에 차문에서비켜선 수현이 문을열고나오는 그를 응시한다.
"너 이새끼 무슨짓하고다니는거야"
"..."
"무슨짓하고다니는거냐고 묻잖아"
높아지는 언성에 그가 차문을 닫았다. 차안에서 그를 빤히 올려다보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내말 안들려?"
"잘들리니까 목소리 낮춰."
"너희가 입은 피해는 ..회사들잘못이커. 거기에 대해선 우리가 최대한으로 보상해줄테니까 .."
보상?
가시돋힌 목소리에 수현이 말을멈춘채 그를 바라본다.
"보상? 뭘로? 돈으로?"
"..."
"웃긴다. 저 아이도, 나와함께 입양된아이들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니가알아?"
"…"
"10년이 지난지금도 나랑함께 입양되었던 여자애는 누군가 몸을더듬는 꿈때문에 잠을설쳐"
그런데 무지 잘살고있더라. 우리만한애들키우면서.
버러지같은 아비를 뒀단사실을 알면 얼마나 삶이 치욕스러울까
그래서 조용히 가게해줬잖아.
그럼된거아냐?
말을끝마친 현우의뺨으로 손바닥이 날아든다. 돌아간 고개에 그의 시선이 허공을맴돈다. 재차 손을 올리는 수현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에 차마 뺨을 치지못한손을 아래로 떨궜다. 머리꼭대기까지 오르락 내리락하는 화를 삭힌다.
그래도..그건아냐
"그럼 뭐가 맞는건데?"
아무것도 담지 못할것같았던 새까만눈동자에 물이고인다. 조수석문을열고 걸어나온 여자아이가 현우의 다리를 폭 끌어안는다. 수현이 차안에 덩그러니 남은 토끼인형을 바라본다.
"...나는 이제 그만둘수가 없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긴 싫으니까..."
"하...?"
"내가빨리끝낼테니까 너만 가만히 있어주면돼.."
"...아니야. 오늘밤에 세 임원들집에 경찰이 진을 칠거야. 너 백방잡힌다."
"... 나는... 할수밖에 없어"
시끄럽고 내말들어
하고 말하려던 그를 끌어안고 구른 현우가 재빨리 여자아이를 안아들고 운전석에 착석한다. 귀를강타한 총성에 아직 바닥에 쓰러져있던 수현에게 타라는 눈짓을보낸다. 거칠게 차를 돌려뺀 그가 시가지를 빠르게벗어나 고속도로를탔다. 토끼인형을 끌어안은 아이가 손을 꼼질거린다. 새파랗게 멍이비치기시작한 현우의 손목에 고사리손을 얹는다.
"너그거..아까.."
퍼즐이 크니까
어..?
퍼즐이 크니까 맞추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
...
그림을 다맞췄을땐 오히려 실망하기 쉬워. 왜냐하면 니가알던 정도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수도 있거든.
벌써 저만치사라진 자동차가 보인다. 문앞에덩그러니 남아있던 수현이 집안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를지금보내면 범인을 놓아주는꼴인데도 붙잡을수가없다. 뭐가나쁜것이고 뭐가 나쁘지않은것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서 그도 머리가 복잡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