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죽였습니다."
"아니라고!! 그놈은 사람을 죽일 놈이 아니란 말이야!!"
"니들 뭐해. 저놈 끌어내."
"쑨양은 절대 아니야!! 쑨!!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소란스러운 경찰서 안에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끌려 나가는 남자와 차분히 앉아 진술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쑨양, 범행동기는?"
![[쑨환] 믿어서는 안 될 말 (+메일링)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1/6/b/16b110942605d9d35ecdb9d27d530a03.jpg)
믿어서는 안 될 말
by.믿고보는
"오랜만이네요. 쑨양씨."
"웬 면회인가 했더니…….형사님이셨네요. 오랜만 입니다."
"5년 만인가요.한국어가 많이 자연스러워 지셨네요."
"원래 자연스러웠습니다.한국에 온지 수십년이넘었는데……"
"……쑨양씨."
"날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
"말해요."
"휴…….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왜…….거짓말 하신건가요."
형사의 낮은 목소리에 쑨양의 얼굴은 단번에 굳어져갔다.
"…….무슨 소리하시는 겁니까."
"범인은…당신이 어니였잖아요. 맞죠?"
"누가 그런 소릴 합니까."
"의심 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였어요. 그래서 제가 따로 조사를 했죠."
“…….그래서.”
"박태환."
"……!"
"맞나보네요."
형사의 말에 굳었던 쑨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지금와서 어쩌자고."
"별다른 생각은 없어요. 그냥…….진실이 알고싶었고. 진실을 알게되니…….당신이 이렇게까지 희생하면서 그를 지키려고 했던이유가 궁금해져서요."
"……."
"왜…….그랬던 겁니까?"
일그러진 눈빛으로 형사를 쳐다보던 쑨양은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게 궁금해?"
"…….당신의 노력이 눈물나서 진실을 눈감아준 형사로써 이정도는 들을 권리가 있어요."
"……."
"말해줘요. 당신과 박태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신, 태환에게 아무런 피해가지 않게 해줘."
"어차피 이제 와서 어찌할 생각 없어요. 걱정 마요."
"…….태환은…….내 생명의 은인입니다."
*
「태환을 처음 만난 건 널리고 널린 공원 중에 하나에서 였습니다.」
"야."
"……."
"야."
"……."
"여기서 자면 얼어죽어."
공원 벤치에서 신문지를 잔뜩 덮어쓴 채 잠들어 있는 나를 누군가가 흔들어 깨웠다.
추위에 쉽사리 오지 않는 잠에 겨우 빠지려는 순간이었다.
추위에 쉽사리 오지 않는 잠에 겨우 빠지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확 짜증이 밀려 올라와 신문지를 걷어차고 나를 깨우던 놈에게 벌컥 화를 냈다.
"썅,이건 뭐하는 새끼야?"
내가 걷어 차낸 신문지를 무심한 눈빛으로 밟아버리며 더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있었다.
"눈 오잖아. 여기서 자면 너 죽어."
"어디서 반말질이야."
딱 봐도 나 보다 어린놈 같았다.
어린놈이 반말을 찍찍 뱉어 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주먹으로 훈계를 해주려다가 그 녀석의 한마디에 멍청하게 그 녀석을 쳐다봤다.
"…….우리집으로 올래?"
*
어느 세 나는 처음 보는 그를 따라서 그의 집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중국에서 돈을벌기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월급을 받지도 못하고 쫓겨나고 이상한 사람에게 속아 그나마 조금 가진것 마져 탈탈 털린 지금이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지금 당장의 상황에서 나는 속는 셈 치고 호의를 베푸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걷는 내내, 그는 호기 있게 말을 걸었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 없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나는 그에게서 열 발자국정도 떨어져 멀찌감치 따라 걸었다.
그의 걸음을 끊임없이 따라가자 공원에서 빠져나와 번화가를 지나고,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빌라단지 사이로 들어와 있었다.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수많은 빌라들 중 오래 되보이는 하나의 빌라의 반지하방 앞이었다.
말없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열더니 내 쪽을 돌아보고는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지만…….그래도 그 길바닥 보다는 나을 거야."
현관에 멀뚱멀뚱 서있는 나를 보던 그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신발을 벗어 내려놓고 보통 방보다도 작은 거실로 들어섰다.
그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멀뚱대는 나를 보더니 살짝 웃고는 식탁의자를 빼주더니 앉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선반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식탁위에 내려놓고, 나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는 말없이 두개의 캔을 따서 하나를 내쪽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캔을 들고 내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두 사람을 위해, 건배."
