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서로 좋아하는데 사귀자라는 말 없이 그저 늘 함께 하는 우리 사이.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팔짱을 끼고 다니고 맛있는 음식은 서로 먹여주며 보고싶은 영화가 생기면 일순위로 연락하는 사이. 함께 한 시간은 벌써 7년.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어오던 관계는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던 그 밤, 제야의 종이 뎅, 뎅, 뎅 울리는 그 시간. 엄마가 직접 담근 매실주를 훔쳐와 공원 정자에서 서로 홀짝이다가 붉은 얼굴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둘 다 술이 알딸딸하게 올라있던게 문제인지 사귀자라는 말도 없었지, 게다가 둘 다 오글거리는건 정말 싫어해서 자존심 상 우리 사귀는거야? 이 질문을 못했지.
사이가 너무 애매한거야. 아니 !! 나 대신 사이다 딱 마시고 확인 한 번 해주면 안되는건가? 이런 마음도 막 들고 그런데 얘만 보면 좋으니까 뭐 그냥 같이 다닌거지.
이런 시간이 얼마나 지속된지 아니?
우리 지금 스물하나야. 심지어 지금 8월이라고. 1년하고 8개월을 이렇게 사귀는듯 안사귀는듯 지내온거야. 남들은 얘가 내 애인인줄 알지. 근데 우리가 챙기는건 서로의 생일. 그게 끝. 나 진짜 쑥맥이란말이야. 그래서 야 우리 사귀는거냐? 이 말을 못하겠어. 그래서 여태 연애를 못 했나봐. 그런데 뭐, 서로 좋아하는데 뭐가 중요하겠어. 너네도 우리가 답답하지 않니? 나 그래서 오늘 우리 사이를 확실하게 할거야. 마음은 확실한데 관계는 확실하지 못 했던 우리가 이젠 진짜 확실해질 수 있게.
" 최영재. 오늘 저녁 7시, OO공원으로 나와라. "
" ...PK신청이냐? "
" 미친놈아 ! 나오라면 나와 ! ... "
미친놈....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더위가 풀리고 슬슬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요즘은 여름이니까 7시, 8시까지도 날이 밝단말이야. 좀 더 어두울 때 만나자고 할 걸 그랬나.. 내 고질병, 얼굴 빨개지기. 조별과제나 개인발표 등을 하면 목소리는 또랑또랑 한데 얼굴이 엄청 빨개져서 고딩 때 최영재가 나한테 웅변토마토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그래서 3년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웅토 아니면 웅이로 불린다. 후... 생각하니까 빡치네 죽일까 ^^... 여튼 나는 이런 포켓몬 주인같은 별명을 얻고 최영재한테 그렇다할 별명을 못 지어줬네, 생각보다 놀릴만한 거리가 없는 놈이라. 서투른건 나한테나 서투르지 ...은근 능글맞은 놈이라 한동안 능글새끼로 부르다가 말았던거 같다. 입에 안 붙는단말이야.... 여튼간 어두울 때 만나야 얼굴 빨개지는걸 안 들킬텐데. 9시에 만나자고할걸.
세상에나, 지각이다.
" 야, 니가 나오라고 해놓고 왜 지각이야. "
" 미안, 진짜 미안 ! 쏘리 ! "
" 앉아, 근데 왜 불렀냐. "
최영재는 대화를 할 때 항상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하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나 지금 경청하고 있어요 하는 느낌을 풀풀 풍긴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늦은 시간을 따져가며 쏘아붙일 것만 같은 눈이었는데 날 벤치 옆자리에 앉히고는 내 눈을 쳐다봐준다. 심장이 뛴다. 이 마음을 어떻게 서로 숨기고 살았을까.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 너도 그럴까, 영재야.
" 확실해지고 싶어. "
최영재의 눈썹 한 쪽이 올라간다. 저건 무슨 소리냐, 헛소리인가- 하는 무언의 표시이다. 내가 개드립을 칠 때마다 저 표정을 지은 후 억지웃음으로 하하하, 해주었지. 그러고보니 너의 웃음소리는 참 호탕하면서도 뭔가 청량하기도 하고 나는 웃는게 그렇게 어색했는데 너는 참 예쁘게 잘 웃었었지.
" 너와 나 사이를 확실하게 정의하고 싶어. "
최영재가 인상을 썼다가 풀면서 낮은 목소리로, 정확하게 말해. 라고 한다. 긴장한건가.. 아니, 긴장은 내가 했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가고 얼굴이 빨개지는게 느껴진다.
" 난 너랑 더 발전된 사이가 되고싶어. 알잖아, 내가 어정쩡한거 싫어하는거.. "
최영재가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웃음.
" 더 발전? 결혼할까?"
" 응, .....응? "
결혼?? 결혼?????????????????????????????????????
