墮落天師
타락천사
정우는 멍하니 창 밖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시선의 목적지는 딱히 없었다. 그저 멍하니. 허공 그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공허가 가득 담겼다.
네가 떠나고 벌써 2년. 시간은 단 한시도 기다림없이 흘렀다. 너만이 17살에 멎었다. 가히 말하자면, 정우 저 자신 또한 아직 그 날에 머물렀다. 무뎌지지가 않아 쓰린 속은 더없이 뒤틀리기만을 반복했다.
아프다. 아직 네가 깊은 곳에 자리해서.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나는 늘 네 곁에 있다는 걸 잊지마.’
너는 끔찍이 잔인했다.
/
그 날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네가 매일같이 지니고 다니던 다이어리를 답지않게 흘리고 갔던 날. 답지않은 말과 행동. 그리고 답지않게 길어졌던 통화음. 그 불안의 끝에, 정우는 급하게 침대에 뉘었던 몸을 일으켰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또 다른 손에는 여주의 다이어리를. 어쩐지 그 두 손이 덜덜 떨려왔다.
“전화 좀 받아라 여주야....”
중얼거리는 입술을 저도 모르게 짓이겼다. 이윽고 정우는 현관을 박차고 거리로 나왔다. 하늘에선 비가 억세게도 내렸다. 우산을 챙길틈도 없이 정우는 여주의 집으로 내달렸다. 숨이 차도 멈추지 않고 뛰었다. 그 잠깐의 공백에 자꾸 불안이 스며서.
여주의 집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에야 정우는 발걸음을 늦출 수 있었다. 네가 존재하고 있을 그 공간이 시선에 담기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더랬다. 아, 여주가 벌써 잠에 들었나보다. 그제야 정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스쳤다.
아 여주한테 혼나겠네.
비에 젖은 여주의 다이어리를 슬쩍 살피며 정우는 여주의 집 대문을 열었다. 춥다. 젖은 머리칼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축축한 앞머리를 손으로 대충 털어내며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0219. 정우의 생일이었다.
‘왜 비밀번호를 내 생일로 했어. 좀 더 어려운걸로 해야지.’
‘정우 너 외우기 편하라고.’
배시시 웃으며 저를 올려다보던 여주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새었다.
“여주야, 나 왔어.”
“……….”
“비밀번호 좀 바꾸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쉽잖아.”
정우의 입술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마, 집 안을 감도는 싸늘한 적막이 저도 모르게 불안한 듯 싶었다. 이제 문 하나. 그녀의 방문. 그 문만 열면 여주를 볼 수 있는데, 정우의 발걸음이 어째 더디기만 했다. 부러 부산을 떨며 수건을 꺼내 비에 젖은 몸을 닦고, 부엌으로 가 물을 꺼내 마시고, 소파에도 잠시 앉아있다가, 의미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시간이 흘렀다. 그동안에도 방 문 너머에선 그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주야, 아직 자?”
“……….”
“….이제 그만 일어나. 나랑 놀자.”
“……….”
그래서 내가 왔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와서 나랑 놀아주라. 여주야. 여주야.
결국 목소리가 갈라졌다. 애써 끌어올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냥, 그냥 내가 깨워야겠다. 정우의 발걸음이 다급히 여주를 찾았다. 와중에도 방문 손잡이 위에 놓인 손은 한참을 망설였다. 덜컥 찾아온 공포는 순식간에 정우를 집어삼켰다. 자꾸 입술을 깨문 탓에 결국은 짙은 피비린내가 입 안을 가득 매웠다.
이윽고 정우는 방문을 열었다.
그 날 이후 나의 세계는 완전한 무(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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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날씨 한번 더럽게 좋네. 짜증나게. 항상 무표정한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자연스레 학교 쪽문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위태로웠다. 여주를 잃어버린 후 정우의 걸음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정우가 주머니 속에서 네모난 곽을 꺼내들었다. 교복과는 꽤나 괴리감있는 물건이었다. 아직 학교가 끝나지 않은 시각임에도 정우는 망설임 없이 학교를 빠져나왔다. 아, 담배 없네. 정우가 짜증스레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텅 빈 담배곽을 내팽겨쳤다.
“...되는 일이 없네.”
중얼거리며 의미없이 거리를 거닐었다. 바람이라도 쐬면 이 갑갑한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서. 사실 그런 것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제 갑갑함의 해소는 여주만이 가능한 일이기에.
목적지도 없이 마냥 걸었다. 한시간. 두시간. 계속 걸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땐, 꽤나 익숙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어릴적부터 너와 함께 뛰어놀고는 했던 놀이터. 너를 처음 만났던. 하루끝엔 항상 그네에 앉아 그 날의 일과를 낱낱이 털어놓고는 했던 그 곳.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가슴아픈 너와의 추억.
답답했던 가슴이 이제는 누군가 쥐어짜내기라도 하듯이 미어진다. 정우는 말없이 그네에 앉았다. 이 곳에만 오면 여주가 참을 수 없이 보고싶어졌다. 가슴이 너무 아픈데도, 계속해서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무친 그리움 속에서 숨통이 트였다.
한참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정우의 입가에서 나즈막히 그녀의 이름이 터져나왔다. 하늘 참 맑다. 네가 없는 세상임에도. 빌어먹게도 눈물이 흘렀다. 정우는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리고 어느만큼의 눈물을 쏟았을까,
“저기요.”
항상 네가 앉아있던 옆 그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철커덩하고 쇠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아까부터 계속 봤는데요,”
소름끼치도록 똑같은 목소리.
“왜 울고있어요?”
내 생(生)의 두번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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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달이랑입니다 :)
처음 이렇게 인사를 드리네요 ㅎㅎ 사실 타락천사 00편에서 인사를 드려야하는데, 제가 까먹어서 인삿말을 안적어버렸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앞으로 잘부탁드려요 !
우리 자주 봬용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