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학창시절 추억에 ‘이동혁’을 심어드립니다.
1.
고3은 왜 공부 빼고 전부 재미있을까. 하다못해 자리 바꾸는 것까지 우주 최고 오락처럼 느껴질 정도라 이게 사람 사는 건 맞는지 자괴감 들고 괴로워... 옆 반에는 야자 쉬는 시간에 춤추는 애도 있다던데 다 망할 서터레스 때문이락꼬요.
고니처럼 제비뽑기 막대 뽑고 나서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를 찾아갔는데 창ㅠ가ㅠ자ㅠ리ㅠ 그 옛날 인소에서는 다들 맨날 창가자리 앉던데 내 인생은 고3이 되는 동안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어가즈고 나는 진작에 알았지... 내가 주인공 인생이 아님을.
책상 서랍에 책이 한가득이라 들지도 못하고 타이어 매고 뛰는 사람마냥 질질 끌면서 겨우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더 좋음. 심심할 때 창밖 보면... 햐, 또 수업 안 듣겠네. 날씨 좋을 때 뛰쳐나가지나 않음 다행.
근데 내 인생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았으므로 이번에도 역시나...
“... 안녕.”
“어, 안녕.”
얼굴만 겨우 알고 말 몇 마디 안 해본 애랑 짝이 되어버리는 기적. 쟤 이름이 무슨 동혁인데 김동혁?은 좀 오바고.
“뭐냐, 이동혁.”
아, 그래 이동혁. 근데 저색기 인싸...인가? 왜 자리 바꾸자마자 너댓명이 우루루... *^^* 아싸는 슬퍼... 아싸앗싸...
“뭐가.”
“이새끼 짝 바꾼다니까 어제 기도하고 잔 거 아님?”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니 존나 멀리 앉았을 때 보려고 눈 돌리다가 목 돌아갈 뻔했잖아.”
“친구야, 동혁이 잘 부탁해. 얘가 생긴 건 이래도 순정남,”
“꺼져, 좀.”
결국 이동혁한테 발길질 몇 번 당하고 가더라고요. 뭐지, 같은 고3인데 쟤네는 청춘인가.
2.
나는 야자도 싫고 수능도 싫고 내신 생기부 다 싫지만 그 중에서 여름방학 자습이 제일 실허...^ㅁㅠ 방학이... 겨우 (주말 포함) 열흘일 거면 방학이라는 말을 왜 붙여,,,? 걍 여름맞이 연휴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심더.
불행 중 다행스러운 건 방학 전까지 짝을 안 바꿔서 내가 이동혁이랑 좀 많이 친해졌다는 것임. 그 전에 짝 바꿨어 봐... 여름 방과후도 모자라서 짝과의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는 내 모습... 진자 앗싸아싸는 눈물 쥴쥴맨...
암턴 영어 수업 들으면서 헤드뱅잉 하는 내 모습을 딱하게 여긴 이동혁이 필담 신청을 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수업에 집중했을 거임. 아니, 진짜로요. 저 요즘 공부하려고 마음 딱 잡았, 어 밖에 제비!
-창밖은 왜 그렇게 봐.
-영어 책보다 이게 더 유익해.
-보통 반대로 말하지 않냐
-?;에어컨만 아니었어도 뛰쳐나갔음.
-ㅋㅋㅋㅋ
답을 그렇게 하는디 더 할 말이 없잖여? 뭐 더 쓸 사람처럼 펜만 돌리길래 쳐다봤는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걔도 날 쳐다본 거임;; 너무 가까이서 눈 마주치는 바람에 쇼킹기절쇼. 근데 젝아 어이 업던 건 더 놀란 건 나 같은데 이동혁이 내 얼굴 보자마자 파드득 놀라면서 의자 뒤로 미는 바람에 시선집중맨,,, 뭐라고 대신 변명을 해주고 싶었는데 ‘제 얼굴을 보고 많이 놀랐나봐요.’ 이럴 순 없잖어ㅠ 생각하니까 억울하네 씌익씌익,,, 그래도 나 오늘 세수 하고 왔는데 그런 반응은 좀 심하지.
이동혁이 자다 경기 일으킨 줄 알았던 스앵님은 애를 뒤로 내쫓으셔꼬... 제딴에도 억울하고 부끄러웠는지 뒷목이 다 벌개져서 나가더이다... 쪽팔리긴 하겟찌 나같음 3일 밤을 쪽팔림의 강에서 울었을 듯.
