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필수 ★ Emotional Oranges, Your Best Friend is a Hater )
“잠깐만. 놀기 전에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셔츠 포켓 속에서 아이폰을 꺼낸 쟈니가 빠르게 텍스트를 쳤다. 그러자 내 폰에도 왓츠앱 알림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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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CT High - NEW+S (12)
(뉴욕 시티 하이스쿨 - 신문사 NEW+S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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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J. Suh
I’m really sorry, guys
I hate to say this
But I can’t make it tonight
I’ve had somethings come up
How about this weekend?
You guys available?
(얘들아, 진짜 미안
이런 말하긴 좀 그런데
오늘 못 만날 것 같아
갑자기 일이 생겨서
주말은 어때?
너네 괜찮아?)
Kevin Williams
Kk
(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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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얘기해야 편할 것 같아서.”
우리 그렇게 빨리 끝날 것 같진 않잖아. 신문사 내의 다른 팀원들의 답장을 좀 더 확인한 그가 만족의 미소를 보였다. 눈썹을 잠깐 들썩인 그가 내려놓은 아이폰에서 나른하면서도 비트가 느껴지는 음악이 나왔다. 내 손 근처에 놓여있던 데낄라 병을 가져가는 그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쓸 듯 스쳤다. 노골적이고 본격적이네. 그의 말도, 행동도, 선곡도. 이제 막 재밌어지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남자친구와 잤다
“처음 술 마신 건 언제야?”
“고등학교 올라오고 얼마 안 돼서.”
너무 쉽네, 덧붙이는 나의 말에 그가 토를 달았다. 처음은 원래 워밍업이지. 자신 있는 듯 팔짱을 낀 그는 내 앞 책상에 엉덩이만 걸터앉아 데낄라를 홀짝거리며 내 질문을 기다렸다.
“왜 대마를 시작했어?”
“오, 좀 어려운데.”
쟈니가 셔츠에서 한쪽 팔을 빼냈다.
“지금부터 벗기엔 좀 이르지 않아?”
벌써부터 승리의 예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교복을 단정하게 모두 차려입었지만, 쟈니는 셔츠와 안에 받쳐입은 민소매, 그리고 하의뿐이었다. 얼굴을 찌푸린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셔츠에 팔을 꿰며 답했다.
“서재에서 발견해서.”
“서재?”
“네 질문은 끝. 이제 내 차례야.”
아,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다소 아쉬운 찰나 그가 질문했다.
“너는 담배 어쩌다 시작했는데?”
얘기가 좀 길어질 텐데, 괜찮겠어? 내 물음에 그는 어깨를 으쓱 들었다 놓았다. 우리 남는 게 시간이잖아, 잊었어? 그의 말에 꽤 긴 이야기를 적당히 생략하고 축약해 말해볼까 싶었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조금 생각의 시간을 가지며 그의 발끝만 바라봤다. 이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의 손에 들린 데낄라 병도 가져와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맞췄다.
“엄마 때문에.”
“엄마?”
“여기 오자마자 알았거든.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아저씨랑 만나고 있었다는 거.”
“…….”
“엄마가 먼저 일 때문에 미국에서 살고 계셨어. 나는 너무 어려서 한국에서 자라는 게 정서에 더 좋을 것 같다고 중학생 때까지 한국에 있다가 고등학교는 이쪽으로 오게 된 거였고.”
“…….”
“처음엔 그냥 쎄하기만 했는데,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날이면 그 아저씨를 만나고 온 날이구나, 짐작했지.”
“…….”
“그 담배를 꼭 나한테 사 오라고 시키길래, 엄마 담배에 손대기 시작한 거야.”
“나랑 비슷하네.”
“응?”
나랑 비슷하다고. 고개를 들어 쟈니의 얼굴을 보다 이전에 본 듯한 씁쓸함이 스쳤다. 왠지 그가 나에게 털어놓고 싶어하는 이야기인 듯 보여 그에게 같은 주제를 물었다.
“서재에서 발견해서 대마를 시작했다고 한 거, 내 이야기가 너랑 비슷하다고 한 거, 겹치는 이야기야?”
“응. 나도 아버지가 그랬거든.”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조심스레 묻는 나의 질문에 그가 모두에게 보일만 한 그 대외적이면서도 가식적인 미소를 띠며 답했다.
