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져요, 우리."
"참 나. 그래, 제발 헤어지자. 제발."
한 번만이라도 널 똑바로 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널 죽여서라도 내 곁에 두었을 것을.
아니, 한 번만이라도 날 똑바로 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날 죽여서라도 네 옆에 있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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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1
너를 버린 지 만 하루가 지났다. 십 년은 묵은 가래를 뱉어낸 듯,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를 가득 채우는 공기가 달았다. 지난 주에도 만난 애들을 또 불러 술을 진탕 마셨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인데 어쩐지 더 즐겁고 더 유쾌해 뭘까 했는데, 바뀐 건 나였다. 너를 떨쳐낸 후의 삶이 이리도 달콤할 줄 알았다면 더 빨리 그리할 것을. 미련했던 날 곱씹으며 부딪힌 잔이 쨍-, 맑은 소리를 냈다.
D+ 3
교수동 복도에서 지나가는 널 보고 무의식 중에 널 부르려다 정신을 차리고 말을 삼켰다. 아, 이젠 부를 필요가 없지. 고개를 탈탈 털어내고서 강의실로 발을 옮겼다. 지나가던 이름 모를 여자애가 팔을 끌어안으며 가슴을 붙여왔다. 오빠, 오늘도 한 잔 콜? 콜. 후배님이 원하신다는데, 사드려야지. 이따 전화해. 봉긋한 가슴에 구미가 당겼다. 하기사, 안 한 지도 꽤 됐나. 오늘은 저 가슴을 반찬 삼아 밤을 지새워야지.
D+ 7
꼬박 일주일이 지났는 데도 연락이 없다. 니가 이러면 내가 안달이라도 날 줄 아나 보지? 어차피 굽히고 들어올 년이 지랄은. 핸드폰을 휙 던져놓고 담배를 물었다.
D+ 8
클럽에 갔다 낚은 이쁘장한 년과 모처럼 한 판 하려는데 어쩐 일인지 꼴리지가 않아서 그냥 내쫓아 버렸다. 담배를 입에 물고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 씨발. 이건 왜 연락이 없어. 마침 온 문자에 네가 그럼 그렇지, 했지만 스팸이었다. 열흘이 되기까지 이틀. 이틀 안에 연락하면 내가 봐 준다. 박지민.
D+ 11
열흘이 넘었다. 어째서?
D+ 15
누구에겐지 모를 화에 가득 차 학교를 빠지고 술로 날을 지샌지 사흘. 여기서 더 F가 생기면 *학고를 맞을 상황이 돼서 겨우 집 밖으로 나왔더니 사흘 동안 빛을 못 본 눈이 시렸다.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떨어뜨린 교과서를 알콜 중독자 새끼 마냥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줍고 있자니, 저 멀리서 네가 어떤 남자 새끼와 함께 걸어가는 게 보였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D+ 16
아직도 떨리는 손을 감추고 오랜만에 멀끔해진 모습으로 집을 나서 너를 찾아갔다. 쇼 그만 하고 오지. 네 마음 잘 알겠으니까. 내가 이렇게 먼저 와 줬으면, 된 거 아냐? 네가 기가 막히다는 듯 웃고서 금방이라도 날 칠 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올렸다 허탈한 듯 손에 힘을 탁 풀고 날 지나쳐갔다. 그래, 이 썅 놈 새끼야. 넌 원래 이런 놈이었지. 내가... 뭘? 삐진 거 풀어주고서 오랜만에 고 통통한 엉덩이를 따먹을 생각에 잔뜩 부풀었던 마음이 펑, 터졌다. 내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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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 : 학사 경고. 통상적으로 학사 경고가 세 번 누적되면 퇴학입니다.