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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어쩌다 로맨스 16 | 인스티즈


어쩌다 로맨스
w.챼리




펜션은 정말 눈물 나게 좋았다. 방은 따로 없었지만 복층이었고, 심지어 프라이빗 풀도 있었다. 펜션에 도착해 차에서 소주 한 짝을 포함한 짐을 내리는 동안 삐질삐질 흐른 땀을 식히려 선풍기 앞에 앉아있는데 김태형이 불퉁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박지민의 연락을 받고부터 내내 이 얼굴이었다.




“저 형은 진짜 눈치도 없나봐.”




김태형은 윤기 선배가 눈치 있게 빠져줬어야 맞는 게 아니냐며 성질을 냈다. 나는 아무래도 이러나 저러나 남자친구인 김태형의 편이긴 했지만 윤기 선배가 빠져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애초에 다같이 오기로 한 여행이었고, 선배도 자기 몫의 돈을 냈고, 이 여행 때문에 회사에 휴가도 냈고, 심지어 차도 태워줬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둘이 선풍기 앞에서 쉬고 있는 게 내린 짐들을 혼자 정리하고 있는 선배에게 정말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김태형의 엉덩이를 톡톡 쳤다. 물론 나는 2리터짜리 생수 다섯 병을 드느라 힘이 다 빠졌으므로 일어나지 않았다. 김태형은 툴툴거리면서도 선배 쪽으로 걸어갔다.

사실 이왕 이렇게 된 거 김태형과 둘이 오붓하게 놀고 싶은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묘하게 평소보다 하이텐션이던 윤기 선배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죄스러워졌다. 종강 기념 여행 갈건데 형도 같이 가자는 정국이의 말에 윤기 선배가 내가 정말 같이 가도 되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던 게 생각나 조금 짠했다.




짐을 풀고 간단하게 컵라면을 한 개씩 조진 우리는 이렇다 할 만한 계획이 없어 쭈뼛쭈뼛 TV 앞에 모여 앉았다. 틀어놓은 영화 전문 채널에선 어벤져스 시리즈 1편이 방영 중이었다. 사실상 박지민이 빠지면서 여행 일정이 반토막 났다. 박지민이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몸으로 말해요 이딴 걸 하고 있었을 거였다. 나는 그런 종류의 -할 때는 배가 찢어지게 웃긴데 다 하고 나면 왠지 현타가 오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입장으로서 그 때 만큼은 박지민의 부재가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마블 특집 방송이었는지 시리즈 1편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2편이 시작 됐다. 이미 봤어도 몇 번은 본 어벤져스였는데도 2편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까지 꼼짝 않고 앉아 영화를 보던 우리는 광고 후 3편이 시작 된다는 자막을 보고 그제서야 TV를 껐다. 도착한 게 한 시가 조금 넘어서였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여섯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바베큐는 해야지.”
“당연하죠.”




아무리 노계획 노행동파 세 명이 모였다지만 바베큐를 거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윤기 선배가 일어나 부엌으로 가 바베큐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멀뚱히 앉아있던 김태형이 별안간 아. 하더니 중얼거렸다.




“요 앞에 농구 코트 있던데.”




상추를 씻던 윤기 선배가 몸을 홱 돌려 김태형을 쳐다봤다. 여기 오고나서 제일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농구공은?”
“굴러다니는 거 있던데요. 쓸 만한 지는 모르겠는데.”
“그럼 내기 할래? 바베큐 세팅이랑 설거지까지.”




그렇게 해서 초록나무 펜션배 제 1회 농구 경기가 성사 되었다.




경기는 생각보다 금방, 시시하게 끝났다. 나는 농구의 농 자도 몰랐지만 둘의 경기를 보며 딱 두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형. 농구부였다고 왜 말 안 했어요.”
“나 농구부 아니었는데.”




김태형은 저보다 키가 작은 윤기 선배를 굉장히 얕봤다는 것. 그리고,




“반칙이죠. 전 태어나서 농구 처음 해봐요, 오늘.”
“나돈데.”
“아,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짓말 하시네.”




