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02
" "뭐야. 온다는 곳이…."
PC방이었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김민규를 쳐다보니 너는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나는 살면서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PC방이랑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PC방이란 그저 어린아이들이 게임하러 가는 곳이랄까. 딱히 PC방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여서 대체 얘가 나를 왜 여기로 끌고 왔는지가 의문이었다. 내가 게임을 안 하는 것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차라리 집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 갈래, 하고 뒤로 돌아서는데 어딜 가냐며 김민규가 내 가방끈을 끌어 당겼다.
"아, 무슨 애도 아니고 PC방이야!!"
"일단 들어가 보라니까. 후회 안 할걸?"
아오…. 그래도 뭔가 내 기분을 풀어주겠다고 자신있게 데려온 거 같아서 들어는 가야할 것 같은데… 별로 내키지 않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자, 김민규가 뭐해. 하며 내 손을 잡고 힘차게 PC방 문을 열었다. PC방에 들어가서 카운터에 있던 카드를 내 손에 먼저 쥐어주고, 자기도 카드 하나를 집은 다음,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김민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드 번호가 적힌 자리에 털썩 앉았다. 지금 이 상황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내가 앉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뭐하냐면서, 빨리 앉으라며 내 팔을 잡아 당겼다. 어휴. 내가 못 살아.
"여기서 뭐하면 되는데."
"이거."
뭔데? 하고 김민규 컴퓨터를 보니 창 안을 가득 메우는 것은 한창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크레이지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물론 나는 해본 적이 없었지만.
"와. 이게 언제적 게임이냐…?"
"아, 말 진짜 많네. 빨리 키기나 하셔. 아이디는…."
"없어."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내꺼 하나 빌려줄게."
회원가입해봤자 너한테는 별로 쓸모가 없을 것 같으니까-. 자신의 아이디를 능숙하게 치던 김민규는 로그인이 된 캐릭터를 보고 됐다. 하며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컴퓨터로 넘어가 로그인을 하는데 나한테 빌려준 캐릭터와 다르게 김민규의 캐릭터는 여러 아이템으로 무장을 한 건지 휘황찬란했다.
"야! 나는 왜 이런 거 주고 너는 그렇게 좋은 거 쓰는데!"
"당연히 내가 좋은 거 써야 되는 거 아냐? 둘 다 내 아이딘데?"
"야, 근데 이건 너무… 차이가 나잖아."
"몰라, 몰라! 너 초대했으니까 빨리 수락이나 해."
하…. PC방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하는 건 얘랑 나 둘밖에 없었다. 아, 진짜 쪽팔리게…. 괜히 부끄러워지는 마음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야, 야. 시작한다! 하며 호들갑을 떠는 김민규의 행동에 나는 이내 고개를 푹 숙여야만 했다. 대체 누가 우릴 19살을 바라보고 있는 18살로 볼까.
"김여주. 우리 내기 할래? 둘 중에서 더 많이 진 사람이 PC방 돈 다 내기로."
"그럼 내가 지잖아!"
"그러니까 하자는 거지."
"…한 대 맞을래?"
"에이. 그래도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어때, 콜?"
분명 내가 질 게 뻔한 내기였지만 지금 당장은 이 곳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그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게임 세 판 정도 하다가 내가 졌다고 하고 나가야지. 혼자서 그렇게 하기로 다짐을 하곤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이내 게임 스타트! 하는 소리와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아, 김민규 진짜 개 못해! 아이템은 대체 왜 샀냐?"
"야. 니가 비정상적으로 잘하는 거거든? 너 해본 적 없다며. 왜 이리 잘해!"
어휴. 니 캐릭터가 아깝다. 쯧쯧대며 혀를 차자 김민규는 야, 다시해. 하며 이를 빠득 갈았다. 내가 정말 잘하는 건지, 아니면 얘가 상상 이상으로 못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김민규는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금방 죽었다. 무료로 받았던 바늘도 나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얘는 게임 첫 판부터 다 써놓고선 자기는 바늘이 없어서 빨리 죽는거라며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돈은 니가 다 내야겠다. 어떡하냐…."
"아. 나 원래 진짜 잘한다니까? 오늘은 날이 아닌 거 같아."
"그래. 어련하시겠어요."
"얘가 날 못 믿네. 진짜라니까?"
