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웨일 - 안녕(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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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설이를 처음 만난 건, 그러니까 너를 처음 만난 건 대학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저기요, 죄송한데 혹시 승성관이 어딘지 아세요?"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어색하게 내게 말을 걸던 너는 지금의 너보다 훨씬 앳되어 보였다고 기억한다. 그 때 난 면접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 왔었지만 너의 곁에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셨다. 혼자 왔나. 의아해하며 너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를 깨운 것은 너의 되물음이었다. 모르세요?
"아…. 혹시 면접 보러 오셨어요?"
"네."
"그럼 저랑 같이 가요. 저도 면접보러 왔으니까 같이 가면 될 거예요."
그 때 대학에서는 큰 강의실 하나에 지원자들을 모아놓고 각 과마다 한 명씩 불러 서로 다른 면접실로 들어가 면접을 보는 시스템을 실행했었다. 건물에 들어온 후부터 보호자는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기에 나와 너, 둘이서 면접 출석을 하기 위해 강의실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너는 나에게 물었다.
"무슨 과 지원했어요?"
"아, 저 외교통상이요."
"우와, 외교통상!"
"그…쪽은요?"
"저는 심리학과요."
"아아, 심리학과."
고개를 끄덕이며, 왠지 모르게 너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과라고 생각했다. 강의실에 도착하고 출석을 한 뒤 아무 곳에나 앉으라는 선배님─어느 과인지는 모르겠지만─의 말에 너와 나는 연석으로 빈 두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자리에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자 다양한 교복과 다양한 얼굴의 학생들이 서로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서 나눠준 입학사정관에 대한 종이를 읽어보며 여유를 부리는 반면, 다른 학생은 예상 면접 질문지와 예상 답변을 외우며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나는 너와 작게 얘기를 하며 긴장을 풀었다. 이름이 뭐냐, 어디에서 왔냐, 안 떨리냐, 왜 혼자 왔냐.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대학 면접을 앞에 둔 학생들이 긴장을 풀기 위하여 최대로 나눌 수 있는 대화였다. 그리고 이 때 나는 너의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너 혼자 버스를 타고 이 곳까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와의 대화로 어느정도 긴장이 풀렸지만 너는 여전히 긴장이 되었던지 중간중간 계속 손을 비볐다.
"많이 떨려?"
"응? 아, 조금. 아후, 왜 이렇게 긴장되지."
나는 너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 주었고, 너는 고맙다는 듯이 한 번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 때 너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너는 면접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너에게 주먹을 보이며 잘 하고 오라며 속삭였다. 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이 네가 손에 들고있던 작은 종이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너 먹어. 엄마가 나 먹으라고 싸준건데, 먹으면 체할까봐 손도 못 댔어. 맛있게 먹고, 너도 잘 봐."
빠르게 얘기한 너는 손을 흔들며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사라진 너에게 네가 보지 못 했을 손인사를 한 뒤 너가 내민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작은 슈크림빵 3개가 예쁘게 담겨 있었다. 지금 먹으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겠지 싶어 네가 앉았던 자리에 너 대신 종이봉투를 앉혔다. 너는 면접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갈테지. 그럼 이제 너와 다시 만날 수도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거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어떻게 보면 이 학교 와서─아직 면접도 안 봤지만─ 처음 사귄 친구인데 번호라도 교환할 걸 그랬지, 하고 후회가 되었다.
면접은 생각보다 잘 봤던 거 같다. 면접을 보는 내내 교수님들과 입학사정관의 표정도 좋았고, 대답도 막힘없이 술술 잘 나왔다. 자만하긴 이르지만 이 정도면 합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게 건물을 빠져나와서 부모님을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나의 손에 들린 봉투를 보고 여쭤보셨다. 그게 뭐니? 나는 그냥 면접 끝나고 나눠준 선물 같은 거라고 얼버무렸다. 왠지 네가 나에게 준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네가 준 슈크림빵을 하나 먹었다. 여전히, 번호라도 물어볼 걸, 하고 후회하면서.
그렇게 나는, 너와 함께 면접을 봤던 대학에 최초 합격을 하고, 겨울 방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대학교 신입생 OT를 준비하는 순간까지도 너를 영영 보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고, 그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를 OT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헐, 정일훈?"
