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끝
W.감귤언니
수업을 열청하며 볼펜을 손에 쥐고 눈은 칠판을 바라보고 손은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는 널 바라봤다. 뒷통수만 바라보고 있자하니 가끔씩 필기할 때 숙여지는 것 빼고는 계속 칠판에다가 곧은 시선을 보낸다. 너의 변함없이 항상 곧은 뒷모습만 보다보니 오늘도 역시 짜증이 갑작스레 치민다. 수업 내내 펜을 쥐고 있던 손이 저려오는지 펜을 책 위에 내려놓고 손목을 돌리며 인상을 찌푸리는 널 보다가 결국 입에서 짧은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 ´….´ 작았지만 워낙 허스키한 목소리때문에 조용하던 반에서 크게 울렸는지 앞에 있던 얘들이 날 힐끔 뒤돌아보았다. 그 중에 이호원도 아이들과 섞여 날 힐끔 뒤돌아 보고는 다시 아무 표정 변화도 없이 고개를 앞으로 한다. 넌 오늘도 똑같다. 아니 내일도 또 다음날도 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모르겠다. …너란 놈은 항상 똑같으니깐.
〃야,사오라고! 내 말이 같이 들리냐?〃
잠에 이제 막 빠져들려고 하는 찰나, 앞에서 크게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팔속에 파묻혔던 얼굴을 들어 고함소리의 주인공을 슬쩍 확인했다. 역시 예상과 한치도 어긋남없이 항상 똑같은 주인공. 바로 앞에 서있는 놈이 책상에 꼼짝않고 앉아있는 이호원한테 빵 사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바람에 바로 뒤에 있던 내 귀에서 소리가 웅웅거리며 고막이 울렸다. 아 애 시끄러워.
〃야 닥쳐.〃
목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고함치는 녀석의 종아리를 뒤에서 발로 차며 낮게 내뱉었다.
〃!!누구,……아..미..미안.〃
좀 세게 찼던 탓인지 바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 욕설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보더니 굳게 정색하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당황한 꼴로 허둥지둥 교실을 나가는 놈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같잖은 .
쯧,하고 다시 앞을 바라보니 아무 표정 없이 날 바라보고 있는 이호원에 눈길이 느껴졌다. 무표정인 이호원의 시선과 내 시선이 얽혀들자 마자 난 또 같이 귀가 점점 달아오는것을 느끼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아…또 피했어 등신 같은 .
머릿속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빨개진 볼을 감추려 애쓰며 슬쩍 앞을 바라보자 이호원의 판판한 등짝만이 보였다. 벌써 돌려져버린 등판을 보고 있자하니 갑작이 솟아오르는 짜증감에 자리를 박차고 교실문을 세차게 닫으며 복도로 나왔다. 괜히 복도를 지나가는 놈들에게 뭘 야리냐며 시비를 걸면서 애써 끓어오르는 분을 삭혔다. 왜 내가 지금 열분을 삭히고 있는거지 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괜스리 화가 나는건 어쩔수가 없다.머릿속에서 계속 피어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고는 입술을 앙다물고 복도쪽으로 나있는 교실창문을 통해 교실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니,이호원을.
여전히 펜을 붙잡고 안경을 치켜올리며 수학문제를 풀고있었다. 까맣게 보이는 뒷통수가 무척이나 단조롭다. 이호원은 언제나 역겨울만큼이나 단조롭다. 그래서,그렇기때문에 …싫어.
계속 창문 유리창을 통해 이호원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쏘아보다가 결국 다시 뒷문을 세차게 열고 교실로 들어가 앉았다. 문을 어지간하게 쎄게 연탓에 반에 있던 놈들은 다 날 한번씩 힐긋거렸지만 여전히 앞에 있는 놈은 큰 소란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안한다. 오히려 다시 펜을 고쳐잡았다.
〃하.〃
결국은 기가찬다는듯이 바라보다가 짧게 혀를 내두르며 다시 책상에다가 고개를 파묻었다. 볼에 맞닿은 책상의 차가운 표면때문에 잠시 볼이 아려왔지만 곧 체온으로 인해 미지근해짐과 동시에 스르르 눈꺼풀이 감겼다.
몇십분도 채 안지난거 같은데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떠서 비몽사몽한 채 앞을 내다보니 벌써 담임이 교탁앞에 서서 종례중이다.
아 … 밥도 못 먹었는데.
밥 생각을 하니 몰려드는 허기감에 입맛만 쩝쩝 다시며 배를 움켜쥐고는 끄응…하며 의자 등받이로 눕듯이 기대었다. 끝날 줄 모르는 길고도 지루한 담임의 종례를 가만히 듣고만 있자하니 심심하여 왼쪽 다리를 덜덜 떨면서 저번주에 새로 뚫은 오른쪽 귀에 달려있는 피어스를 만지작 거렸다. 이거 뚫을 때 정말 어지간히도 아팠던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피어났다. 귓볼을 문지르며 아무 생각없이 가만히 있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지잉하는 진동소리가 허벅지를 통해 느껴졌다. 느릿하게 폰을 꺼내 들어 액정을 확인하니 성열놈이 학교 끝나고 만나자고 문자가 왔다. 답장도 느릿하게 어 라고 보낸다음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저번주에 요즘 대세인 스마트폰을 새로 하나 장만하긴 했는데…, 아직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 핸드폰에 정말 기본적인 전화나 문자같은 기능들만 쓰고 있으니.