3.
공학 다니면서 가장 궁금한 건 그거임. 남자애들은 왜 축구를 저렇게 좋아할까...? 나는 해 뜨면 그늘 찾느라고 학교에 파라솔 들고 다닐까 고민했는데 남학우들은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해... 또 나만 빼고 다 청춘이지 또.
너무 앉아만 있으면 척추가 사라지는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는 말에 점심 먹고 애들이랑 운동장 근처 빙빙 도는데 야, 행성적으로 해가 너무 강한 거 아니냐. 지금 이 느낌 략간 통구이st. 쟤네는 해가 밝다 못해 세상이 허연 상황에 공이 보이나.
“저렇게 뛰는 거 보면 새삼 대단하지 않냐?”
“엉, 내말이.”
“나 같음 맥 풀려서 넘어질 텐데.”
?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얘는 교실에서 공부할 게 아니라 무당 시켜야 되는 거 아닌감. 촤, 내가 정말 웬만하면 안 돌아보고 그냥 지나갈 텐데 옆에서 쟤 네 짝 아니야? 이러는 바람에 돌아봤다...
다행스럽게도 다치진 않았는지 옷 털면서 일어나는데 순간 내가 이동혁의 민망한 모습을 유독 자주 보는 건가 싶은 거임. 왜냐면 걔가 일어서면서 내쪽을 돌아봤다가 눈이 마주쳐서*^^* 괜찮아, 동혁아. 사람이 살다보면 다리 힘 풀려서 주저앉기도 하고 그런 거지. 위로를 건넸으나 마음속으로 해서 들리지 않았고... 갑작스레 이동혁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는 꼴을 보게 되는데... 그렇게 쪽팔릴 일이냐고ㅜ
“오, 멀쩡하네.”
“멀쩡할 수가 있나...?”
“나중에 물어 봐, 네 짝이잖아.”
물어봤다가 또 의자 밀고 일어서면 어떸케......
4.
나랑 이동혁이 짝이라서 좋은 점은 둘이 비슷하다는 거임. 둘이 비슷하게 공부를 안 해.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막상 사람과 사람이 붙어 지낼 때 되면 중요한 거거든요. 다른 반에 있는 내 친구 준이는 그 반 반장이랑 짝인데 걔가 전교 일등도 먹어본 애라 아주... 죽을 맛이라고 하더락우요. 양면색종이 어쩌고 하던데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들었음.
암턴 야자 시간에 둘이 무언의 빙고를 오천 판쯤은 한 고인물 두 명은 언제 서로가 가장 낯설고 신기하냐면... 공부할 때. 아 그게 당연한 건데 그게 이상하더라고.
근까 지금처럼 이동혁이 책에 필기를 하면 기특해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니께. 드디어 뭔가 고3다운 짓을 하는구나. 물론 나도 해야 되는 게 맞음. 근데 공부는 왜 이렇게 하기 싫을까악까악까악...
처음으로 필담 한 번 없이 수업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동혁이 쉬는 시간 되자마자 자기 친구랑 자리를 뜨길래 간만에 멍 때리면서 시간을 허비했거던여. 근데 별안간 이동혁 책상에 펼쳐져 있는 교과서가 눈에 들어오는 거임... 꽤 열심히 쓰던데 뭘 얼마나 열심히 한 건지 궁금한 맴... 제가 막 훔쳐보고 이런 거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걍 넘 심심했으...
근데 웃긴 건 책은 깨끗해서 다시 되팔 수 있는 정도고 여백이나 모서리에 낙서만 빽빽했슴다. 눈 뜨고 자는 법 생각하더니 이제 공부하는 척까지 하심니꺼ㅠ 고이다 못해 해골물 수준이 된 것을 인정하는 기분이라 쫌 텁텁했심더.
그리고 인생 최고의 실수를 벌이게 된 ME... 글자 위를 죽죽 그어놓긴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읽어버린 것. 억울해... 눈이 이렇게 좋을 것 같음 밤에 게임을 했어도 한참 더 했지. 괜히 몸사렸어.
그 뒷시간부터 내가 이동혁 신경 쓰여서 아주 죽지 못해 우는 인간. 아니, 그렇잖아요. 누구든 그냥 좀 친하다고 생각한 학우 교과서 모서리에 자기 이름이랑 좋아한다는 말이 빽빽하게 쓰여있으면 뇌지진이 일어나지 않겠어요? 아니라고? 누구야, 누가 아니야. 나와서 딱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