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
아무도없는 적막함이 흐르는 필드위에 누워버리곤 눈을 감아버렸다.
전날 비가와서 물이 방울방울 맺힌 잔디에서 축축한 내음이 났다.
한번도, 단 한번도 내가 걷는 이 길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적은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틈도 없었던거겠지. 잠깐의 흐트러짐은 선수생활을 바라보는 내겐 치명적이니까.
하지만 지겹다. 이런 생활이. 다른녀석들의 꾸며진 견제도, 선배들의 텃세도, 앞을 알수없는 선수지망의 길도,
모두 지긋지긋했다.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것처럼, 마치 손발이 묶인채 물속에 빠진것처럼.
버겁다. 짜증난다. 끝내고싶다.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있었던건지, 새벽에 일찍 나와 공을 찼을때완 달리 이미 해는 버젓히 고개를 들이밀고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부셔 잠시 눈가를 찌푸린채 눈을 확 감아버렸다. 씨발, 더워죽겠네.
그런데 갑자기 눈위로 그늘이 지는듯하더니 차가운 무언가가 이마에 닿았다.
자동적인 반사신경에 그 물체를 확 잡았다.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떠 눈앞에 상대를 바라봐주니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채 손목이 잡힌 인영이 있었다.
[ 아하하하..자는거였나? ]
다소 앳된얼굴에 허여멀건한게 애써 민망함을 감추려는듯 소리내어 웃었다.
일말의 표정하나 내비취지않은채 아무말도없는 나에 갑자기 어색해진공기를 깨려는듯 그가 흠흠-하고 헛기침을 했다.
[ 그니까, 나는요. 그쪽이 미동도없이 누워있길래 혹시 일사병으로 쓰러진줄...]
내가 내리깐 눈을 그의 것과 마주하자 잠시 멈칫 하더니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 요즘에 그런걸로 쓰러지는 사람도많고, 안좋게는 아예 세상 하직하는 사람들도...아니아니, 그게아니라.]
내가 확 상체를일으키자 그가 당황한듯 내게 잡힌손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고보니 아직도 잡고있었다.
[ 그게아니라, 그, 일사병은 잘못하면 골로가지만 중추신경계에는 손상이 없...아, 무슨소리야 이거.]
혼자 말하고 혼자 자책하는게 퍽 어이없으면서도 우스웠다.
주인이 물어오라고 던진 공이 잘못해서 물가로 들어가 안전부절 못하는것처럼 꼴이 꼭 어리버리한 강아지같았다.
생긴것도 강아지같이 생긴게 하는짓도 영락없군. 더듬더듬 말을이어가는 녀석을 한번 슥 바라보곤 손목을 놓아주었다.
얼마나 세게 잡아챘는데 발갛게 부어오른 손목을 보며 잠시 강아지녀석이 '으악 내 손목!' 하며 자리털고 일어난 날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다.
[ 와 잘못하면 사람 잡겠다 아주.]
아무 반응도 없는 내가 그새 익숙해진건지 그가 잔디를 한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내가 자리를 떠나려는것을 바라보았다.
[ 양손을 주머니에 넣어놓고선 사다리를 오를수없어. ]
두 발을 옮기려다가 그의말에 우뚝- 멈춰섰다.
[ 성공은 역경과 번민의 체험없이는 다가오지도않지. ]
시선을 돌려 그녀석의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강아지같이 순한 인상의 그가 아빠다리를 한채 잔디를 휘휘- 만지며 날 올려다보고있었다.
마치 나의 마음을 읽었다는듯이, 내 생각을 다 안다는듯한 그 눈빛이 짜증났다.
[ 니가 뭘 안다고 지껄여. ]
최대한 욱하는것을 자제했지만 목소리엔 이미 서슬퍼런 한기가 서려있었다.
아는척하지마. 니가 뭘 안다고?
냉기가 뚝뚝흐르는 목소리에 주변공기는 가라앉았지만 그 녀석은 어깨를 한번으쓱하곤
날 다시 똑바로 쳐다보았다.
[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야. 마치 하나둘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내듯이 이루고자하는 애절함은
절대 그 사람을 배신하지않지. 그런데 넌- ]
그가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추더니 말했다.
[ 지쳐보여. 이루고자하는 절박함도 애절함도 없고 그냥 언제 무너져내려도 놀라지않아보여. ]
머리를 세게 얻어맏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력? 성실함? 아니면 끈기?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왔던거지.
하루빨리 지긋지긋한 이 생활에서 벗어나 더 나은 길을걷고싶었다.
잔챙이들이 발에 걸리지않는 그런 평온한 길.
하지만 그런것에있어서 내가 이루고자 한것은 무엇이지?
눈앞이 안개가 낀듯 희뿌앴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이순간이 가짜인것만 같아서, 금방이라도 깨져버릴것같아서,
그리고 난, 길을 잃어버릴것같아서
불안했다.
멍하니 시선이 허공에 멈춘채 생각이 멈추질않는데 갑자기 입안에 무언가가 쑥-하고 들어왔다.
단향이 입안으로 퍼짐과 동시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나보다작은 녀석이 히히 웃는것이 눈에들어왔다.
[ 단거 먹으면 기분 좋아진대. 그거 내가 제일좋아하는거 한개남은건데 그냥 너 줄게. ]
큰 선심이라도 쓰는양 생색내는 그녀석을 보았다.
희끄무리하고 마르고 나보다 키도작은게 형노릇이라도 하는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니가이루고자 하는게 무엇이든 그거 꼭 해내길바래.]
그가 처진눈매를 반달로 접으며 웃었다.
그리곤 '나 이제가야겠다-' 하며 엉덩이에 붙은 잔디들을 탈탈털어내곤 몸을 돌려 필드를 빠져나갔다.
걸어나가다 잠깐 멈추곤 손을 흔드는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다시 만날수있을까.
다시만난다면 보여주고싶다.
해답을 찾았다고.
입안에 감도는 딸기향의 막대사탕을 음미하며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웬지 아직도 그의 손이닿은 머리에 온기가 남아있는듯한 착각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2년 런던
난 그를 만났다.
****
이번편은
성용느님의 과거 이용대신을 만났던 회상이 주관점이었어용*.*
끄헝 졸린대잠은 안오고 생각나는건축구시상식이고ㅠ
결국 또 지르고말앗어요...난 이제곶아손 스토리는 점점 산으로갈것같은 스멜이ㅣ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