왠지 괜히 산 것 같은 마음에 비싸게 주고산 제 돈이 아까워 여러가지 메뉴얼도 눌러보고 인터넷도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 이리저리 만지작 댔지만 이상한곳만 들어가져서 결국 포기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어느 새 담임에 절때 끝나지 않을것만 같았던 종례가 끝이나고 종이 치자마자 야자 안하는 얘들만이 재빠르게 교실밖으로 뛰쳐나갔다. 교실안에는 야자때문에 계속 남아있는 놈들은 교실밖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나도 교실에 있는 놈들을 비웃으며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고 설렁설렁 교실을 나왔다. 저 멀리 복도 끝에 하교 하면서까지도 영어단어장을 들고 외우며 걸어가는 이호원이 보였다.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젠 질린듯한 표정을 짓고서 놈을 지긋히 바라보았다. 말랐으면서도 탄탄하게 벌어진 어깨와 등판밑으로 이어지는 쭉 뻗어 긴 다리.작으면서도 둥글둥글하게 이쁜 두상까지. 역시 재수없다.
문뜩 이호원의 날카로운 눈매가 생각나 손을 들어 내 눈매를 지분거렸다. 똑같이 날카로운데 왜 이렇게 다르지….
눈매만 만지작거리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복도를 쩌렁쩌렁 울릴정도로 큰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울려퍼졌다.
〃야!!왜 이렇게 느리게 쳐걷고 있어!〃
무식하게 크기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기에 귀을 검지로 틀어막고는 손을 대충 흔들어주며 설렁설렁 걸어갔다.
아 모든게 귀찮아.
〃지금 막 끝났어, 담임이 길게 끌잖아〃
〃하여튼 맨날 늦어 장동우!〃
옆에서 계속 투덜거리는 이성열의 어깨를 끌어안고 억지로 끌며 학교를 나왔다. 맨날 늦는다고 아직까지도 꽁알대는 이성종을 보며 혀를 찼다. 아직도 초딩이라니깐…. 근데 왜 부른거야.
〃피시방가자.〃
안그래도 막 물어보려던 참에 고맙게도 알아서 답해줘 벌렸던 입을 다시 꾹 다물었다. 알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항상 둘이 가던 피시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에도 피시방가서 안그래도 실컷 하게될 스타그래프트 얘기나 엊그제 따먹었던 대학생누나 얘기, 담배값이 몇프로 더 인상됬네 어쩌네 하면서 놈의 침까지 튀겨가며 내뱉는 시시껄렁한 얘기를 간간히 대답이나 맞장구도 쳐주며 대충 듣는척을 해주며 묵묵히 길을 따라 걸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이성종의 이야기만이 간간히 귓등으로 흘러들어올 뿐, 머릿속으로는 자꾸 딴 생각만이 맴돈다.
〃야 이번엔 너가 돈 내. 어제는 내가 냈잖아〃
어느 새 피시방에 도착해 카운터를 탕탕거리며 손으로 친다. 놈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열고 몇천원을 카운터에 내려 놓았다. 아 라면사먹을라 그랬는데…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정받은 좌석에 가서 앉아 본체를 켰다. 옆에선 벌써부터 신나가지고 흥분된다는 듯이 욕설을 뱉으며 마우스를 가만 두지 못하고 계속 화면이 로딩도 채 되기도전에 클릭질부터 해대는 이성열이 보였다. 이성열을 보고 있으면 정신 분열증인가 하는 의심도 살짝 들긴 하지만 지 인생 지가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하곤 바탕화면에 이미 깔려있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할려고 더블클릭해 켰다.
〃호구 아직도 크아하냐. 완전 초딩 뺨 치는 고만〃
허…내가 살다살다 이제는 이성열한테 초딩같다는 소리도 들어본다.
어이없음에 옆을 쳐다보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태연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가끔씩은 간간히 욕도 내뱉으면서.
〃아흐……허리 개 아파〃
〃니가 죽을때마다 난리치면서 해서 그런거 아냐.〃
이성열이 허리가 아프다고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시간이 다 끝나 피시방 밖을 나왔다. 밖은 해가 저물어 이미 어둑해져가고 있었다. 밖에는 야자를 끝내고 시끄럽게 수다를 떨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여고생무리와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노인네들 빼고는 아무도 없이 거리가 휑했다. 어둑해진 밖을 둘러보고 있는데 게임에 열중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 배고파,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어.〃
〃. 담배라도 빨을래?〃
고개를 주억거리니 실실 비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건네는 손을 노려보다가 거칠게 받으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네 불을 붙였다. 그 새 이성열도 꺼내 물었는지 담배를 피고 있는 양 볼이 깊숙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난 왠지 빈 속에 담배를 폈다간 속만 더 쓰릴거 같아 대충 입에만 물고 가끔씩 담뱃재만 고개를 흔들어 털었다. 할 말도 딱히 없어 필터만 조근조근 깨물고 있는데 침묵을 뚫고 이성열이 어느 한 곳을 가르키며 약간 높은 억양조로 말했다.
〃저거 이호원 아니냐? 그 밥먹을때도 공부만 하는 범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