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한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형들의 말에 고마워요, 형. 겉치레식 대답뿐이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데뷔가 정해졌는데, 몇 년 동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득바득 어떻게든 버텨서 어떻게 따낸 데뷔인데 어째 들뜬 회식 분위기 속에 녹아들 수가 없었다. 맞은편 마지막 줄에 앉아 묵묵히 형들의 술을 받아먹는 녀석의 모습에 자꾸만 눈이 돌아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한참을 다독이는데 순간적으로 맞부딪혀온 눈빛이 금방 스파크를 튀겼다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 한참동안이나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는 녀석의 모습에 가슴이 턱하고 막혀왔다.
데뷔가 결정되기 직전까지 연습실에서 우리 둘을 묶어 부르는 별명이 있었다. 과거 절친. 하루 종일 붙어먹던 녀석들이 이젠 말 한마디 안 나눈다며 장난스럽게 억지로 붙여놓고 대화 좀 해보라며 묶어놓는 형들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우리는 딱 과거 절친 이라는 말이 맞았다. 더 이상 서로의 눈을 봐도 즐겁지 않고, 편하지 않은. 과거 절친. 한 번도 형들 앞에서 미운 짓 하나 안 하는 동생 녀석들이 둘만 붙여놓으면 평소 서글서글한 모습 하나 없이 아무 말도 안하고 살얼음판을 기고 있으니 형들도 영 마음이 편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평소 좀 더 서글서글하고 애교가 있는 편인 내 쪽에 형들이 편을 들어주면서 경수한테 왜 그렇게 차갑게 구냐며 녀석을 질타하는 말들이 속속 나왔지만 나는 녀석이 차라리 그렇게 나를 못 본 척, 없는 사람 취급해주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원체 술이 잘 듣는 몸이 아닌데 술 몇 잔에 정신 줄을 놓기에는 자존심이 상해 화장실로 들어와 찬물 세수를 했다. 화려하고 깔끔한 외관과는 달리 화장실은 당장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정도로 스산하고, 더러웠다. 수도꼭지는 돌리기가 무섭게 녹이 슨 소리를 내뱉었고 물도 누가 억지로 손으로 틀어막은 냥 졸졸 나왔다. 깨작깨작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동시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필이면.
정말 하필이면이란 말이 가슴에서 계속 들끓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너머로 녀석의 얼굴이 살짝 놀랐다가 이내 제 페이스를 찾았다. 물 빼러 왔냐. 장난스럽게 한 마디만 건내기만 하면 되는데 도통 딱딱하게 굳은 입술이 열릴 줄을 몰랐다. 그렇게 거울 속 우리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냥 돌아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찬 물 덕분에 술기운이 조금은 달아났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에 달라붙은 물방울이 무색하게 술기운은 자꾸만 올라 내 머릿속까지 어지럽혔다. 드디어 얼굴을 제대로 봤네. 내 머리가 생각한게 아니라고 믿고싶을 정도로 나를 흔들어놓는 술기운에 자꾸만 화가났다. 신경질적으로 수도꼭지를 잠그는데 억센 손짓과는 달리 제대로 잠궈지기는 커녕 녹이 슨 소리만 잔뜩 긁어대며 좀처럼 물이 그치질 않았다. 그러게, 화장실 정비 좀 하지. 신경질이 나서 괜히 더 세게 돌리는데 물은 오히려 더 기운 넘치게 콸콸 쏟아졌다. 씨발, 진짜. 결국 성질이 나서 그냥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꾸만 아까 전 녀석의 시선이 닿았던 구석 구석이 후끈거려 열이 올랐다.
"...씨발, 진짜."
처음에는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연습하고, 어려운 안무를 성공했을때 기쁨에 넘쳐 껴안고, 손 잡고. 그저 자연스러운 스킨쉽이었다. 그렇게 유하게 흘러가던 일상은 언제부턴가 망가졌고, 망가진 수도꼭지를 아무리 잠그려고 난리를 쳐봐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기운 넘치게 콸콸 쏟아져 나왔다. 과거 절친. 망할 이 과거 절친들은 망가진 수도꼭지를 고치는 방법을 몰라서 서로를 무자비하게 상처주고, 무시하고. 결국엔 떠났다. 그리고 현재 엿 같게도 같이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미치겠다."
어떡하지.
"....나 진짜 어떡하지."
겨우 고쳤다고, 겨우 입구를 틀어막았다고 생각했는데.
"......."
고쳐질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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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수도꼭지 고치러왔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