약 4개월 만에 다시 보는 너는,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어색하게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푸른 색의 과잠 소매가 너에게는 컸던 것인지 손을 반이나 덮고 있었고, 나를 보는 네 눈은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나는 너를 보고 놀란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너에게 다가가서 나보다 작은 너에게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인사를 할 뿐이었다.
"또 만났네. 슈크림빵 잘 먹었어."
그러자 너는 예쁘게 웃었다.
그 뒤로 너는 나와 붙어다니는 일이 많았다. 비록 과는 다르지만 점심을 같이 먹고, 교양 수업을 같이 듣고, 노래방을 같이 가는 등. 둘 만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하나 둘씩 붙어다니는 인원이 늘어나고 지금의 8명이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둘보다는 여덟이 더 활발하고 다양하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너도 함께 하는 인원이 많으니 좋아하는 눈치였다. 우스겟소리로 홍일점이 되니 사랑받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너에게 우리는 질타하는 시늉을 했지만, 나는 속으로 한껏 널 향해 웃고 있었다.
"야, 김설이."
중간고사 공부를 한다며 도서관에 단체로 몰려가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자꾸만 잠이 오는지 너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너는 그런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그런데,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그 때.
"일어나. 잠 깨러 가자."
"응…?"
"김설이 잠 깨자. 공부 해야지."
육성재는 졸고 있던 너를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자판기 커피라도 사 먹이려는 생각이었는지 지갑을 챙기며 나가는 그 모습을 나는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런 육성재와 너를 힐끗 보고 다시 공부에 집중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왜인지 자꾸 신경쓰였다. 둘이 무슨 얘기를 할까. 둘이 뭘 할까. 둘이…….
그 날 이후로 나는 너와 육성재가 붙어있으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이면 너의 옆자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육성재의 자리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러던지 말던지 신경쓰지 않고 자기들 할 얘기하기 바빴지만 나는 그들과 대화하는 척, 너가 육성재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듣느라 항상 귀를 쫑긋 세워야만 했다. 육성재는 유독 너와 가까이 지냈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을 소홀히 한 것은 절대 아니었느나, 너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은 것은 분명하였다. 너는 육성재와 함께 있으면 늘 입에 미소를 달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늘 가슴이 체한 것마냥 불편했다. 왜 이러지, 자문해봐도 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후 수업 휴강으로 집에 일찍 가게 된 날이었다. 방 정리를 하다가 면접을 보던 날 너가 주었던 슈크림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발견하였다. 그 날, 집으로 돌아와 남은 슈크림빵을 먹으며 또 너와 언제 볼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다. 왜인지 나는 너와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둘 중 한 명이 혹은 둘 다 그 대학에 떨어져서 아예 남남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정말 OT에서 널 만나기 직전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지냈다. 종이봉투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겨있는데, 문득 OT 날에 너가 나에게 물어본 것이 생각났다.
'너는 나 다시 만날 줄 알았어?'
그 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었지. 아마 '아니.'라고 대답했던거 같다. 그리고 덧붙였다. '너 아예 못 만날 줄 알았어. 방금 너 만나기 직전까지도.' 그러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가 입을 열고─ 뭐라고 했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로부터 받은 종이봉투를 버릴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를 만나지 못 할거라고 생각하면서, 여자주인공의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녀를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영화 속 남자주인공처럼 나는 그 작은 종이봉투를 감히 버릴 수 없었다. 봉투를 열던 아직도 달달한 슈크림 향기가 나는 것만 같은 이 종이봉투를, 왜. 나는. 버리지 못 했던 걸까. 다시 만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왜 번호를 교환할 것을 후회하며 아쉬워했던 것일까.
기나긴 고민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사실 너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이라고.
