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지만 괜찮아
w.1억
재욱이랑 같이 식당에 오긴 했는데. 어제 그 일이 있고난 후에 뭔가 어색해진 건 기분탓일까..
같이 앉았는데 김치를 무슨 산더미 처럼 쌓아서 갖고 오는 이재욱에 놀라서 김치를 보면 이재욱이 날 보고 어색하게 웃는다.
"…이걸 다 먹으라고?"
"…너무 많아?"
"…응."
다시 덜으려는지 김치 그릇을 잡는 이재욱에 급히 '잠깐!..'하자, 이재욱이 놀란 눈을 하고선 나를 본다.
"그냥 먹을게..!"
"아, 그럴래?"
"…응!"
"크흠..."
"…ㅎㅎ."
"약은 먹었어?"
"아, 지금 먹어야지..!"
"응. 얼른 먹어."
"응."
"……."
5년 전 그때의 너는 지금처럼 웃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었는데. 지금 이렇게 웃어주는 건..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서로에게 평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 것 같았다.
"오늘 끝나고는 뭐하냐."
"끝나고?"
"남자친구 만나려나."
"…글쎄 잘 모르겠어."
"모르겠으면 나랑 밥 먹고, 영화 보자."
"…어??"
"아니면 정리를 하고 와."
"……."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은 없으니까. 정리하고 와. 그래야 너도, 나도 편하지 않겠어?"
"……."
"결과가 나던, 그 사람이던 상관없어. 나는 너라면 다 이해할 수 있으니까."
효섭씨와 재욱이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무조건 나를 이해한다는데. 그게 더 어렵고, 무서웠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네가 너무 너무 좋은데. 효섭씨한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너에게 모진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와 같이 있다는 것 자체는 좋았지만,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이거 봐."
이거 봐- 하고 재욱이 핸드폰 뒷면을 보여주자.. 그리가 그게 뭐냐며 눈을 크게 떴다.
단풍잎을 본 그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재욱을 바라보면, 재욱이 웃으며 말한다.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말한 다음날에 네가 점심시간에 갑자기 나 불러서 이거 줬잖아."
"…아??"
"……."
"그걸 아직도 갖고있어!?"
"응."
"거짓말..! 다른 거 주워서 끼워넣은 거 아니야?"
"뭐하러 그러냐? ㅋㅋㅋ."
"…진짜.. 이걸 왜 갖고 있었어...!?"
"보고싶을 때마다 보려고. 원래는 책 사이에 껴놨었는데. 작년부터 넣고 다녔거든."
"…와아ㅎㅎ 나 주라!!"
"싫은데?"
"왜! 어차피 내가 준 거잖아..!"
"나 준 거잖아. 그럼 내 거지."
"…치."
"ㅋㅋㅋ"
재욱이 웃으며 그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그리가 놀란 듯 재욱을 올려다보다가도 베시시 웃었고..
회사 안에 들어간 둘을 본 소희, 강준, 해인.. 소희가 둘을 보며 말한다.
"어째 느낌이 쎄하고 그러네."
"…둘이 뭐 썸이라도 타냐? 왜 이렇게 분홍빛이.."
"……."
"아니 잠깐만 그리 애인 있지 않았나???"
"그러게 둘이 엄청 친해보이네.."
셋이 바보처럼 서서 사라져가는 둘을 보고 있으면.. 곧 옆으로 누군가 지나가며 소희에게 말을 건다.
"밥 맛있게 먹었어?"
소희가 놀라서 동욱을 올려다보면 강준이 그 둘을 번갈아본다. 뭐야 둘..
"네.. 신팀장님은요?"
"완전 별로였어. 뒷편에 순대국밥 집 있는데 거긴 비추다."
"ㅎㅎㅎ원래 순대국밥도 안 좋아하기도 하구.."
"다행이네 그럼. 아, 참.. 빵 맛있더라!"
"빵 다 드셨어요??"
"응. 아침이랑 저녁을 그걸로 떼웠더니."
"왜 빵으로ㅠㅠ... 밥을 드셔야죠..!"
"나도 빵 좋아하는데에!!!!!!!!!!!!!!!!!!!!!!!! 한조임!!!!!!!!!! 신팀장님 한테만 주고!!!!!!!"
목소리가 큰 하늘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는다. 그리고 또 예쁘게 웃는 소희에 강준의 표정이 어딘가 좋지 않다.
잠시 일을 하다말고 그리가 쉬고 있었을까..잠 좀 깨려고 나오면 문 앞에 누군가 서있다. 그리가 놀라 고갤 들면, 머그컵을 들고 있는 재욱이 그리에게 말한다.
"부르려고 했는데 알아서 나오네."
"…응? 왜??"
"마셔."
"커피?"
"핫초코."
"아?? 핫초코??고마워..!"
그리가 웃으며 머그컵을 들고 재욱을 바라보면, 재욱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직접 탄 거야?"