" 너 내가 사귀자는 말 안 해서 불안해하고 있었잖아. 내가 그걸 모를 것 같냐. 기다리는게 얄미워서 일부러 말 안하고 있었어. "
" 뭐 이새끼야? "
하하하, 웃더니 땀으로 젖은 손을 잡아주며 말한다. 장난이야, 그러고는 은근하게 웃으며 내 눈을 바라보는데 세상에. 역시 내가 좋아하는 남자, 진짜 잘생겼다.
" 이야, 역시 내 친구. 욕 하나는 걸쭉하게 잘해. 우리 웅이, 전생에 욕쟁이 주모였나봐. "
역시 내 친구.
역시 내 친구.
역시 내 친구.
뭐야, 친구 사이라는거야? 단정짓는거야?
영재가 내 눈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떨려 눈을 요리조리 눈을 굴리다가 눈을 맞추면 참 마음이 간질간질했는데 이제 못 하나... 우울해져서 시선을 뚝 떨구니까.
" 웅아~~ 내 웅아 ~ 사귈까? 우리 서로 고백한지 591일째야. 내가 계산 다 하고왔어.
니가 나 만날 때마다 눈치 보는 것도 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냥 확 기념일이라고 1년이라고 챙겨볼까 생각도 했는데. "
니가 눈치 보는게 귀여워서, 타이밍 잡는게 귀여워서, 나 기다리는게 귀여워서 말 못 했어.
세상에, 자꾸 나 심쿵해...완전 빠네빠네버렸어여... 그렇게 목소리 깔고 웃으면서 말하면 내가 더 반하잖아 영재야, 제발 자제 좀.
" 솔직히 표현하려고 하면 너 좋아하는거 많이 표현할 수 있었지만, 그리고 나랑 놀러다닐 때 니 마음도 솔직히 다 티가 나서 알 수 있었지만.
그 날처럼 너가 니 마음 한번만 더 표현해주길 기다렸었어. 나는 이미 다 준비가 되어있는데 니가 어색해하고 굳어있는게 보여서.
니가 용기내기만을 기다렸지. 근데 너 생각보다 쫄보더라. "
" 야 …야, 진짜..너 .. "
" 너 지금 나한테 또 반했지? 얼굴에 딱 써있네. 저 지금 최영재한테 심쿵사 당했습니다~ 하고 "
" 아니거든 ! 이 나쁜놈아. "
" 나쁘긴 니가 나쁘지, 거의 600일동안 그렇게 입 꾹 다물고있냐. "
" 아니, 난... 무서웠으니까. 술김에라고 말할까봐.. "
" 내가 술김에 그런 말 할 것 같냐? 와 진짜 너무하네. "
" 아니.. 야, 그러면 우리 이제 진짜 확실한 사이인거지? 그....그거...사귀는 사이.. "
" 나는 이미 591일동안 혼자 연애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치사해라. 자기 혼자 시작하겠다네. "
" 야, 난 진짜 용기가 안 났다니까? "
" 그래, 우리 사이에 무슨 날짜가 중요하고 시작이 중요하겠냐. 너 혼자 헛짓한거라 생각하고.
우리 날짜 그런거 신경쓰지말고 그냥 오래오래 같이 살자. 결혼할거잖아. 안 그래? "
" 결혼은 생각 좀 .. "
" 너가 나 기다리게 했으니까 결혼은 나랑 해야함. 거절 불가. 너 내꺼임. "
" …그래. 너 군대 다녀오면 ^^ "
" 아니, 야 ! 그걸...하...잊고 있었는데 군대 얘기를 왜 하냐. "
" 다녀와, 더 예뻐져서 있을게. "
되게 많이 돌아서 온 것 같은데 ..뭐 그래, 사귀는 날짜 헤아리고 그런게 뭐가 중요하겠어. 너랑 내가 좋아하는 마음 확인하고 이제 손 꼭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게 중요한거지. 니 마음 안 변할거라는 확신, 내 마음 영원할거라는 확신 그런거만 있으면 우리 사이, 오래 가겠지.
" 이제라도 용기내줘서 고마워 웅아. "
" 아 웅이라 하지말라고 ! "
" 내 웅인데 뭐가 문제야. "
아... 이놈의 별명... 애칭을 정하던가 해야지 진짜.
" 이름아, 볼에 뽀뽀해도 돼? "
" 변태야, 뭔 뽀뽀.....를 허락받고 하냐, 은근슬쩍 하는거지. "
뭐야, 얘.. 진짜 하고싶었나. 엄청 쪽쪽거리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어두워지고 있어서 엄청 빨개진 내 얼굴 들키지는 않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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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무리를 못 지어여... 생각했던 결말이 있는데 급마무리....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가 ㅜㅜ
다음엔 제대로 다듬어서 글 가져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