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를 팍팍 얹어보자면 여주가 아주 애기일 때부터 보던 강아지가 있었음. 할머니 집에서 살던 그 강아지는 여주보다 빨리 커서 또 다른 새끼 강아지를 낳음. 여주가 초등학교 사학년 때 처음으로 따끈따끈한 초코푸들을 만져보고 완전 한 눈에 뿅 감. 이름을 초코라고 지어주고 싶었지만 이미 초코인 애가 있어서 쿠키라고 지어줌. 눈이랑 코가 초코칩 같아서.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서 엄마아빠를 졸라도 봤지만 여동생이 심한 비염에 털 알레르기까지 있어서 못 데려갔음. 대신 방학때마다 꼬박꼬박 한 달씩 할머니 집에 있으면서 거의 보호자 노릇을 자처함. 매일매일 쓰는 일기에는 쿠키 얘기밖에 없었고 그림도 온통 쿠키에 밥 먹고 쿠키랑 놀기, 쿠키랑 공 놀이 하기, 쿠키 훈련 시키기가 거의 하루 일과일 정도. 강아지 전용 과자도 할머니랑 만들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재밌었다고 하더라.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잘 못왔지. 아무래도 학원이랑 학교 일로 바쁘다 보니까. 여주는 시골에 살아서 서울로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서 열심히 엄마아빠를 설득한 끝에 학교 근처에 작은 원룸 하나를 얻었음. 제일 먼저 한 일이 쿠키 데려오기! 그런데 쿠키가 예전 같지 않음ㅜㅜ 여주가 생각한 그림은 내가 쿠키를 보면 쿠키가 반갑다고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면서 나름 격하게 맞아주는 건데 근데.... 쿠키가 여주를 완전 개무시함. 분명 봤는데...!! 쿠키는 내가 온 걸 봤는데!!! 할머니도 얘가 왜 이럴까 홍홍 그러실 뿐 이유를 모르겠음. 여주 완전 들뜬 마음으로 왔는데 머리만 싸매고 있음. 쿠키를 데리러 왔는데 정작 쿠키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너무 슬프지만 데려가지 않기로 함. 결국 여주가 용돈 모아 장만한 살림살이를 할머니한테 기부하기로 하고 여주는 들은 척도 안 하는 쿠키한테 인사함. 이제 누나 3년동안 못 봐 쿠키야... 잘 있어야 해... 누나는 쿠키가 많이 보고 싶을거야... 하고 차에 타려는데 갑자기 쿠키가 버선발로 달려나옴. 그리고 여주가 차에 못 타게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캉캉 짖는데 만약 쿠키가 사람이었다면 뭐꼬! 지금 어데 가는데?!?!! 내 데꼬 안가나!! 였겠지.-여주 할머니 댁: 대구- 이상하게 차에서 내리면 또 개무시하고 그렇다고 차에 타려고 시늉만 해도 캉캉 짖어대서 급혼란이 온 여쥬... 뭐야 데리고 가라는거야 어쩌라는거야.. 결국 케이지에 쿠키 넣고 집으로 부릉부릉. 집에 가니까 다시 개무시함. 밥 먹으라고 하면 쳐다도 안 봐서 여주가 사정을 해야 먹고 놀아준다고 해도 안 놀고 산책 가자고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어서 결국 여주가 억지로 데리고 나감. 여주 쿠키 괜히 데리고 왔나 싶어서 존나 심란함. 결국 할모니에게 콜콜콜. 함무니.. 내가 이번주에 쿠키 다시 데려다 주러 갈게... 쿠키 나랑 같이 살다가 병 나게쏘... 할머니가 아이고~ 기래 갸는 와 그라노? 하모 일료일에 데리따 놔라~ 하자마자 쿠키한테 뭔가 몹쓸짓 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진 여주. 누워있는데 갑자기 서러워짐. 아니 그렇잖아! 내가 지한테 지극정성이면 지극정성이었지 괴롭히기라도 했어??? 쿠키 잡아다가 배에 올려놓고 막 쏟아냄. 쿠키야 누나는 진짜 쿠키한테 잘해주려고 한 건데 누나는 쿠키 진짜 좋아하는데 쿠키는 누나가 이제 싫으니...? 이렇게 말하다 보니까 진짜 서러워진 여주는 진짜 눈물이 글썽글썽. 내가 뭐 잘못했어 쿠키야...? 근데 갑자기 여주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쿠키의 깜장콩이 아니라 왠 남정네이며 여주의 몸 위에 타고 있는 것일까. 너 왜 약속 안 지켜!!! 갑자기 날아온 호통에 여쥬 이게 꿈인가 싶음. 자주 오겠다고 해쓰면서 왜 안 와써!!! 하고 여주 가슴팍에 머리 박고 후에에애에엥 하고 울어버리는 남정네에 일단 토닥토닥 해주면서 달램. 쿠키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래서 니가 지금 쿠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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