그러다가 제대로 봉변당했다는 것.




스코어는 20대 5였다. 정확히 네 배. 20점은 윤기 선배가 가져갔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김태형은 5점도 겨우 낸 거라고 했다. 김태형은 윤기 선배가 아마 농구 국가대표 준비 했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내기는 내기니까 빨리 가서 세팅해. 안 도와준다.”




윤기 선배에게 제대로 당한 김태형이 툴툴거리며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따라 나가서 도와주려고 했더니 남자가 되서 한 입으로 두 말할 수 없다는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며 굳이 혼자 준비하겠다고 했다. 불도 피워야 되고 김치도 잘라야 되고 생각보다 할 거 많을텐데. 그래도 혼자 한다니까 뭐. 내가 두 번 안 묻고 도로 들어가자 뒤에서 김태형이 허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바베큐장은 펜션에서 1분 정도 걸어 나가서 있었다. 김태형이 준비를 한다고 먼저 나가고 십 분 정도가 지나서 윤기 선배와 펜션을 나왔는데 저 멀리 바베큐장에서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확실하게 김태형의 웃음 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걷자 윤기 선배가 조금 뒤에서 보폭을 맞춰 걸었다. 반투명 비닐 천막 너머로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목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자 윤기 선배도 내 뒤에 섰다.




“아, 진짜 가세요. 여자친구도 같이 왔다니까요.”
“아까부터 봤는데 다른 남자 한 분이랑만 계시던데.”
“그 형이랑 여자친구랑 셋이 온 거예요.”
“에이, 거짓말. 오늘 하루만 같이 놀아요. 네?”




딱 들어도 무지 어려보이는 목소리였다. 진짜. 김태형은 이게 문제야. 잘생겨도 너무 잘생겨서 잠시도 혼자 놔둘 수가 없는 거.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천막을 들추려고 하는데 윤기 선배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선배가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다.




“놔둬봐. 웃기잖아.”
“하나도 안 웃긴데요.”




사실 김태형 목소리가 진짜 웃기긴 했다. 딱 봐도 싫어 죽겠는데 면전에다 대고 싫다고는 말 못 하는 성정인지라 또 못되게 말은 못 하고 있었다. 그 대신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그냥 좀 가세요. 금방 여자친구 온다니까요. 하지만 그 얼굴로 그렇게 말해봐야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결국 내가 천막을 걷고 모습을 보이자 훈계라도 해줄 생각이었는지 허리춤에 손을 얹고는 본격 꼰대같은 표정을 짓던 김태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와중에 웃으니까 더 잘생겨서 넋을 놓고 있던 여자애들이 내 인기척을 느끼곤 놀란 표정을 했다.




“자기야. 준비 다 됐어?”




그제서야 내 눈치를 보며 슬금 슬금 도망가는 여자애들을 보고 김태형이 입을 네모로 만들어 웃었다. 짜증나는 상황을 해결해 줘서 이렇게 행복하게 웃나 했는데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되게 듣기 좋다. 자기라고 하는 거.”




옆에서 윤기 선배가 우웩 하고 토 하는 시늉을 했다.




“딱 봐도 끽해야 스무살 밖에 안 돼 보이던데. 내 얼굴은 연령 관계 없이 먹히나봐.”




김태형이 앞머리를 쓸어넘기면서 그러자 윤기 선배가 옆에서 그냥 집에 갈 걸 그랬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심기가 꽤나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 했는데도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걸 보니 만약 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성격이 물러터진 김태형은 싫으면서도 술 몇 잔 정도는 같이 먹어줬겠지. 생각하니까 열 받았다.