"응."
"나 잠 깨려고 나온 거였거든..잠이 와서."
"잠 못 잤어?"
"응!.. 요즘 잠을 못 자서.."
"왜 잠을 못 자?"
"음..글쎄...아직 자취방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불편하구.."
"아... 자취.."
"너도..혼자 사는 거야?"
"응."
"아..."
둘이 어색하게 또 대화를 하고 있고.. 화장실에 다녀 온 소희가 그런 둘을 보며 말한다.
"야 역겨워 꽁냥거리지 말아줄래? 진짜 솔로는 서러워서 어떻게 살라고...."
"……."
"와 근데 이재욱 너 대단하다? 성격이 이렇게 한순간에 확! 바뀌고 그러나 원래???"
"……."
"여봐. 내 말엔 대답도 안 하잖아. 그리야 얘가 원래 이렇게 싸가지 없어. 너야 뭐 잘 알겠지만.. 적당히 꽁냥거리다가 들어와라?"
다 아는 것 같았다. 그리가 말을 하지 않아도 소희는 둘의 분위기를 보고선 다 아는 듯 작게 웃었고.
소희가 그리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다 얘기해줄 거지?'하고선 푸하하-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선다.
그리고 소희는 자리에 앉아서 신팀장에게 카톡을 보낼까 말까 고민을 한다. 한참 고민을 하던 소희가 결국 카톡을 보낸다.
- 저녁 같이 먹을래요?
하지만...
"씹혔다...읽씹...이야 그것도..."
모든 일이 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옥상에 올라와 담배를 피려고 입에 문 신팀장은 곧 옥상에 혼자 서있는 소희를 보고 멈춘다.
"……."
"……."
뭔 생각을 하는지 허공을 보고 있는 소희에 신팀장은 말 하나 걸지도 못 한다.
"……."
결국 신팀장은 담배를 피지도 못한 채 옥상에서 나왔고, 소희는 신팀장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아니 이게 얼마만에 짝사랑인데.. 엄청 어려운 사람인 것 같아서. 시도 해보기 전에도 걱정이 태산이네.
"재욱이 뭐 좋은 일 있어? 오늘 기분 엄청 좋아보이네."
"뭐라구웃? 아 신팀장님! 재욱이가 글쎄 연애를 한답니다."
"거!! 헛소문 좀!! 뭐 재욱이가 웃어주면 연애하는 거예요??"
"넌 왜 화를 내냐아!!!"
재욱이를 가운데 두고 싸우는 둘에 신팀장이 웃으며 보다가, 곧 창문으로 밖을 본다. 밖에는 소희가 바쁘게 서류를 들고 뛰어가고 있고..
신팀장은 그런 소희가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
그리는 결국 끝나고 효섭의 카페로 향했고, 효섭은 그리가 오자마자 웃어준다.
문을 닫는 효섭에 그리가 벌써 끝내냐고 물으면, 효섭은 말한다.
"어차피 오늘 손님도 안 오고."
"…아."
"잠깐 앉아볼래요?"
"아, 네."
그리가 의자에 앉으면, 효섭이 그리가 좋아하는 핫초코를 만들어 그리에게 건네준다.
그리가 '고마워요..'하면 효섭이 밝게 웃어주다가도 천천히 표정이 굳는다.
그리도 효섭에게 할 말이 있지만.. 효섭도 그리에게 할 말이 있는 건 확실했다.
효섭이 말도 못 하고 고갤 숙인 채로 손톱만 뜯고 있으면, 그리가 '저기..'했고.. 효섭이 고갤 들고 그리의 말을 끊는다.
"그리씨."
"…네?"
"그리씨 보고 첫눈에 반한 건 저였어요."
"……."
"조금도 기다리지않고 표현을 막 해댄 것도 나고."
"……."
"그리씨랑 돗자리 깔고 누워서 얘기 했을 때. 그때 그리씨가 나 좋다고 했었잖아요."
"……."
"나는 너무 너무 좋았는데. 그리씨는 나보다는 아닌 것 같았어요. 나를 보고 있어도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고 그러더라."
"……."
"그떄 봤던 그 친구 맞죠? 키 크고 왜."
"…네."
"그 친구가 그리씨한텐 뭐예요? 어떤 존재야?"
효섭은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그리는 효섭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도 못 마주치고 있다가 곧 용기를 내 눈을 맞춘다.
"…첫사랑이에요."
"……."
"나한테 아픈 사람도 연애할 수 있냐고 모진 말 했던.. 근데 모든 게 다 오해였고.."
"오해인 걸 알기 전에도 그리씨는 그 친구를 좋아했잖아요."
"……."
"내 말이 틀려요?"
"……."
"그때 그 얘기 하면서 그리씨 표정 보면서 다 알았어요. 대충..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겠구나 싶었고.."
"…미안해요."
"그 친구 만났을 때부터 대충 정리 했어요. 미안해 하지 말아요."