너를 영영 보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을, 너를 만나기 직전까지 했다는 것은, 어찌 되었던 너를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스쳐가는 사람처럼, 5개월이 지난 뒤 다시 봤을 때, 네가 누군지 떠올리기 위해 생각을 한참이나 해야 할 정도로 잊었을지도 모르는 너를, 나는 너를 처음 봤던 날부터 다시 만나는 날까지 생각했고, 그 감정은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떨림'이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떨림이, 지금 내 안에서 큰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래.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좋아했다. 커피를 마시며 교수님 험담을 하던 너도, 학교 앞 알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배부르다며 배를 통통 두드리던 너도, 축제 날 술에 취해 테이블에 엎어지던 너도. 그 어떤 순간의 너도 나를 떨리게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비록 육성재가 네 옆에 있는 순간만큼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지만 그렇다고 감히 널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런 순간의 너도, 나는 좋아했으니까.
"오늘 종강파티인거 알지?"
서은광이 점심을 먹다가 말을 꺼냈다. 종강파티. 벌써 종강할 때가 되었구나. 너는 방학동안 뭘 하면서 지낼까. 이민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오늘 마시고 죽을거라며 다들 빠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순간 네가 걱정되어 괜히 너에게 장난을 걸었다.
"김설이 알콜 쓰레기잖아. 마실 수 있음?"
"와, 정일훈이 나 개무시하네. 당연하지, 오늘 내 발로 집 갈 수 있어."
"내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가는 거 아니야? 네 발로 기어가~ 네 발로 기어가~"
나의 놀림에 너는 울컥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숟가락으로 나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너는 그런 모습 마저도 예뻤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다가 무심코 육성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보는 눈빛이, 내가 육성재를 보는 눈빛과 같았다. 딱 그 눈빛이었다. 바람에 민들레씨가 날아가지도 못 할만큼 짧은 순간이었지만 느꼈다. 너를, 육성재가 좋아한다고.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종강파티를 하러 주점으로 내려갔을 때 이미 너의 우측에는 육성재가 앉아있었다. 나도 질세라 바로 비어있는 너의 좌측에 앉았다. 서은광의 우렁찬 선창에 우리들이 후창을 하며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술게임을 하며 한 학기동안 고생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술과 함께 넘기고 있는데 육성재가 너에게 안주를 퍼주는 것이 보였다. 너는 고맙다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그 순간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어 괜히 죄없는 강냉이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부숴진 강냉이가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 떨어졌고 나는 너에게 잔을 채우라며 술을 따라줬다.
"오, 막잔! 일훈이 여자친구 생겨라~ 뽀뽀!"
나에게 술을 따라준 너가 마지막 잔임을 알고 빈 병 입구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천진난만한 너를 보다 작게 웃으며 병 입구에 입을 맞췄다. 너는 크게 '일훈이 여자친구 생기겠네!'하며 좋아했다. 네가 나에게 '여자친구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하니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나는 '그게 너였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 하고 조용히 술만 마실 뿐이었다.
결국 너는 취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취해있었다. 맘 같아서는 데려가주고 싶었지만, 너의 집이 어딘지도 모를 뿐더러 너네 집으로 가는 버스 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너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오며 널 어떻게 집으로 데려갈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육성재가 너의 집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다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살짝 위축되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육성재가 나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데려갈거냐는 물음에 육성재의 입이 움직였다. 나는 그에게 너를 맡기기 싫어서 너의 집도, 너의 집으로 가는 버스 번호로 몰랐지만 그를 따라 대답했다.
"내가 데려다 줄게."
"내가 갈게."
그리고 다시 육성재와 눈이 마주쳤다. 육성재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다른 친구들은 우리를 놀려대기 바빴다. 다시 한 번 누가 데려갈거냐는 임현식의 질문에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바라만 보았다. 친구들은 그럼 둘이 사이좋게 데려다주고 가라고, 여름방학 잘 지내라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너는 부축한 손을 고치며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계속 정적이 흘렀고, 그 정적을 깬 것은 육성재였다.
"너 김설이 집 어딘지 알아?"
"……아니."
"가는 직행버스는?"
"……."
"…근데 어떻게 데려다 준다고."
"어떻게든 되겠지."
"……."
"……."
"너 김설이 좋아하지."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런다고 그에게 들킨 마음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육성재의 앞에서 너를 좋아하는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육성재는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들자 '핸드폰.'하고 짧게 대답하는 육성재다. 그에게 나의 핸드폰을 건내주자 육성재는 한참을 만지작 거리다가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김설이네 집 주소랑 가는 직행버스 번호야. 20분 간격이니까 잘 타."