너무 잘생긴 사람이랑 사귀면 종종 생기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혼자 심각하게 고찰하느라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심지어 이 빌어먹을 바베큐장이 한 천막 안에 테이블 대여섯 개가 있는 시스템이라 아까 그 여자애들 말고도 김태형은 여기저기에서 관심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고기 맛을 못 느끼는 건 김태형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사에 별 관심 없는 윤기 선배가 혼자서 한 젓가락질에 몇 점씩 집어 먹어 준 덕분에 가져온 고기가 금방 동이 났다는 거였다. 그 와중에 소주도 각 일 병 했다.




1차로 설거지 할 것들을 김태형이 먼저 가지고 들어가고, 윤기 선배가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천막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남아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톡톡 쳤다.




“저기… 언니.”




아까 그 여자애들 중 하나였다. 내가 뭐 할 말 있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갑자기 자기 이름이 민지고 나이는 스무살이라며 궁금하지도 않은 자기 소개를 멋대로 늘어놓으면서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언니 아까 그 잘생긴 오빠랑 사귀는 거 맞으시죠.”
“그런데요.”
 



딱히 의도하지는 않았다만 굉장히 신경질적인 내 목소리에 전보다 더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민지라는 애가 우물쭈물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그 피부 하얗고 마른 오빠는 여자친구 없으세요? 사실은 제 친구가 그 오빠한테 완전 반해가지구…”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자 그게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지기라도 한 건지 민지가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종알종알 거렸다. 진짜 아까 그 잘생긴 오빠한테는 마음 전혀 없구요, 솔직히 진짜 잘생기긴 하셨는데 약간 넘사벽 느낌이라, 지인짜로 그 오빠한테는 관심도 없구요, 어쩌구 저쩌구. 근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내가 들고 있던 소주병을 내려놓자 갑자기 민지가 내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러더니 강아지같은 눈을 하고 그러는 것이었다.




“오늘 저희랑 같이 술 마시면 안 돼요?”
“안 되죠 당연히. 우리 오늘 처음 봤잖아요.”
“제발요.”
“불편해요. 근데 몇 살이에요?”
“저희 둘 다 스무살이요.”
“미쳤나봐. 아까 그 오빠 스물 여섯이에요.”




더 얘기 할 것도 없었다. 손을 뿌리치고 테이블을 마저 치우기 시작했다. 철옹성같은 내 반응에 풀이 죽은 민지가 쉽사리 돌아서지 못하고 옆에 서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 여기와서 사람들이랑 같이 놀려고 40만원짜리 양주도 가져왔는데.”




순간 손가락에 소주병을 끼우다가 살짝 멈칫했지만 분명 티가 나지 않았을 거였다. 그런데도 민지는 말을 덧붙였다.




“돔 페리뇽 P2.”




이번엔 내가 봐도 티가 났을 정도로 손이 움찔했다. 와. 무슨 스무살이 여행오는 데 돔 페리뇽을 들고 오냐. 나는 랩퍼들 가사에서나 가끔 보던 술인데.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민지가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한 마디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세 병”




오케이 협상. 내가 언제 꼴랑 세 병에 백만원이 넘는 술을 마셔보겠어. 어차피 하루 노는 건데 뭐. 사실 그 즈음 소주 한 병의 여파로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취하지 않았다면 거절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아마 무지 멀쩡했더라도 돔 페리뇽 세 병엔 무조건 넘어갔을 거야.




내가 여자애 둘을 달고 나타나자 설거지를 하던 김태형과 냉장고를 정리하던 윤기 선배가 동시에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무지 황당하긴 했다. 그래도 다행히 돔 페리뇽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태형한테 관심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았지만 어차피 내가 있으니까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좀 어리긴 하지만 윤기 선배랑 잘 되면 나쁠 것도 없지 뭐. 그렇게 어거지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애써 합리화하며 간단한 안주들과 술을 세팅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 지도 모르고.




[방탄소년단/김태형] 어쩌다 로맨스 16 | 인스티즈


어쩌다 로맨스
w.챼리




“우리 왕게임 해요!”