마음대로 내 캔에 자신의 캔을 부딪친 그는 단숨에 맥주 한캔을 들이마셨다.
*
"일어나."
누군가 내 등을 발로 차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제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푹신한 잠자리였다.
뭐지. 내가 왜 이런데서 자고 있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곧 어제 한 이상한 놈을 만나 그의 집에 따라 들어온 것이 생각났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어제의 그 이상한 놈은 내 볼을 찰싹찰싹 쳐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너 집 지켜야하니깐 정신 차려."
따가운 느낌에 정신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 내가 눈을 제대로 뜨자, 그는 내 양손을 잡아당겨 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줬다.
"화장실 저기야. 가서 씻고나와."
푹신하고 따듯한 곳에서 자서 그런가, 일어날 때 마다 쑤셨던 온몸이 오늘은 쑤시지 않는다. 그가 이끌어 준대로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따뜻한 물. 공원에서의 차디찬 물이 아니었다.
이것 참. 이게 얼마만의 따듯한 물로 하는 세수인지.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건으로 얼굴만 문지른 채 화장실 문을 열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 고소한 밥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앉아. 밥 먹자."
"……."
"난 이거 먹고 알바 가야하니까, 넌 집 지키고 있어."
"……."
"오면서 열쇠 새로 만들어 올 테니깐, 내일부턴 너도 나갈 수 있어."
"……."
"별로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
"…….내일 이라고?"
"…….?어."
"내일도 내가 이 집에 있어도 된다고?"
"너 어차피 갈 데도 없잖아."
"……."
"갈 곳 찾을 때 까지, 여기 있어도 돼."
그의 말에 한 숫가락 밥을 뜨던 나는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대신, 오래 있을 거면 너도 일자리 찾아봐."
어느새 그의 밥그릇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그릇과 수저를 정리해 싱크대에 집어넣은 그는 외투를 챙겨 입더니 나갈 준비를 했다.
"집 잘 지키고 있어."
"야."
"왜?"
"너…….이름이 뭐냐."
"박태환."
"…….난 쑨양."
"중국인 이었냐? 어쩐지 발음이 좀 특이하더라……"
나의 질문의 그는 뭐가 좋은지 크게 미소 지었다.
"통성명 끝났으니 나가볼게."
그리고 그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문을 열고 나갔다.
또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태환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
「그렇게 저는 태환의 집에 눌러 살기 시작했고,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자리를 찾아다녔어요.
주로 수당이 많은 새벽일을 많이 했죠. 한 달쯤 지나자 그의 집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어요.
의욕을 모두 잃어버렸고 한국인에 대한 불신에 가득 찼던 저의 삶의 안식처 같은 곳이 되었어요. 태환의 집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5시가 되서야 일을 마친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가 자고 있을 반지하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날과 다르게 그가 조용히 잠들어 있어야 할 집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린가 싶어 성급하게 문을 따고 들어가자 쓰러져 있는 그와 그를 향해 무참한 발길질을 하고 있는 늙은 남자가 보였다.
"쓰레기 같은 놈! 너 같은 놈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헉…….악…….아..아버지…….아파요……."
"어미를 죽이고선 태어난 악마의 자식! 왜 태어났어!! 왜 태어났어!!"
무엇인가에 맞았는지,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보자마자, 난 앞뒤 가릴 것 없이 그가 아버지라 부른 사람의 팔을 뒤로 꺾었다. 술에 만취한듯한 늙은 남자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슨 짓이야!!!!"
"으악!"
"쑨양!!"
나는 그대로 그의 아버지를 한대 쳐 때려눕히고 그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자 그 위에 올라타 주먹을 들었다.
"하지 마!!"
그때, 내 허리를 끌어당겨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은 다름아닌 상처 투성이의 태환 이었다.
"내 아버지야!! 네가 무슨권리로 우리 아버지를 때려!!"
기가 막혔다. 쳐 맞고 있던 너를 구해준 게 누군데. 내가 잠시 늙은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박태환을 쳐다보자, 그 늙은 남자는 내 등장에 놀랐는지 허겁지겁 집을 빠져나가 도망쳤다.
그리고 내 앞에는 이마와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박태환이 보였다.
"…….일단 너 치료부터 하고 다시 얘기하자."
눈에 독기를 품고 있던 태환은 내가 끌어당기는 손에 순순히 따라와 주었다.
우선 지혈을 해야할 것 같아서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꺼내 한손으로는 이마의 상처를 누르고, 한손으로는 코피를 멈추기 위해 콧대를 잡아주었다.
