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 내 짝꿍이었던 너는 유난히도 낯을 많이 가렸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창밖을 바라보기 일수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너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운동실력과 나름 상위권의 성적 뭐하나 빠질게 없는 너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너를 좋아했다.
일종의 동경과 같은 감정. 짝사랑이라 지칭하기도 부끄러운 감정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두근거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마음을 굳이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됐으니까.
내가 이따끔 말을 걸면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다가도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곤 했다. 가끔 용기 내어 너에게 같이 하교하자고 제안했을 때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는 것이 끝이었다.
너는 늘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와있었는데 항상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무슨 노래를 듣느냐고 물으면 또다시 지긋이 내 얼굴을 보다가도 이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mp3 화면을 화면을 보여주었다.
우연히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몇 번 손을 움직이더니 조용히 헤드폰을 씌워주고는 했다.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너였지만 이럴 때면 귀여워 보였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책상에 얼굴을 묻거나 아주 간간이 눈을 맞추었다.
너는 인기는 많았지만 워낙 무뚝뚝한 성격 탓인지 대놓고 따라다니던 아이는 없었다. 그래서 간혹 고백을 받으면 '미안' 무심한 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네 눈으로 날 찾았는데 덕분에 네가 날 좋아하나 싶은 오해도 잠깐 했었다.
생각해보면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와의 교류가 더 많았던 것 같지만 그냥 짝꿍이었으니 그랬던 것이라고 묻어버리곤 했다. 그래 사실 우리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생각되기는 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럴 때마다 먼저 시선을 떨구는 건 너였지만
가끔 점심시간에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네가 와서 앉아있다 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부르던 사랑 노래를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부끄러우니까
사실 나는 가수가 꿈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보컬 학원을 다니는 것도 끊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여전히 좋았다. 그래서 점심시간 3층 복도에서 제일 외진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네가 들어왔음에도 불과하고 노래를 할 때도 있었는데 그 실없는 사랑 노래를 너는 눈을 감고 조용히 들어줬다.
여름방학이라 해도 이름뿐인 방학이라 너를 자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았다.
네가 학교에 잘 안 나오기 시작했을 때 애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최민호 연예인 한다더라' 그 말을 듣고 별생각은 안 들었다. 하긴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기엔 아까운 얼굴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고 느꼈다. 왠지 모를 섭섭함은 접어둔 채
방학이 끝나고 나서야 알았지만 이미 학기중부터 대형 기획사에 캐스팅되어 연습생으로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지 면 부러웠다. 막연히 연예인이라는 직업보다는 노래하는 게 내 꿈이지만 연예인이 될 민호가 부러웠다.
그래서 혼자 꿍해있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멍청한 짓 같다. 몇 번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던 건데
너는 점점도 학교에 나오는 빈도가 낮아지고 나는 공부에 더욱 열중하기 시작했다. 애틋함이라고는 없었던 사이니 더욱이 공부에 집중해야는 시기라서 섭섭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우리가 훗날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따끔 들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 끌고 있을 시기가 아니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괜히 부모님께 날을 세우기도 했다.
수시에 떨어지던 날 음악실에서 엉엉 울고 있는 나에게 '울지 마' 무뚝뚝한 한마디를 넌지시 던지고는 내 등을 토닥여주던 최민호를 좋아하기 됐다. 동경이 아닌 이성적인 감정
그 감정이 공부에 영향을 준 건 아니었지만 이후로 너는 학교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연락처 하나 없어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정시에 붙은 나는 대학을 몇 년 다니다가 음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바라던 것이니까 지금 이 길을 택한다고 해서 후회는 없었다. 뮤지션. 가수가 아닌 작사를 하기 시작했다.
26살 고등학교 동창회에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그리 큰 유대감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기에 나가지 말까 생각했지만 잊고 지냈던 네가 떠올랐다. 너는 어느새 정상급 가수가 되어 있었다.
아이돌. 이름만 들어도 반짝이고 빛나는 나와는 다른 세계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미 약속시간은 늦었지만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계 앞에 도착했는데 분위기 없는 호프집이었다. 벌써부터 영양가 없는 얘기가 이어질게 예상돼 머리가 어지러웠다. 들어가려는데 막 가계 밖을 빠져나오는 사람과 부딪혔다. 사과하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최민호....?"
"어..."
"안녕 오랜만이다. 네가 여기 올 줄은 몰랐어 많이 바쁠 텐데.. 이제 들어가려던 참이야?"
"잠깐 바람 좀 쐬려고"
".. 그래"
"이제 들어갈까?"
"어? 아, 그러자"
시끌시끌한 가계 안 분위기에 더 잘생겨지고 분위기가 바뀐 최민호에 적응이 안 됐다.
여자애 건 남자애 건 다들 최민호를 쳐다보기에 바쁘고 같이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은 나는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예전보다 말도 많아지고 성격도 밝아졌다. 네가 알던 너와 많이 달라져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어설픈 다림질이 깃든 교복 카라 끝에 비누 향이 아닌, 향수로 범벅된 너의 모습에 쉽사리 말을 걸기가 힘들었다.
다들 왁자지껄 얘기를 하는데 나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울적해지고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슬슬 마무리 짓는 분위기가 되고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민호에게 번호를 요구하는 여자아이들도 있었지만 미안하다며 웃기만 했다.
너무 변해버린 너의 모습에 더는 기대 않고 일어나서 가계 밖을 빠져나왔다.
"달이 참 밝다."
이미 늦어버린 여름밤. 싱그러웠던 그 여름에 만났던 너는 없다.
나의 여름은 칙칙하기 짝이 없다.
한낮의 열기를 다 먹어버린 아스팔트 위를 타박타박 걸어 나갔다.
"이제 더는 볼 일 없겠지"
그렇겠지
잘 있어 나의 여름.
민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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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안이어져서 당황하셨죠? ㅋㅋㅋ 죄송합니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지 난감했어요.. 다음에는 달달한거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ㅎㅎㅎ 댓글달고 포인트 받아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