“아버지한테 여자 문제가 좀 심각했어. 그거 때문에 엄마가 도망갔고. 이 얘기는 ‘West Hotel CEO Scandal’만 구글링해도 나오는 얘기고, 너도 알 거야.”
대충 알고 있는 내용이라 고개만 끄덕였다. 쟈니의 아버지는 뉴욕 대표 자수성가의 표본인 사람이었다. 쟈니의 아버지가 설립한 West Hotel은 뛰어난 사업수완과 사회환원으로 뉴욕 주에서만 세 채의 호텔을 세운 어마어마한 브랜드였다. 다만 그의 아버지는 사생활 문제로 몇 차례 홍역을 치렀다. 쟈니의 친어머니가 그를 못 견뎌 한국으로 도망쳤다는 얘기는 신문 기사에도 실릴 정도로 꽤 크게 조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도망가고 나니까, 아버지가 조금 이상했어. 원래도 좀 강압적인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식적인 선은 지키셨거든. 근데 이젠 그냥 나를 쥐어짜는 느낌이었어. 처음엔 엄마 따라서 떠나고 싶어졌는데.”
“…….”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뉴욕을 떠나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품게 되더라.”
그래서 보다시피, 지금은 그냥 체념했어. 손끝으로 가볍게 책상을 몇 번 두드린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웃음으로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지쳐보이던 그의 삶이 드러나자 그 입꼬리 주위가 가볍게 떨렸다.
“엄마가 떠난 후로 아버지는 서재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 처음엔 거기에 여자를 숨겨놓은 건가 해서 안 계실 때 그곳을 뒤져 봤어.”
“…….”
“그러다가 엄마의 앨범 사이에 끼워진 대마를 발견하게 됐지.”
“…….”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것 같아. 엄마가 떠난 게.”
“…….”
“이 얘길 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 그러니까 비밀은 지켜줘야 해.”
어쩐지 그의 얼굴엔 후련함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고, 그에게 데낄라를 권했다.
작게 웃은 그가 데낄라 병을 받아 들며 말했다. 이제, 질문은 내 차례지? 애써 쓴맛이 감도는 미소를 지운 그는 뜻밖의 질문을 해왔다.
“데이트 신청, 받아본 적 있어?”
“뭐? 아니?”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그가 나에게 다가와 내 넥타이를 풀었다. 뭐하는 거야, 묻자 그는 미소를 띤 채 단호하게 말했다.
“거짓말은 안 돼.”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어?”
“Peter, 라크로스 주장 말이야.”
아, 걔. 걔가 왜? 물음표를 가득 품고 그를 올려다봤다.
“걔, 너 좋아했어. 그래서 데이트 신청했는데, 네가 거절했던데. 나한테 와서 너랑 어떻게 친해질 수 있냐고까지 물어봤던 애야.”
“아, 그래?”
“설마 기억도 못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그냥 걔가 소이 때문에 접근한 건 줄 알았어. 작게 기어들어가듯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자 그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아, 너 진짜 둔하다.”
“근데 너, 알고도 질문한 거야?”
“질문하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아는 게 하나 있었을 뿐이야.”
귀엽지만, 하나는 벗어야 해. 그의 손이 기어이 내 넥타이를 풀러 가져갔다. 벌칙의 첫 번째 타자가 나라니. 그가 손에 쥔 나의 넥타이는 불난 승부욕에 기름을 부었다.
***
내 차례가 돌아왔다. 눈을 굴리며 그가 곤란할 질문만 찾았다. 친구라도 있어 봤어야 이런 게임에 참여할 줄도 알지. 오늘은 미국 들어와서 공부만 한 나 자신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대마? 술? 어떤 것에 대해 물어보지?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소이랑은, 진짜 비즈니스야?”
그가 말없이 셔츠를 벗었다. 그러고는 데낄라를 한 모금 마셨다. 입가에 묻은 술방울을 훔치더니 그가 물었다.
“남자랑 해본 적 있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질문에 입이 벌어지는 것을 참았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입술을 깨물고 자켓을 벗어 던졌다.
“넌, 소이랑 해봤어?”
“아니.”