우선 지혈을 해야할 것 같아서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꺼내 한손으로는 이마의 상처를 누르고, 한손으로는 코피를 멈추기 위해 콧대를 잡아주었다.
붕대에 퍼져가던 피가 멈춘 듯 싶어, 물티슈를 몇 장 뽑아 굳은 피를 닦아내 주었다. 소독을 해주자 그는 따끔한 듯 표정을 찡그렸다.
어느 정도 얼굴상처 응급처치를 끝내자, 그의 몸 상태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윗옷 벗어봐."
"싫어."
"약 발라주게. 벗어봐."
"싫어……."
"벗으라니깐!!"
"싫다고!!"
그의 소리 지르는 모습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상태를 봐야겠다 싶어 반항하는 그의 윗옷을 억지로 벗겨내려 했다.
처음에는 내 손을 계속 쳐내던 그도, 내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걸 느꼈는지 순순히 옷을 벗겨 주는 데로 따라왔다.
"……."
"…….그래서 싫다고 했잖아."
박태환은 놀란 내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몰랐다. 만약 여름이었다면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이제야 이상하리만치 벗은 몸을 보여주기 싫어해 샤워하고 나서도 욕실에서 옷을 다 챙겨 입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꼭 나를 내보내고 갈아입는 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한마디로 멍과 상처로 가득했다. 아주 오래되보이는 흉터부터, 방금 맞아서 생긴 멍들까지 아주 골고루였다.
"…….너…….언제부터 이랬어."
"……."
"말해. 다 아까 그놈이 한 짓이야?"
"……."
"왜 말 안했어."
"…….굳이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냐."
"…….태환……."
"괜찮아……."
충격 받은 듯한 내 얼굴을 보더니 그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다 보였다. 그의 목 끝까지 차오른 눈물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런 상처를 가져왔던 것일까. 언제부터 이랬던 것일까.
"태환…….말해봐……."
그와 함께 살아가게 된 지는 얼마 안됐지만, 작지만 단단해 보이던 박태환이 이렇게 약해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깨를 축 내린 그의 모습이 너무나 나약해 보였다.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가엾은 그를 끌어안아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내 어깨에 얼굴을 처박은 박태환은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서럽게 울어댔다.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찢어놓을 듯 한 서러운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서러웠다.
"흑…….크흑……."
"태환……."
"흑…….흑…….난……..난…….엄마가 없었어…….태어날 때부터…….흑…….아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흑…….그래…….엄마는 나를 낳는걸 선택 하는것 대신 자신의 목숨을 버렸어……."
"…….그래……."
"흑…….이럴 거면…….이럴 거면…….날 죽이고 엄마가 살지 라는 생각을 한두번 한게 아니었어…….흑…….내가 처음 남아있는 기억부터……..우리 아버진……..그래…….날 저렇게도 미워했어."
"……."
"항상…….항상…….나만 보면…….화내고…….때리고…….그래도 아무 말 하지 못 했어…….그래도…….그래도…….하나밖에 없는…….가족이었으니깐…….알콜중독에…….매일 내 돈 가져다 술 마시는데 써버려도…….그래도…….흑…….엉엉……."
길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의 말로도 충분히 그의 삶이 그려졌다. 너무 오랫동안 닦아주지 않아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마음이 내게 스며들었다.
나는 그렇게 밤새우는 태환을 어찌하지 못한 채, 끊없이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의 울음을 받아주었다.
*
다음 날, 태환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나를 깨웠다.
"쑨양. 일어나."
"…….어……..뭐야…….."
잠에 한껏 취한 나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찔러대는 태환을 밀어냈다.
하지만 태환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듯,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이 나를 흔들어 댔다.
하지만 태환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듯,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이 나를 흔들어 댔다.
결국 잠이 다 달아나버린 나는 외투까지 꽁꽁 챙겨 입은 태환앞에 앉았다.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쑨양."
"왜."
"어제…….고마워."
"……."
조금은 부끄러운 듯 고양이처럼 웃으며 내 볼을 찌르는 그가 보였다.
"우리, 오늘 아르바이트 하루만 빠지고 놀러가자."
*
그가 나를 무작정 끌고 나온 곳은 그와 처음 만났던 그 공원이었다.
내가 그땐 저 자리에 누워있었지. 내가 그 벤치를 쳐다보자 박태환은 나를 끌고 가 그 벤치에 앉혔다.
"쑨양."
"응?"
"넌…….꿈이 뭐야?"
뜬금없는 그의 질문이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많이 어렸을 때는 꿈이 있었지.
지금은 삶에 치여 잊고있었지만, 그래도 어렸을때는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경찰이 되고 싶었어. 시민을 지키는 경찰."