"…이걸 왜 나한테 알려줘?"
"바보냐, 니가 데려다 준다며."
"넌?"
"나?"
육성재는 입술을 조금 내밀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몸을 옆으로 돌렸다.
"난 전에 한 번 데려다 줬었잖아."
"…육성재, 너도 김설이 좋아하지?"
"응."
"……."
"나 김설이 좋아해. 엄청 좋아해."
"……."
"그래서 너한테 데려다 주라고 하는 거야."
"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며, 엄청 좋아한다며. 그런데 왜 본인이 데려다 주겠다고 우기지 않지? 왜 그걸 욕심내지 않는거야? 나는 육성재가 널 데려다 준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찌르르 하고 울리는데. 그러자 육성재는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이 대답했다.
"데려다 주는게 욕심나지 않아서가 아니야."
"그럼?"
"내가 만약 너라면 어떨까. 생각해봤어."
"……?"
"나도 너도 김설이를 좋아하잖아. 그럼 당연히 걔를 집에 데려다 주고 싶겠지. 그런데 너는 한 번도 데려다 준 적이 없잖아. 그런 상황에서 내가 또 김설이를 데려다 주게 된다면 넌 어떨까."
"……."
"나같으면 많이 힘들 거 같거든. 물론 이렇게 하는게 널 힘들게 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
"그래도 내가 데려다 주는건 싫잖아."
사실이었다. 전부, 사실이었다.육성재가 널 데려다준다면 난 또 널 빼앗겼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힘들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육성재가 먼저 나에게 기회를 주니, 이건 또 이거대로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육성재가 널 데려다 주는 건 더 싫었다. 나는 육성재의 눈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알 수 없는 표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발을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몇걸음 걸어가다가 고개를 뒤로 돌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그에게 한 마디, 힘들게 던졌다.
"고마워."
그는 살짝 웃으며 반대편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너의 집으로 향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너는 어떤 마음일까.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알까, 아니면 육성재가 널 좋아하는 거? 아무것도 모르겠지. 넌 둔했으니까. 창가에 머리를 박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자는 너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게 했다. 술 냄새와 함께 너의 샴푸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가만히 잠든 너를 관찰하다가 문득, 육성재도 널 데려다 줬던 날에 널 어깨에 기대게 하고 이렇게 봤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기댈 수 있는 어깨는, 내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나만의 어깨를 빌려주고 싶었는데. 곤히 잠든 너를 보니, 어쩌면 나는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는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먼저 알았고 먼저 생각했고 먼저 좋아했다고 해도 내가 너에 대해서 아는 건 광활한 우주의 별 하나,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널 나보다 육성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동안 내가 너의 주변을 맴돌았던 소행성이라면, 육성재는 그런 너에게 직접 부딪히는 운석이 아닐까. 술기운이 돌아 붉어진 너의 얼굴 위로 흐트러진 잔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재미있는 꿈이라도 꾸는지 너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 모습을 보는 나에게도 얉은 미소가 퍼졌다. 버스는 너의 집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제자리걸음만 반복할 뿐이었다.
너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친절하신 분이셨다. 취한 너의 등을 한 대 때리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시다가, 나에게 미안하다며 간식거리가 든 종이봉투를 건내 주셨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더 거절하면 어머니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결국 종이봉투를 받은 채 너의 집을 뒤로 하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이 꽤 길게 느껴졌다. 너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내 마음은 어딘가 뻥 뚫린 것 처럼 허했다. 한숨을 깊게 쉬어봐도,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허전함이 해결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고 기다리다가 너의 어머니께서 주신 봉투를 열어보았다.
"……."
봉투 안에는, 하얗고 작은 슈크림빵이 3개 담겨 있었다.
마치, 너를 처음 봤던 날 네가 나에게 줬던 그것처럼.
"……."