"알았어. 됐고 빨리 시작이나 해."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게임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김민규가 큭큭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웃어? 내 말에 큭큭 소리를 내며 웃던 김민규가 말했다.
"집에 간다고 하시던 분이 누구였더라. 너무 잘 노시길래."
"…그건!"
"됐어. 장난이야. 잘 노는 모습 보니까 보기 좋네."
근데 몬난아. 우리 지금 3시간 째인 건 알고 있니? 과도한 게임은 건강에 해롭단다. 이번 판만 하고 끝내는 거야. 알았지? 어린 아이에게 말하듯이 내게 말하는 김민규에 괜히 무안해져서 목소리를 큼큼 다듬었다. 빨리 시작이나 해. 무안해하던 나를 알아챘는지 너는 큭큭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지막 판에는 웬일로 김민규가 오래 살아남는가 싶더니 또 바보같이 자기가 쏜 물풍선에 죽어버렸다. 에잇. 자리에서 일어난 너가 카운터에 가서 돈을 내는 것을 보며 나는 말했다.
"넌 어디 가서 게임하자고 하지 마라. 욕 먹어."
"오늘은 날이 아니었대도."
배 안 고파?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 말에 나는 응! 하며 네 뒤를 따라나섰다.
분식점에서 대충 점심을 때우곤 바로 노래방으로 직행해서 몇 시간을 그곳에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노래방에서 나올 때쯤에는 목이 쉬어서 서로 목을 부여잡고 켁켁 댈 정도였으니까. 특히 나보다도 심각하게 쉰 네 목소리에 네가 당황해서 뭐야, 왜 이래. 하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나는 아픈 목을 부여잡고도 깔깔 웃어야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새까맸다. 어두운 하늘에 뭔가 이제는 집에 가야할 타이밍인 거 같아 너와 나는 자연스럽게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김민규랑 친해질 수 있었던 또 다른 계기는 집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얘네 집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너는 항상 집에 갈 때면 나를 데려다주곤 했었다. 오늘도 그렇고.
"아. 잘 놀았다!"
"재밌었어?"
재밌냐고 묻는 그 짧은 문장에도 목이 쉬어서 쩍쩍 갈라지는 네 목소리에 나는 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아오. 큰일났네. 아, 아 하며 목소리를 내보지만 돌아오지 않는 목소리에 김민규는 절망에 빠졌다. 그 모습에 웃겨서 깔깔 웃는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김민규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일단 나는 방학식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갔을테고, 하루종일 우울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지. 애초에 초등학교 때부터 김민규가 내 옆에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즐겁게 살 수 있었을까? 물론 김민규가 없었다면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있었겠지만, 지금의 김민규만큼이나 내가 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아니.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김민규밖에 없다. 그 어떤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고 해도 나는 아마 그 사람을 이 정도로 신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민규에게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자기 옆에 있었다면, 걔는 내가 아니었어도 잘 지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벌써 9년 째.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가 없다.
"…고마워."
"뭐냐. 갑자기. 낯 간지럽게."
"그냥…. 고맙다고."
내 옆에 있어줘서. 뒷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어느새 도착한 우리 집에 나는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슬쩍 뒤를 돌아보는데 역시나 너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너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겠지. 9년 째 여전한 너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집에 들어가니 오빠가 쇼파에 앉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비상했던 머리에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오빠는 해외에서 일을 하시는 부모님의 부재를 채워주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였다. 오빠는 다 좋은데 싫은 점을 하나만 꼽자면, 나도 자신처럼 키워야한다는 생각에 나를 너무 옭아맨다고 해야 하나. 중학생일 때는 그렇게 심하게 혼을 내진 않았는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빠의 잔소리는 점점 심해져 갔다. 네가 그렇게 놀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한다면서. 그렇다고 내가 놀지 않는 건 아니다. 병원에서 수술이나, 다른 일이 많아서 오빠가 집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걸린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 오늘 오빠가 집에 있을 줄이야….
"어… 오빠 왔어?"
"…앉아봐."
아. 난 죽었다. 오빠 옆자리에 앉아서 두 눈만 질끈 감고 있는데 옆에서 오빠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 망했어….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다급하게 오빠, 하며 입을 여는데.