"그랬구나……."
"태환은?"
"…….나는…….너랑 조금 달랐어."
"뭔데?"
"반지하 방이 아닌…….곳에서 살아보는 거. 햇빛이 가득한 지상에서 살아보고 싶어."
"……."
그의 말을 듣자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태환의 삶은 언제나 그늘진 곳에만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 흔한 양지를 밟아보지 못한 삶.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꼭…….땅과 같은 높이에서 살아보고 싶어."
"……."
"햇빛이 집안에 가득 차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어."
그렇게 순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태환의 얼굴은 마치 천사 같았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공원의 공기가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사랑스러운 그의 얼굴을 끌어당겨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잠깐 멈칫하는 듯 했지만, 그는 순순히 나의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하……."
"태환……."
"응……."
"집에 가자."
그렇게 그와 나는 어색하지만 사랑에 빠진 미소를 나누었다.
*
「그와는 한삼 년 조금 넘게 함께 살았을 거예요. 그리고 그가 꼬박꼬박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바로 아버지 앞으로 들어둔 몇개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 이었죠. 」
행복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일상이 깨어지게 된 것은 바로 그 날 이었다. 항상 같은 패턴에 맞추어 나는 일을 마치고 곧장 태환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나를 반겨주는 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자그마하게 그가 흐느끼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실에는 눈을 허옇게 뜨고 머리에 피를 뒤집어 쓴 채 엎드려있는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자 하얗게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태환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니야…….내가…….내가..아니야……."
미친듯이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우선 나는 엎드려있는 남자를 뒤집어 심장부근에 손을 대 보았다.
"…….안뛰어."
죽었다. 그 남자의 옆에 떨어져있는 칼 한 자루와 산산이 깨져버린 화분이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날…….날…….죽이려고 했어…….칼…….칼을 들고 달려들었어……."
"태환."
"난…….난…….죽기 싫었어…….난…….난 잘못한거…….없어……."
"박태환."
"아냐…….던지려고…….던지려고 한 게 아닌데…….."
바들바들 떨고 있는 태환의 손을 잡고 끌다시피 그를 방안으로 데려왔다. 그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소리를 마구 늘어놓더니 정신을 놓아버렸다.
잠들듯 기절해버린 태환을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친듯이 생각해봤다.
한국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대로 가만히 있게 된다면 태환은 살인자가 될 것임은 분명했다.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죽어가던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그에게 처음으로 무엇인가 도울 수 있는 기회 같았다. 내가…….박태환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리고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민 할 시간이 없었고나는 박태환을 들쳐 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싸구려 모텔로 달려가 방을 잡고 침대에 그를 눕혔다.
내가 그 늙은 남자를 죽이게 된 곳에 네가 있으면 안 되니깐.
나는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다시 죽은 남자가 있는 집으로 발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핸드폰을 열어 망설임 없이 경찰서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상대편이 전화를 받자, 나는 미친듯이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말했다.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
"이게 전부입니다."
"……."
"더 궁금하신 게 있나요?"
쑨양의 이야기를 다 들은 형사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가득했다.
"…….후회하진 않으세요?"
"네…….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냥 태환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만 궁금하네요."
"…….쑨양씨."
"네."
"밖에 박태환씨가 기다리고 계세요."
"…….뭐?"
"만나고 싶으시죠?"
"……."
쑨양은 머릿속으로 태환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어떻게 변했을까, 잘 살고는 있을까.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쑨양의 마음은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형사는 쑨양의 침묵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환을 데려왔다.
세월이 지나 한층 성숙해진 태환의 얼굴에는 짙은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쑨양."
"태환……."
"…….미안해……."
"…….난…….괜찮아."
"미안해…….미안해…….쑨양……."
"난…….상관없어…….태환…….너만 잘살고 있다면."
"흑……."
쑨양은 눈물을 삼키는 태환의 손을 꼭 쥐어보았다.
몇 년만에 만져보는 태환의 느낌에 쑨양의 마음은 마치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태환아…….보고 싶었어."
"흑…….쑨양……."
"응."
"…….나…….이사 갔어."
"어디로?"
"보험금으로…….1층집으로 옮겼어."
"잘됐네."
"…….미안해……."
"뭐가 이렇게 많이 미안해."
"…….나만…….나만 잘못한 건데…….왜…….너가……."
결국 태환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쑨양은 그런 태환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려 주며 작게 미소 지었다.
"태환…….아직도 애기네."
"흑…….흑……."
"태환. 잘 들어."
"……."
"내 걱정은 하지마. 이렇게…….날 위해서 울어준 사람은 너밖에 없었으니까……."
