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어릴 적 무심결에 본 누드화보 같았다.
바보같던 내 호기심,그리고 후에 몰려오는 구역질.
넌 그랬다.
평범한 척 속은 그렇지 않았고,나를 바보천치로 만들었다.
너도,그랬다.
**02**
야자를 마치고 삼삼오오씩 짝지어 웃으며 나가는 애들 속 나는 혼자 이어폰을 꼽고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초여름이랬지만 낮엔 8월이라도 된 듯 햇볕이 너무 따가웠다.그에 반해 밤인 지금은 꽤나 선선한 편이였다.이따금씩 바람이 불어왔고 바람에 내 머리카락도 살랑살랑 움직였다.한참을 걷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골목에 있는 편의점 앞에 멈춰섰다.배는 딱히 고프지 않았다.그냥 오늘따라 유난히 편의점의 간판이 밝아보였다.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니 꾸벅꾸벅 졸던 알바생은 딸랑거리는 종소리에 잠에 깨어 눈을 비비며 어서오세요,라며 인사를 했다.우유와 커피가 즐비한 진열대 앞에 섰다.초코우유와,커피.둘 중에 어떤 것을 살까,그 자리에 서서 꽤 오래 시간동안 고민을 했다.시험기간에도 커피는 마셔본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우유곽에 담긴 커피와 항상 먹던 초코우유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결국 나는 또 초코우유를 집어들었고,계산대로 걸어갔다.
"저기요."
"...."
"저기요?"
"....에?"
"계산이요."
계산대로 가니 들어올 때와 같이 꾸벅꾸벅 조는 알바생이 보였다.초코우유를 계산대 앞에 내려놓아도 깨는 기미가 없어 두어차례 불렀다.그제서야 잠에서 깨어 하품을 쩍하더니 계산대를 바라보다 나를 다시 쳐다봤다.자신의 잠을 깨운게 짜증이 났던건지,아님 초코우유 하나때문에 자신의 잠을 깨운 것이 짜증이 났던 건지.머리를 긁적이던 알바생은 입을 삐죽인 후에야 바코드기를 집어들었다.그런 남자를 보다 소심하게 옆에 있던 츄파츕스통에서 제일 위에 있던 사탕을 하나 집어 들어 건냈다.그리곤 옆에 놓인 노란색 요구르트 빨대를 집어 교복치마에 넣었다.2천원을 냈고 600원을 거슬러받아 편의점을 나왔을 땐 소나기가 오고 있었다.지갑을 가방에 넣고 초록색 접이식 우산을 꺼내들었다.밤에 오는 비는 기분이 좋았다.물론,밤에 오는 비에 한에서만 말이다.
****
집에 오자마자 우산을 신발장 바닥에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했다.가방에서 초코우유를 꺼낸 후에 냉장고에 넣어놓았다.샤워를 하고 나서 마실 생각이였다.위층으로 올라가 갈아입을 옷과 속옷,바디로션을 챙겨 내려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장마철 비는 아닌 탓에 끈적이는 듯한 습기는 없었지만,축축한 느낌이 여간 기분 별로인게 아니였다.따뜻한 물과는 다르게 내 몸은 조금 차가웠다.10분가량 몸을 씻었고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을 땐 거울에 습기가 차 뿌옇게 변해있었다.거울 밑 세면대엔 여전히 그의 물건이 정리되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벗어놓았던 옷가지를 세탁바구니에 넣어놓곤 냉장고에서 초코우유를 꺼내 위층으로 올라왔다.차가워진 초코우유때문에 잡은 손이 차가워지고 있었다.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바로 침대에 누웠다.말리지 않은 머리가 젖은 수건에 쌓여있었고 우유곽 표면에 생긴 물이 손을 축축하게 하고 있었다.몸을 일으켜 서랍장 옆에 개두었던 교복치마에서 딸기맛 츄파츕스와 빨대를 집어 침대 위로 다시 올라와 누웠다.우유곽을 열고 빨대를 넣어마셨다.옆으로 돌려누은 몸 덕분에 내 눈은 창밖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고 있었다.작은 물방울들을 하나씩 세어갈 때마다 초코우유를 빨대로 쭉쭉 빨아 마셨다.
빈 우유곽을 침대 밑 바닥에 내려놓았다.츄파츕스 껍질을 아무렇게 나 까 입에 물었고 귀에 이어폰을 꽂아 노래를 들었다.츄파츕스 막대를 돌리고 있는 내 손에는 초록색 매니큐어가 발라져있었다.젖은 머리 때문에 내 몸 밑에 있는 이불은 차츰 젖어들어가고 있었다.나는 아무렇지 않게 귀로 흘러들어오는 피아노 소릴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져가고 있었고,곧 그칠 것 같았다.창문을 톡톡대며 거미가 걸어다니고 있었다.내 방에는 자주 거미가 나타났다.손을 들어 거미를 손으로 한번 가렸다 떼었다.거미는 이미 멀리 도망가고 없었다.눈을 감고 볼륨을 올렸다.막대에 작게 붙어있는 사탕을 깨물었고,아무것도 없는 빈 막대를 침대 밑으로 떨어뜨렸다.침대 밑 작은 카펫엔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흘러나온 초록색 매니큐어가 굳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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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시계가 11시가 넘은 시각을 가르키고 있었다.오늘은 주말이였다.창밖에 뜬 해를 바라보다 마른 세수를 하곤 한숨을 쉬다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머리를 말리고 자지 않은 탓에 침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방문을 열고 나가 물을 마시기 위해 계단으로 다가갔다.거실에선 부모님이 틀어놓은 이름모를 교향곡이 CD플레이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천천히 걸어 계단에서 내려오니,부엌에서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나온 그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재빨리 눈을 아래로 깔았다.숨소리가 날까 무서워 숨도 참았다.방금 일어나서인지 마른 목구멍으로 침이 내려가면서 목이 따가웠다.그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 후에 뒤이어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고,참던 숨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어제 꾼 꿈이,1년동안 날 괴롭힌 그 악몽이,절정을 향하던 교향곡 속 나를 비웃던 그의 모습이 다시 생각이 나버렸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킨 뒤 후들거리는 다리로 다시 일어나 부엌으로 가 물을 떠 마셨다.유리컵을 쥔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유리컵을 식탁에 내려놓은 후 두손을 붙잡고 두어번 심호흡을 했다.방에 가서 다시 잠을 잘까 하다가,시험기간이 다가오고 있던게 생각나 공부하려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침대 위에 진동으로 해둔 핸드폰이 부르르거리는 소리가 났다.손에 쥐고 있던 유리컵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김준면.
