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나 사랑해요?”
“당연한 소리 하지 말랬잖아 백현아.”
“그럼 죽을 수 있어요?”
“……응?”
“나 좋아하면 뛰어내려봐요. 죽어봐요. 어서.”
미련한 사람. 정과 사랑에 너무 약한 그가 결국 날 떠났다. 왜 장난과 진실을 분간하지 못 하는걸까, 나보다 열 두살이나 많으면서 그 연륜은 어디에 치우쳐놓은 걸까. 머릿 속이 뒤죽박죽 섞여버린다. 어두운 톤의 정장을 갖춰입고 머리까지 정갈이 정돈한 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칙칙함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 삶의 일부와도 같던 그가 죽어서 슬프기보단 그저 그가 원망스럽다. 객기 가득한 몹쓸 내 발언에 옥상 아래로 몸을 내던진 그 병신같은 김준면이. 원망스럽다는 말 외에 어떤 단어로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귀티나는 건 진작에 알아차렸는데 정말 부잣집 자제였는지, 조문객들의 몸에선 쉴틈없이 어질어질한 향수 향이 뿜어져나왔다. 기분 나빠. 그래, 어쩌면 변백현한텐 이런 향수 냄새보단 돼지고기 냄새가 더 익숙하고, 잘 어울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였다는 생각이 미치자 괜한 회의감이 올려왔다. 그래도 2년 동안, 꽤 멋드러지게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준면이형이랑 어떤 관계되세요?”
식사를 하고 갈 생각은 없었는데, 갈색머리의 사내가 날 붙잡는 바람에 얼떨결에 식탁 앞에 자리잡게 되었다. 술잔에 담겨 찰랑이는 소주를 들이키며 내게 묻는 남자에게 선뜻 애인이요 하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말했던 이복동생인가? 하지만 준면이형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귀티하고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자유롭고, 시원한 느낌. 동생에게서 나오는 이 에너지에 시기를 느껴 날 떠난건가? 그렇다고 믿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요망스러운 내 말 하나에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 죄책감을 씻어내기까지 꽤 많은 시간 힘들어야 할테니까.
“형이 동성애자인 건 알고 있어요……. 애인 맞죠?”
“아……, 그렇다고 말 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죄송합니다. 끝까지 형 지키지 못해서.”
그를 지키지 못했다니. 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사실 김준면을 죽인 건 난데. 애매한 내 대답에 미간을 찡긋거리던 사내가 명함을 내밀었다. 박 찬열. 정말이지, 그와는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구나. 어디서 들어본듯한 중소기업치고 인지도가 꽤 높은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단하다. 스무 살의 변백현 넌 지금 무얼하고 있니. 대학도 가야하는데, 삶의 목표와 의지는 온데간데 없이 흐트러지고 사라져버렸다. 준면이형, 가려면 혼자가지 왜 날 망가트리고 갔어? 허공에 질문을 내던진다. 메아리가 울려퍼지듯 질문도 흩어지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나이는 어리시다고 들었는데…….”
“변백현이요, 올해 스무 살.”
“……앞으로 자주 뵜으면 해요.”
왜? 네년이 우리형을 죽였다고 내 목을 조르며 구속하고 괴롭히게? 유감스럽지만 영 불편하고 껄끄러운 사이임은 분명했다. 죽은 전 애인의 동생과 자주 얼굴을 내비쳐 좋을 일이 뭐 있담. 괜히 나오려드는 웃음을 입술을 앙 물고 참아낸 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의 눈동자가 결코 부정적인 시선을 내게 보내진 않았기 때문에 안심되었다. 모두가 날 미워해도 하나쯤 날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꽤나 큰 힘이 될 것 같았으니까.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변백현 넌 참 요망스럽고 지저분하구나. 스스로 자책하며 고개를 숙였다. 짜증나. 모든 게 다 짜증난다.
명함을 매만지며 택시 안에 차가운 공기에 기침을 내뱉다보니 그의 번호가 들어왔다. 휴대폰에 박찬열이란 이름으로 저장을 마친 뒤 가방에 휴대폰을 쑤셔넣었다. 아, 얼굴을 자주보자는 그의 말에 고개까지 끄덕였으니 예의 상 번호는 보내줘야겠단 생각에 문자를 보냈다. [변백현이예요. 010-2012-0506 저장해두시라고 문자 드렸어요.] 답장을 바라고 보낸 문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응이 없으니 찜찜하긴 했다. 그의 사정을 생각해보니, 형의 죽음으로 장남이 되어버린 그가 손 쓸새도 없이 밀려드는 조문객을 상대하느라 바쁠텐데 시시콜콜한 스무 살 어린애의 문자에 답장하긴 벅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심한 놈이지. 두 눈을 감았다. 시원하지만 불쾌하다. 따듯한 곳으로 가고싶어.
따듯한 햇살이 뺨을 내리쬐는 그 달콤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벌써 네 시가 훌쩍 넘어섰다. 이제 저녁준비 해야되겠네. 문자가 왔다는 말에 휴대폰을 손에 쥐자 찬열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고마워요. 사실 백현씨 제 이상형에 되게 들어맞아서 자주봤으면 한 거예요. 이번 주말에 시간 되세요?] 이상형……이라니. 내가 여장이라도 해야하나. 대충 시간 괜찮다는 답장을 보낸 뒤 어묵을 꺼내 이리저리 양념과 함께 볶아내니 달큰한 향이 날 감싸안듯 맴돈다. 기분이 좋다. 어쩌면 준면이형을 하늘에 보낸 대신 내게 다가온 사람이 박찬열일지도 모르겠다. 웃음을 터트렸다. 백현아, 네가 너무 예뻐서 그래.
암호닉 신알신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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