나는 민지의 입에서 나온 믿을 수 없는 말에 엥? 하고 웃긴 소리를 냈다. 요즘 애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그런 걸 한단 말이야? 내가 사는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마치 모두가 적당히 술이 취할 때 까지 기다리기라도 한 것 처럼 민지가 왕게임 얘기를 꺼내자 옆에 있던 민지 친구 수진이가 가방에서 주섬 주섬 나무 막대기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준비성이 참 철저하구나. 이제 보니 이게 본 목적이었다.




“절대 시러…”




나랑 똑같은 표정을 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태형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민지와 수진이는 들은 체도 안 했다. 




“룰은 아시죠?”
“얘드라… 심지어 이 오빠는 너네랑 여섯살이나…”
“난 조아.”




내 말을 잘라 먹은 윤기 선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수진이 손에 들린 나무 막대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이 선배가 취하는 건 내 예상에는 없던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윤기 선배와 종종 술을 마신 적은 있지만 취하는 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주량이 굉장히 센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술을 잘 안 마시는 거였다. 비싼 술이라 그런지 맛이 괜찮다며 홀짝 홀짝 들이키더니 스무살짜리 애들보다 더 빨리 취해버렸다. 물론 윤기 선배가 혼자 과하게 취한 거지 나나 김태형이 안 취한 것도 아니었다. 술이 약한 김태형은 아까부터 눈이 풀렸고 나도 어질어질 했다. 오히려 민지와 수진이가 제일 멀쩡해보였다. 이 큰 그림을 위해 지금까지 지들끼리는 물을 마시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을 정도였다.




“선배, 왜 그래여… 정신 좀…”
“하자. 그거. 해. 재밌겠네.”




선배의 어깨를 잡고 앞 뒤로 흔들었지만 역으로 내 몸이 더 흔들리는 바람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가슴팍을 퍽퍽 때리며 눈을 치켜뜨니 벌써 수진이가 나무 막대기를 돌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막대를 선택한 윤기 선배는 나와 김태형이 가만히 있자 친절하게도 우리 것까지 뽑아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다 풀린 혀로 자기는 몇 번인지 못 봤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왕 누구에여?”
“나.”




수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찰나의 웃음이 굉장히 사악하게 보였다면 그건 내 착각이었을까?




“처음이니까 가볍게 갈게요. 1번이 3번 볼에 뽀뽀.”




처음이니까 가볍게 간다는 게 벌써 뽀뽀라는 걸 듣고 나니 진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을 좀 차려야 될 것 같아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옆에 있던 윤기 선배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3번 누구야! 내가 1번인데!”




로또라도 당첨 된 것 같은 목소리였다. 김태형이 한숨을 푹 쉬곤 선배의 손을 잡아 아래로 끌었다. 두 번이나 미끄덩 해서 세 번째에 겨우 앉혔다. 얼굴이 빨간 걸로 치자면 제일 심각한 모습의 김태형이 한숨을 두어번 더 쉬고 그랬다.




“이거 하지말자…”
“에이. 오빠. 진짜 딱 몇 판만 해요. 40만원 짜리 술을 세 병이나 깠는데.”




김태형이 입을 합 다물었다. 나를 쳐다보는 원망스런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다른 쪽으로 틀었다. 사실상 일을 벌린 건 나니까 원망스러울 만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윤기 선배는 계속 3번 타령을 했다. 김태형이 신경질적으로 나무막대기를 앞으로 툭 던졌다. 3번인 모양이었다.




“빨리 해여! 담 판으로 넘어가게.”




윤기 선배가 김태형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내일 얼마나 후회하려고 저럴까. 김태형은 볼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쓱 문대고는 해탈 한 표정을 했다. 빠르게 나무 막대기가 다시 돌려졌다.




“이번엔 내가 왕이다!”




이번엔 민지가 왕이었다. 민지는 수진이보다 더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1번이랑 4번 입술에 뽀뽀.”




얘네는 뽀뽀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게임이었다 애초에 왕을 제외하면 네 명밖에 안 남는데 그 중에서 자꾸 뽀뽀를 하라니. 심지어 두명은 커플인데. 이보다 막장일 수가 없었는데 중요한 건 나도 취해서 정신이 없다는 거였다.