"오늘은 이제 너 고3이니까 마지막으로 놀라고 일부러 전화 안 한거야."
"어, 어?"
"다음부터 이러면 진짜 혼나. 이제는 봐주는 거 없어."
"응! 알았어! 오빠 고마…."
"근데 말이야."
이제 고3인데 앞으로 계획은 짜봤어? 내가 고맙다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훅 치고 들어오는 오빠의 질문에 내가 어… 하고 대답을 못하자 어김없이 오빠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그래. 그냥 넘어갈 오빠가 아니지.
나는 정자세를 취하고 그렇게 30분동안 오빠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아. 짜증나…."
잔소리가 끝나고 바로 방으로 들어온 나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애써 김민규가 업 시켜줬던 기분이 다시 다운된 것 같았다. 아. 우울해.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바로 김민규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민규야.] 이 문자 하나에 너는 1분도 안되서 답장이 왔다.
[왜.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보고 싶어?]
"뭐라는 거야 얘는…."
뭔 소리냐고, 집에 들어오니까 오빠가 있었다고 문자를 치니 바로 전화가 왔다.
-아. 날 잘못 걸렸네. 오늘 형님이 계실줄은….
"나도 몰랐어. 진짜…. 그래도 오늘은 덜 혼나긴 했는데 폭풍 잔소리 듣고 왔어…."
-아이구…. 우리 몬난이. 힘들었겠다.
괜찮아. 괜찮아. 나를 다독여주는 네 목소리에 내 기분은 금새 사르르 풀리곤 만다. 아 진짜 빨리 스무 살되서 독립하고 싶어. 오빠한테 벗어나면 소원이 없겠다. 내가 툴툴대며 하소연을 하자 김민규가 말했다.
-김여주. 내가 독립할 수 있는 방법 알려줄까?
"뭔데?"
-스무 살 되면 나한테 시집 와.
"미쳤냐?!"
-왜. 이게 짱이지! 니가 형님한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래도 그건 진짜 아닌 거 같아."
-야. 솔직히 너 데리고 살 사람이 누가 있겠냐? 내가 같이 살아준다고 하면 감지 덕지 인거지.
"…너 진짜 죽을래?"
-장난이야.
큭큭 웃으며 말하던 김민규는 내일부터 독서실이나 다니자며 아홉시에 만나자고 했다. 아홉시?! 평소 주말에도 열두시에 일어나는 내가 과연 아홉시에 집에서 나올 수 있을까. 좀 불가능할 거 같은데….
-근데 넌 나올 수 밖에 없을 걸?
"왜?"
-형님이 너 가만히 냅두겠어? 공부하라고 닦달하실 텐데.
아. 그러네. 차라리 집에서 오빠한테 감시 받는 것보다 너랑 같이 독서실에 가는 게 더 낫겠다.
"그래. 알겠어…."
-으이구. 몬난아. 그럼 내일 아홉시에 너희 집 앞으로 갈게.
내일 보자. 김민규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이런 생활이 반복되겠지. 아침에 학교를 가서 공부하고, 밤 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이 잘 나오면 기뻐하다가도 점수가 안 나오면 울기도 하겠지.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덧 수능 날이 다가와 있을 거고, 그러면 너와 나는 수능을 볼 것이고. 그리고 각자 대학교에 붙으면 그제서야 이 지긋지긋한 고3 생활이 끝이 나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라면 이번 1년은 잘 보낼 수 있을 거 같아.
그냥 묻힐 줄만 알았던 이 망글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진짜 너무나도 감사드려요ㅠㅠㅠㅠ 제가 진짜 완전 사랑하는 거 아시죠?ㅠㅠㅠㅠㅠ
진짜 기대를 안 했었는데 댓글 써주신 거 하나하나 읽으면서 얼마나 기뻤는 지 몰라요 ㅋㅋㅋ
그리고 사실 부담감도 조금 생겼습니다. 끝까지 독자님들의 취향을 저격해야 할텐데...★
하지만 진짜 열심히 써볼게요! 진짜 독자님들 한분 한분 다 감사드려요ㅠㅠㅠ♥♥♥♥
아, 그리고 저 암호닉 신청 받아요...! 많이 신청해 주세요..ㅎㅎ
암호닉 : 엔님, 일공공사님, 워더님.
그리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