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 진짜 짜증나…"
아마 12살 여름방학 때 쯤이었을거다. 갑자기 공기 좋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평소 애처가로 유명하던 아빠는 바로 짐을 싸 이 시골로 이사를 왔다.
덕분에 유치원 때부터 똘똘 뭉쳐 다녔던 친구들과는 생 이별을 하게 되었고, 노래방도 피시방도 없이 문명과는 거리가 먼 이 시골로 전학을 오게 됐다.
가기 싫다고 엉엉 울어젖힌 나의 모습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짐 정리는 둘이서 하겠다며 동네라도 둘러보고 오라는 아빠의 말에 근처 정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애꿎은 돌멩이만 발로 차고 있었다.
"이게 뭐야.. 완전 촌구석이 따로 없잖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거라곤 나무, 흙, 물 뿐이었다. 이런 곳에 학교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친구들에게 한탄이라도 하고 싶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5분에 한 번씩 보내지는 카톡에 체념하고는 도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정자 바닥에 등을 붙이고 드러 누워 눈을 감자, 한 여름을 알리는 뜨거운 햇빛에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이러다 시컴둥이가 되는 건 아닐까 몰라..' 감은 눈 너머로 세어 들어오는 따가운 햇살에, 선크림으로 힘들게 지켜온 뽀얀 제 피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햇빛을 피해보겠다는 마음에 한 쪽 팔을 들어 얼굴 위에 올렸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다가 무언가가 콕 하고 제 볼을 찌르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아 미안, 열사병으로 죽은건가 싶어서.."
눈을 뜨자 어느새 조금 까무잡잡한 남자아이가 제 옆에 위치해 있었다. 곤충이라도 잡으러 가는지 남자아이와 멀지 않은 곳에는 잠자리채가 놓여있었다.
덥수룩하게 긴 앞머리가 그의 눈을 조금 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뜻 보이는 이목구비가 제법 잘생긴 아이 같았다.
평소 하얀 남자보다는 까만 남자가 더 좋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에 있었다면 걔가 엄청 귀찮게 했겠네..' 문득 떠오른 친구의 생각에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옥수수할매네 손녀는 아닐테고… 여긴 놀러온거야?"
신발까지 벗어던져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아이가 물었다. "아니- 오늘 이사 왔어" 높은 기온에도 불구하고 자꾸 옆으로 들러붙는 남자애가 걸리적거려 옆으로 조금 벗어나며 말했다.
"우와 진짜? 너 몇살이야? 나는 12살인데!"
"나도 12살이야"
동갑을 발견한게 그리 신나는 일인지, 그 아이는 내게 가까이 몸통을 이끌며 환하게 웃었다. 뭔 놈의 남자애가 저렇게 해맑담.. 우리학교에 있던 남자애들은 이상한 말투 쓰느라 바쁘던데
"나는 김태형이야!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김여주"
"반가워 여주야- 우리 친구 됐으니까, 이거 너 줄게"
자신을 김태형이라며 소개하던 남자아이는 친구가 된 기념으로 내게 선물을 준다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조금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태형이 내민 손이 펼쳐지자 그 안에는 주머니속에 꽤 오래 갇혀있었는지 형태가 조금 흐트러진 매미가 담겨있었다.
"아 미친!!! 저리 안치워?! 이씨, 엄마아- 흐헝.."
"어.. 정국이는 매미주면 좋아하던데.."
문제는 나는 매미를 끔직히도 무서워한다는 거지..
김태형의 갑작스런 매미 공격에 발작을 일으키며 뒤로 도망갔지만 왜그러냐며 계속해서 내게 매미를 들이미는 그의 행동에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 울음소리에 놀란 김태형이 풀숲으로 죽은 매미를 던져버렸고, 당혹스러운듯 무어라 중얼거렸다.
"미안해.. 내 친구는 매미를 좋아해서 무서워할 줄 몰랐어.."
"누가 무섭대?! 난 무서워하는게 아니라 더러워 하는거야!"
"매미가 더러워? 왜? 매미 깨끗해!"
"아 몰라 더러워!! 짜증나 진짜!"
시야에서 매미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곤 울음이 멎어들어갔고, 들썩이던 어깨가 차츰 진정되자 처음보는 애 앞에서 울었다는 사실에 괜히 두 볼이 화끈거렸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네오는 김태형의 말에 찔려 무서워서가 아닌 더러워서 피한거라고 소리쳤다. 이에 매미가 왜 더럽냐고 묻는 김태형에게 딱히 뭐라 대답 할 말이 없어 괜히 짜증을 내곤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아니야 여기 맞다니까"
"구라치지마 우리 동네에 너랑 동갑인 사람이 어딨어"
"진짜라고! 어제 이사왔다고 했단 말이야"
아 뭐야 왜이렇게 시끄러워... 늦은 밤까지 이어진 짐 정리가 끝나고 방에 들어가 대자로 뻗어 잠에 빠졌다. 새벽부터 차소리, 사람들의 말소리로 시끄러웠던 도시와는 달리 한적한 이곳에서의 아침에 중간에 깨지않고 푹 단잠을 자려했건만, 날이 밝아짐과 동시에 문 앞에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에 눈을 치켜뜨고 밖으로 나왔다.