"..아,선배가 왜 전화하셨어요?"
-어...그러니까..우리 시험기간도 가까워 오고 그러니까...어..그래.같이 도서관 안 갈래?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는 준면의 전화였다.왜 전화했냐는 물음에 어물쩡어물쩡 대답을 하던 그는 도서관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 제안을 했고,나는 알겠다며 30분 후에 보자 말을 했다.자면서 엉킨 머리를 대충 빗고는 갈아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로 내려갔다.간단히 샤워를 끝낸 후엔 연두색 나그랑티에 청바지를 입은 후 가방에 공부할 거리를 챙겨,1층으로 내려왔다.부엌 앞에 멈춰서서 오렌지 주스를 챙겨갈까,싶었지만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그의 모습이 생각 나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열고 나가니 항상 있던 자리에 준면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왔네."
"..."
"다음부턴 조금 일찍 나와,나 계속 기다렸잖아.가자"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있던 그는 대문을 열고 나온 내 모습을 보곤 자리에서 바지를 털며 일어났고 웃으며 내게 말을 건냈다.일찍 나오라 하며 장난스럽게 타박하는 듯한 그의 말에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홀드를 켜 시간을 봤다.약속시간보다 되려 빠른 시각이였다.계속 기다렸다는 그는,도대체 언제부터 앉아있던 건지,짐작이 가지 않았다.그는 가자며 내 손목을 약하게 잡아 끌었다.항상 그렇듯 일방적인 그의 대화만을 듣다 가까운 도서관에 도착했다.옆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집중이 잘 안된다는 나의 말에 그는 흔쾌히 나랑 떨어져 앉았다.그런 그에 작게 웃어보여 준 뒤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귀에 이어폰을 꼽고 한참 공부를 하다 가끔씩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고 했다.그럴 때마다 준면은 항상 내 뒤에 있는 시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11시가 가까워지자 도서관에서 우리 둘은 나왔다.낮과 달리 서늘한 밤공기에 드러난 팔뚝을 문질렀다.그러자 준면이 자신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건냈다.그자리에 가만히 멈춰서 가디건을 쳐다보자 그는 웃으며 내 손에 가디건을 쥐어주었다.그 성의에 가디건을 입었다.가디건에선 준면에게서 항상 나던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그리고,그가 항상 쓰던 후르츠향의 바디로션향도 같이 났다.그 냄새에 괜히 기분이 이상했지만 나와,준면은 다시 말없이 집으로 걸어갔다.나는 앞만 보고 걸었고,그는 말없이 내 얼굴을 보며 걸었다.신경은 쓰였지만,상관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
"잘가."
"..네"
"집에 들어가서 문자하고."
"네."
집앞에 도착해서 그는 우리집 대문 앞에서 나를 배웅해주었고,그런 그에게 나는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건냈다.가디건을 받아들곤 내게 손인사를 한 뒤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 이내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조용한 마당에 풀벌레 소리처럼 작은 벌레소리가 들렸고,집 앞에 도착해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불이 꺼진 집안은 아침에 내가 나갔을 때와 다른 것이 없는 듯했다.거실불을 켜지 않은 채 나는 2층으로 올라가려 계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갔다와."
순간 그 목소리에 몸이 굳어버렸다.그의 목소리였다.얼마나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건지,평소의 목소리보다도 더 깊게 잠긴 듯 낮은 목소리였다.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잘게 떨리고 있었다.계단을 향한 고개를 돌려 거실을 바라보니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 속 가만히 쇼파에 앉아있는 그가 보였다.숨이 저절로 턱 막히는 듯 했다.12시 전엔 집에 들어오는 적이 거의 없던 그였다.나는 어둠속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곧이어 그가 쇼파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대답해."
"...."
"대답."
"...."
대답을 바라는 그의 말에 목이 막힌듯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가 답답했던 건지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한숨에서 옅은 담배냄새가 나기도 했다.그는 내 턱을 잡아채어 고개를 들어올렸다.두려움에 언제 고인지도 모를 눈물이 툭하니 떨어졌다.그의 손때문에 턱이 아릿하게 아파왔다.나는 그를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아예 감아 버렸고,그는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 턱을 잡던 손을 떼어 내 손목을 잡아챘다.
악몽이,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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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앙 이게 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쓰고 싶은데로 왜 안 써지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
상징적인거에 중점을 두다보니까 앞에가 조금 재미없어졌네요..ㅠㅠㅠ
오늘도 벌써 한 4개 정도가 등장했다눈!
ㅎㅎ
저번편에 댓글남겨주신 분들 모두 감쟈해요.비회원인데도 댓글 길게 써주셔서 완전 사랑합니다
쪽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