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01
"여러분. 지금 이 곳은 임진각입니다!"
2015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0분. 새로운 해가 밝아오기까지 10분 전. 텔레비전에서는 사람들의 흥분된 얼굴과 들뜬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고, 큰 전광판에 비춘 시계는 열두시를 향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내년에는 더욱 행복한 한 해가 되자며 서로가 덕담을 나누기 시작했고, 앞으로 다가올 내년에 모두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모두가 즐기고 있는 반면에 나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피가 흐르는 손목을 내려놓은 채로. 설렘 가득한 그들의 표정과는 다르게 나는 무표정, 그 자체겠지. 열두시를 향한 카운트다운이 마치 나를 좀먹는 시간 같았다. 2016년을 맞이하지 못하고 나는 너와 같이 여전히 19살인 채로,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말겠지.
눈을 스르르 감고 마지막으로 너를 떠올려 본다. 사실 수백 번, 수천 번이고 항상 떠올렸던 너지만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니까, 더 이상은 너를 생각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너를 회상하기로 했다. 선명히 떠오르는 너의 얼굴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두통은 점점 심해져만 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네가 보고싶어. 민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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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12월의 마지막 주. 방학식이 끝나고 아이들은 거의 우는 소리로 서로 방학 잘 보내라며 인사를 나누고는 하나 둘씩 교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에휴. 나도 친구들과 그런 대화를 나누자 이제는 정말 고3이란 생각에 절로 한숨이 푹푹 새어나왔다. 짐이라고 해봤자 필통밖에 없는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서는데 어느 틈에 온 건지 문 앞에 서있던 김민규가 내 어깨에 팔을 척 하니 올리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냐. 이 즐거운 방학식 날에 그 칙칙한 표정은?"
"야. 너는 즐겁냐? 이제 고3인데…?"
"고3이 뭐. 나이 하나 더 먹는 거 밖에 없는데."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학교 짱이잖아. 큭큭 웃으며 말하는 네 얼굴에 됐다, 하며 너의 팔을 툭 쳐냈다. 고3이라는 중압감이 벌써부터 나를 짓눌러오는데 이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나보다. 하긴, 김민규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그 생각이 미치자 또다시 한숨이 새어나와 에휴, 하니 나를 뒤따라오던 김민규가 어어? 하며 내 손목을 잡아왔다.
"아. 왜."
"우리 몬난이. 기분이 너무 안 좋아보이는데."
"알면 좀 놔줄래. 집에 좀 가게."
"아, 무슨 방학식 날 집이야! 따라와. 오빠가 기분 풀어줄 테니까."
오빠는 개뿔. 생일도 내가 더 빠르구만. 구시렁대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너는 내 손목을 힘차게 잡아 끌었다.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항상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김민규의 행동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구시렁 대다가도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휘파람을 휘휘 불며 자신 있게 앞장 서는 김민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고 있자니 옛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3학년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어느 날 우리 반에 어떤 남자애가 전학을 왔었다. 홀수였던 우리 반에 짝이 없던 나는 까무잡잡한 그 아이와 짝꿍이 되었고, 그 아이와 짝꿍이 되고 나서부터 나는 한동안 지옥을 맛봤어야 했다. 애가 워낙 장난끼가 많아서 그런지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질 않나, 내 책에다가 낙서를 하지 않나. 신경을 살살 긁어오는 그 녀석에 우리는 진짜 하루를 멀다하고 매일 싸워서 나는 얘랑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저 하루빨리 4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얘랑 친하게 지내게 된 이유가 아마… 내가 옆 반 애랑 싸우고 있을 때 내 편을 들어줘서 였을 것이다. 편 들어준 이유도 이상하긴 했었다. 얘는 나랑만 싸울 수 있다고. 그러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좀 등신 같았지만 나는 내 편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그 다음부터는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게 김민규와의 끝도 없는 인연이 될 줄도 모르고.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을 하고, 같은 중학교를 다니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지도 어언 9년 째. (이제 고3이니까.) 나랑 키가 비슷했던 아이는 어느새 내 머리 하나보다 더 올라가 있었고, 성적도 키처럼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새삼 너무나도 변해버린 것만 같은 이 녀석이 괘씸해 나는 내 손목을 잡고 걸어가던 너의 손을 퍽- 소리가 나게 때렸다. 아! 소리와 함께 김민규가 제 손을 부여잡으며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왜 때려!!"
"갑자기 괘씸해서."
"뭐가?"
"몰라도 돼."
제 손을 호호 불고 있는 김민규를 뒤로한 채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야, 같이 가! 하며 뛰어오는 김민규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풋, 웃었다. 그래도 나는 이 인연이 싫지는 않다. 오히려 좋다면 좋았지.
나는 그날 네가 우리 반에 전학 와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제목은 소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과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