"아 아침부터 뭔데.."
"여주야 안녕! 너 나랑 동갑맞지?"
"어제 얘기했잖아 왜 또 물어"
"봐바 전정국! 내가 맞다 했잖아!"
"헐 그럼 누나네요 여주누나!"
문을 열자 어제 나에게 엿을 주었던 김태형과 동그랗게 생긴 아이가 투닥거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어제 그 매미가 떠올라 괜히 심술궂게 대답을 하자, 누나!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동글동글한 남자애였다. 누나라는 그 아이의 말에 "야 나랑은 친구먹었으면서 왜 여주한테는 누나라고 불러?"하고 김태형이 다소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고, 동그라미는 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곤 내게 말을 건넸다.
"누나 나는 정국이에요! 전정국!"
"아.. 그래 안녕 정국아"
제 말을 무시하고 내게 인사를 건넨 정국이 불만스러운지 뾰로퉁한 얼굴을 하곤 김태형이 말했다.
"왜 쟤만 누나야.. 나도 형이라고 불러"
"언제는 친구 없다고 네가 먼저 친구 먹자며-"
"아 몰라 나도 형이라고 해!"
"싫다니까, 내가 왜?"
"빨리! 그럼 여주한테도 누나라고 하지마!!"
아 머리야..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애들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호칭 싸움에 잘 자고 있는 엄마 아빠까지 잠에서 깰까 두려워 얼른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에서 멀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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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쟤네들을 끌고 나온 건 나였지만, 이 동네를 하나도 모르는 나였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버벅거리자 자연스레 앞장을 서기 시작한 2명이었다.
앞서 걷고 있던 정국이가 발걸음을 멈추며 매미나 잡으러 가자고 씩씩하게 외치자, 썩어들어가는 내 표정을 캐치한 김태형이 다급하게 정국이를 말렸다.
"어- 정국아 그게.. 매미는 다음에 우리 둘이서 잡자"
"왜? 요즘 매미철이라서 사냥하러 다니기 좋은데.. 나 매미 기똥차게 잘 잡아서 여주 누나한테 보여주려 했는데.."
"서, 서울에서는!! 매미를 더러운 곤충으로 생각한대!!"
"엥 왜?"
"참! 너 전에 다슬기 잡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 계곡가자!"
"흐음- 그래 뭐, 난 다슬기도 잘 잡으니까! 여주누나 가자-"
주고받는 대화를 듣자 하니, 평소에도 매미나 다슬기를 잡으려 놀러 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있던 곳의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자연 속에서 놀이를 찾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가 또래 애들보다 둘 다 까무잡잡한 것 같기도 하고.. 쟤네는 핸드폰 같은 건 없나? 하긴 어제 보니까 겁나 느리던데 있어도 게임 같은 건 속 터져서 못 하겠다.
"여주야 안 오고 뭐해?"
혼자 생각에 잠겨있자, 어느새 저 멀리 앞서있는 김태형이 뒤돌아서 나를 불렀다. 김태형의 부름에 정국이도 뒤를 돌아 나에게 얼른 오라며 손짓했고, 이에 미안하다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그 아이들에게 뛰어갔다.
저 애들을 따라 몇 십분을 걸어가자 도착한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가는 동안에 꼭 이 길을 통해야지만 갈 수 있는 비밀 장소라며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고, 그 중간에 정면에 매미가 붙어있는 나무를 발견하곤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이어 들려오던 발걸음이 멈추자 김태형이 나의 상태를 확인하곤 주위에 있던 매미를 잡아서 던져주었다.
"이제 없어 가자-"
김태형이 주저 앉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 손을 잡아야 하나 고민하며 머뭇거리고 있자,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제게로 이끌었다.
"늦으면 정국이 삐진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가 김태형과 맞잡은 손이 괜시리 화끈거려 고개를 숙였다.
"뭐야 어디 갔다 왔었어"
"미안, 중간에 넘어져서 여주가 나 기다려주느라고"
"하여간 김태형 여기 다닌 지 몇 년인데 아직도 넘어지고 그러냐"
뒤늦게 계곡에 도착하자, 정국은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우리에게 불만을 토했다.
김태형은 그런 정국에게 자신이 넘어져서 늦었다며 대답했고, 괜히 미안해진 내가 사실대로 말을 꺼내려 하자, 그 아이는 잡고 있던 내 손을 조금 더 꽉 붙잡았다.
그런 그를 쳐다보자 '말하지 마- 쟤 몇 년 동안은 너 매미 무서워하는 거 가지고 놀릴걸?' 하며 속삭였다.
혼잣말 |
아마도 힐링 물.. 메모장에 끄적이기에는 정리가 안되서 올린건데, 다음편은 종강 후에나 끄적일 것 같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