심지어 또 1번을 뽑은 윤기 선배가 입맛을 다시며 4번을 찾고 있었다. 4번은 수진이였다. 사실 아까 민지가 수진이의 번호를 흘깃 보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나는 뭐라고 할 정신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차마 둘이 뽀뽀를 하는 광경은 눈 뜨고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쪽 하는 소리가 났다. 




다음 판도 역시 빠르게 진행 됐다. 왕은 또 민지였다.




“헐, 나 또 왕이다.”
“니들 어디 뭐 표시해놨지.”
“아. 아니에요! 진짜로!”




아니라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진짜 억울한 표정이라 일단 수긍했다. 입을 비죽거리던 민지는 곧 전혀 스무살 같지 않은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1번이랑 2번! 5초간 키스.”




민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공이 지진이 난 수진이가 민지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게 보였다. 역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네. 근데 이번엔 잘못 짚은 모양. 헛웃음이 나서 이마를 문질거리며 고개를 툭 떨구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내 손에 들린 막대기에 숫자 2가 써 있었다.




“1번 또 나다! 나 계속 1번이네. 2번 누구야?”
“어어, 잠시만요, 2번이 아니고…”




민지가 뭔가 수습해보려는 듯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얼버무렸다. 들뜬 얼굴로 막대기를 흔들던 윤기 선배의 고개가 쭈욱 원을 그리며 돌다가 내 막대기에서 멈췄다. 어, 여주네. 선배가 말했다.




“선배?”




순간 술이 확 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쳐다보자 선배의 손이 불쑥 다가와 내 볼을 잡았다. 옆에서 김태형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민지와 수진이는 옆에서 어어 하고 소리를 질렀고 김태형이 윤기 선배의 팔을 잡음과 동시에 입술에 말캉한 게 닿았다.




“악!”




그리고 거의 1초만에 나에게서 떨어져나간 윤기 선배가 바닥을 구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옆구리를 잡고 바닥을 기더니 갑자기 우욱 하고 토를 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절반 남은 돔 페리뇽은 병이 쓰러지면서 술을 콸콸 뱉어냈다. 순식간에 버려지는 20만원어치 술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내가 좀 전의 감촉을 되짚어보는 순간 다시 입술에 말캉한 게 닿았다. 조금 난폭하게 입 속을 헤집은 혀가 금방 떨어져 나갔다. 김태형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 형이 혀도 넣었어?”
“…….”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김태형을 쳐다봤다.




“시발… 빨리 말해. 나 진짜 화날 거 같아. 혀도 넣었어?”




나는 빠르게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김태형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며 다시 입술을 부딪혀왔다. 

나랑 김태형은 키스를 하고, 윤기 선배는 토를 하고, 민지와 수진이는 울상이 된 얼굴로 바닥에 쏟아진 돔 페리뇽을 손으로 어떻게든 모아보려 애썼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난장판일 수는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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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홐ㅋㅋㅋㅋㅋ진짜 난장판이네옄ㅋㅋㅋㅋㅋㅋㅋ다음화도 넘 기대되요!!
4년 전
독자2
으하하하하라ㅏㅏㅏㄷ하하핳ㅎㅎㅎㅎㅎㅎㅎㄹㅎㄹㅎ최고의 한편이었어요...🥺
4년 전
독자3
와우
4년 전
독자4
헐...정말 총체적 난국이네요ㅠㅠㅠ근대 너무재밌어요ㅠㅠㅠ작가님짱ㅠㅠ
4년 전
독자5
작가님,,진짜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재밌는글 감사합니다ㅠㅠ💜
4년 전
독자6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완전 총체적 난국이네욬ㅋㅋ
4년 전
독자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헝 너무 재밌자나여...ㅠㅠ
4년 전
독자8
ㅋㅋㅋ 아니ㅋㅋㅋ 아진차 배아프네 개판난장판이이네ㅋㅋㅋㅋ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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