"……."
"왜 그리씨가 미안해요. 나 그리씨 하나도 안 미운데..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어요.
나도 찌질하게 시간 질질 끄는 거 싫어해요. 그리씨를 위해서, 날 위해서."
"……."
"그리씨랑 겨우 한달 남짓 만났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그리씨는 후회 좀 해야 돼. 나 진짜 잘난 놈이고, 잘해주는 놈인데.."
"…미안해요, 정말."
"내가 찬 거잖아요. 미안해하지 말라니까요. 자꾸 미안하다고 하면 그리씨 못된 사람 같잖아."
"…못된 사람 맞잖아요, 저."
"왜 못된 사람이에요? 그리씨는 진짜 사랑을 찾은 거고,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사랑을 놓아줬고."
"……."
"너무 퍼펙트 한데???"
"……."
"그리씨랑 셀카 한장 안 찍은 거 너무 다행인 거 있죠? 찍었으면 지우기 아까웠을 것 같아."
"……."
"얼른 가요."
그리가 끝까지 울지 않고 카페에서 나가면, 효섭은 참아왔던 눈물을 쏟는다.
"……."
그리가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리도 그래도 효섭을 사랑했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효섭과 좋게 끝나는 게 더 슬프고, 더 미안할 뿐이다.
그리가 한참 걸으며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을 무식하게 닦아내고선 재욱에게 카톡을 보낸다.
- 저녁 먹자.
[저녁? 뭐 먹을까]
- 지금 어디야?
[집]
- 집이 어딘데?
재욱에게 주소를 받은 그리가 급히 택시를 잡았다.
"뭐냐? 금주 한다면서 또 술이냐??"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왜."
"몰라요."
소희는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다. 읽씹을 당했다는 건.. 이미 끝이 났다는 것.
소희는 술에 조금 취했고.. 강준은 소희가 풀이 죽어있자 걱정이 되는 듯 몰래 보다가도 입을 연다.
"왜 이렇게 다운이야. 나도 같이 다운될 것 같은데."
"글쎼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안 봐주는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하려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응. 그쪽도 아는 사람."
"……."
"저녁 먹자고 카톡을 보냈는데. 어떻게 읽씹을 하냐? 진짜..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답장은 해야 될 거 아니야? 더러워서 포기한다."
"무슨 읽씹 당했다고 포기하냐. 너도 참.."
"…내가 이렇게 잘났는데 안 좋아하는 거면.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나, 못 잊은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애인이 있나....이유가 있겠지 싶어."
"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너를 좋아하게 만들면 되고, 못 잊은 사람이 있으면 잊게 만들면 되고! 애인이 있으면 뺏으면 되잖아?"
"…뭔 쓰레기 같은 얘기지 그게?"
"애인이 있으면 뺏으라고. 그거에 흔들리는 거면 그 사람도 애초에 지 애인을 사랑하지 않는단 걸로 보이거든."
"…참나.. 그럼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데."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붙잡고 있으면 미련한 거지. 이기적인 거고.."
"…그런가, 그렇네."
"되게 멋있는 여자인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구나 한주임."
"……."
"읽씹 한 번에 좌절하다니.. 실망이 커."
소희가 강준의 말에 그러게.. 나 실망이 크다..하며 좌절하자, 강준이 소희의 등을 두드려주다가도 소희가 귀여운지 작게 웃는다.
재욱은 집 앞 가로등 밑에 서서 그리가 오는 걸 확인하느라 주위를 둘러보고 있고..
곧 저 멀리서 택시가 서면, 그리가 택시에서 내린다. 재욱이 그리를 보고선 웃는다.
"……."
갑자기 그리가 뛰면.., 그리를 보고 놀란 재욱이 그리에게 다가갔고.. 그리가 숨을 헐떡이며 재욱을 올려다보면 재욱이 말한다.
"왜 뛰어."
"…급해서."
"…뭐가 급한데?"
그리가 재욱을 덥썩 안았다. 덩치 차이가 있어서 폭 안긴 거나 다름 없지만..
재욱이 당황해서 어색한 손을 허공에 두고선 '왜 이래?..'했고.. 그리가 울면서 말한다.
"…끝내고 왔어."
"…애인이랑?"
"…응."
"…그 사람한테 미안해서 우는 거야?"
"…아니!"
"그럼 왜 우는데."
"5년만 동안 계속 제자리만 돌다가 이 자리까지 온 게 너무 슬픈데.. 우리가 너무 대견해서."
"…어쩌라고."
"…어??"
"ㅋㅋㅋ."
"…진짜 싸가지."
"싸가지 없어도 괜찮다며."
"…이럴 땐 짜증나."
"어..? 이거 삐진 건가??"
재욱이 그리를 놀리듯 말하자, 그리가 아니라고 고갤 저었고.
재욱이 그리의 손을 잡는다.
"우리집에서 밥 먹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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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다음화
불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