나는 천천히 슈크림빵 하나를 꺼내 한 입 베어물었다. 꽉 찬 크림이 입 안 가득 퍼져 혀 끝이 아릴만큼 단 맛이 났다. 어린아이처럼 천천히 꼭꼭, 잘게 부순 뒤 목 뒤로 단 것을 넘겼다. 갈증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한 입을 물었다. 부드러운 크림의 촉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다시 꼭꼭, 꿀꺽. 그것을 두어번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슈크림빵 하나를 다 먹어버렸다. 나는 다른 하나를 꺼내 베어물었다. 너를 처음 만난 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먹었던 그 슈크림빵처럼 달고 부드러웠다. 입 안 가득 슈크림빵 범벅이 된 채로 입을 우물거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흐윽."
왈칵, 눈물을 쏟아버렸다. 입안 가득 슈크림을 넣은 채 우는 성인 남자의 모습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을 때까지 울면서도 나는 슈크림빵을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잘 벌어지지도 않는 입에 슈크림빵을 욱여넣으며 처음 널 만난 날 먹었던 그것을 떠올렸다.
그 때의 나도 그랬다. 너의 옆에서 그저 널 바라만 보았다.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네 생각만 하였다. 네가 피곤해서 도서관에서 졸 때도, 술에 취해 테이블에 엎어졌을 때도,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지만─그 뿐이었다. 너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고, 너를 데리고 커피를 사러가지 않았고, 너의 집에 데려다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육성재가 하였다. 모두, 다. 만약, 이번에도 육성재가 나에게 너를 맡기지 않았다면 나는 또 아무것도 하지 못 했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좋아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만약, 너와 내가 잘 된 경우와 너와 육성재가 잘 된 경우를 두고 봤을 때. 과연 어느 쪽이 너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과연, 어느 쪽이…….
버스가 왔지만 탈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입을 막고 우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버스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네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처음 먹었던 슈크림빵이, 너를 좋아하는 것의 시작이었다면. 지금 먹은 슈크림빵은, 너를 놓아야 하는 마침표 일 것이다.
[ 정일훈이! ]
[ 너가 나 데려다 줬다며? ]
[ 엄마한테 들었음 ]
[ ㅠㅠㅠㅠ진짜 미안하다ㅠㅠ 그렇게 마시는게 아니었는데... ]
[ 고마워 고마워ㅠㅠ ]
[ 근데 너 우리 집 어떻게 알았냐? ]
겨우 든 잠을 깨운 것은 너의 카톡이었다. 새벽 내내, 너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연달아 울리는 진동에 천천히 눈을 떠 핸드폰을 확인하였다. 너의 이름. 나는 바로 답장을 해주었다.
[ 내가 그러게 술 조금만 마시랬지 ]
[ ㅡㅡ사스가 알쓰 김설이 ]
[ 집은 성재가 알려줬어 ]
[ 일어났으면 꼭 해장하고 ]
그리고 핸드폰을 침대 밑으로 내려놓고 난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 잠들면, 그리고 눈을 뜨면. 그 때부터 너를, 김설이를 좋아했던 마음을 하나씩 접을 생각이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너를 더 붙잡고 있을 수 없다. 이런 나 말고, 육성재라면…. 분명히 너를 더 아껴주겠지. 항상 너에게 적극적이던 아이였으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양을 세며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최대한 잠에서 늦게 깨어나길 바라는 이 마음이, 참 아이러니하다. 침대 밑에서 몇번의 진동소리가 들린다. 너의 카톡이겠지. 하지만 난 지금 잠을 자야만 한다. 잠을… 자야 한다. 멀어지는 진동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깊이 눈을 감았다.
안녕, 김설이. 방학 잘 보내. 널 많이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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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큐대숲입니다:)
어... 이번 편은 일훈이 특별편이었는데요, 여주와 일훈이의 첫 만남, 그리고 일훈이의 감정선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와웅루어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제가 뭘 쓴건지 모르겠어요! (오열)
글 쓰시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ㅠㅠㅠㅠㅠㅠ
ㅎ...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편부터는 다시 페이스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제 진짜 개학 혹은 개강이 얼마 안 남았네요 하하
다들 더위 조심하시고, 다음 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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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미카엘 공대생 뽀뽀 망고버블티 호이호이 지네 코나 프라소니 소뢰 큐브노예 호빗 꾸엑 쌀통닭보다이룬 섭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