그는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고 있던 민소매를 벗었다. 아니, 왜 대답하면서 벗어. 갑작스런 탈의로 노출된 그의 반라에 당황한 눈동자가 둘 곳을 잃었다. 술 마시니까 더워서. 잘게 쪼개진 근육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그의 상체에 눈을 흘기다가도 이내 민망한 마음이 들어 땅바닥으로 시선을 꽂았다. 그는 벗어둔 셔츠 포켓에서 대마를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나랑 드라이브 갈 때, 솔직하게,”
“…….”
“나한테 사심 안 생겼어?”
이미 평정심은 유지되고 있지 않았지만, 더 들키지 않기 위해 다시 입술을 물었다. 어떤 걸 벗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은 길지 않았다.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가터벨트를 풀고 스타킹 끄트머리를 잡아 내렸다. 그렇게 벗은 스타킹을 그에게 던지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너, 나랑 하고 싶어?”
“응.”
스타킹을 받아든 그가 물고 있던 대마에 불을 붙였다. 책상에 기대듯 있던 그가 일어나 내 앞에 수그려 앉으며 바닥에 데낄라 병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런 그에 헛웃음을 치며 답했다.
“그게 뭔 줄 알고 하고 싶다고 해.”
“그게 뭐가 됐든,”
나는 너랑 하고 싶어.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쭉. 그의 답에는 그만의 씁쓸함이 묻어났다. 평생의 반려자가 이미 정해진 것과 별개로 그는 나보다 고작 한 학년 높은, 이제 겨우 시니어가 되는 고등학생. 할 수 있는 반항이 고작 대마뿐인 그의 삶에 묻은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데도 나를 갈망하고 욕망하는 그의 시선이 아슬아슬하게 내 치마에 걸쳐 있었다.
방황하던 그의 손이 주저하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가 물었다.
“나랑,”
“…….”
“잠깐 도망칠래?”
목소리는 흔들렸고, 그는 나와 눈을 맞췄다. 그에게서 내 손을 풀어내고,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올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감상적 성향이 울컥 올라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관심 있는 여자애한테 도망치자는 얘기를 하는 걸까.
목 끝까지 채워진 셔츠 단추에 손을 대 풀었다. 나를 따라 일어난 그가 두 번째 단추를 푸는 나의 손을 잡아 저지했다.
옭아매진 손들 사이로 가볍게 손을 빼낸 나는 그가 대마를 쥔 손을 잡아 내 입 가까이 댔다. 그는 내가 피우기 편하도록 손목을 돌려 내 입술 사이로 대마를 끼워 줬다.
깊게 들이쉬고 뱉는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피우다간 기분 좋게 죽을 수도 있겠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휘청이는 상체를 지탱하지 못했다. 대신 그가 내 허리를 제 팔로 감싸 안아 버텼다. 내 입술 사이로 대마를 꽂아 넣은 그는 내 뒤로 살짝 몸을 틀어, 내가 앉아 있던 그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여전히 놓지 않은 내 허리를 당겨 제 허벅지 위로 앉게 했다.
“이래서 다들 약하는구나.”
그의 오른쪽 허벅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자 그는 말없이 내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던 건 마저 해야지. 나는 결국 셔츠의 모든 단추를 풀었다. 엉덩이와 맞닿아있는 그의 허벅지 부근이 따뜻해 기분이 좋았다. 그냥 그의 몸 전체가 열이 오른 듯 뜨끈뜨끈했다. 나도, 그도, 목구멍 깊숙한 곳부터 삼키지 못하는 미열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불편한 듯 그는 잠깐 제 허벅지를 들썩였다. 덕분에 나는 그의 맨몸에 더 가까이 자리 잡았다. 그와 떨어질까 두려워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내 살갗과 닿는 그의 하의를 감지했다. 사실 감촉은 그의 허벅지를 감싸고 있던 천이었으나, 느껴진 것은 단단하게 자리한 그의 세밀한 근육이었다.
우리에게 더이상의 말은 불필요했다. 입에 물고 있던 대마는 책상에 비벼 껐고, 대신 그의 입술을 물었다. 그는 화답하듯 나를 들어 나의 허벅지 사이로 오로지 온전한 그만이 가득 차도록 안았다.
우리는, 멈춰야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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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니알입니다.
이제껏 뵀던 분들 중에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제가 한 분 한 분 기억하기 위해, 암호닉 신청을 받아보려 합니다.
이 게시글의 댓글로 [암호닉] 적어주시면, 제가 꼭 기억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따 업로드할 글도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