"……."
"지금 네가 행복하다면, 난 그걸로 충분해."
"……."
"쓰레기 같던 내 인생에서, 널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것이 행복했어."
"……."
"오히려…….난…….고마워."
"면회시간 끝났습니다."
쑨양이 말을 마치자마자 면회시간의 끝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쑨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들어가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를 돌아 태환에게 말했다.
"박태환…….사랑해. 지금도 계속."
*
교도소를 나와 형사와 흩어진 태환은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멍멍한 정신을 가누지 못한 채 이리저리 길이 나있는 데로 따라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태환의 발이 이끄는 데로 간 곳은 쑨양과 태환이 처음 만났던 그 공원이었다.
태환은 습관적으로 쑨양이 처음 누워있던 벤치를 찾아가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흑…….쑨양…….미안…….미안해……."
태환은 쑨양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더 강한 죄책감에 짓눌렸다.
"쑨양…….바보 같은 새끼…….내가 처음부터…….널 이용해 먹으려고 데려온 것을 알면…….그래도…….넌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해줄까……."
*
태환의 최초의 기억은 아버지에게 지독한 저주의 말들을 들은 것 이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 쓸모없는 놈. 죽어버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그의 아버지의 욕설과 폭력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술에 만취한 상태로 태환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퍼 부었다.
그는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항상 몸에는 통증이 끊이질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성격은 조용하고 어두워져갔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돕은 작은 손길 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다가오는 무거운 발소리가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언제나 그렇듯 다가오는 발소리 후에는 문이 열리고, 만취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렇게 태환의 몸에 상처와 멍이 쌓여가는 만큼에 비례해 아버지에 대한 증오도 늘어갔다.
태환은 단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태환에게 그는 악마였다.
원초적인 부모의 사랑조차 받지 못하게 하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 그는, 태환의 삶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간 악마였다.
증오가 쌓이고 쌓여 더이상 묻어둘 수 없을 때가 오자, 태환은 결심했다. 내게 이런 삶을 지워준 악마를 죽여 버리자고.
그렇게 하면 분명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머리가 좋았던 태환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마자 치밀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그는 아버지의 앞으로 보험을 가입했다.
이것이 나중에 모든 게 끝났을 때, 지금까지 버텨온 그에게 세상이 주는 보상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보상이 무사히 내게 도착할 수 있도록 태환의 손에 묻은 피를 대신 뒤집어 써 줄 사람이 필요했다.
태환은 적당한 사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이 쑨양과 태환을 만나게 해 주었다.
*
"쑨양…….고맙긴 뭐가 고마워……..등신같은 새끼…….잘 알지도 못하면서……."
태환은 벤치에 앉아 찬바람을 맞으며 혼잣말을 하며 자조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태환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했지만 태환은 개의치 않았다.
"…….제일 쓰레기 같은 놈은…….난데…….왜 너가 미안해……."
태환은 벤치 옆에 서있는 나무를 향해 말을 걸듯이 말했다.
"야…….참 이상하지. 그렇게 미워하던 악마 같은 놈에게 복수도 해줬고, 내가 원하던 집까지 얻었어.
그리고 어떤 멍청한 놈이 내 죄까지 완벽하게 뒤집어 써줬어.
모든 게 내가 원하던 대로 됐어. 그런데…….그런데…….마음은 왜 이렇게 허전할까."
태환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쑨양이 마지막에 했던 말 때문이라고.
"…….사랑같은거 처음 받아봐서 잘 모르겠어……."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 태환은 터덜터덜 보험금으로 얻는 1층에 있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 어둑어둑 해지려는 하늘이 태환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한없이 길게 늘어진 태환의 그림자는 아주 새까만 색이었다.
fin
에필로그
교도소 앞에는 하얀 두부 한모를 들고 있는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출소자 한명이 작은 문을 열고 나왔다.
교도소에서 갓 나온 남자는 두부를 들고 있는 남자를 보자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핀다.
그리고 달려가 두부를 든 남자를 꽉 껴안았다.
"안..잊고 와줬네."
"……."
"태환……."
"……."
"쑨양…….얼마나…….얼마나 이렇게 안아보고 싶었는 지 몰라."
"…….나도."
큰 남자의 품에 안긴 두부를 든 남자는 생각했다.
너에게 진 빚, 내가 평생을 써서라도 갚아 줄테니 내 옆에만 있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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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필명으로는 처음 활동하네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댓글♥을 주신다면
다음소설을 더 열심히..쓰도록 하겠습니다^*^
텍스트본을 가지고싶으신분은 메일을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